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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4일 목요일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 손택균 동아일보 기자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 몇 사람이 어떤 공간의 경험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다면 그 건물은 존재의 역할을 다한 거라 생각한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 한 권의 영향으로 인생 바뀐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나부터 그렇다.”

최근 자신의 31년 출판 경험 기록을 모은 책 ‘출판사를 만들다 열린책들을 만들다’(미메시스·사진)를 낸 홍지웅 열린책들 대표(63)를 11일 오후 경기 파주시 미메시스 아트뮤지엄에서 만났다. 이 건물은 그가 2009년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루 시자를 초청해 지었다. 1층 카페의 한쪽 곡면 벽에는 그동안 출간한 책들을 신간 위주로 빼곡히 꽂아두었다.

“요즘은 사무실과 집에 앉아 내년에 낼 책들 가제본 읽는 게 낙이다. 팔불출이라는 소리 듣겠지만 내가 만든 책은 다 사랑스럽고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는 이렇게 살아올 줄 몰랐지만.” 

1986년 1월 서울 은평구 갈현동 한 연립주택 지하에 처음 열린책들을 차렸을 때 홍 대표는 ‘딱 1년만’ 사업에 관여할 생각이었다. 대학원(고려대 노문학)을 졸업하고 학보사 부주간으로 일하다가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국문학을 전공한 아내가 혼자 할 만한 사업’이라고 생각해 일을 벌인 것. 자본금은 집 담보대출을 포함해 6000만 원이었다. 

“웬걸. 한 해 지나 정산해보니 불어난 빚만 5000만 원이 넘었다. 사업 토대 잡아놓으면 내가 3, 4년 유학 다녀오는 사이 아내와 애 둘이 먹고는 살겠거니 생각했는데…. 세상 경험 없는 초짜가 완전 잘못 짚은 거였다.” 

빚더미를 안긴 주범은 구소련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1918∼2008)의 ‘붉은 수레바퀴’였다.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프랑스어판을 7권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번역 출간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러시아 혁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을 때라 어느 정도 반응이 있겠거니 기대했다. 

“오판이었다. 1권이 3000부도 안 나가더니 3권은 1000부도 안 나갔다. 나머지 네 권을 낼까 말까 깊이 고민했다. 권당 500부도 안 나갈 게 틀림없었으니까. 그래도 책 한 권을 번역해서 내다 만 꼴이 될 수는 없다 싶어 눈 딱 감고 어쩔 수 없이 완간했다.”

러시아에 대한 그의 동경은 대학 철학과 재학 시절 시작됐다. 부조리와 실존주의, 개인의 자유의지에 관심이 많았을 무렵 읽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마음속에 불을 지폈다. 젊은 주인공이 겪은 갈등과 고뇌에 크게 공감한 그는 타교 도서관을 뒤져 도스토옙스키 비평서 원문을 찾아 읽으며 ‘평생 연구할 대상으로 삼겠다’고 작정했다.

“한 사회가 한 시대에 펴낸 책이 모여 그 시대의 정전(正傳)을 형성한다고 믿는다. 나는 운 좋게 사회와 삶에 대한 당시의 내 고민에 응답하는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세태에 대해 괜한 훈수를 두고 싶지 않지만 지금 멈춰 돌아볼 때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얼마나 나오고 있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인터뷰 말미 그는 책 맨 마지막 페이지를 펴서 다시 읽어봐 달라고 했다. 거기에는 ‘열린책들과 저 스스로에 대한 다짐으로 이 책을 냅니다’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내가 내놓은 말과 글에 대해 얼마만큼 책임지고 살아왔나, 살고 있는가, 그런 생각으로 낸 책이다. 내 뒤를 이어받아 일하고 있는 두 자식들에게도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힘들겠지만, 너무 상업적인 면에 치우치지 말고, 번역도 정성껏 하고, 책다운 책 만들자는 다짐.”

파주=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07/20171214/87722955/1#csidx2cc19534be8d90db7602782f8645a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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