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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일 수요일

[조용호의 나마스테!] 문학이 죽었다고?… 허물 벗듯 끊임없이 변신할 뿐/세계일보 조용호 기자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3/30/20150330004010.html


문학은 이제 한물갔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영상의 득세, 활자 매체의 쇠퇴와 더불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문학은 아예 종언을 고했다고 단언하는 이들조차 있다. 과연 문학은 끝났는가.


존경받는 석학으로 살아온 유종호(80·문학평론가)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작심하고 책으로 답했다. 한국연구재단 주관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4회에 걸쳐 행한 강연을 묶어낸 ‘문학은 끝나는가’(세창출판사)가 그것이다.

“문학이 죽었다는 담론은 서양에서 시작된 겁니다. 예전에는 시차가 있었는데 요즘에는 바로 건너옵니다. 종래의 이론이나 문학 교육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건데, 문학을 가르치고 문필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가만히 있는 것은 문제지요. 문학이 죽거나 사라질 종류가 아니고 문학 내부의 조정은 있을지 모르지만 계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 나름의 반론 담론을 가져야 하는데 마침 기회가 주어져 평소 생각을 마무리한 겁니다.”

소년기부터 팔순에 이를 때까지 문학을 붙들고 살아온 석학이 자신의 인문적 통찰을 전부 쏟아부어 현 단계 문학의 운명을 진단한 역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흔히 문학의 위기 혹은 문학의 죽음이란 말로 지칭되는 상황은 문학의 위상 격하 혹은 하락이라는 말로 완화해서 부르는 것이 적정하다”면서 “극단적인 어사가 환기하는 종말론적 이미지는 아무래도 과장 어법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속담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문학이란 제도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정도로 가난하지도 허약하지도 않다”고 단언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문학의 종언을 이르는 게 아닙니다. 일본 근대문학, 그중에서도 시를 제외한 1960년대까지 근대 소설의 종언을 말하는 거지요. 서구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문학에서도 근대국가를 앞당기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일본 엘리트 문학인들의 사명감이 투사된 그들의 근대 소설이 끝났다는 것이지요. 앞뒤도 모른 채 작금의 우리 현대문학을 자해하는 데 일부 젊은 평자들이 이를 인용, 복창해온 셈입니다.”

박근혜정부의 문화융성위원회에도 참여해 ‘인문특별위원장’으로 지난 1년 간 활동했던 유 회장이 인문주의를 무조건 옹호하는 건 아니다. 그는 이번 책의 서두에 먼저 로맹가리의 단편소설 ‘어떤 휴머니스트’를 인용한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유대인을 학살할 때 철저한 인문주의자였던 유대인 공장주인이 어떻게 그 인문주의의 함정에 빠져 곤경에 처하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편이다. 유대인 칼 뢰비는 믿었던 집사가 지하실에 가져다 주는 음식을 먹고 학살의 시절을 지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집사의 농간에 속아넘어간다. ‘히틀러가 영국을 점령했다’고 뻔뻔하게 말한 집사의 손에는 괴테의 책이 그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상징처럼 들려 있다. 

“유대인을 학살하는 임무를 맡았던 수용소장도 고전음악을 좋아하고 자녀나 아내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인간미가 넘칩니다. 비인간적인 것과 인문주의 사이에는 어떤 공모관계가 있다는 비판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모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이용당했다고 파기할 대상이 아니라 인문주의 본래 정신을 더 투철하게 받아들이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사실을 반성해야 합니다.”

‘문학의 죽음’에 대항하는 담론을 ‘문학은 끝나는가’에 집대성한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그는 “음악 없는 삶은 하나의 과오라고 니체가 말했듯이 예술 없는 삶은 하나의 오류”라면서 “문학의 존속에 의문의 여지는 없다”고 썼다.
서상배 선임기자
그는 문학의 죽음이라는 담론을 확대하면서 이른바 ‘엘리트 문학’을 깎아내리려는 흐름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급진적 평등주의가 ‘엘리트주의’의 탈신비화에 기여했지만 고급문학의 존재 이유는 여전히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그가 이 책에서 설파하는 ‘근접 행복체험론’이 흥미롭다. ‘우리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올라가 도시의 혼탁한 거리에서 경험하지 못한 독특한 상쾌함을 느낀다. 그것은 일종의 근접 행복체험이다. 이 근접 행복체험은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원격공간에서 더욱 고양되고 중국의 장자제(張家界)나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 촉발하는 숭고미를 접할 때 더욱 고양된다.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사정은 같다. 북한산도 설악산도 보지 못한 채 어릴 적 뒷동산의 행복체험 수준에서 제자리걸음하는 정신이 있다면 답답한 일이다.’(190쪽)

