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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6일 화요일

영리한 비영리 개인왕국?/ 김현대 한겨레21 선임기자

[한겨레21] [보도 그 뒤]아르콘 의혹 보도 뒤 전·현직 비영리법인 근무자들 제보·의견 이어져…

“터질 게 터졌다” “투명성 실종 의심이 가장 큰 문제”

<한겨레21>이 제1195호 특집 ‘착한 사업, 나쁜 거래?’ 서울 성수동 소셜벤처밸리인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운영하는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이하 아르콘)에 대한 여러 의혹을 보도한 뒤, 이를 둘러싼 제보와 의견이 이어졌다. 특히 아르콘 같은 비영리법인에서 근무한 적 있는 이들은 “터질 게 터졌다”는 자조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허인정 이사장의 개인 기업 같았다”

“‘비영리라고 왜 가난해야 하느냐’는 <한겨레21> 기사 문장을 읽는 순간, 정말 열 받았어요. 한편으론 맞는 말이죠. 그런데 직원들은 야근을 밥 먹듯 하며 ‘열정 페이’를 받거든요. 전 다 같이 가난한 줄 알았어요.” 기자와 만난 전 아르콘 직원의 말이다. 또 ㄱ씨는 전자우편으로 이런 의견을 보내왔다. “이 바닥엔 비영리를 내세워 세련되게 영리사업을 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아주 폼나게 이야기합니다. 비영리에서 가진 것 없이 살면서도 헌신하는 사람들 참 많이 봤습니다. 그런 분들 앞에 정말 누가 되는 사람들이에요.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비영리 부문의 한 원로 인사도 “그전부터 (허인정 이사장의 아르콘과 언더스탠드에비뉴가 있는) 성수동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돈이 몰려오면 사고가 난다”고 말했다. 성수동 골목은 청년 소셜벤처밸리로 주목받으면서, 집값과 임대료가 치솟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아르콘 관계사에서 일했던 전직 직원 역시 아르콘에 대해 “허인정 이사장의 개인 기업 같았다”고 말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허 이사장은 아르콘이라는 비영리 법인이 네트워크 허브 구실을 하고 모두스와 미디어더퍼스트라는 주식회사가 이를 뒷받침하는, 그래서 공익사업으로 돈도 버는 아르콘그룹의 구축을 꿈꿨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영리와 영리 회사의 장단점을 적절히 취하는,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창의적인 공익사업 모델을 개척하려 했다는 것이다.

채용 정보 사이트 ‘잡플래닛’에 올라온 아르콘에 대한 전·현직 직원 4명의 평가를 모아보면 “일을 많이 시키고 급여는 낮은 기업” “기업 같은 비영리”라는 부정적 평가를 확인할 수 있다. 4명 가운데 전직인 3명은 ‘복지 및 급여’와 ‘경영진’ 항목에서 5단계 중 가장 낮은 1단계 점수를 매겼다. 회사에 대한 이들의 의견은 “본인의 커리어보다 회사 상황 위주로 인력을 배치하고 연봉 테이블이 낮게 책정된 곳” “다양한 경험과 보람찬 일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그만큼 직원의 희생을 강요하는 곳” “사회공헌의 진정성이나 의미를 찾는다면 다른 곳으로 가기를 바람. 비영리이지만 비즈니스일 뿐”과 같은 신랄한 비판을 남겼다. 현직 직원 1명은 급여와 경영진 평가 항목에서 중간 또는 중간 이상의 상대적으로 나은 점수를 주었다. 

