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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9일 화요일

우리 안의 조선: 세습신분,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주진형 페이스북에서

<우리 안의 조선: 세습신분,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
저번에 <나만 노비가 아니면 된다>에서 한국 사회가 각자도생이 된 것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현대 한국 사회에 조선 왕조 사회의 잔재가 뿌리 깊게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임금격차를 예로 들면, 양반, 상놈, 노비로 신분을 가르고 차별하던 사회가 지금은 학벌,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으로 차별하고 이 소수에 속하기 위해 입시 경쟁이 벌어지는 사회로 변했다.
그리고 이 체제는 사실 중국 체제다.
이중톈(易中天)은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서 진시황 이후 지난 2천년에 걸쳐 중국체제를 유지시켰던 3대 요소로 중앙집권체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를 들었다. 진시황은 춘추전국시대까지 남아있던 봉건제를 철폐하고 군현제를 실시했다. 또, 기원전 2세기에 한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하여 제국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6세기 수문제부터 윤리치국을 담당할 관리를 과거제도를 통해 선발해 국정을 맡겼다. 그는 이 3대 요소가 현대 중국에서도 그 모습만 달리 했을 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 생각엔 한국도 이와 아주 유사하다.
한국에서 중앙집권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중국보다 1,200년이 지난 10세기, 고려 태조의 넷째 아들인 광종 시대다. 그는 호족을 견제하고 중앙집권제를 강화하기 위해 956년 노비안검법으로 호족의 세력기반인 노비를 양민화시키고 후주에서 귀화한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 과거제를 실시했다.
한국이 중국과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중국이 한나라 시대부터 유교를 국가 이데올로기로 삼은 것에 비해 한국은 조선시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유교가 국교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체제가 뒤늦게 도입되었기는 하나 14세기 이후 두 나라는 모두 중앙집권제, 윤리치국, 관원대리체제에 기반을 둔 전제체제를 갖고 있었다. 이 체제가 무너진 연대도 매우 비슷해서 중국은 신해혁명이 일어난 1911년에, 한국은 한일합방이 일어난 1910년에 없어졌다. 이러한 전제정치체제는 중국은 2천년, 한국은 보기에 따라 천년, 또는 5백년간 유지되었다.
이 세가지 요소 중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윤리치국이다. 유교 이념에 의거한 윤리치국 대신 중국은 군벌시대를 거쳐 공산주의로, 한국은 식민시대를 거쳐 헌정 민주주의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북한은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사실상 세습 전제체제다. 중국 역시 말로만 공산주의일 뿐 실제로는 세습 대신 선양을 하는 집단 전제체제다. 남한은 1948년 헌법을 만들고 민주공화정으로 출발했지만 곧 이승만 독재로 넘어갔다. 4.19 혁명으로 들어선 정부도 잠깐이었을 뿐 곧 군사독재체제로 넘어갔다. 박정희가 충, 효를 내세운 것도 한국의 윤리치국 전통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 정치가 조금이나마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민주혁명을 거친 후부터다. 그래봤자 몇년에 선거 한두번 하는 것 말고는 별 게 없어서 싱겁다.
중앙집권제는 아직도 남아있다. 중앙집권제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도, 군, 면으로 내려가는 수직적 행정구역체제다. 예를 들어, 유럽권의 주소는 나라, 시, 거리 이름으로 끝나지만 한국은 도, 시(군), 면 리(동)을 모두 적어야 한다. 지방자치제도 유명무실하다.
이를 대표적으로 반영하는 예가 세금제도다. 한국에서는 국세가 대부분이다. 전체 세수 중에서 약 80% 이상을 차지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방소득세는 2010년 전까지는 주민세로 불리던 것인데, 국세인 법인세나 소득세에 10%를 할증해서 부과한다. 국세가 몸통이고 지방세는 쥐꼬리만하다. 이에 비해 서구 국가에서는 지방소득세가 국세와 동격이거나 스웨덴체럼 아예 소득세 수입이 우선 지방정부에 귀속되고 일정비율 이상인 액수만 중앙정부가 국세로 소득세를 추가로 받아간다.
관원대리 체제 역시 역시 여전히 강고히 남아있다. 아시아권에서 과거제도를 시행했던 나라는 중국과 한국 외에도 베트남과 일본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일본과 한국에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과거제도를 실시하고 있었지만 19세기 프랑스에 점령되면서 폐지되었다. 일본도 헤이안 시대(794-1185)에 과거제도를 실시했지만 하급귀족이 중급귀족으로 신분상승을 하는데에만 쓰여졌고 그 위 상급귀족층에 의한 지배체제 자체를 흔들지는 못하였고, 가마쿠라 막부시대에 귀족체제가 무너지고 봉건체제와 무사계급이 들어오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일본에서 과거제도가 다시 등장한 것은 중앙집권을 추진하던 메이지 시대 고등문관제가 실시되면서부터였다. 일본은 1948년 고등문관제도를 폐지했지만 그 대신 1종 공무원시험으로 대치했을 뿐이다. 일본의 1종, 2종, 3종 공무원 시험은 한국의 5급, 7급, 9급 공무원 시험과 일치한다. 한국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는 1940년대 외무고시를 추가한 일본의 고등문관시험제도를 지금까지 그대로 따르고 있다.
