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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14일 목요일

도서관을 일상의 문화공간으로 [가산칼럼] 이정연 이화여대 이화사회과학원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0900

"지자체별로 설립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은 지자체의 전시행정과 자리 마련을 위한 기관이돼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는 창의력이 파워가 되는 시대가 될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재미와 호기심, 감성은 디지털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디지털 문화를 만드는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아날로그적 사고와 인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다. 아날로그적 사고와 인간에 대한 관심은‘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으며 현대에는 디지털 매체를 통한 ‘콘텐츠’가 주요 역할을 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이러한 지식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계층은 지배층이었고 이들을 위한 학술연구도서관은 항상 왕실과 지배층의 곁에 있었다. 그러나 근세기에 시민혁명, 민주주의와 함께 공공도서관이 탄생해 도서관의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공공도서관이 누구에게나 지식의 문이 열려 있는 개방과 공유의 혁신적인 문화적 공간이 된 것이다. 뉴욕의 공공도서관은 이와 같은 시민문화 공간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고 있으며 역사가 100여 년이 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공공도서관의 역사적 상황은 다르다. 필자는 지난 2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연구를 했는데, 그곳에서 경험한 도서관의 현 상황이 우리나라 도서관의 역사적 발전과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360년간의 네덜란드와 3년의 일본 식민지배 속에서 인도네시아 국민을 위한 자유로운 공공도서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양에서부터 전해온 문헌정보학은 학문으로 도입돼 오늘날에 이르고 있지만, 그 이론을 적용해 그 나라에 도서관 문화를 토착화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공공도서관의 역할이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민간의 작은 도서관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찍이 개화운동의 성과로 지식인을 중심으로 평양(대동서관, 1906년)과 서울(대한도서관, 1910년)에 자생적인 사립 공공도서관이 생겨났지만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되면서 조선총독부 취조국에 몰수된다. 그 이후로 조선총독부 도서관은 일본의 조선침략의 도구로 활용됐고 이 기관은 현재의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진다. 해방 후 1969년 이전까지 공공도서관은 18개관으로 명목상 유지하고 있었으나 실제적인 도서관 운동은 민간의 마을문고 운동을 펼쳤던 엄대섭 선생님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운동은 자발적인 민간의 책읽기, 도서관 만들기와 더불어‘책의 빗장을 풀고 시민에게 자료를 제공하라’는 공공도서관의 계몽운동을 겸한 것이었다.

2000년 이후 지자체는 공공도서관을 앞 다퉈 설립해 현재 약 800여 개 관이 있다. 그러나 도서관의 핵심인 도서관의 장서와 전문인력은 형편없는 실정이며, 도서관 운영을 주차장을 관리하는 도시(시설)관리공단에 위탁해 관리하고 있다(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2개 도서관).

또 다른 예로‘책 읽는 문화’의 슬로건을 건 인천시는 2015년 유네스코로부터‘세계 책의 수도’로 선정됐으나, 전체 예산 가운데 절반이 넘는 예산을 개막주간행사 등 일회성 행사에 투입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현상들을 접하면서 도서관 건립이 행정당국의 자리 만들기로 도서관을 ‘건축’하고 있지 않은지 진정 도서관을 지식정보와 문화중심의 센터라고 보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지자체별로 설립되고 있는 공공도서관은 지자체의 전시행정과 자리 마련을 위한 기관이 돼서는 안 된다. 문화적 기반 없이 급속한 경제개발에 의한 경제적 풍요로움만으로는 미래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개인의 삶과 미래 그리고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적인 창의력은 풍성한 문화적 기반 속에 꽃을 피울 것이다. 필자는 그 핵심에 도서관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도서관은 자유로운 사상과 시공간을 넘나들며 호기심과 지적향유를 제공할 수 있는 지식정보문화기관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시 행정이나 도서관을 시설로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관점에서 이러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서서히 우리 생활 속에서 작은 변화부터 시작돼야 한다. 그 변화를 시민과 도서관 그리고 정책이 함께 손을 잡고 합의를 구하며 지속성 있게 가야 함을 제언한다. 누구든지 지식정보 문화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향유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정연 이화여대 이화사회과학원이화여대에서 문헌정보학으로 박사를 했다. 나사렛대 점자문헌정보학과 교수를 지냈다. 현재 <구술사연구>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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