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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중국 창춘서 ‘제11차 한중작가회의’/한겨레 최재봉 기자 리포트

한국과 중국 문인 40여명이 발표와 낭독, 토론을 벌이는 제11차 한·중작가회의가 17일 중국 지린성 창춘 쑹위안 호텔에서 개막했다. ‘인문적 전통과 한중문학’을 주제로 18일까지 열리는 이 행사에는 한국에서 시인 김명인·이시영·이재무·조은 등과 소설가 정찬·박상우·김언수, 문학평론가 홍정선·김종회·우찬제 등 17명이, 중국에서는 장웨이민 지린성작가협회 주석과 조선족 소설가 진런순(김인순) 등 20여명이 참가했다.

장웨이민 주석은 환영사에서 “작가는 문학의 입체적 매체이자 운반공”이라며 “무게 있는 한국의 문학을 여기까지 수고롭게 운반해 온 한국 작가들, 그리고 중국 각지에서 자신의 문학을 이곳까지 운반해 온 중국 작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 주석은 “두만강과 압록강에 갈 때마다 한국의 옛 노래 ‘공무도하가’와 민요 ‘아리랑’을 생각한다”며 “중국 최초의 시가집인 <시경>에 실린 많은 시들과 마찬가지로 이 노래들도 길에서 시작돼 민중들에 의해 전승돼 왔다는 점에서 비교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정선 인하대 교수는 답사에서 “2007년 상하이에서 열린 제1차 회의 이후 지난해까지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진행된 열 차례 행사는 두 나라 문인들의 상호 탐색과 이해의 과정이었다. 올해 11차 행사로 한·중작가회의는 일단 매듭을 짓고, 좀더 깊이 있고 본격적인 이해를 위한 새로운 만남의 방식을 기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진 기조발제에서 잡지 <강남> 발행인인 소설가 중추스는 “대중음악과 드라마, 영화, 음식 등의 한류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가까운 이웃나라의 문학에는 무지하던 차에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고 낯설지 않다는 공감을 느꼈다”며 “세속에 아부하고 항복하는 거짓 문학이 아니라 병든 세계에 맞서 분투하는 문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르량 지린성작가협회 부주석도 기조발제에서 “근대 이래 중·한 양국은 거의 같은 경험을 거쳐 새로운 역사 시기에 진입했다”며 “최근 수십년 새 양국의 경제 교류 또한 기하급수적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두 나라는 경제 영역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호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정선 교수는 ‘인문주의적 시각에서 본 시 읽기의 문제점’이라는 발제에서 이상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와 김영랑 시 ‘오월’을 읽고 가르친 경험을 소개하면서 “한 가지 정답만을 가르치는 시 교육은 인문주의적 시 교육이 아니라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인간을 키우는 잘못된 교육이다. 시 읽기와 같은 사소한 것으로부터 다른 생각을 가질 권리를 인정하는 연습을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두 나라 문인들은 오전 행사에 이어 오후에는 소설 분과와 시 분과로 나누어 교차 작품 낭독과 토론을 이어 갔다. 정찬의 소설 <길, 저쪽> 일부를 마아이루가 낭독하고 진런순의 소설 ‘사랑시’ 일부를 정찬이 낭독하며, 이시영 시 ‘정님이’와 ‘시’를 바오얼지 위안예가 낭독하고 량핑의 시 ‘나와 키가 같은 뱀’과 ‘허공에 매달린 나뭇잎 하나’를 김명인이 낭독한 뒤 토론하는 식이다.

그동안 두 나라 문인들이 중국 상하이와 시안, 시닝, 샤먼, 청두와 한국의 서울, 인천, 제주, 경북 청송을 오가며 해마다 열린 한·중작가회의는 올해 11차 회의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행사를 주도해 온 홍정선 교수는 “앞으로는 규모를 줄이는 대신 좀더 깊이 있는 교류와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형식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4892.html#csidx37b92431c525ecca7c523c3e7d647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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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차 한·중작가회의 홍정선 문학평론가-량핑 시인 대담

홍정선 문학평론가 
“양국 작가들 이해·신뢰 높아지며
10회 예정이던 차수도 늘어나
장르별 교류 등 변화 모색할 시점”

량핑 중국 시인
“낯설었던 한국문학, 깊이 인상적
한중 갈등해소에 이바지 기대
주기적 작품 교류·발표도 추진”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제11차 한·중작가회의에 참가한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사진 오른쪽)와 중국 시인 량핑이 17일 오후 행사 장소인 쏭위안 호텔 회의실에서 대담을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문인 40여명이 한데 모인 가운데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제11차 한·중작가회의가 17~18일 열렸다. 행사에 참가한 문학평론가 홍정선 인하대 교수와 중국 시인 량핑은 17일 오후 행사 장소인 쏭위안 호텔 회의실에서 대담을 나누었다. 홍 교수는 2007년 출범한 한·중작가회의의 산파 역할을 한 이고, 량핑은 쓰촨성작가협회 부주석이며 중국에서 영향력이 큰 시 잡지 <청년작가>와 <초당>의 주필을 맡고 있기도 하다. 두 사람은 올해를 끝으로 일단락되는 한·중작가회의의 발자취와 의미를 더듬어 보고 한·중작가회의 이후 두 나라 문인 교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나누었다.