<사법부와 행정부의 관원대리체제>
그러나 관원대리체제가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부문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이다. 사법고시를 통해 선발한 관원에게 형사소추권을 독점적으로 주었다. 판사 역시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만 가능했다. 이러한 독점체제가 바뀐 것은 2011년 처음으로, 법학전문대학원을 나와 변호사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를 판검사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란 직업도 원래는 검사나 판사를 하다 퇴직한 사람이 하는 직업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정원이 300명으로 확대되면서 사법연수원을 나온 후 변호사 개업을 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고 1996년 500명으로 늘면서 변호사가 급증했다. 최근이 사법시험 존치 논란도 사법부를 관원으로 채우는 전통의 연장이다.
전관예우는 한마디로 사법 관원의 부패다. 자리를 얻기 위해 뇌물을 바치는 사전적 매관매직이 아니라 자리에서 물러난 후 뇌물을 받는 사후적 매관매직인 것이 조선시대와 다르다. 암묵적 결탁이 유지 되기 위해선 회원 관리가 배타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사법고시를 폐지하면 이 체제의 내부 결속력이 무너진다.
행정부 역시 그 독점성은 사법부에 비해 약하지만 관원대리체제다. 행정고시를 통해 선발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국민 대부분이 고등학교를 나왔고, 4년제 대학 진학률이 50%를 넘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새파랗게 젊은 대학 졸업생을 행정부 중간 간부로 뽑는 시대착오적인 제도는 여전히 남아 있다.
전통적으로 이들은 엄청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법으로 자세히 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법안 자체도 대부분 행정부가 기안한다.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권을 공정거래위원회에게만 준 것도 관원대리체제의 일부다.
독재자의 충실한 하인이던 공무원들은 5년에 한번씩 바뀌는 대통령제에서 어느덧 가장 강력한 독자적 권력기구가 되었다. 전제군주가 관원을 견제하면서도 결국은 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역시 관원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요새와서는 정치 검찰을 넘어서 아예 검찰 정치를 한다.
<관원대리체제와 법치 그리고 경제민주화>
이렇게 관원에 의해 독점된 사법체계와 행정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과연 법치를 할 수 있을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도 법치란 용어는 있었다. 그러나 이는 시민들이 권력자의 권한에 제약을 가하는 법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최고 권력자가 신민을 통제하기 위한 율법에 의한 통치를 뜻하는 것이었다.
국민을 시민이 아니라 신민으로 다루는 전통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아시아권에서 법 앞에 평등이란 개념은 사회 지배층에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시만의 의사 표현을 법치라는 명목 아래 겁박하는 어이 없는 행동도 그것이 바로 율치의 전통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나름 '내재적 이해'가 된다.
이렇게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가 강고하게 남아 있고, 법치 보다는 율치가 익숙한 나라에서는 지배층에 대한 공평한 법 적용이 가능하지 않다. 법치주의, 공화정, 민주주의 등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라면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원대리체계가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사법체제가 재벌 총수나 정치권력에 약한 것은 필연적이다. 관원에게 기소권과 판결권을 독점적으로 부여하고, 피고를 대리하는 변호사가 퇴직 관원인 체계에서는 재벌 총수나 정치권 인사는 집행유예나 사면을 받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실행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중앙집권체제와 관원대리체제를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치주의를 확립하기 위해 검찰 뿐만이 아니라 법원도 개혁해야 한다. 있는 법이나마 제대로 실행할 법원이 필요하다. 양형 기준을 바꿔서 처벌을 강화한다는 것 자체가 옹색한 얘기다.
중국 전제정치에서 유래한 관원대리 체계가 가장 강고히 남아 있는 곳이 사법부인만큼 사법관원 대리체계는 부패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부패한 사법체제는 재벌총수가 실정법에 어긋나는 불법을 저질렀을 때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다. 실정법에 어긋나지 않는 도둑질에는 모두들 딴 청을 부리면서 먼산을 바라본다.
소득 양극화, 이것은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소득은 양극화됐었다. 신분세습사회, 중앙집권제, 관원대리체제를 놔두고 서로 양반이나 아전이 되려고 아귀다툼만 하면 결국 대부분은 상놈이나 노비가 된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jinhyung.chu/posts/805662049577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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