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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27일 금요일

영화 <화장>에 대한 이상한 인터뷰 그리고 小考/오동진

http://artmu.mmca.go.kr/user/sub/subView.do?contentsNo=686&magazine=201503&menu=INTERVIEW


영화 <화장>은 작가 김훈과 거장 임권택의 만남만으로도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임권택은 오랫동안 이청준과 작업을 했다. <서편제>에서 <천년학>까지, 영화를 찍는 임권택 옆에서 이청준 작가는 말년을 비교적 만족하게 있다 가셨다. 이청준이 있어야 임권택 역시 행복해 보였다. 그러다 이청준 작가가 먼저 가시고 임권택의 영화는 백 편째에서 막힌 듯이 보였다. 이청준 없이 찍었던 백 한번 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는 예상대로 실패한 작품이 됐다. 임권택은 서서히 은퇴를 준비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김훈을 만났다. 그리고 이 노붕(老鵬)은 다시 비상(飛上)했다. 임권택의 신작이자 백 두 번째 영화가 되는 <화장>은 그가 여전히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거장 감독임을 입증하는데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 됐다.

그러나 김훈의 <화장>과 임권택의 <화장>은 사뭇 많이 다른 작품이다. 물론 사실은 같은 내용이다. 특히 둘이 추구하는 내면의 철학은 아주 같다. 그러나 외양은 꽤 큰 차이가 난다. 일단 채은주라는 작품 속의 ‘뒷 배경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는 완전히 살아있는 인물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임권택은 배우 김규리를 기용해, 소설 속에서는 화자, 곧 주인공인 오 상무(안성기)의 숨겨진 욕망의 대상에 불과했던 인물을 육화된 실제 캐릭터로 부활시켰다. 이것이야말로 소설 <화장>과 영화 <화장>의 가장 큰 차이이자 어쩌면 역설적으로 두 분야의 접점을 기가 막히게 찾아 낸 절묘한 한 수(手)였던 셈이다.

오 상무는 잡지사를 다니며 자신의 학비를 대주며 함께 고생했던 아내와 30년 가까이 살며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이제는 한 화장품 회사의 실세 상무가 됐다. 10억 짜리 집도 마련했고 별장도 있다. 그러나 아내가 뇌종양에 걸렸다. 그녀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재발에 재발을 거듭해 갈수록 아내는 죽음으로 깊이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과정이 주인공 남자를 고민에 빠지게 한다. 아내는 이제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점점 잃어간다. 똥을 싸고, 흘리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지만 남편은 그런 아내를 정성껏, 진심으로 돌본다. 그러나 그는 힘이 든다. 무엇보다 기막힐 만큼 외롭다. 그런 그에게 신입사원인 채은주가 자꾸 눈에 들어 온다. 그녀의 어깨 선, 그녀의 둔부, 그녀의 가슴. 그녀의 입술과 미소. 그리고 또각거리는 그녀의 구두 발걸음. 늙어가는 남자는 젊은 여자를 욕망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남자는 두 여자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절망한다. 게다가 55세인 이 남자, 요즘들어 벌써 전립선이 땡땡 부어 비뇨기과에서 소변을 빼내야 할 정도가 된 상태이기도 하다.

임권택의 영화에서 김훈의 남자 주인공은 안성기가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임권택 감독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성공한 중년이면서 지적인 면모도 가져야 하고, 아내에게 끝없이 성실한 것이 진실돼 보이는 동시에 젊은 여자에게 끌리는 모습이 탐욕스러워 보이지 않아야 했다. 그걸 한 얼굴에 다 담아낼 배우는 안성기 밖에 없다’고 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는 좀 과장스럽게, 오랜 인연의 배우 안성기를 추켜 세우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생각이 싹 바뀐다. 실제로 안성기는 이번 영화 <화장>에서 60년의 연기 인생에서 또 한번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다. 김규리의 전면(前面) 올 누드도 사람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후끈 달아 오르게 한다. 김호정이 헤어 누드를 마다하지 않는 투혼 연기는 사람들의 가슴에 눈물을 차오르게 만든다. 임권택의 이번 <화장>은 그래서 매우 진실된 맛을 철철 넘치게 한다.