지배구조도 자금집행도 복잡한 구조


아르콘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 지적하는 허 이사장의 가장 큰 문제는, “공익사업의 핵심인 투명성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사회적 자산인 기부금을 받아쓰면서 개인 왕국을 구축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아르콘은 지배구조도 자금집행도 복잡했다. 사단법인-유한회사-주식회사가 얽혀 있고, 개인과 가족 재산(빌딩 3채)이 사무실과 카페 공간으로 거래 곳곳에 끼어들었다. 이래서는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비영리기업의 생명인 투명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수시로 고쳐 매니, 설사 깨끗하게 돈을 굴렸다 해도 여러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허 이사장은 아르콘이란 사단법인을 만들어 롯데면세점에서 130억원의 기부금을 출연받았다. 그런데 해당 사업의 관리를 언더스탠드에비뉴라는 유한회사를 따로 세워 맡겼다. 허 이사장과 가까운 임직원 대여섯 명이 출자자다. 굳이 왜 그래야 했을까? 기부금을 낸 롯데면세점은 사업 초기에 이 유한회사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언더스탠드에비뉴는 직접 영리사업 소득을 올렸다. 감사원도 2016년 이 부분을 아프게 지적했다. 공익법인 자금은 한 다리만 법인을 건너가면, 어떻게 돈이 집행됐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직접 돈을 기부받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롯데면세점은 물론 공익법인을 관리하는 정부 당국조차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없다.

아르콘이 억대의 용역사업을 맡긴 모두스와 미디어더퍼스트라는 주식회사에 대해선 허 이사장과 롯데면세점 쪽의 주장이 엇갈린다. 허 이사장은 롯데 쪽의 동의를 사전에 구했다고 주장하지만, 롯데 쪽은 금시초문이라 한다. 

성수동 골목의 집값이 폭등할 즈음인 2012년과 2014년, 허 이사장은 성수동 인근에 5층 건물과 2층 건물을 매입한다. 두 건물은 현시세가 각각 수십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 이사장은 빌딩 매입 자금을 은행에서 대출받으면서 각각 12억원·6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지만, 2014년과 2017년 이를 해제했다. 

상당수 공익법인들의 고질병

모두스 등은 성수동 골목에 있는 허 이사장 자신과 가족 명의의 개인 빌딩 3곳을 유료 교육장과 사무실 공간으로 이용하면서 임대료를 냈다. 임대료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 지금까지 극히 일부만 확인됐을 뿐이다. 가족 명의로 개설한 카페를 아르콘의 교육장으로 이용하고, 2015년 이후 1년6개월 동안 3천만원 이상의 대관료와 커피값을 지급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비영리 부문 지도자로 꼽히는 허 이사장은 어떤 경우에도 투명성을 훼손했다는 윤리적 책임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의심받을 수 있는 거래를 용인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그한테 법적 책임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는 앞으로 정부 당국이 밝혀야 할 일이다.

허 이사장은 대기업의 기부금을 받아오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롯데면세점이 2015~2016년 130억원을 기부하기 전인 2014년에도 GS칼텍스(9억3천만원)와 두산(5억5천만원) 등 여러 대기업에서 21억원의 기부금을 받아냈다. 기업 기부금 액수는 롯데면세점과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을 시작한 2015년부터 크게 불어나, 그해 122억5천만원, 2016년엔 91억원에 이르렀다. 2016년 기부금 중엔 경기도와 카카오의 김범수 의장한테서 받은 40억원도 포함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역점 사업인 스타트업캠퍼스의 운영자로 아르콘이 선정된 것이다. 허 이사장이 이렇게 큰돈을 끌어오는 역량을 발휘하는 데는, 허 이사장이 2016년 초까지 대표이사를 겸했던 <조선일보>의 공익 섹션인 ‘더나은미래’가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더나은미래’라는 언론사의 대표 명함이 대기업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다.

허 이사장은 2016년 초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을 본격 시작하면서,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의 대표이사직을 사직했다. ‘더나은미래’ 쪽에선 허 이사장의 사업 운영 투명성을 의심했으며, 허 이사장 쪽에선 “‘더나은미래’ 쪽에서 아르콘 이사 자리를 무리하게 요구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의 비영리 부문은 아직 성장 초기 단계에 있다. 유럽에서는 비영리, 협동조합, 사회적기업을 포함하는 사회적경제 영역이 국내총생산(GDP)에서 무려 10%가량을 차지한다. 청년들의 취업 동기를 유발하는 미래의 일자리도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많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한국의 비영리 부문은 아직 ‘개인 왕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곳이 많다. 기부금을 끌어오는 이사장이 왕으로 군림한다. 재벌 총수처럼 처신하기도 한다. 이러니 투명성을 보장할 길이 없고, 기부금을 내놓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사람들이 먼저 내 돈이 잘 쓰일까 의심하는 것이다. 아르콘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공익법인들이 안고 있는 고질병이다.

