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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12일 금요일

미네르바 스쿨 이야기, 미래의 대학과 미래 역량 지수/ 윤석만 남윤서 전민희 중앙일보 기자

“앱(App)을 사용하는 방식별로 성과를 비교해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1일 자기주도학습 앱을 개발 중인 글로벌 스타트업 ‘에누마’의 회의실. 미국인 에리카 곤살레스(21)가 이 회사 엔지니어들에 물었다. 곤살레스는 미래 대학 대안으로 떠오르는 미네르바스쿨 학생이다. 곤살레스를 포함 미네르바스쿨 대학생 4명은 이날 이 회사 엔지니어 3명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곤살레스(21·미국)는 엔지니어들에게 "앱을 통해 성적이 오른 학생보다 그렇지 않은 학생에 집중해야 한다. 실패  원인을 찾아 보완해야만 앱이 성공할 것 같다”고 의견을 냈다. 
  
 곤살레스 등 미네르바스쿨 대학생들은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금요일 에누마를 방문해 앱 개발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6번째로 열린 이 날 회의도 두 시간을 훌쩍 넘겨 끝났다. 에누마가 개발 중인 앱은 아프리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교사가 턱없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 학생 스스로 읽기·쓰기와 덧셈·뺄셈 등을 학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에누마 전유택 한국지사장은 미네르바 스쿨 대학생의 안목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대학생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문제의 핵심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당장 업무에 투입해도 손색이 없을 인재들”이라고 말했다.   


 미네르바스쿨은 미래 대학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교육기관이다. 2014년에 생겼다. 재학생은 현재 470명. 샌프란시스코(미국), 베를린(독일), 부에노스아이레스(아르헨티나), 서울(한국), 하이데라바드(인도), 런던(영국), 타이베이(대만) 등 세계 7개 도시에 기숙사가 있다. 학생들은 4년간 기숙사가 있는 도시들을 돌며 현지 문화와 산업을 배운다. 
  
 1년 학비는 2만9000달러(한화 약 3100만원) 미국의 웬만한 사립대의 3분의 2정도 수준이다. 다른 대학처럼 넓은 캠퍼스 갖추느라 부동산을 매입해 건물을 짓지 않아 상대적으로 저렴한 학비로 대학을 운영하는 게 가능하다.  
  
 수업은 월~목요일에 한다. 모든 수업은 온라인 화상 교육으로 이뤄져 있다. 카페든 도서관이든 노트북을 켜는 곳이 강의실이다. 세계 7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교수와 학생들이 시간에 맞춰 노트북을 연다. 수업 전에 영상 강의를 미리 듣거나 논문이나 책을 읽고 와서 토론식 수업한다.  
  
 중국인인 3학년 학생 시지아 조우(22)는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빈부 격차는 비슷한 문제지만 또 다른 문제”라며 “다양한 나라를 경험하면서 글로벌 감각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금요일엔 곤살레스 등이 에누마와 함께 하는 앱 개발처럼 실습으로 채워진다. 실습 장소는 학생 개인의 관심에 따라 기업·관공서·시민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고를 수 있다.  


미네르바스쿨 학생들은 인문학부터 코딩에 이르기까지 전 분야를 통섭해 배운다. 3학년 때 선택할 수 있는 전공도 ‘사회과학과 뇌신경과학’ ‘컴퓨터과학과 데이터과학’처럼 모드 과목이 2~3개 세부 전공이 융합돼 있다. 2학년 김진홍(21)씨는 “복잡한 미래 사회에선 수학·물리·철학 등 한 개 학문 분야의 지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같은 이슈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책도 융합적으로 찾는 방법을 배운다”고 말했다. 
  
 미네르바스쿨은 개교 4년 만에 아이비리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학으로 급성장했다. 들어가기가 매우 힘들다. 2016년엔 306명을 뽑는데 1만6000여 명이 지원했다. 지원자 중 합격률이 1.9%였다. 당시 파이낸셜타임스는 “미네르바스쿨은 하버드(5.2%), 예일(6.3%), 스탠퍼드대(4.7%)보다 합격률이 낮다. 전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대학”이라고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미네르바스쿨을 선택한 학생은 150명으로 50%의 학생들이 등록했다. 미국의 일반 사립대 등록률(35%)보다 높은 편이다.   


