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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 월요일

나 혼자 뽑는 ‘올해의 책’ /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한 사람의 서가는 그의 일기장과 비슷하다. 책 좀 읽어왔다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이해하리라. 그의 서가에는 오랜 시간 숨겨온 그만의 자부심 혹은 부끄러움이 켜켜이 꽂혀있다.
책을 도통 읽지 않는 세상이 되어 책 읽기 자체가 소수만이 향유하는 취미처럼 되어버렸지만, 책 읽는 사람들끼리는 남의 서가를 훔쳐보는 일이 내밀한 사생활을 엿보는 것처럼 스릴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독서인’ 또는 ‘교양인’이라 불리던 사람들에게는 자기 서가를 타인에게 보여주는 일이 결사 방어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썩 탐탁한 일도 아니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인격에 관계된 일이었다. 그리하여 이들은 번쩍이는 전집류와 세계사상서가 인테리어처럼 말끔하게 꽂혀있는 서가와, 긴 세월에 걸쳐 사들인 책들이 서로를 압사시키며 책들의 재앙을 빚어내고 있는 서가의 차이를 무슨 감별사처럼 가려내곤 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출판인의 서가는 별 볼일이 없다. 겹겹이 꽂힌 수천권 책들로 재난에 시달리는 건 마찬가지이지만, 이곳저곳에서 기증받은 책들, 기획 참고용으로 구입한 책들, 그리고 개인적 관심이나 오래전의 전공과 관련된 책들이 무질서하게 섞여 있다. 특징도 개성도 찾아보기 힘드니 호기심은 삼가 주시기를. 다만 급히 찾아보아야 할 책은 절대 나타나지 않는다는 장서가들의 흔한 고충이 비슷할 뿐이다. 이런 일에 지친 어떤 독서가는 책들을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으로 구분했지만, 책들의 재난을 겪으면서도 꼭 남겨두어야 할 책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차라리 ‘나만의 책 10권’ 하는 식으로 소중히 여기는 책들을 꼽아보는 게 나을지 모른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각 언론들, 기관들, 서점들은 ‘올해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그해의 주목할 만한 책을 10여권 선정해 발표한다. 한 해에 출간되는 신간이 4만5000여종에 이르니 거기 뽑힌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다. 물론 책이 조금 더 팔리는 것은 당연히 따르는 수확인지라, 출판인들은 자사의 책이 들어가나 싶어 목록을 예의 주시한다. 하지만 출판인에 앞서 한 사람의 독서가로서는 내가 읽지 않은 책이거나 읽을 가능성이 없는 책인 바에야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냥 올해 개인적으로 읽은 책을 10권쯤 꼽아보면 어떨까? 서가를 보여주는 마음으로 내가 올해 읽은 책을 실토하면 이러하다. 
가까운 출판인이자 저자인 장인용의 <주나라와 조선>은 꽤 흥미로웠다. 정도전의 조선 설계가 주나라의 예악(禮樂)에서 왔고, 오늘날 한국인의 일상에까지 일정 정도 배어있음을 다시금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다. 김건우의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은 서북 기독교에 뿌리를 둔 학병 세대와 양심적 우익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얼개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잘 보여준 책이었다. 이현재의 <여성혐오 그 후,―우리가 만난 비체들>에서는 여성이 주체도 객체도 아닌 ‘비체’로 존재한다는 페미니즘의 한 시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기쁨이 있었다.
해리 프랭크퍼트의 <개소리에 대하여>라는 아주 작은 책자는 10여년 전 미국에서 나왔을 때 각광을 받았던 책인데 뒤늦게 번역된 것이 반가웠다. 우리가 흔히 듣는 정치인이나 전문가들의 말이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사실 판단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상황을 조작하기 위한 ‘개소리’라는 것을 맹렬히 폭로하는 책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반지성주의를 말하다>는 리처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반지성주의>보다 한 걸음 앞서 나온 책인데, 일본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크게 다름없이, 반지성주의의 뿌리가 어디에 있고 특징과 현상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보여주는 책이었다. 걸핏하면 나오는 음모론, 특정인에 대한 조리돌림, 페미니즘이나 진보언론에 대한 혐오 등등 우리의 반지성적 경향을 다시금 살펴보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강상중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도 파시즘을 비롯한 ‘대중의 악’을 여러 측면에서 짚어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을 가진 책이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SF소설 <킨>은 최고였다. 흑인여성인 주인공이 노예해방 이전으로 타임 슬립하여 겪는 사건들은 그저 정치적 의미만이 아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사색하게 한 명작이었다. 낄낄대며 읽은 <야밤의 공대생 만화>, 파시즘 시대의 일면을 선명하게 그려준 <채플린과 히틀러의 세계대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개인적으로 기념하며 읽은 뤼시앵 페브르의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 기억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애정하는 아도르노의 책 <미니마 모랄리아>는 작년부터 읽었는데 아직도 마치지 못한 난해한 책으로 책상 위에 펼쳐져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12102111015&code=990100#csidx0f3703c3bd7f5618b8e8bffa22f9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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