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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1일 수요일

[최재봉의 문학으로] 노동 소설가 이인휘의 경우/한겨레 최재봉 기자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4120.html

지난해 11월 서울 홍대 앞 음식점 두리반에서 열린 노동자 시 동인 ‘일과 시’ 출판기념회. 동인 시인들 말고도 반가운 얼굴이 여럿 보였다. 특히 소설가 이인휘가 문단 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무척 오랜만이었는데, 그런 그의 손에는 엉뚱하게도 호떡이 든 종이봉지가 들려 있었다. 자신이 다니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 했다.
그는 지난여름부터 강원도 문막 식품공장에서 일한다. 호떡과 핫도그, 김말이튀김, 감자떡 등을 만드는 곳인데, 그는 사무직이나 관리직이 아니라 육체노동을 한다고 했다. 이인휘는 사실 열네살부터 노동을 시작한 노동자 출신 작가.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갔지만 중퇴하고 다시 노동을 하다가 1987년 소설가로 등단했다. 1998년에는 격월간 노동자 생활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을 창간하는 등 노동자 문화활동과 창작을 병행하며 책을 열권 정도 펴냈다.
‘일과 시’ 모임에서 오랜만에 문우들과 재회한 그는 짐짓 쾌활하게 식품공장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장에 다시 다니기는 2012년 12월부터라고 했다. 영농조합의 배추 절이는 일과 곡식 볶는 작업장, 합판공장을 거쳐 지금의 식품공장으로 왔다고. 오랫동안 글을 못 썼는데 공장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다시 소설로 쓰겠노라 밝히기도 했다. 그런 그가 <실천문학> 봄호에 단편 ‘공장의 불빛’을 발표함으로써 약속을 지켰다.
“인연이라는 것이 뭔지. 열네살에 공장 문을 들어섰다가 육십이 다 된 나이에 다시 공장에 들어간 것도 어떤 인연 같습니다.”(‘공장의 불빛’에서)
‘공장의 불빛’은 이인휘의 지난 삶과 현재를 거의 그대로 담은 작품이다. 합판공장과 식품공장의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교사였던 부인이 몸져누우면서 공장 일을 하게 된 사연, 부인 병간호에 바빠 문학에서 멀어지게 된 사정, 그리고 직접 경험한 공장의 열악한 실상 등이 진솔한 경어체에 얹혀 소개된다.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박봉에다 잔업·특근에 휴일근로까지 해야 하는 근로조건도 힘들지만, 공장 안에 달린 20개의 폐회로텔레비전(CCTV)은 이 노동자 작가의 인권의식을 날카롭게 건드린다. 그러나 ‘인권위원회는 물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통로를 통해 사장을 고발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에 평균 나이 예순인 동료 노동자 아줌마들은 극구 반대한다. “우린 괜찮으니까 그만두려면 아저씨만 조용히 그만둬 주세요.”
그렇게 해서 옮겨 간 합판공장이라고 사정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하루 열시간 노동에 토요일도 오전까지 일해야 하고 법정공휴일을 지키지 않는 것은 물론 점심시간과 휴식시간까지 줄이는 등 사장은 “오만가지 잡다한 곳에서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몸부림을” 친다.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소설에 그린 대로 새벽부터 저녁까지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이인휘로서는 퇴근 뒤의 자투리 시간과 모처럼 찾아오는 명절이 그나마 글쓰기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다. 작품에 몰입할 때에는 새벽 서너시까지 글을 쓰다가 그대로 출근하기도 하고, 필요하면 사나흘씩 글을 쓰기 위한 휴가를 내는 일도 있다. 그럴 경우 일당은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일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즐겁고 보람되다고 그는 말한다. 공장 아줌마들과 지내는 일상을 뮤지컬 형식 짧은 장편으로 쓸 생각도 있다. 아예 아줌마들과 같이 써 볼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되면 80년대 문학운동이 시도했던 ‘공동창작’의 21세기적 형태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공장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람도 있지만 수도권 저변에 있는 작은 공장들은 더 나빠진 듯싶습니다. (…) 인연인지 운명인지 모르겠지만 내 삶은 그곳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공장이 다시 글을 쓰라고 떠밉니다.”(‘공장의 불빛’에서)
최재봉 문화부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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