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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일 월요일

[특별기고] 제비뽑기 민주주의라는 희망 / 김종철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87164.html

민주주의의 원점, 고대 아테네인들이 근본적 질문을 통해 도달한 결론의 하나가 공직자를 제비뽑기로 뽑는다는 아이디어였다. 그들은 개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해봤자 헛일임을 명확히 이해했다. 중요한 것은 ‘허약한’ 인간들의 힘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하필이면 세월호 1주기 날, 어떻게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갈 생각을 했을까. 사사로운 개인의 일정도 아닌데 해외 순방 계획을 어떻게 짰기에 이다지도 사려 깊지 못할까.
1년을 완전히 허송하고 난 뒤 이제 와서 선체 인양 여부를 ‘고려’하겠다는 것도 억장이 무너지지만, 더 기가 막힌 것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명백히 방해하기 위한 ‘시행령’을 버젓이 정부가 입안했다는 사실이다. 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정말로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속죄의 마음이 있다면, 비행기를 타더라도 이 터무니없는 ‘시행령’부터 철회한다는 발표를 하고 떠났어야 마땅했다.
취임 이후 우리는 최고 권력자의 ‘소통능력’ 결여에 대해 끊임없이 불만을 토로해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국민을 대하는 자세 변화를 아무리 촉구하고, 간청해 본들 애초에 국민에 대한 존경심은커녕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도 분별력도 없는데, 그게 가능하겠는가. 지금 이 나라 통치세력은 여하한 건강한 질책과 비판도 받을 자격이 없는 허망한 존재임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여전히 나라의 중대사에 대한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라는 게 원래 강자에게 너그럽고, 약자에게 혹독한 본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당장에 국가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당분간 예견 가능한 장래까지 국가의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하히 조금 더 인간적인 국가, 혹은 조금 더 ‘녹색적’인 국가를 만들 것인가가 우리의 현실적인 긴급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고, 얻어야 하는 중요한 교훈도 아마 이것일 것이다.
그런데 걱정스러운 것은, 자폐적이고 무책임한 정권과 무능하고 용기 없는 야당이 지배하는 통치체제 속에서 끊임없이 좌절감을 느끼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감, 나아가서는 심각한 정치적 무관심 상태로 빠진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되면 보다 좋은 정치, 보다 합리적인 통치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오히려 부도덕한 기득권 세력의 영구적 집권을 쉽게 허용하는 상황이 조성될 수밖에 없다.
정치 상황이 절망적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냥 좌절하거나 체념하고 있을 게 아니라 정치의 쇄신을 통해서 우리가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치의 쇄신이란 어떤 신비적이거나 초현실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실제로 지금 세계에는 이상적인 국가공동체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가 본받을 만한, 비교적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정치가 실천되고 있는 나라들이 적잖게 존재한다. 예를 들어, 북유럽 국가들 이외에도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 그중에서도 특히 ‘군대 없는 나라’ 코스타리카의 민주정치에서 우리는 매우 값진 것을 배울 수 있다. 코스타리카는 1949년에 군대를 폐지하고, 곧이어 영세중립국임을 선언한 이래 가장 적극적인 평화국가, 인권국가, 녹색국가로서 자신의 위상을 흔들림 없이 견지해왔다. 예컨대 ‘완전비례대표제’로 구성된 코스타리카 의회는 시민들의 자유로운 방청과 감시에 전적으로 개방되어 있고, 헌법재판소는 24시간 문을 열어놓고 시민(어린아이까지 포함) 개개인의 사소한 일상적 불편까지 처리하고 있다. 물론 국가정책의 위헌성 여부를 가리는 게 헌법재판소의 일차적 역할이다. 예를 들어, 2001년에 부시 미국 정부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다는 의사를 밝혔던 코스타리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그 지지 표명을 취소해야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수십년간 자연환경의 적극적 보존을 으뜸으로 여기는 경제·산업정책을 고수해온 결과 지금 코스타리카는 세계 제일의 ‘지속가능한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직 대통령이 시골에서 농부가 되어 생태농원을 가꾸며 그게 자신의 생애 최고의 업적이라고 여기는 나라가 코스타리카이다.
여러모로 부러운 나라가 코스타리카지만, 핵심은 결국 민주정치이다. 즉,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소수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전원이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는 인식, 따라서 통치의 주체는 국민 자신이라는 확실한 인식에 토대를 둔 정치 말이다. 오늘날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에 속하는 북유럽 국가나 코스타리카의 의회가 100% 혹은 대부분 비례대표제에 의해 구성돼 있는 것은, 불가피하게 대표를 뽑아서 통치를 위임하고는 있지만, 최대한 국민의 의사를 왜곡 없이 정치에 반영하기 위한 극히 합리적인 숙고와 선택의 결과이다.
그에 반해서 여전히 우리는 소선거구제 단순 다수 득표로 대표자를 뽑는 시스템에 매달려 있다. 생각해보면, 한국의 정치가 ‘암흑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소위 성완종 리스트로 백일하에 폭로된, 이 나라 ‘정치 엘리트들’ 사회에 만연한 뿌리 깊은 부패구조도 그 점을 극명히 드러낸다.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가 존속하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부정한 금전거래나 도덕적 일탈은 반드시 수반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어떤 정치적 부패 스캔들이라도 그것을 개인적 윤리의 문제로 처리하고 심판하는 데 그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돈이나 뒷거래 따위가 아예 개입할 소지가 없는 합리적인 정치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민주주의의 원점, 즉 고대 아테네인들에게 돌아가 배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아테네 민주주의가 하늘에서 떨어지듯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아테네인들은 몇 세기에 걸쳐 인간존재와 세계의 의미를 묻고, 바람직한 사회의 존립 방식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묻고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서 ‘폴리스’는 결국 자기 자신들이 만든다는 것, 법과 정의는 신에 의해 부여되는 게 아니라 시민들끼리의 자유롭고 활발한 토의의 산물이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일찍이 다른 어떤 인간그룹도 생각지 못했던 민주정치를 창시하고 운영했던 것이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가 (세계와 사물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서의) 철학과 더불어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 아테네인들이 그런 근본적 질문을 통해 도달한 결론의 하나가 공직자를 제비뽑기로 뽑는다는 아이디어였다. 아테네인들은 인간이란 누구든지 권력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패하기 쉽고, 남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욕망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개인의 도덕성을 강조해봤자 헛일이라는 것을 명확히 이해했다. 중요한 것은 이 ‘허약한’ 인간들의 힘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제비뽑기에 의한 대표자 혹은 공직자 선출 방식이 민주정치의 핵심 기제로 고안되었던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그동안 한국 정치의 쇄신을 위해 선거제도를 고쳐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해야 할 필요성은 많이 논의돼 왔다. 그러나 나는 그에 못지않게 주요 공직자들, 특히 검찰총장을 제비뽑기로 뽑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전국의 법학자, 법관, 변호사, 검사들이 모여 3~5명의 후보자를 투표로 뽑는다. 그런 다음 그들의 이름을 적어 넣은 항아리에서 대통령이 1인을 무작위로 뽑아 검찰총장에 임명하는 식으로.(이런 선출방식에는 부정이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고, 또 이렇게 뽑힌 검찰총장은 누구의 눈치도 전혀 볼 필요가 없다.) 지금 검찰만이라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엄정한 법집행을 할 수 있다면, 이 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로 바뀔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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