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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9일 목요일

‘세계 책의 수도 인천’을 어찌할까/경향신문, 김석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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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인천에서 유네스코 선정 세계 책의 수도 행사가 열린다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모든 관심이 평창 동계올림픽에 쏠려 있는 사이, ‘2015 세계 책의 수도(World Book Capital)’ 개막식이 한 달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행사는 유네스코 세계 책의 날인 4월23일 개막돼 내년 책의 날까지 1년간 이어진다. 그런데도 국내 문화계는 물론이고 인천 시민들조차 인천에서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대부분 모른다니 여간 큰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만난 인천의 문화계 인사는 “이대로는 국제망신이 될 게 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인천시가 책의 수도로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고민한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2001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책의 수도는 책과 관련된 국제기구인 국제출판협회(IPA), 국제서점연맹(IBF), 국제도서관협회(IFLA)가 유네스코와 함께 선정한다. 강원도와 평창이 세 번에 걸친 도전으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것처럼 인천 역시 삼수 끝에 2013년 7월 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됐다. 프랑스 리옹, 영국 옥스퍼드 등 쟁쟁한 국제 문화도시 7곳을 제치고 당당히 행사 유치에 성공했다고 한다. 세계에서 15번째, 아시아에선 3번째다. 이처럼 중요한 국제 문화행사가 안팎에서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도 유례가 없을 듯하다.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콜롬비아 보고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레바논 베이루트 등 역대 세계 책의 수도는 행사 이후 대부분 국제적 문화도시로 거듭났다는 평을 듣는다. 2011년 책의 수도였던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름다운 ‘엘아테네오 도서관’과 28m 높이의 ‘책 바벨탑’을 세워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그만큼 의미가 크고 매력적인 문화행사다. 이번 행사가 인천에만 국한되거나 1회성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책의 수도 행사는 인천을 책의 도시,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킬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인천시가 행사 유치 후 2년 가까운 시간을 대책 없이 허송세월한 이유가 뭘까. 우선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에 모든 행정력을 소진한 탓이 클 것이다. 인천시장이 바뀐 게 결정적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세계 책의 수도는 유정복 시장이 아니라 송영길 전 시장이 유치했다. 말하자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진영논리 때문에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소문은 책의 수도 관련 예산이 삭감될 때부터 파다했다고 한다. 당초 80억원으로 예정됐던 사업비는 국비 신청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현재 겨우 14억원이 확보된 상태다. 부채비율이 40%에 달할 만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인천시로는 뚜렷한 대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중요한 국제 행사를 진행하면서 정부와 협의하지 않은 것도 인천의 잘못이다. 사실 인천은 독서문화나 출판 인프라에 관한 한 불모지에 속한다. 오죽하면 인천시가 세계 책의 수도를 말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비판이 나왔을까. 같은 이유로 정부는 책의 수도 유치를 극구 말렸고, 결국 국비와 행사 지원을 외면하는 빌미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행히 요즘 인천시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최근 ‘모두를 위한 책, 책으로 하나 되는 세상(Books For All)’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6개 분야 45개 사업 마스터플랜을 내놓은 것은 유 시장이 적극 챙긴 결과물이라고 한다. 늦긴 했지만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등 홍보활동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나 ‘책의 수도 인천’을 상징할 만한 프로그램이 보이지 않는 건 문제다. 인천시가 책의 수도로 선정될 당시 제출한 유치 제안서는 ‘책 읽는 도시 인천’ 만들기 등 프로그램의 구체성과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계획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확정된 행사를 보면 중요한 ‘알맹이’는 다 빠진 채 ‘국제아동교육도서전’ ‘유네스코와 한국의 기록문화전’ 같은 전시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예산도 개·폐막식 등 이벤트성 행사에만 집중될 게 불 보듯 뻔하다. 따라서 세계적인 문화행사가 그야말로 공허한 ‘동네잔치’에 그칠 것 같아 심히 걱정된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다. 정부도 팔짱만 끼고 있을 일은 아니다. 지금이라도 문화계의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인천 강화의 인쇄·출판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도 책의 수도 상징물로 활용해봄 직하다. 세계 책의 수도라는 뜻깊은 문화행사를 유치해놓고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 역량이나 재정과 상관없이 무분별하게 국제 행사를 유치하는 일에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본다. 동계올림픽 이후의 빚더미를 걱정하는 평창이나 콘텐츠도 없이 책의 수도 행사를 앞둔 인천은 그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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