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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0일 일요일

이선경의 讀書, 督書, 毒書 사냥하듯 책 골라라/ 이선경 문학평론가/ 신동아 2017년 4월호

근본적인 문제로 되돌아가보자. 책이 내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을 살펴본다는 이 연재의 패기 덕분에, 지금까지는 주로 책의 예외적이고 의외적인 부분을 다루어왔다. 앞으로 두세 번 정도는 독서(讀書)의 기본으로 돌아가 책을 고르고, 읽고, 나만의 방식으로 소유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그러곤 다시 ‘지금, 여기’의 독서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시작으로 이번 회에서는 책을 고르는 문제에 대해 살펴본다. 만약 책을 읽거나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면, 당신은 어떠한 기준으로 책을 고를 것인가. 이 연재 같은 글에서 극찬하는 책을 참고해서? 신문이나 인터넷 서점에서 적극 추천하는 책을 기준으로? 그런데 전대미문의 책이 등장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서평이나,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끌고자 띠지나 광고에 새겨진 미사여구에 이른바 ‘낚인’ 적은 없는가? 혹은 화려한 미끼로 포장된 낚싯바늘이 너무도 많은 탓에 도대체 무엇을 물어야 할지 모르는 당혹감을 느낀 적은 없는가?

며칠 전 일부러 ‘낚여’ 보려고 들어간 서울의 한 대형서점에서는 공교롭게도 최근 각 출판사에서 시도하는 ‘○○의 서재’라는 제목의 책을 한데 모아 전시했다. 저명인사의 이름값에 기대어 그들의 독서 리스트를 알려주면서 그 나름대로 책의 품질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런 수많은 리스트가 오히려 독자를 길 잃게 만들고, 의도치 않게 저명인사 인기 투표가 돼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때로 나 같은 사람의 역할이란, 그런 잘 정돈된 아노미를 요약 정리해 여러분의 수고와 시간을 덜어주는 것이다. 

# 책의 바다에서 노 젓기

그래서 내가 그 서재의 바다를 여러분이 굳이 경험할 필요 없이 한 권을 통해 전달한다면, 자칭 ‘직업 독자’인 탕누어의 책 ‘마르케스의 서재에서’를 통해 정리할 수 있겠다. 제목만으로 보았을 때, 노벨상 수상 작가이자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의 거장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에 한 번쯤 살펴보고 싶은 동시에 아예 펼쳐보는 것조차 망설여지는 부담감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의역된 이 책의 원제는 절대 눈에 띌 수 없을 만큼 밋밋한 ‘열독이야기(閱讀的故事)’다.  

저자인 탕누어는 아주 순수한 ‘선의(善意)’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책 읽기를 권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곧잘 부딪히는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자신도 인정하듯, 이 책은 마르케스라는 거장의 또 다른 어려운 책 ‘미로 속의 장군’을 통해서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난해한 책이 돼버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만 책을 지혜롭게 읽을 수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왜 이처럼 책과 대중을 가깝게 만들려는 순수한 의도는 매우 자주 실패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왜 지금 여기의 책들이 현란한 문구로 대중을 붙잡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답도 된다. 그것은, ‘책을 아예 안 읽는 사람은 있어도, 책을 한 권만 읽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책의 바다에서 스스로 항해할 능력이 되는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노(櫓)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노는 오랜 세월의 단련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것이고, 어쩌면 본인에게만 유효한 유일무이한 것일지도 모른다. 탕누어가 독서를 정의할 때, 게릴라식으로 전개되는 침투력과 전복력에 빗대 말하는 것, 틈새에서 틈새로 뻗어나가는 나뭇가지 형태의 생명 활동에 빗대 말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 오랫동안 구축해 온 ‘노’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다. 그리고 기껏 찾아낸 우리 모두를 위한 노는, 비극적이게도 너무나도 난해한 마르케스의 소설이다. 