무엇보다 소설 속에서는 익명의 여인이었던 채은주가 활활 살아있는 육신으로 거듭난 것이 영화를 더 뜨겁게 만든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나풀거리는 치마 단은 영화 속 주인공인 중년남 만큼이나 보는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감춰진 채은주를 살아있는 채은주로 만든 것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송윤희 작가 겸 감독의 역할이 컸다. 여기에 오랫동안 임권택 자리를 지키며 시나리오를 쓰고(<축제>) 각색을 도맡아 했던 역시 감독이자 작가인 육상효도 한 몫을 담당했다. 소설 <화장>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은 어땠을까. 작가 송윤희와 나눈 이메일 대화는 이랬다.


영화 <화장> 의 시나리오를 맡게 된 배경은?

영화사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에게 다른 시나리오를 하나 보낸 상태에서 연락이 왔다. 원래 보낸 시나리오는 노인의 희생을 다룬 내용의 독립영화였는데, 그 시나리오를 좋게 봤는지, 또 작가인 내가 의사 출신임을 알고 맡긴 듯 하다. 극중 뇌종양환자 묘사 등에 유리할거라 생각한 것 같다.

소설과 달리 김규리의 캐릭터를 현실 속으로 꺼내 온 데는 어떤 생각 때문이었나?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필수 과정이었다고 본다. 일방적인 관념에서 양방간의 관계가 있어야 했다. 소설 그대로 했다면 독립단편영화 형식이 제일 맞았을 것이다. 영화화 과정에서 두 주인공의 관계를 어느 지점까지 가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둘의 육체 관계 설정을 두고 환상에 머물지, 실제로 갈지...

그 점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어땠나?

감독님은 처음부터 환상에 머물길 바라셨다. 또한 남자의 외도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러운 면이 있으셨다. 시나리오 과정에서 실제 정사까지 가기도 했다 수정해서 환상으로 갔다가 했으나, 대부분은 남자 혼자만의 외로운 환상이었다.

소설 속에서 김규리의 이름은 추은주. 한자로는 秋殷周인데 이 이름에서 느낀 것이 있다면? 어쩐지 그 이름의 느낌에서 영화 속 캐릭터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 같다

초고에서 한번 의미 부여를 한 적이 있다. 원작의 설정을 그대로 따와서.. 하지만 이후 큰 비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름 자체에 캐릭터 성격을 크게 가져가진 않았다.

이번 시나리오 작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당연한 과정이지만 연출자의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맞지 않을 때 힘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임 감독님의 영화라고 처음부터 생각했었고, 되도록 감독님의 방향으로 가도록 수정해 나갔다.

김훈의 원작은 유독 영화로 옮기기가 어려운 것인가? 실제로는 어떤가?

김훈의 작품은 문장의 명징함이 큰 매력이다. 또한 많은 경우 주인공이 관념적이다. 그의 생각과 인물의 가치관에 기반을 둔 심리적 묘사들이 아름답다. 모두 영상으로 옮기기 어려운 요소들이다. 사건위주의 소설보다는 조금 더 어려운 것 같다.
영화 <화장>은 4월9일 전국에서 동시에 개봉된다. 2주 후에 들이 닥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를 피해 앞당겨 개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 영화는 <어벤져스>와 한판 붙어야 했다. 임권택과 김훈, 안성기의 노년 투혼이 펼쳐지는 작품이다. 차별화된 관객의 지지를 믿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좀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는 관객들이 나서야 한다. 임권택 감독의 새 영화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그건 당위가 아니라 올바른 선택에 해당되는 행위이다. 스러져 가는 인생에 경배를. 당신의 퇴색해 가는 인생의 뒤안길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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