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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7일 화요일

“새마을 운동은 미국 안보전략 따른 것”/ 한겨레 이유진 기자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678697.html

등록 : 2015.02.16 19:26수정 : 2015.02.16 20:17
1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한국냉전학회 창립 국제학술대회 ‘한국의 냉전연구’

허은 고려대 교수 논문서 밝혀
동아시아 농촌 장악 중대 문제로
전략촌 ‘대공 새마을’ 전국 건설
최종결과는 지역민 상호감시 구축 

1970년대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미국이 안보적 이해 속에서 진행한 동남아시아 농촌 개발 전략과 초국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되었다는 내용의 논문이 발표됐다.
1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열린 한국냉전학회 창립 국제학술대회 ‘한국의 냉전연구’에서 허은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냉전과 지역사회’라는 논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 연구는 새마을 운동을 냉전사 속에 위치시켜 관련 연구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논문을 종합하면, 한국의 새마을 건설계획은 말레이반도·필리핀·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미국의 안보적 이해와 연관성 속에서 전개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공산주의 세력이 농촌 중심으로 게릴라전을 벌였고, 동아시아 농촌 장악은 전후 세계질서 재편의 중대한 사안이 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미국의 대외활동본부(FOA)와 국제협조처(ICA)는 동남아시아의 농촌개발 경험을 교류하도록 지원했다. 1958년 미국 국제협조처의 지원 아래 필리핀과 한국이 지역개발 참조를 위해 상호방문하고, 1962년 한국 군사시찰단이 남베트남의 전략촌 건설을 시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지역행정체계를 이미 갖추고 있었던 한국은 새로운 곳으로 주민들을 재정착시킨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부락 자체를 ‘대공 새마을’로 전환했다. 1960년대 말부터 전국 안보취약지구에 ‘전략촌’을 건설하고 반공사상이 투철한 제대장병들에게 국유지를 배분하고 방어임무까지 맡기는 방식이었다. 논문의 ‘괴산군 대공 전략촌 설치운영실적’을 보면, 1969년 9개 부락에 머물렀던 전략촌이 1971년 58개 마을로 늘었다. 한국식 전략촌인 ‘대공 새마을’ 건설은 1970년대에 전국적으로 전개돼 물적지원, 반공계몽교육, 감시체계의 기반을 구축했다. 새마을지도자, 이·동장은 ‘개발의 핵’이자 ‘안보의 핵’이었다.
허 교수는 특히 공동체 내부의 치밀한 감시체계를 중요하게 거론했다. 관찰보호대상자 분류에는 데모주동자, 포로송환 및 납북 귀환자의 가족도 포함돼 있었고 요시찰 대상자로서 ‘정신병자’의 근황을 매우 상세히 파악, 보고했다. 허 교수는 “‘외부의 적’을 막는 감시체계뿐 아니라 국가의 통치체계나 규율에서 일탈할 여지가 있는 사회구성원들까지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고 감시하는 지배체제를 작동시켰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부가 안보를 위해 추진한 새마을 건설의 최종 결과는 지역사회 구성원의 상호감시 체제의 구축이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배제한 채 국민을 감시의 대상으로 삼으며 국가권력을 위한 안보를 추구하는 것은 극단적 광기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고 허 교수는 우려했다. 냉전시대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국가안보라는 명분으로 언제든 지역사회와 개인이 희생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한국냉전학회는 1989~90년 유럽 중심의 냉전체제가 해체된 뒤 관련 연구가 각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가운데,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세계사적 맥락을 아우른 연구의 필요성에 공감한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이 중심이 돼 만들었으며, 이날 첫 학술회의를 열었다.
브루스 커밍스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이날 ‘냉전에서 한반도의 중심성’이라는 제목의 기조발표를 통해 냉전시기 전체를 통틀어 미국의 대외정책에서 한국 전쟁의 경험이 가진 중심적 역할을 강조했다. 미국이 이북으로 진격하는 ‘롤백’ 정책이 실패하면서 그 뒤 미국의 외교 정책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을 다룬 <학살, 그 이후>로 인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기어츠상’을 받은 권헌익 영국 캠브리지대 교수는 ‘관계’를 중심으로 한 한국의 냉전 연구가 여전히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1930~40년대 사회인류학의 친족체제연구가 밝힌 ‘친족조직과 정치조직은 상호 규정한다’는 명제를 언급했다. “한반도 냉전의 문화사는 결코 ‘관계의 역사’를 피해갈 수 없으며 국가와 국가의 세력 다툼이 어떻게 형제, 부모자식, 친구 사이의 관계에 구현하게 되는지 톺아보는 것은 여전한 우리의 과제”라는 것이다.
홍석률 성신여대 사학과 교수는 한국은 냉전의 제반 현상이 폭발적으로 드러나는 무대였고 한국의 분단사 연구가 이런 점에서 통찰을 제공하고 있기에 좀더 깊은 학술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는 냉전의 세계사적 연루와 지역적 맥락을 함께 고려하는 다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냉전학회는 이번 창립학술회의와 발기인 총회를 통해 1년에 두차례 정례 학술대회를 열고 매달 콜로키움 또는 워크샵을 진행하기로 했다. 학회 운영위원장은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기로 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한국냉전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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