오랜만에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그는 예전보다 활기차 보였다. 말의 속도도 약간 빨라진 듯하고 목소리 톤도 조금 높아진 듯했다. 예술원 회장을 맡고 1년여쯤 흘러 처음 만난 자리여서 “회장이라 그런 것 같다”고 슬쩍 웃었더니 그는 강하게 부인했다. 예술원 회장 자리는 시간만 뺏기고 생색은 안 나는 ‘주부’ 같은 자리라고 했다. 산만해서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명예’ 혹은 ‘허영’에 떼밀린 자리라고도 했다. 활기차 보인다면 그건 오히려 팔십이라는 나이에 도달한 안도감 때문일지 모른다고 했다. 

“젊었을 때 일본 신문 잡지 광고에 나온 ‘여든 살의 봄’이라는 수필 제목을 보고 놀랐습니다. 80세까지 산다는 것도 놀라운 일인데 그 나이에 글을 쓴다는 건 선망의 행위였지요. 여든 살이 되어 봄을 맞을 거라고 젊은 시절에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험악한 세상에 여기까지 온 건 우연이지만 고마운 일입니다.”

‘우연’이란 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한치 앞을 모르는데 큰 문제 없이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으며 살아왔다는 사실에 대한 겸손의 표현일 터이다. ‘고맙다’는 말은 그리하여 안도한다는 다른 어사일 것이다. 1935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일본어 교과서로 배우다 광복을 맞고 사춘기인 10대 중후반에 참혹한 6·25전쟁을 겪은 뒤 황폐한 전후에 청춘기를 보냈으니 ‘우연이지만 고맙다’는 그의 말은 새삼스럽지 않다. 그가 지금까지 큰 곡절 없이 살아올 수 있었던 힘의 가장 큰 원천은 두말할 것도 없이 ‘문학’이었을 터이다. 

그는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기고한 에세이 ‘산수유 꽃 피기를 기다리며’에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인용하며 “남보다 오래 살면서 좋은 소리만 들으려는 것도 허영이요 당치 않은 과욕일 것”이라고 썼다. 네이버에서 마련한 ‘열린 연단 - 문학의 안과 밖’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매주 토요일 석학들의 강연을 기획하고 주기적으로 글을 기고하는 일이 요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탁월한 기억력으로도 호가 높은 유 회장은 요즘에는 옛날 기억을 되살려 월간 ‘현대문학’에 6·25전쟁 체험을 연재하는 중이고, 계간 ‘시인수첩’에는 ‘유종호의 시화(詩話)’도 쓰고 있다. 웬만한 청년 못지않은 활발한 집필활동이다. 일찍이 담배를 끊고 술은 평생 입에 대지 않은 견결한 태도도 큰 힘이다.

“담배는 피우다가 끊었지만 술은 솔직히 돈이 없어서 배우지 않았습니다. 젊은 시절 문학지를 편집하던 전봉건 시인이 원고료 대신 술을 사준다기에 냄비국수를 사달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젊어서는 가난해서 술을 멀리했고 여유가 생긴 뒤에는 술자리의 방만함이 싫어 마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게 싫었습니다. 회한이 있다면 공부를 더 많이 하지 못한 겁니다.”

평생 성실하게 책과 씨름해온 인문학자의 회한이 ‘공부’에 대한 갈증이라니 범부로서는 유구무언이다. 문학이 죽고 사랑마저 희미해지는 세태라지만 은발 성성한 이 고전적인 인문학자의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미래는 아직 그리 암담하지는 않다는 사실, 과장일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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