문체부와 성동구청 팔짱만

문화예술 분야 공익법인 감독관청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아직 현장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문체부 담당자는 “아르콘과 롯데면세점 양쪽의 입장이 엇갈리니 정부에서 나서기 애매하다”는 말만 한다. 땅을 제공한 성동구청도 소극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 및 문화재청 소관 비영리법인의 설립 및 감독에 관한 규칙 제8조는 공익법인에 대한 검사와 감사권을 명시하고 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서류와 장부 제출을 명하거나 공무원이 법인의 재산 상황을 검사할 수 있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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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보도 요청
허인정 이사장 "거래 통해 이익 취한 바 없다"

지난 1195호 특집 기사 ‘착한 사업, 나쁜 거래?’와 관련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아르콘(이사장 허인정) 쪽에서 <한겨레21>에 정정보도를 요청해왔습니다. 일부 정정이 필요한 대목을 바로잡고, 허 이사장의 반론도 싣습니다.

위 기사에서 <한겨레21>은 “허인정 이사장이 2015년 6월~2016년 8월 사이 1억5천만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보도했으나, 기간 산정을 잘못하는 실수가 있었습니다. “2015년 2월~2016년 8월 사이 1억53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 맞습니다.

또, 허 이사장은 미디어더퍼스트나 모두스와의 거래로 단 1원의 이익도 취한 바 없다고 밝혀왔습니다.

기부금 정산 자료 제출과 관련해서는 “2015년과 2016년 두 차례에 이어, 2017년 3월22일 1, 2차 기부금 전액에 대한 계정별 원장을 롯데면세점 쪽에 이메일로 송부했다”고 밝혀왔습니다. 롯데면세점 쪽에서는 2017년 3월 제출 자료에 대해 “계정별 원장만 보내왔고, 증빙 및 세부 내역 자료는 받지 못했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아르콘이 허 이사장의 변호사 동생한테 지급한 자문료에 대해서는 “2015년 2월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을 시작한 이후 불법 노점상들이 해당 부지를 점유하는 일이 벌어져, 이사장 동생이 일하는 법무법인 규원에 법률 검토를 맡겼고 2015년 7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13달 동안 매달 100만원씩 1300만원을 지급했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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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착한 사업, 나쁜 거래?

롯데에서 130억원 기부받은 공익법인 ‘아르콘’에서 드러난 ‘자전거래’ 흔적
허인정 이사장, 증빙자료 안 내놓고 “롯데 나쁘다” 버티기

2015년 최순실의 미르재단, 2016년 (사)새희망씨앗에 이어 공익법인의 투명성 시비가 또 불거졌다. 이번엔 2016년 4월에 문을 연 ‘창조적 공익공간 언더스탠드에비뉴’가 진원지다.

언더스탠드에비뉴는 2015년 초 롯데면세점이 기부한 130억원의 현금, 서울 성동구청이 무상 제공한 땅을 기반으로 사단법인 문화예술사회공헌네트워크(ARCON·이하 아르콘)가 운영을 맡은 공익 문화공간이다. 아르콘은 성동구청이 제공한 서울 숲 서쪽 끝자락 부지에 조성한 언더스탠드에비뉴에 자립을 꿈꾸는 사회적기업가 등을 불러모았다. 모여든 청년 기업가들은 116개의 컨테이너를 예쁘게 재활용한 공간에서 여러 가게와 문화사업체를 운영한다.

