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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6일 월요일

독립출판과 ‘작은 목소리’/ 박조건형

부산 연산동에 있는 책방 ‘카프카의 밤’에서 독립출판 스터디 모임을 열고 있다. 총 4개월에 걸친 과정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오프라인 모임을 진행하고 비공개 카페에 각자 자기 원고를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비공개 카페에는 자기가 쓰고자 하는 내용으로 채워진 ‘원고를 올리는 폴더’가 있고, 그때그때 있었던 에피소드나 자기성찰식의 글을 올릴 수 있는 ‘일지 폴더’가 있다. 독립출판의 시작은 결국 각자의 목소리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각자의 글을 적는 일에서부터 출발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사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게 된다
독립출판의 ‘독립’이란
‘혼자’라는 말이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기존의 출판사를 통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그리고 사진을 편집해서 작은 책으로 엮어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독립출판물만 취급하는 서점도 많이 생겼고, 독립출판 수업도, 편집프로그램 수업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글이란 자연스러운 목소리겠으나, 글을 쓰지 않던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건 꽤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발목을 붙드는 건 실제로 글 쓰는 기술이라기보다는,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이다.

생각해보면 글이란 ‘보이는 말’인데, 우린 너무 자주 타인의 글에서 내 목소리를 찾으려 하는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좋은 글들이 이정표가 되긴 하겠지만, 내가 적고 싶은 것은 결국 나의 글이다. 나의 목소리를 찾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글은 끝내 쓰지 못한다. 잘 쓰지는 못하지만, 나도 내 일상을 블로그에 짧은 글로 적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찾아보니 싸이월드부터 지금의 블로그까지 10년 넘게 나의 일상을 기록해 왔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짧게라도 글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생기면 놓치지 않고 기록했다. 흩어져버리는 일상의 말들을, 일단은 어딘가에 남겨놓는다. 좋은 글이든 나쁜 글이든 상관없다. 철자나 문장 같은 것도 무시한다. 일단 적는다.

시중에 나와 있는 독립출판물들이 귀하게 느껴지는 건, 온전히 그들만의 목소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자기 멋에 취해 적은 글, 자기만 알아볼 것 같은 일기 수준으로 쓰인 글 등 아무리 개인의 목소리라도 읽기에 난감한 출판물도 더러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독립출판물을 찾아보고 관심을 갖는 건, 이따금 만나게 되는 귀한 ‘목소리들’ 때문이다. 지난해 7개월 정도 긴 우울의 증상을 앓았는데 그때 크나큰 위로가 된 책들이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에는 우울증을 겪는 많은 이들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기획자도 공황장애와 우울증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겪었기에 인터뷰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공감하며 만든 귀한 책이었다. 읽고 있으면 역시나 답이 없는 그 절망감에 힘들기도 하지만,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의 혼란스런 마음을 여과 없이 담아냈다. 독립출판계에서 나름 베스트셀러로 여겨지던 작품이기도 하다. <아직은 따스할지도 모를>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채식 레시피가 함께 담긴, 인디뮤지션 봄눈별의 우울증 이야기다. 20대 초반에 겪은 우울증을 일기 형식으로 담은 숨니 작가님의 <안녕, 안녕>도 나에게 적지 않은 힘이 되었다.

군대에 복무하면서 군대 안의 폭력성과 남성성에 관해 비판적으로 기록한 <군대일기>도 좋은 책이다. 저자가 동성애자이다 보니 이성애자 남성들끼리 연대하면서 습득하게 되는 약자에 대한 폭력성을 예민하게 성찰했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서도 솔직히 말하기 힘든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 무속인 다섯 분의 인터뷰 모음집인 <무>, 스토리지북앤필름을 운영하는 마 사장님이 책방을 만들기까지 8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 서울의 3년 이하 서점들 인터뷰집 <솔직히 책이 정말 팔릴 거라 생각했나?> 등등 괜찮은 책이 정말 많다.

나도 지금까지 세 권의 독립출판물을 만들었다. 격월간지 <오늘의 교육>을 만드는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일 때 일상드로잉 기록물인 <손 그림, 일 그림, 삶 그림, 계속 그림>을 냈다. 부산의 독립출판사인 호랑이 출판사와 함께 부산의 골목 풍경을 그려 만든 <부산 그림>도 있다.(두 책은 이미 재고가 없는 상태다.) 현재는 소설을 쓰는 짝지와 함께 ‘여행’과 ‘삶’을 함께 기록한 독립출판물을 연작 형태로 만들고 있으며, 내년에는 7년 가까이 내가 몸담았던 생산직 노동 현장의 기록도 독립출판물로 제작할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함께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있고, 삶의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노동이 있다. 아픈 상처가 있고 행복한 추억들이 있다. 추억이나 상처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스물네 시간’이 있다. 스물네 시간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침묵’도 결국 ‘말’인 것처럼, ‘특별할 것 없는’ 일상도 이야깃거리가 되어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사는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게 된다. 그러고 보니, 독립출판의 ‘독립’이란 ‘혼자’라는 말이 아니라, ‘함께’해야 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작은 목소리들을 응원한다.

박조건형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14460.html#csidx21ae27bc15d357f8386fd823acb50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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