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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4일 월요일

“아이·며느리도 존중한 철학 알리려 ‘동학 언니들’ 뭉쳤죠”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89255.html

2013년 12월, ‘동학 언니들’이 뭉쳤다. 알음알음 모인 명상지도사, 교사, 시민활동가 등 15명의 여성들은 아마추어 작가로서 동학에 대한 소설을 함께 써보자고 어렵게 큰 결심을 했다. 이들은 지난해 동학농민혁명 120돌을 맞아 일년 내내 공부와 자료 조사에 몰두했고 최근 비로소 전체 13권, 200자 원고지 1만7000장 분량의 방대한 역사다큐소설을 완성해냈다. 30일부터 인터넷에 공개하고 연말에 13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여성동학 다큐소설>의 탄생 배경이다. 이 기획의 ‘산파 노릇’을 한 한의사이자 사회활동가 고은광순(사진)씨가 지난 28일 모처럼 서울나들이를 했다.
2012년 귀촌한 충북 옥천 청산면
해월의 동학농민혁명 총지휘본부
“만인평등 세상 매료” 자료조사

2013년말 아마추어 여성작가 15명
조사·답사·취재·검증해 직접 집필
연말까지 13권 출간…소셜 펀딩도

“동학 하는 이들은 상하귀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이라면 모두가 한울님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람의 위계나 우열을 가리지 않으며 맞절을 하고 경어로써 서로 존경했지요. 그들이 어떤 세상을 꿈꾸었으며 어떻게 무너지고 살아남았는가를 써보려 했습니다.”
고은씨는 2012년 충북 옥천의 청산면에 한의원을 짓는 과정에서 그곳이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최시형이 거주하며 동학혁명을 총지휘하던 지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05년까지 호주제 폐지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난관을 넘었던 그였기에 만인이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일구었던 120년 전 동학도들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애초에는 발굴된 사실을 토대로 소설을 써줄 만한 작가를 물색했지만 여의치 않아 다양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과 직접 소설을 쓰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이렇게 모인 ‘동학 언니들’은 박이용운, 정이춘자, 유이혜경, 김현옥, 명혜정, 박석흥선, 변김경혜, 이장상미, 임최소현, 최김은희, 한박준혜, 김미경, 리산은숙, 조임정미, 김정미서씨 등이다. 자료조사 과정에서 동학 연구의 권위자인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전폭적인 조력자로 나서, 프로젝트의 고문까지 맡아주었다.
“동학은 ‘대단히 진화한 사람들의 가장 고등한 철학’이었어요. 가부장을 넘어서 비인격체이던 어린이를 존중하고, 남존여비 사상 아래 핍박받던 며느리에게서도 존귀함을 발견하려고 했어요. 가진 것을 나누는 ‘유무상자’(有無相資)라는 공동체 정신도 있었고요. 하늘을 품은, 너무나 아름다운 이야기였습니다.”
고은씨는 “증오가 있는 곳의 어머니들이야말로 평화운동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여성의 손으로 아름답고 처절한 동학의 역사를 살리는 것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의미가 크다고 봤다. 이를 통해 동학에 대한 인식 부족이나 오해까지 바로잡고 싶었다고 한다.
“흔히 동학이라고 하면 전라도, 죽창, 녹두장군 같은 열쇳말로 기억하지만 대일전쟁은 경상도에서 시작했습니다. 동학군의 항일 투쟁에 일본군은 몰살 작전을 펼쳤어요. 일제 최초의 제노사이드였죠. 동학은 평등사상과 공동체 정신을 담은 실천철학이었습니다. 1894년 한반도 인구가 1052만명, 동학교도들은 200만~300만명에 이르렀고 3·1운동의 뿌리 또한 동학에 있었다는 사실도 알았어요.”
1898년 해월이 세상을 떠난 뒤 동학 교주가 된 손병희는 교세 확장과 영적 훈련을 거듭하면서 3·1운동을 계획했다. 시천주, 인내천, 사인여천 같은 동학사상이 3·1운동의 철학적 반석이 되었다는 점도 최근 연구자들의 조사 결과 밝혀지고 있다. ‘동학 언니들’은 이런 사료들을 발굴하고 정기적인 모임과 공부를 통해 상호 평가하고 전문가 검증을 받는 한편, 유적지 답사와 취재를 다니며 소설의 사실성을 높였다. 이 과정에서 역사 속 숨은 여성 동학도들의 삶과 사상적 계승도 찾아냈다.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이며 ‘졸업식 노래’와 동요 ‘짝짜꿍’을 만든 청산 출신 작곡가 정순철, 동학혁명 당시 여성 지도자였던 이소사란 인물도 새롭게 조명했다.
“저는 충북 청산편을 썼는데 해월과 그의 딸 최윤, 최윤의 아들인 정순철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입니다. 여성 지도자 이소사는 말을 타고 혁명군을 진두지휘했죠. 할머니들은 김개남 장군이 체포될 때를 묘사한 ‘개남아 개남아 김개남아…’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동학사상을 전파하려고 했어요. 할머니들로부터 동학사상을 직접 계승한 외손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동학 언니들’은 최근 떠들썩한 진도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 안장 논란과 관련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국 동학당 수괴의 수급(머리)’이라는 붓글씨가 선명한 이 동학군 지도자의 유골은 20여년 전 일본 홋카이도대학에서 발견해 박맹수 교수가 진상조사를 맡았다. 1996년 일본에서 돌려받아 전주역사박물관 수장고에서 보관하다가 최근 안장 사업이 추진됐다. ‘동학 언니들’은 유골을 안장하면 역사적 증거가 사라지고 후손 찾기 등 역사 복원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안장 대신 보존해서 일제 침략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탄원을 넣었다.
이들의 프로젝트는 연말까지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인터넷 소설 연재는 전체의 3분의 1 분량으로 30일부터 동학스토리넷(donghakstory.net)에서 시작하며, 사회적 기업인 오마이컴퍼니(ohmycompany.com)를 통한 크라우드펀딩도 30일 개시했다.
“동학은 민초들이 쓴 ‘저항의 역사’이기 때문에 친일, 친미, 분단으로 이익을 보아온 사람들은 이 소설을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미-일 군사동맹 강화로 인한 우려가 120년 전의 모습과 비슷하게 다가오는 지금, 동학에 대한 재조명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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