이 사업은 국외에서도 성공적인 민관협력 사업 모델이란 칭송을 받았다. 2016년 5월 영국 옥스퍼드대 넬슨 만델라 강당에서 열린 ‘책임 있는 비즈니스 포럼’(The Responsible Business Forum)에서 서울 성수동의 언더스탠드에비뉴가 여러 나라에 확산 가능한 ‘민관협력 사업의 롤 모델’로 소개됐다. 지난해 10월엔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이끈 성동구청이 제5회 대한민국 지방자치 박람회에서 사회혁신 부문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언더스탠드에비뉴 모델을 배우려는 다른 지자체들의 현장 탐방도 이어졌다.

하지만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헐겁던 ‘협력’의 축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르콘의 “자금 집행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의구심이 발단이었다.

감사원에서 떨어진 징계 폭탄

컨테이너 공간이 본격적으로 문을 연 지 석 달이 지난 2016년 7월과 8월 감사원은 성동구청에 ‘폭탄’을 투하한다. 감사원은 구에 ‘행정재산 무상제공 및 예산외 의무부담 협정체결 부적정’이란 감사 결과를 통보해, 성동구청 간부 3명을 징계하는 게 마땅하다는 감사 결과를 보내왔다. 1명에 대해서는 정직이라는 중징계 판단을 내렸다.

감사원이 문제 삼은 것은 구와 아르콘이 체결한 3자 양해각서의 일부 내용이었다. 이 각서에서 구는 언더스탠드에비뉴 운영 주체인 사단법인 아르콘이 직접 수익사업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언더스탠드에비뉴란 같은 이름의 유한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용인했다. 이 유한회사는 카페·레스토랑·네일숍·판매점 등을 운영해 2016년 4·5월에만 1억9천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감사원은 이것이 특혜에 해당된다고 파악했다. 유한회사는 허인정(47) 아르콘 이사장과 아르콘 설립 초기부터 함께해온 직원 몇 명이 공동출자해 만들었다. 이에 대해 허 이사장은 “유한회사 언더스탠드에비뉴는 직원조합 성격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수익금 또한 개인이 가져가지 못하고 사회공헌에 쓰도록 정관에 명시했다”고 해명했다.


감사원은 아르콘이 유한회사를 통한 수익사업에 치중했지만, 취약계층 청소년과 이주여성들에게 직업교육과 실습 제공이라는 애초 목적사업에는 소홀했다고 지적했다. 아르콘이 2015년 8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가죽공예·손발톱 미용·게임·커피·조리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지만 교육 이수자는 65명(선발자 112명)이었고, 그나마 사업장에서 실습 기회를 받은 사람은 27명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아르콘에 대해 7년(최대 10년) 동안 토지를 무상 사용 하도록 허가한 것도 부당한 특혜라고 밝혔다. 성동구청의 김대욱 법률전문관은 “감사원의 지적 사항에 오해와 이견이 있어 재심의를 요청한 상태이며, 무상 사용 기간은 자체적으로 재산정해 6년2개월로 단축해놓았다”고 말했다. 아르콘은 감사원 지적을 받은 유한회사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지난해 말 폐업했으며, 관련 업무와 인력을 인수받아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직접 관리하고 있다.

감사원의 지적은 아르콘을 둘러싼 투명성 시비의 시발에 불과했다. 롯데면세점은 사업 첫해인 2015년에 시설 투자와 운영비로 102억원, 2016년에 운영비로 28억원을 각각 아르콘에 기부했다. 롯데면세점과 아르콘은 상호 파트너십 협약으로 해마다 사업비 정산과 사업 평가를 하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에 따라 다음해 사업 규모를 상호 협의하자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롯데면세점은 2016년 말 한국생산성본부를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의 성과 평가 외부전문기관으로 선정해 이듬해 초부터 본격적인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

의심스러운 거래 징후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거듭 독촉해도 아르콘 쪽이 사업비 정산 자료를 보내오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2016년 상반기에 받아둔 영수증 자료를 우선 생산성본부에 보내 검토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허 이사장 개인과 관련된 의심스러운 거래 징후가 곳곳에서 드러났다”고 말했다. 자신이 세운 영리회사와 공익법인의 거래를 통해 사익을 취하는 이른바 ‘최순실식 자전거래’의 흔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게 파악한 자전거래 의심 유형은 다양하다.

