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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화요일

나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이만열 교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

저는 20년 전 미국의 일리노이 대학의 어바나 샴페인(Urbana-Champaign) 캠퍼스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수준 높은 유명 대학에서도 오랜 세월 교수 생활을 했습니다. 

교수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부터 저는 학생과 교사 모두를 기계처럼 단순화하고, 지식인들과 사회의 무한하면서도 폭이 깊고 복잡한 관계를 평면적이고 몰개성적인 경제 교류로 단순화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어요. 지금 대학은 비인간적 수치 표준을 근거로 삼아 학생과 교수를 무자비하게 상품처럼 평가하고 있어요. 진리의 탐구와 함께 젊은이들에게 윤리적 원리를 제공한다는 대학의 본질이 교실에서 자취를 감추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가능성은 취업보다 이차적인 취미 생활로 낙후되면서 대학과 학계가 점진적으로 붕괴해 가는 풍경을 슬프게 방관해 왔지요.

이제 저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지구경영원(EMI, Earth Management Institute)'이라는 싱크탱크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유는 지금까지 몸담았던 대학에서는 우리 인류가 직면해 있는 위기에 대한 추급이 거의 불가능하고, 또 그런 취지의 강의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구경영원은 아직 제게는 미지의 세계이지만, 거기에서 저는 공익 활동에 참여하는 한편으로 진리를 탐구하고 각종 사회문제의 해결법을 찾고, 그 실천을 모든 시민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과 기능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5년 전 글로벌사이버대학교의 이승헌 총장의 초대로 교수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에 대한 특강을 했습니다. 이들 중 제 생각에 동감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날의 심도 있는 대화를 계기로, 이 총장이 설립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서 멘토를 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한중일 지구시민 청년 워크숍에 강의도 몇 번 했어요. 이 총장과 지구경영에 대한 대화를 자주했고, 2년 전 같이 <지구경영:홍익에서 답을 찾다>(한문화 펴냄)라는 책도 출간했어요. 지구환경의 문제, 인간성 상실의 문제 등 세계 전반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함께하고 그 해결책으로 지구시민 정신과 운동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습니다.

위기의 시대에는 지성인의 책임과 역할이 큽니다. 일반 시민은 정치, 경제 등의 복잡한 사회 현상을 분석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따라서 지성인은 기후변화 빈부격차, 기술의 빠른 발전의 위험성을 일반 시민들에게 알기 쉽게 이해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성인이라 할 수 있는 기자들은 진실보다는 흥미롭고 돈벌이가 될 만한 화제에만 관심을 보이고, 교수들은 일반 시민들의 고민거리와는 상관없는 연구논문만을 양산해 내고 있지요.

이러한 점이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지성인들부터,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그것이 환경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를 몸소 실천하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으며 항상 작은 물통을 가방에 넣어 다닙니다. 지구환경에 관심이 많고,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이야기하고, 한국의 진정한 가치 등 거대 담론을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런 한편에서 아주 작은 일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저는 예일대학교, 동경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미국 전문가로 일리노이대학과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교수를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와 지난 6년간 경희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인생은 속도 아니라 방향이다>21세기북스 펴냄),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 펴냄), <한국인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레드우드 펴냄)이라는 3권의 책을 내놓았습니다. 

제가 한국의 경희대학교를 선택한 것도 지금과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경희대학교의 설립자이신 조영식 박사는 '세계 평화'와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6년 전만 해도 이런 전통이 학교에 남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학은 일종의 돈을 버는 사업체처럼 변질되어 학생과 교수를 마치 샐러리맨의 성과를 평가하듯, 획일화된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교수 개개인의 연구 능력과 사회적 공헌도는 오로지 계량화된 수치에 의한 평가, 다시 말해 SSCI(Social Sciences Citation Index, 사회과학 분야의 학술논문 인용지수)와 그것에 준하는 국제학술지에 얼마나 많이 작성했느냐를 가지고 교수의 자질과 역량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사회과학논문 인용 색인은 '클래리베이트 애널리스틱(Clarivate Analytics)'이라는 기업이 자기들의 수익을 고려해서 만든 리스트입니다. 결국 교수들은 그다지 사회에 도움 되지 않은 연구논문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열정을 투자해야 하고, 시민들의 혈세로 만들어진 연구비로 작성되는 논문을 갖고 기업이 돈을 벌고 우리는 또 그 논문을 보기 위해 돈을 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연히 교수는 논문을 게재한 후로는 아무런 수익을 얻지 못하지요. 

저는 지금까지 고등학생 및 대학생, 그 밖의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을 대상으로 사회현안, 외교·안보 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강연과 토론을 자주 했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등 언론 기고도 꾸준히 했지만, 교수 승진 심사 때 재계약을 못 할 뻔했습니다. 학내에서는 53살이라는 나이로 거의 유일한 부교수로, 사실상 교수로서는 대실패자입니다.