 미네르바스쿨 3학년인 김강산(22)씨는 민족사관고를 나왔다. 김씨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미국의 UC버클리 등에 합격했지만, 미네르바스쿨을 택했다. 그는 미국대학입학 자격시험(SAT)에서 2400점 만점에 2370점을 받았다. 토플 성적은 118점(만점 120점)이다. 김씨는 “기존 대학은 다른 사람이 연구해 놓은 지식과 이론을 배운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학생이 직접 지식과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준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같은 새로운 유형의 대학이 부상하는 반면 기존 대학들은 위기를 겪고 있다. “2030년 전에 세계 대학의 절반이 사라질 것”(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기존 대학이 위협을 받는 건 지식 습득 위주인 기존 교육체계가 붕괴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지식 습득 위주의 교육이 붕괴하는 것은 '인공지능(AI)'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상징되는 미래의 혁신기술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뒤엔 일자리 중 절반이 AI로 대체된다는 전망(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인간은 AI와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역량을 길러야 한다.  
  
 중앙일보가 현대차정몽구재단과 미래 인재가 갖출 역량을 알아보기 위해 한국 사회 오피니언 리더, 전문 직군 대표자 등 100명을 인터뷰한 결과, 창의력·인성·융복합능력·협업역량·소통능력 등이 미래인재의 핵심 역량으로 지목됐다. <중앙일보 1월 3일자 1,4,5면>   


 하지만 현재의 교육체계는 이런 역량을 기르는 한계가 있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1928~2016)는 “현대의 학교 체제는 산업혁명이 있었던 19세기 방식과 똑같다”고 일갈했다. 현재 체제는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사회의 가치를 실현하는 노동력을 양성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다는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미래사회에선 현재 같은 단편적 지식 전달 중심의 수업은 큰 의미가 없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이 통용되는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지기 때문이다.  
  
 대학이 이론과 기술을 제공하고 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제품·서비스를 생산하는 ‘산학협력’ 공식도 깨지고 있다. AI와 빅데이터, 자율주행 등 미래 기술 연구에서 기업이 대학보다 앞서 있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언론홍보대학원장)는 “학생들이 아직 대학에 오는 유일한 이유는 졸업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졸업장이 좋은 일자리를 갖게 해줄 거란 기대감마저 깨진다면 대학은 붕괴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졸업장=취업’의 공식도 허물어지고 있다. ‘최고의 졸업장’인 박사학위 소지자의 미취업률은 조사가 처음 시작된 2014년 21.3%에서 2017년 22.9%로 증가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 따르면 박사 소지자의 46.8%가 연봉 3000만 원 이하를 받고 있다. 토머스 프레이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는 한국 교육은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난해 5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현재 한국 청소년들의 미래역량은 어떤 수준일까. 중앙일보는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김주환 교수팀과 전국 중·고교생과 대학생 1100명을 대상으로 미래역량 지수를 측정했다. 
  
 연구팀은 미래역량에 대한 국내외 연구 결과와 중앙일보가 조사한 명사 100명의 의견을 종합해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핵심역량을 꼽았다. 창의력·인성·융복합능력 등의 근본이 되는 요소들을 범주화해 '자기조절력', '자기동기력', '대인관계력', '디지털역량' 등 4개 핵심역량을 선정했다. 
  
 자기조절력은 자기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해 목표를 달성하려 끈기를 발휘하는 능력을 뜻한다. 감정조절력·긍정성·집중력 같은 것이 자기조절력을 구성한다. 자기동기력은 스스로 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하는 능력이다. 남의 요구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이 일의 원동력이 된다는 의미다. 대인관계력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함으로써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는 능력이다. 남의 마음을 읽는 공감능력과 의사표현을 명확히 할 수 있는 표현능력이 여기에 포함된다. 
  