우선, 아르콘이 2016년 5월 ‘모두스’라는 주식회사에 환경개선 공사 명목으로 2억원 비용을 집행한 사실이 포착됐다. 또 ‘미디어더퍼스트’라는 주식회사에 언더스탠드에비뉴 입주업체 후보 리스트 기초조사 명목으로 1억원을 집행했다. 모두스와 미디어더퍼스트는 아르콘과 같은 해인 2011년 설립됐다. 이들 회사는 허 이사장 또는 아르콘과 언더스탠드에비뉴 임원이 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롯데면세점은 모두스가 페이퍼컴퍼니라고 의심하며, 입주업체 리스트 기초조사 명목으로 1억원이라는 거액을 집행한 것도 비상식적이라고 보고 있다.

둘째, 허 이사장과 가족이 언더스탠드에비뉴에 인접한 성수동에 개인 빌딩 3채를 보유한 사실도 나타났다. 이들 빌딩에 아르콘이 지금까지 입주해 있고 미디어더퍼스트와 모두스, 유한회사 언더스탠드에비뉴도 한때 이곳에 사무실을 두었다. 허 이사장은 이 중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상당한 임대료를 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전체 임대료를 얼마나 받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또 등기부등본을 보면, 허 이사장 가족은 성수동에 오래된 이층집을 갖고 있었으며, 2012년 말과 2014년 봄에 허 이사장 명의로 2층과 5층 건물을 추가로 사들인 것으로 확인된다.

허 이사장 가족이 2016년 상반기까지 2층 건물에서 카페를 직접 운영한 사실도 나타났다. 아르콘의 한 전직 직원은 “거의 모든 회의를 그 카페에서 했다. 카페 안의 독립 공간을 빌리는 유료 대관료만 연 수천만원은 족히 되고, 커피도 하루 수십 잔씩 대량 주문했다”고 한다. 허 이사장의 변호사 동생한테도 여러 차례 수백만원씩 자문료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법인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보수도 문제로 제기된다. 허 이사장은 2015년 6월~2016년 8월 아르콘에서 급여성으로 1억5천만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부 업체에 국제 콘퍼런스 용역을 맡기면서, 연구비 명목으로 자신이 2천만원을 추가로 지급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이러한 의심 정황을 파악한 롯데면세점 쪽은 성동구청 쪽과 조사 자료를 공유하고 아르콘 쪽에도 추가 증빙 자료를 제출하라는 정식 공문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우리 회사의 대표 공헌사업으로 정하고 많은 공을 들였다. 사업을 그만둘 이유가 전혀 없다. 아르콘에서 성실하게 자료를 보내와 투명성 이슈가 해소되기만 한다면, 2017년 기부금을 집행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아르콘 쪽에서 끝내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허 이사장은 롯데면세점 쪽이 제기한 의심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렇게 살지 않았다. 롯데가 나쁘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스와 미디어더퍼스트로 자금이 집행된 것은 롯데면세점의 2016년분 기부금 집행이 늦어지면서 먼저 일을 진행한 다음에 금액을 후지급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모두스는 2억원 전액을 재하청 회사에 지급했다”고 말했다. 자기 건물에서 임대료를 받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언더스탠드에비뉴는 몇 달 동안 시세에 준해 임대료를 받았지만, 나머지는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오히려 저렴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또 여러 프로젝트에서 많은 급여를 받았다는 것에는 “애초부터 내 투입량을 감안해 프로젝트별로 자문료를 받기로 돼 있었다. 비영리라고 왜 가난해야 하느냐. 공기업 대표들은 수억원 연봉을 받고, 대기업이 사회공헌 용역을 맡길 때도 컨설팅 회사에는 거액을 주지 않느냐”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그는 이어 “롯데가 사업 중단을 전제로 성과 평가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식인데 자료 제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롯데 쪽을 공격했다. 또 “자료를 다 보내려면 트럭 한 대분량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직접 사무실로 와서 조사하라 해도 안 하더라”고 반박했다. 그는 방대한 분량의 반박문을 롯데면세점 쪽에 보냈다. 롯데면세점 쪽은 “자금 거래가 사실인지만 밝히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자료는 주지 않고 억지투성이 반박문만 보내왔다. 사무실로 들어와서 조사하라고 한 사실 자체도 없다”고 말했다.