교수 승진과 재계약을 위한 업적 평가만을 고민하는 교수들은 당연한 이야기지만, 시급한 지구환경 문제, 동북아시아 평화 문제 같은 데는 관심을 두지도 않으며 실천적인 활동에 대해서 학생과 이야기를 하지도 않습니다. 이곳 대학에서의 지성인의 역할은 아무도 읽지 않는 (본인조차 관심 없는) 논문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교육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죠. 

지금은 핵전쟁의 위협, 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국가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데, 사회가 삭막해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도 없고 가정조차 신경 쓰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미국이 한국보다 더 심각하지요. 하지만 문제는 한국이 그대로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한국 사회에도 좋지 않은 점이 적지 않으나, 그래도 일본과 중국에 비해 한국 문화에는 유연성이나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촛불집회와 같은 것이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좀 더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 제기를 하고 공감을 한다고 바로 좋아지지 않습니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끈기 있게 이를 실천해나가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그런 부분이 좀 약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에 대한 희망을 한국의 과거 역사와 전통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구경영원은 인간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국가의 문제, 세계의 문제, 환경의 문제 등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한 포괄적 접근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자기 자신, 자기가 속한 집단만을 생각하지 말고 지구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한국에서의 지구경영원을 시작으로 일본, 미국, 중국, 독일 등 각 나라에 지구경영원을 세우고 공통의 목표와 의식의 공유를 통해 지구환경문제, 평화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해 나갈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저는 진정한 지성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구경영원에서 저는 '0(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대단한 한국의 전통적 가치를 살리고, 일본이나 중국의 전통 가치를 함께 살려서 어떤 접점을 형성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 것입니다. 지구를 살리는 전략은 가장 중요한 연구주제인데 다른 대학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것이 지구경영원의 아주 큰 매력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기후변화가 심각하다고들 이야기를 합니다. 앞으로 20년 안에 인류의 위기, 전 세계의 위기, 지구 전체가 올 것이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속도에 대한 이견은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한국은 전기자동차조차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책의 문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문제, 문화의 문제입니다. 이만큼 큰 위기가 있다면 충분히 동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차라리 한국의 위대한 오래된 전통을 따라가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0년 동안의 고도성장처럼 다른 나라에서 갖고 온 것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학기에 처음으로 국제대학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을 했습니다. 저는 대학생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갖게 하고, 당면한 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사고방식의 전환을 포함하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위한 계획을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첫날 강의에 들어가니 학생이 5명밖에 없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학생들이 가득 차지 않은 강의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과에서는 10명이 되지 않으면 강의는 폐강되고 결과적으로 봉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통보했습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다른 경제학 수업들은 필수과목으로 되어 있고, 내 수업은 선택과목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제 수업을 수강하기를 원했던 학생들이 꽤 많았는데, 수강할 수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최종적으로 기후변화 수업이 폐강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대학의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수의 역할이 미래를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거나 학생들에게 윤리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점을 주고, 추천서를 써 주고, 연구논문을 기고하는 것이 교수로서의 목적이 되어버렸습니다.

학생들에게 경제교환의 윤리적, 문화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수학적으로 물가 상승과 이자율을 계산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경제학 수업이 제 기후변화 수업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후변화가 경제학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들, 지식인들, 모든 사람이 우리 시대의 주요 이슈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더 이상 대중매체에 의해 조작되고 비디오게임에 의해 왜곡된 수동적 소비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떤 삶이 윤리적인 삶인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매일 그러한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 있게 창조적으로 행동하는 적극적인 시민이 되어야 하고, 사상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구경영원은 국제교류에 주목하지만 동시에 전통문화에서 답을 찾습니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의 경우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에 가서 생태 도시, 환경 도시 사례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원래 한양이 완벽한 생태 도시였어요. 옛 한국인의 조상들은 생활 습관으로 아무것도 버리지 않고 음식 먹을 때는 낭비하지 않고, 모든 것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물며 인분까지 그냥 버리지 않고 반드시 농업에 쓰도록 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겐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회복하는 것이 생태 도시, 환경 도시의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싱크 탱크에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 합니다. 아마도 다른 싱크탱크는 지원을 항상 고민해야 하니까 이익이 바로 나오지 않으면 연구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 듯합니다. 

한국이 충분히 지구의 모범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함께 활동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핵심 인사들의 자기희생, 그리고 열정과 공동체 의식도 필요합니다. 지구경영원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기후문제, 환경문제를 해결할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 선도해 나가는 중심 기관의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지난 6년간 한국에서 제 활동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시고, 제가 쓴 책을 사랑해 주신 독자들에게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지금 전 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이냐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여러 차원의 이기심 때문에 문제해결을 위해 누구도 선뜻 나서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 미래 세대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잠시 빌려 쓰고 있는 것이지요. 문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방향을 정확하게 잡고 나가야 합니다. 새해에는 인간 사랑, 지구 사랑이 전 세계로 울려 퍼지는 메시지가 되고, 지구경영이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르는 이슈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지구경영원은 한 걸음 한 걸음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이 필요합니다. 


출처 http://m.pressian.com/m/m_article.html?no=18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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