홍정선(이하 홍)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의 문인과 지식인들의 관계는 다른 어느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돈독했습니다. 조선시대는 물론이고 신라의 최치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최근 들어 두 나라의 경제 교류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이어지고 있는 데 비해 문화 교류, 특히 문학 교류는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대중문화는 좀 사정이 다릅니다만. 어쨌든 본격적인 문학 교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한·중작가회의를 출범시켰습니다. 베이징의 중국작가협회를 파트너로 삼으면 일이 편했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양한 작가를 자유롭게 만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우선은 상하이작가협회와 푸단대를 상대방으로 삼아 1회 행사를 치렀죠. 그런데 회의가 이어지면서 다양한 중국 작가들이 참여하고 그분들의 노력으로 칭하이성 시닝, 산시성 시안, 푸젠성 샤먼, 쓰촨성 청두, 그리고 올해의 지린성 창춘처럼 중국의 다양한 지역에서 행사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량핑(이하 량) 저는 9차였던 청두 행사와 지난해 경북 청송에서 열린 10차, 그리고 올해까지 세 번째 이 행사에 참가했습니다. 비교적 늦게 참가한 편이지만, 두 나라의 주류문학(본격문학)을 대표하는 유명한 작가들이 참가해서 대화를 나누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회의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시인과 시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습니다만, 올해 행사에도 참여한 김명인·이시영 시인의 작품을 읽어 보니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 이렇게 훌륭한 시인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반성을 했습니다. 한·중작가회의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갈등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 증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기회를 만들어 주신 홍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홍 교수님은 중국 고전과 현대문학에 두루 조예가 깊은, ‘지중파’라 할 만한 분이시죠.

 량핑 선생도 말씀하셨다시피 올해까지 열한 차례 열린 한·중작가회의를 통해 양국 작가들 사이에 많은 친분이 생겼습니다. 두 나라를 오가는 사이에 깊은 신뢰가 생기고 그 신뢰에 바탕해서 한국 문학작품을 중국 잡지에 발표하고 책으로 출간하는 등의 성과도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도 중국 문예지 <장백산>에 이시영 시인과 소설가 박상우·권지예씨 등의 작품이 게재되었죠. 린젠파 선생 제안으로 2014년 9월 중국 사쟈방에서 열린 김주영 소설 집중 토론회, 그리고 이듬해 11월 청송 객주문학관에서 열린 중국 소설가 장웨이 집중 토론회도 한·중작가회의를 통해 쌓인 신뢰가 그 바탕이 되었지요.

 한·중작가회의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한국 문인들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집니다. 홍 교수님과는 술도 참 많이 마셨지요. ‘러브샷’도 하고 그 모습을 찍은 ‘인증 샷’은 제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습니다.(웃음)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는 앞으로 중국과 한국의 문학 및 문화 교류에 정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편집을 맡고 있는 두 문학 잡지에 주기적으로 한국 시인들의 작품을 발표하기로 홍 교수님과 어느 정도 합의를 한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중국 작가와 시인들의 작품 역시 한국에서 발표할 수 있는 방안 역시 홍 교수님과 의논했으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다른 외국, 특히 서구 문인들과의 교류에 비해 중국 문인들과의 교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서로를 이해하고 호감이 생성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전통의 힘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어는 문학어로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언어일 것입니다. 풍부한 고전적 맥락과 함축, 그리고 놀라운 운율성 때문이죠. 당연히 뛰어난 리듬감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 시에는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중국 시의 서정성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죠. 그런가 하면 중국 소설의 강력한 서사성 역시 인상적입니다. 최근 들어 서사성을 상당 부분 상실하면서 기교로 흘러가는 한국 소설이 배울 점이라고 봅니다.

 한국 시에서 인상적인 것은 현실에 대한 관심과 주목이라고 봅니다. 또 자연과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같은 한국 시라 해도 각자의 특색이 짙은 것도 특징적입니다. 가령 이번 회의에서 토론한 이시영 시인의 ‘정님이’나 김명인 시인의 ‘수심에 길들여지지 않는 장님물고기’ 같은 작품은 중국에서 발표해도 훌륭한 시로 평가 받을 만한 대단한 수작들입니다.

 본래 10회까지로 예정했던 한·중작가회의가 지린성 작가협회 쪽의 강청으로 올해 11회 행사까지 치렀습니다. 지난 11년이 상호간 이해를 축적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봅니다. 시·소설 분야별 교류라든가, 어떤 식으로든 규모는 작아도 더 깊이가 있는 방식으로 변화를 모색할 생각입니다. 이와 관련한 한국문학번역원 쪽의 제의도 있고 해서 내년부터는 새로운 형식의 교류가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창춘(중국)/글·사진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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