 디지털역량도 미래 핵심역량으로 포함했다. 4차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일상 생활 전반에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디지털역량에는 각종 기기를 활용하는 능력과 기기를 통해 새로운 정보를 생산해내는 능력 등이 포함됐다. 


 연구팀이 청소년들의 4개 핵심역량 평균점수를 조사했더니, 4개 모두 중학생의 평균점수가 가장 높았다. 고등학생은 중학생보다, 대학생은 고등학생보다 평균점수가 낮았다. 상급 학교에 진학할수록 이들 역량이 낮아진 것이다. 

 연구팀은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가 미래역량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조사 대상 학생들이 엄마·아빠·친구와의 관계를 각각 점수로 표시하게 했다. 각각의 점수를 나쁨(3점 미만)', '보통(3~4점)', '좋음(4~5점)' 등 세 그룹으로 구분했다.  
  
 그 결과를 보니 엄마·아빠·친구 등과 관계가 좋을수록 미래역량도 높았다. 엄마와의 관계가 좋은 학생은 5점 만점에 자기조절력이 3.54점, 자기동기력이 3.78점이었다. 엄마와의 관계가 나쁜 학생은 이 역량 지수가 각각 3점, 3.35점으로 관계가 좋은 학생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엄마와의 관계는 모든 연령에서 미래역량과 관계가 깊었고, 아빠와의 관계는 특히 남학생과 고등학생에게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이들 역량이 낮아지는 것의 원인을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산업화 시대 방식의 교육에서 찾았다. 조 교수는 "산업화 시대엔 잘 외우고 문제를 빨리 푸는 사람이 인재였다. 우리 교육은 초·중·고교, 대학교, 심지어 대학원까지 산업화 시대의 교육을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는 축적된 데이터 속에서 필요한 것을 찾고 조합하는 사람이 필요한데, 그런 인재를 우리 교육은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유아기 가정 교육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피수영 하나로의료재단 고문은 "미래에는 사람 간의 관계가 핵심이 된다. 예절 교육을 비롯한 가정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교수는 "타인과 교감하는 공감의 뇌는 주로 4세 이전에 부모와 상호작용하면서 발달한다. 어려서부터 주변과의 정서적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신성철 KAIST 총장은 “지금처럼 문·이과를 나누고 국어·영어·수학 중심으로 지식 암기 위주의 수업을 하면 미래인재는커녕 현재의 인재도 키울 수 없다. 학문 간 경계를 허물고 융복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교문을 열고 나가면 세상 모든 일은 이마를 맞대고 협업하고 있다. 교실에서도 협업하고 함께 문제를 푸는 능력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만·남윤서·전민희 기자 sam@joongang.co.kr 
  


인공지능 시대 이렇게 바뀐다
“4차 산업혁명의 본질은 기계혁명 아닌 문화혁명 … 그 운전석엔 교육이 앉아”
김창수 중앙대 총장

“미래 메가트렌드는 융복합 … 문·이과 통합적이면서 기초 튼튼한 인재가 필요”
신성철 KAIST 총장

“과거엔 교육 방법·내용 중요 … 이젠 교육 목표 중요성 커져 나눔의 관계에 중점 둬야”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지금 같은 공부 의미 없어져 스스로 사고할 여유 줘서 경험하고 상상하게 해야”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  

“AI에 대항하는 인간 경쟁력은 여럿이 일구는 집단지능 더불어 일하는 인성이 실력”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

“보이지 않는 정보가 돈이듯 인공지능 시대 인재는 새 지식을 창출하는 사람”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미래 세대는 호모쿵푸스 … 졸업 후에도 배움 계속하는 평생학습 사회서 살게 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표준화된 대량체제 교육서 개인의 문제해결력 키우는 맞춤형 교육으로 진화”
하윤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이름 가나다순) 


[출처: 중앙일보] 하버드보다 입학 어려운 新대학 미네르바 스쿨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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