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민주주의가 어떻게 자본(재벌)을 통제하느냐에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이병천 교수 인터뷰/ 곽정수 한겨레 기자

“민주주의가 어떻게 자본(재벌)을 통제하느냐에 한국경제의 미래가 달렸습니다.”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인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30년간의 교수생활을 마치고 정년 퇴임에 앞서 지난 4일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한겨레>와 만났다. 이 교수는 6일 강원대에서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한국모델의 교훈’을 주제로 정년기념 강연을 했다.

이 교수는 초기에는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와 박현채 선생의 <민족경제론>으로부터 학문적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1989년 사회주의 붕괴와 1980년대 후반 재벌의 성장을 지켜보며 사상적·학문적 전환점을 맞았다. 이후 외부사상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 현실에 입각해서 독자적인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 연구에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선생이었던 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와 학문적으로 결별했다. (안병직 전 교수는 한국의 자본주의적 성공에 방점을 둔 ‘중진자본주의론’을 폈다) 또 박정희의 개발독재와 노동통제를 비판하면서도 강력한 자본통제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개혁성향의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노태우 정부보다 나은 게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벌 개혁의 수단으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인 장하성·김상조 교수를 ‘주주자본주의’라고 비판했다. 또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대안연대를 함께 만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과도 ‘재벌 대타협론’을 비판하며 결별했다.

이 교수는 기성의 권위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보다 자기 눈으로 자기 연구를 하려고 노력하는 독특한 학문적·실천적 궤적을 남겼다. 그는 공부하는 법과 관련해 “남의 고대광실을 부러워하지 말고 너의 판잣집을 짓자는 생각을 했다”면서 ““공자의 ‘학이사’(學而思·배웠으면 사유를 통해 완전한 자기 지혜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와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 정신과 통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30년간 수많은 논문, 저서, 칼럼을 발표하고 다양한 사회활동을 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를 만들어 기관지인 <시민과 세계>를 펴내고, 진보성향의 사회경제학자들 모임인 한국사회경제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2014년 세월호사건 이후에는 ‘가넷’(가만히 있지 않는 강원대 교수 네트워크)을 주도했다.

-경제학자로서 화두가 무엇이었는지?

“첫째는 마르크스를 철학적으로, 경제적으로 넘는 문제다. 둘째는 한국 자본주의 변화를 어떻게 볼 것이냐의 문제다. 한가지 화두도 벅찬데, 세가지와 씨름하다보니, 많이 힘들고 헤매었다.”

-답을 얻었는가?

답을 얻었다기보다 나의 페이스를 얻었다고 할까. 남의 얘기를 따르기보다, 내 스스로 보는 안목이 생겼다. 앞으로 계속 연구하면 시간만 허락한다면 내용을 채워갈 수 있을 것같다. 마르크스를 넘는 진보적 사상과 경제학의 틀 속에서 연구할 수 있게 됐다. 한국자본주의의 성과와 모순에 가득찬 이중성을 두 눈으로 균형있게 볼 수 있게 됐다.”

-사상적 정체성으로 ‘시민적 진보’를 강조하는데

“나의 독자적인 사상적 진보의 깃발(지향점)이다. 그 의미는 첫째 노조중심 진보, 즉 마르크스적 진보를 넘어 다중심적 진보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제도정치와 광장정치의 투트랙으로 가는 ‘이중 민주주의’다. 세번째는 시장사회를 넘어서 새로운 시민적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이 점에서 단순히 분배정의를 강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와 길이 갈린다.”

-학문적인 전환점이 있었다면?

세계적으로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지적인 전환점이었다. (이 교수는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해서 혁명적으로 재편하는 ‘전복적 사고’와 결별하고, 자본주의와 함께 가면서도 어떻게 넘어설 것이냐의 문제에 천착했다) 국내적으로는 1980년대 중후반의 ‘3저 호황’이었다. 3저 호황을 외부적 요인만으로 볼 것인지, 한국경제가 자율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내부동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볼 것인지가 큰 쟁점이었다.”

-선생이 없어 더 힘들었다는 뜻은?

“나에겐 과분한 선생(안병직 전 서울대 교수)이 있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는 생각이 다르다보니, 가는 길이 달라졌다. 이후 선생없이 혼자 길을 가다보니, 고난의 행군이었다.”

-평소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불균형’ 문제를 강조했는데?