언더스탠드에비뉴를 대표적인 치적 사업으로 자랑스러워하던 성동구청 쪽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아르콘을 감사하려고 했으나, 우리에게 감사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래서 지난해 11월 롯데면세점과 아르콘 양쪽이 제출한 내용을 중립적으로 담아, 감독권이 있는 문체부로 사건을 넘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좋은 목적으로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시작했고,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 이제 와서 감사원 감사를 받고 투명성 시비가 벌어지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정현 문체부 문화예술교육과장은 “성동구청에서 확실히 조사를 해달라고 요구해온 것이 아니고, 민원 형식으로 애매하게 건네온 것이라서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 중이었다. 롯데면세점 쪽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해줘도 좋겠다. 잘 검토해서 처리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했다.

“본인은 명예와 부 누리고…”

허 이사장의 의심스러운 자전거래 징후가 흘러나오면서 함께 일하거나 일했던 직원들 사이에 원망하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전직 직원은 “우리는 쥐꼬리만 한 저임금을 받으면서 미션 페이라고 자위했다. 그런데 본인은 명예와 부를 다 누렸다니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공익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수많은 청춘을 이용해 사익을 편취했다면 정말 나쁜 일”이라며 “최순실의 미르재단 등을 통해 공익법인 투명성 문제를 학습하고서도 감독관청인 문체부가 적극 감사에 나서지 않는다면 직무유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영리단체를 평가하는 한국가이드스타의 박두준 사무총장은 “기부금 집행의 성과 평가를 하려면 돈을 쓴 쪽에서 충실하게 자료를 보내주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돈을 받은 비정부기구(NGO) 쪽에서 자료를 못 내놓겠다고 버티면, 기부한 쪽에서는 사업을 중단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보기 드문 특이한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또 “롯데면세점 쪽에서 검찰이나 경찰에 수사 의뢰하는 방식으로 투명성을 가릴 수 있을 텐데, 재벌 입장에서는 누워서 침 뱉기라 차마 못하는 것 같다. 선진국이라면 이런 경우 국세청에 조사를 의뢰한다. 그게 아니라도 민간 감시단체가 적절히 대응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강조했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11월 아르콘과 맺었던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의 3자 양해각서를 종료한다는 공문을 성동구청 쪽에 보냈다. 허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와 신한은행을 언더스탠드에비뉴 사업의 새 파트너로 정해 협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아르콘은 경기도가 1600억원을 투입해 카카오와 함께 2016년 말부터 진행하는 경기도 판교의 스타트업캠퍼스 운영 관리도 맡고 있다. 스타트업캠퍼스는 얼마 전까지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명예총장이었고, 허 이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착한 사업의 신뢰도 손상

착한 돈이 착하게 집행됐는지 확인하는 일은 간단하다. 돈에 달린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르콘 쪽에서 1년 내내 자료 제출을 미루고, 성동구청과 문체부에서는 감독권 행사를 미적거리는 동안, 대한민국 대표 민관협력 사업은 갈지자걸음을 걸었다. 허 이사장은 청년혁신 사회공헌 사업의 개척자이다. 아끼는 사람도 많다. 정부 감독당국이나 수사기관이 책임 있게 나서서, 엄정하게 사실을 밝혀야 한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출처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4473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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