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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일 금요일

문화재생 특집 시리즈 기사, 인천일보 이동화 기자, 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1. 원도심 재생, 균형발전 해법될까 이동화 승인 2018.07.12.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
 
오늘날 대다수 시민은 도시에 살고 있다. 도시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아 도시화와 교외화, 역도시화, 재도시화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적 생애주기를 갖는다. 사람들이 모여서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고 순환하는 하나의 시스템인 것이다.
 
2016년 유엔 헤비타트 가 내건 새로운 도시 의제는 'City for All'. 모두에게 적정하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는 도시이다. 사회적으로 누구나 소외되지 않고 지속가능하며, 포용적인 도시경제를 보장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도시를 말한다. '도시의 지속성과 포용도시'라는 가치는 유엔이 2030년까지 지구촌 전체가 추구해야 할 목표로 내세운 국제적인 합의이다.
 
이는 현대도시가 지속가능성의 위기와 공동체 붕괴, 세대단절이라는 3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그럼, 사회적·경제적·환경적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해 줄 수 있는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같은 도시문제와 과제를 풀기 위한 고민 끝에 나온 방법 중 하나가 '도시재생(Urban Regeneration)'이다. 도시재생은 기존 사업방식이 몰고 온 공동체 파괴·장소성 상실 등 반문명적 도시개발 방식에 대한 반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이 도시정비에서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부동산 가치의 상승 부작용과 지역개발 논리를 완전히 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도시재생 뉴딜
 
요즘 도시재생이 '(hot)'하다. 문재인 정부가 5년동안 50조를 투입하겠다는 '도시재생 뉴딜' 정책 때문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24조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보다 2배가 넘는 예산규모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을 내놓았다. 삶의 질 향상과 도시활력회복, 일자리창출, 공동체 회복 및 사회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원주민 재정착률이 낮고 공간의 역사성을 무시한 기존 대규모 정비사업이 갖고 있는 폭력성을 극복하고, 주민체감형 도시재생의 요구를 반영하겠다는 정책이다. 여기에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추진했던 뉴딜(New Deal)이라는 재정정책을 더했다. 8월에 올해 사업지 선정을 앞두고 지자체별로 치열한 물밑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도시재생'이란 2013년 제정된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서 '인구의 감소,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 주거환경의 노후화 등으로 쇠퇴하는 도시를 지역역량의 강화, 새로운 기능의 도입·창출 및 지역자원의 활용을 통해 경제적·사회적·물리적·환경적으로 활성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내 도시재생사업이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1년 테스트베드사업부터다. 일본은 2002년 도시재생법을 만들었기에 우리보다 10여년 앞선다.
 
올해부터 인천에서도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본격 추진된다. 인천 남동구 만수2동 만부마을이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지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과 어린이집, 마을관리소, 전기차 쉐어링 등 주민생활 편의시설 확충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만부마을은 과거 철거민 이주 정착지로 열악한 주거환경과 물리적·사회적 쇠퇴의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다.
 
#주민이 없는 무늬만 도시재생
 
우리나라는 그동안 경제기반형과 근린재생형의 도시재생 선도지역과 시범사업, 지방자치단체 자체 사업 들을 통해 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자치단체가 주도한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나 군산 근대문화지구는 버려졌던 아픈 역사와 근대건축물을 재생해서 문화공간이나 관광명소를 탈바꿈한 곳이다. 순천시 행동의 문화의 거리는 주민이 주도하고 행정은 협력하고 전문가는 지원하는 형태의 주민주도재생 사례로 꼽힌다. 이외에도 민간차원에서 유휴공간이나, 방치된 시설, 낙후 지역에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새로운 가치를 더하고, 다양한 커뮤니티 앵커시설들을 조성하기도 한다.
 
문제는 재생 과정에서 투기자본이 들어와서 집값만 높여놓고 빠지는가 하면, 임대료 인상으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부작용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작 그곳에서 사는 주민이 재생과정에 빠져 있는 무늬만 도시재생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방향은 재생이라고 하면서 방식은 여전히 토건개발인 것이다. 그러기에 '' 찍어서 성공적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다.
 