“한국은 박정희 정부 시절 자기동력을 가진 자본주의가 출현했다. 하지민 너무나 민주주의를 억압했고, 고도로 압축된 불균형 성장이었다. 한국 자본주의 얼굴을 중속이론과 다르게 보면서도, 고도성장에 성공했다는 성공담론과도 거리를 둔다.”

-정년 기념강연인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한국 모델의 교훈>에서 한 얘기는?

자본주의의 다양성은 큰 주제로, 비교제도론적, 발전론적, 역사적, 원론적 등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파시즘의 두 얼굴이다. 일반적으로 파시즘은 독점적 대기업과 동맹을 맺고 봉사한다는 것인데, 자유시장주의가 못하는 사회보호 기능도 했다. 완전고용을 추구하면서 자본가의 반대를 규율하고 대중(의 지지)을 획득했다. 대공황 당시 (미국 루즈벨트의) 뉴딜은 실업극복에 실패했지만, (히틀러의) 나치즘은 해결했다. 이는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를 제공한다.”

-박정희 모델의 두 얼굴과 연관되는가?

“박정희는 노동통제와 자본통제를 모두 했다. 박정희 시대는 세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싱가폴, 대만 등 동아시아 발전모델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국가주도의 압축성장이다. 둘째는 독일, 일본과 같은 국가 민족주의 성격이다. 독일과 일본은 최종적으로 파시즘으로 치달았다. 세째는 남북간 체제경쟁과 극우 반공안보국가였다.”

-자본주의 다양성이 보여주는 한국모델의 교훈은 어떤 것인가?

“산업화 민주화 세력 모두에 불편한 두개의 진실이 있다. 박정희 시대는 고성장과 대중 포섭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자기 성찰과 감시 능력이 매우 취약했고, 결국 유신체제 붕괴를 낳았다. 이후 민주화 시대에는 노동과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자본(재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 그러면 국가권력이 조정능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연성국가여서 힘이 약하다. 이것이 민주화시대의 역설이다.”

“DJ·노무현이 노태우보다 나을 게 없다” 쓴소리
장하성 소액주주운동·장하준 ‘재벌 타협론’ 비판

-진보성향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노태우 시기와 김대중·노무현 시기를 비교하면 민주정부 10년이 노태우보다 낫다고 자신할 수 없다. 불평등 심화, 성장 둔화, 부동산 안정 모든 면에서 그렇다. 노태우 정부는 산업화의 유산과 민주화의 요구가 만난 다원적 개발주의 시기였다. 물론 임금과 생산성이 선순환하는 내포적 축적체제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자유·복지 시대인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외환위기를 거치며 복지는 확대됐지만, 독일·일본의 모델을 버리고 미국 모델을 대안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한국모델의 개편을 위한 내부 자산이 증발해 버렸다. (이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과 개혁에 대해 무분별한 개방과, 시장주의에 매몰됐다고 비판한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자기 페이스를 잃었다. 민주적 자본주의에 대한 자기 준거 모델이 없어졌다. 미국은 루즈벨트가 있고, 유럽은 60~70년대 황금기 복지국가모델(스웨덴·독일)이 있다. 자기 페이스를 갖지 못하면 우리 유산을 긍정적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중심경제에서 사람중심경제로의 패러다임 전환과 일자리·소득 주도, 혁신 성장, 공정경제를 강조한다.

과거 정부는 정권초기 공약이 무너졌다. 문재인 정부는 다행히 아직 깃발이 살아 있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 발전모델의 궤적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걸어왔는지, 어디에 서 있는지에 대한 역사인식이 약하다. 성공한 선진국은 모두 발전모델의 고유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 교수는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일본의 기업주의적 조정시장경제와 접목시켜 한국형 민주적 조정시장경제모델을 주창한다) 정치적 민주주의만 얘기해선 안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제도적 형태가 필요하다. 유럽모델, 일본모델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강력한 역할을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축적된 우리의 자산과 기반이 무엇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혁신성장을 얘기하는데, 어떤 혁신인지 막연하다. 중소벤처를 강조하지만 독일과 일본에는 미국 같은 실리콘벨리가 없다. ”

-새정부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권력행사가 연약하다. 너무 눈치를 본다. 촛불혁명의 힘으로 집권한 정부인데 칠 때는 과감히 쳐야 한다. 이런 식으로는 시대교체가 어려워질까 걱정이다. 지방선거를 거치며 보수정치세력이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

-장하성·김상조 교수의 소액주주운동을 주주자본주의라고 비판했는데.

