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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7일 화요일

한국 페이스북 소고(小考)/ 김곰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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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칼럼] 한국 페이스북 소고(小考)

/김곰치 소설가
2015-02-16 [20:27:24] |

지지난해에 페이스북 글쓰기를 참 열심히 했다. 지난해는 쉬었다. 작년 말부터 다시 하고 있다. 내 경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페이스북(이하 페북) 말고 알지 못한다. 트위터는 계정도 없다. 페북으로 시작했고, 페북 하나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외국의 페북은 어떤 분위긴지 알지 못한다. 국가 간 벽이 있지 않지만, 한국 페북, 미국 페북 등 독특한 분위기가 있지 않을까 한다. 해외 이민자들이 한국 페북에 와서 많이 활동한다. 인터넷 전반이 그러하듯 페북도 기본적으로 '읽기 쓰기'의 문자 세계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할 때는 '지난 반년, 장편소설 두어 권 쓴 것 같다' 싶은 뿌듯한 포만감마저 느꼈다. 부지런히 읽기도 했는데, 그러자 종이책과 종이신문이 더욱 멀어져 버렸다. 페북에 중독된 이들은 '책들이 우편봉투째로 쌓이고 있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행복한 사람들의 놀이터가 페북
'좋아요' 세례로 사랑 나누기 하고 싶어
시간 놓고 페북과 종이책 경쟁
한국 페북이 시인 천국 되는 것 바라

 
사 놓고 보지 않은 책 아무거나 펼쳐 책상 앞에 정자세하고 밑줄 그으며 읽는다면, 그 어떤 페북 글을 읽는 것보다 더 영양가 있는 정신적 섭식 시간이 될 것이다. 뻔히 알면서 페북을 쉬 닫지 못한다. 그만큼 사람은 얽히고설킨 속의 자극을 애호하는 관계지향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책이야 옛날에 대충 볼 만큼 봤다, 하는 오만이 작동하는지도 모른다. "페북은 40~50대 중년들의 놀이터"라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스물 몇 살 때 나는 PC통신 문학동호회에 일 년 가까이 몰입했다. 서른 몇 살 때는 블로그를 가꾸느라 신경을 많이 썼다. 이제는 페북이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은희경의 단편소설 제목이다. '행복한 사람은 블로그를 하지 않을 거야', 'PC통신도 하지 않았을 거야' 하고 자조하곤 했다. 그런데 페북은 그전의 것들과 달랐다. 행복한 사람이 잘한다. 이게 페북의 가장 놀라운 점이다.

안전한 글을 써 가지고는 진수를 맛보기 힘들다. 위험하고 아슬아슬하고 딴에는 최초라 할 만한 마이너한 표현들이 가득한 글을 페북 타임라인에 게시했을 때, 그리고 일정 시간 불안과 초조에 시달리다가 페북의 핵심 의사표시 기능인 '좋아요(Like)' 세례를 받으면, 큰절 올리고 싶은 감동을 경험한다. 그러다가 자연스러운 전환이 일어난다. 아, 나도 다른 사람한테 '좋아요'의 감동을 맛보게 하고 싶다!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하는 사랑과 '좋아요'가 똑같다. 행복한 사람들이 사랑을 주려고 흡사 안달 난 곳이 페북이 아닐까 싶다. 

페북도 시간싸움이다. 여유 없이는 할 수 없다. 생각해 보면, 독서는 더하다. 페북보다 더 많은 시간이 쓰인다. 뉴스 소비가 SNS에서 가장 왕성하게 이뤄진다고 하니, 신문과 페북의 경쟁관계는 해소된 듯하다. 적절한 기사 링크는 페북 세계가 현실 감각을 잃지 않게 하는 고마운 포스팅이다. 그러나 종이책은 페북에 들어오기가 서평 형식의 글 말고는 어렵다. 시간을 놓고 페북과 종이책이 경쟁하는 형국이다. 그렇지만 '페북 재미에 빠져 사람들이 더욱 책을 안 읽는다'는 불평은 초점이 잘못된 것이다. 책을 읽을 시간은 없고 짤막짤막한 페북 글 읽을 짬은 낼 수 있는 형편들인 것이다. '저녁이 있는 삶'이 종이책과 인문학의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제만이 아니라 '읽을거리'를 찾아 헤매는 군상이 적지 않은 것이 한국 페북의 안타까운 특징이다. 

내가 지난해에 페북을 쉬었던 것은 '좋아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잊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다. 페북 세상의 어떤 '좋아요'에도 동의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에도 많은 사람이 페북을 접었다고 한다. 덧붙여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페북에 서툰 한 선배에게 "페북은 가장 건전한 성욕의 도가니야"라고 한 적이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 페북에 쓰도록 하겠다. 페북이 그 자체로 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의 호혜 관계가 순수하다. '좋아요'를 극도로 아끼는 이들이 있다. 자존심이 걸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낀 '좋아요'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간명한 글이 비교적 환영 받는다. 몇 개의 시어에서 벼락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나의 바람은 한국 페북이 세계에서 유례없는 시인들의 천국이 되는 것이다. 가능할까. 사랑하는 내 페친들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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