비슷한 콘셉트를 갖고 최근 출간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문학동네, 2017)는 책의 바다를 항해하는 독서광의 서재를 시각적으로 재현해낸다. 이제는 관광 명소로도 유명해진 다치바나의 서재이자 작업실인 ‘고양이 빌딩’은, 일곱 평 남짓한 자투리 공간에 지하 2층과 지상 3층, 그리고 계단까지 빽빽하게 책으로 채워져 있으며, 빌딩 겉면에는 커다란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다. 유명인의 서재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일본 출판사의 이 시리즈는, 기술 좋은 사진작가까지 동원해 총천연색 시각 자료를 통해 건물 전체의 구조를 전달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질적·양적 방대함에 놀라워하면서도 그가 헤쳐 나가는 책의 바다를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다치바나가 매일 사용하므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서재를 촬영하는 데에 약간의 회의를 피력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지식인의 방대한 뇌를 이토록 정성스럽게 다각적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선전 문구 하나가 책과 대중을 가깝게 하는 데에 더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탕누어가 ‘마르케스의 서재에서’에서 애초에 목표로 삼은 선한 목적이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 탕누어는 본문을 통해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의도치 않게 부록들을 통해 그것을 실현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주옥같은 부록들을 통해 독자별 맞춤형 책 고르기 방법을 제시하려 한다. 

# 읽어보지 않은 책 절대 사지 말라

우선, 아예 책과는 거리가 멀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사고 싶어진 예비 독자의 경우부터 시작하자. 물론 이런 종류의 글을 여기까지 읽은  독자라면, 어느 정도 책에 대한 관심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당신이 우연히 병원 대기실에 놓인 잡지를 뒤적이다가, 어쩌다 잘못 클릭한 웹페이지를 헤매다가 이 글을 발견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이런 예비 구매자에게는 탕누어가 부록의 마지막에서 제시한 헬렌 한프의 방법을 제안할 수 있겠다. 한프는 비록 극작가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책을 사고자 헌책방 주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저서 ‘채링크로스 84번지’가 오래된 책들이 내뿜는 아우라와 더불어 스테디셀러로 읽히고 있다. 이 편지 중 하나에서 한프는 말한다. “읽어보지 않은 책은 절대 사지 않는다.” 입어봐야 몸에 맞는 옷임을 알 듯, 책 역시 읽어봐야 그 소장가치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 무정부주의자가 돼라

다음은, 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으며 대형서점에서 이따금 시간을 보내는 중급의 독자를 위한 방법이다. 탕누어는 과감히 말한다. “철저한 서적 무정부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그가 말하는 서적 무정부주의자란, 체인점 형태의 서점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체인점 형태의 서점을 없애야 한다”고 과격하게 말한다. 체인 서점은 책의 내용보다는 판매가 주목적이기에 타산에 맞는 책들만 입고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탕누어의 책을 너무나도 버젓이 전시한 서울 시내 한 체인 서점의 직원들은 아마도 이러한 세세한 부분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으리라. 

# 원시 수렵 방식으로 돌아가라

그렇다면 체인점으로부터 벗어난 아나키스트가 갈 곳은 어디인가. 탕누어는 런던의 채링크로스나 일본의 간다진보초 같은 서점가를 제안한다. 요즘엔 오랜 전통을 가진 서점가 역시 과거의 향수를 파는 관광지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이 책을 쓰던 10여 년 전의 탕누어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탕누어가 제시하는 자세만은 참고할 만하다. 그것은 원시 수렵의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안정적인 농경시대보다 극도로 불안정한 식량 공급 방식이기는 하지만, 사냥에서는 예상치 못한 희귀한 먹거리를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어쩌면 사냥 바로 직전의 묘한 기대감이 사냥 그 자체보다 더 즐거울지도 모른다고 탕누어는 말한다.

자, 이제 여러분은 책을 고르는 독특한 방법을 알았다. 그러니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헌책방이든 어디든 나가서 사냥하듯 책을 골라라. 그리고 그 사냥감이 당신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전리품처럼 집으로 데려오자. 이 사냥한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다음에 좀 더 얘기해보자.  

입력 2017-03-21 15:41:24
이선경 | 문학평론가 doskyee@daum.net
출처 http://shindonga.donga.com/3/all/13/877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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