소액주주운동은 소액주주의 이익을 위한 것과, 소액주주운동을 매개로 일반적 이익을 실현하자는 두 측면이 있다. 두번째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소액주주운동은 결국 외국자본 중심의 시장규율체계에서, 주주자본주의의 한계를 보였다. 일 예로 삼성전자가 삼성물산 합병논란 이후 주주배당을 수조원씩 늘렸는데, 상당부분은 외국주주들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갔다. 소액주주운동을 주도한 장 교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자다. 2014년 발간한 <한국자본주의>에서 노동부분을 얘기했지만, 노동이 주요 이해당사자로서 참여와 견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은 약하다. 김상조 교수(현 공정위원장)는 원래 노동을 중시하는 입장이었다가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있었다. 2012년 펴낸 <종횡무진 한국경제>를 보면 ‘최소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어, 보수정당 개혁파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민주주의의 자본통제에 한국경제 미래 달렸다”
“삼성 대국민 사과 뒤 국민기업으로 새출발해야”

-문재인 정부는 기관투자가 역할을 강화하는 스튜어드쉽 코드의 시행을 강조하는데.

“한국은 노동이나 은행 역할이 약한 만큼, 국민연금이 중요하다. 재벌의 주요주주인 국민연금이 일반주주들의 이익을 넘어 노동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당사자를 위해 역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국형 민주적 조정시장경제로의 발전을 위해 힘써야 한다. 재벌에 대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 규율을 넘어, 이해당사로서의 규율을 통해 정경유착부터 근절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설립한 대안연대가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주장하고, 외국자본에 맞서 재벌을 옹호했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대안연대 내부에는 두개의 그룹이 있었다. 한쪽은 장하준(캠브리지대), 조원희(국민대), 이찬근(인천대) 교수들이고, 다른 쪽은 나와 김균(고려대), 유철규(성공회대) 교수다. 둘이 생각이 달랐는데, 처음에는 잘 몰랐다. 장 교수쪽은 재벌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약하고, 재벌을 어떻게 규율할지에 대한 생각이 미흡했다. 또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한국 자본주의 모델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권력과 대통령은 일종의 대리인으로, 주인(국민)의 요구와 위임에 맞춰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는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며 오남용했다. 또 기본적인 공적 책임에 대한 의식이 부족하고 재벌과 사익추구 공동체를 이뤘다. 이는 정경유착이 심했던 아버지인 박정희와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한국자본주의 모순의 폭발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박정희와 다른 부분도 있다. 박근혜는 무능했고, 오히려 재벌에 포획됐다. 이는 재벌을 규율한 박정희와 다른 점이다.”

-공저인 <한국사회, 삼성을 묻는다>에서 삼성이 한국사회에서 갖는 빚과 그림자의 양면을 조명했다. 총수가 뇌물죄로 재판을 받는 삼성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삼성이 솔직해야 한다. 오만과 독선을 버려야 한다. 우리사회 기본 구성원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한다. 삼성은 그동안 온갖 혜택을 받으면서도 비용은 사회화했다. 비리를 은폐하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는 책임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해야 미래에 대한 얘기가 가능하다. 삼성은 과거에도 국민기업으로서 새 출발을 할 기회가 몇차례 있었는데 모두 놓쳤다. 이번에도 중요한 기회다. 재벌 일반적으로 놓고 보면, 재벌의 이익이 국민과 공유돼야 한다. 재벌이 잘되면 국민도 좋아야 한다. 그 방식은 미국식, 유럽식, 일본식 등 여러가지가 있다. 한국도 새로운 성장과 통합이 가능한 포용적 성장으로 가기 위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한때 마르크스경제학을 깊이 공부했다.

“마르크스의 핵심은 노동착취 자본주의론에 기여한 점이다. 하지만 노동만이 가치를 창출한다는 주장은 부적절하다. 이는 노동이 가치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사회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노동자와 관련된 수많은 사람이나 제도도 가치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글에서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청바지!’라고 외쳤다. 어떤 의미인가?

“청바지는 <가넷>의 박기동 교수가 원저자이다. 청춘은 바로 지금이고, 늘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다. 퇴임 뒤에도 연구회를 꾸리고 경제문명사와 리카르도 이후 자본주의 계보에 대한 책을 쓰려고 한다.”

♣H6s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822294.html#csidxe506a93f86781249b5875c6285f2c11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