300만 인천 시민 중 76%가 원도심에 살고 있다. 그런만큼 어느 지역보다 도시재생 사업이 시급한 곳이다. 도시재생에 절대적 해법이나, 정답은 없다. 정부의 공적지원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민간의 창의적 콘텐츠를 결합하는 등 인천의 특색에 맞는 모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인천문화재단 공동기획
 
[기고] 문화가 흐르는 도시재생<1>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
 
올해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표적인 선거 공약이자 핵심 국정 과제인 도시재생 뉴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발맞추어 지방자치단체도 원도심 재생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선거 4대 핵심 공약으로 한반도 평화경제 중심 도시 원도심과 신도시가 어우러지는 재창조 도시 인천 수도권 교통 중심 도시 대한민국의 신성장 미래 산업의 전략적 육성을 내세우고 그중에서도 공존과 상생의 인천도시 균형 발전 방안으로 두 번째 선거 공약인 원도심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를 위하여 인천 경제청에 버금가는 원도심 전담 부시장제도의 도입, 도시재생 총괄 전담 기구의 설립, 시장 직속 시민중심 도시재생위원회 설치, 원주민 정착률을 높이는 지역별 현장소통센터 설치, 인천내항 재개발, 부평군부대 이전 등 거점별 도시재생 추진, 청년창업·복합문화·지역상권·지역대학 등 맞춤형 원도심 혁신지구 지정 등 세부 공약도 내세웠다.
 
그러나 70년대, 80년대 도시계획처럼 경제 제일주의 방식으로 밀어붙이기식이거나, 시설 위주의 프로젝트로 추진해서도 안된다. 이미 오래전에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가 제안한 바와 같이 "공간을 보는 관점 자체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경제적 공간관에서 문화적 공간관으로, 인공적인 공간관에서 생태적인 공간관으로, 권력자의 공간관에서 일반시민의 공간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도시재생은 문화적 방식으로 접근해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원래 도시계획은 낙후된 도시 건축물을 쓰레기를 치우듯 밀어버리고 반듯하고 멋진 빌딩, 질서정연하고 깨끗한 도시, 교통이 편리한 도시, 안전한 도시를 지향한다. 부와 자산의 가치를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자본주의 논리에 집중한다. '신은 자연을 만들었고 사람은 도시를 만들었다'(윌리암 카우퍼)는 말이 있듯 인간은 탐욕스럽게 도시를 만들었다. 지금껏, 인간적이고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는 이상적이고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몰개성적이고 비인간적이고 기능적인 도시만들기로 집중했다. 하드 인프라에 신경을 쓰고 소프트 인프라는 배려하지 않았다.
 
도시는 물리적 기술만으로 만들 수 없다. 만들 수 있더라도 박제된 도시가 될 수 밖에 없다. 의미있는 공간, 인간의 삶과 즐거움이 있는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도시를 만드는 일은 전체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런 네트워크 사회에 있어 문화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제 도시계획은 과학보다 예술이, 문화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도시는 시민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고 공동체가 원활하게 소통되어야 한다. 도시는 문화, 환경, 역사, 사회 등 모든 분야에 담긴 가치관이 함께 조화되고 융합되었을 때 단순한 공간이 하나의 의미 있는 장소로 새롭게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어느 도시든지 그 도시만이 갖고 있는, 그 마을만이 갖고 있는 체온이 있고 주민들의 가슴 가슴에 따듯한 이야기가 있다. 도시재생에 이러한 지역적·장소적·역사적 특성이 살아야 커뮤니티가 살아나고 따듯한 도시로 재탄생한다. 또한 현대적인 도시를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도시를 꽉 채우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움의 공간, 공공의 공간을 예비하고 그것을 문화로 차근차근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2회에 계속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2. 예술로 지역을 변화시킨 '인천아트플랫폼' 이동화 승인 2018.07.26.
 
인천 중구 개항장은 1883년 개항 이후 근대 문물이 들어온 곳이다. 조그만 포구에 조계지가 만들어지고 국제무역이 이뤄지면서 인천은 국제항구도시로 발전했다. 인천항은 조선과 일본, 청나라를 비롯한 구미 각국의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문화 지대였다. 이후 전쟁, 산업시대를 거치면서 인천은 더욱 팽창, 오늘날 원도심을 형성한다. 도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쇠퇴하는 걸까. 1970년대 이후 낙후한 지역으로 전락한 원도심에는 근대건축물과 산업기반시설, 생활문화유산 등 근대산업,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인천의 역사적·문화적 근원이 살아 있는 곳이다. 중구 개항장은 원도심 문화재생의 출발점이었다. 그곳에 20년 전, '300명의 예술가가 이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기치를 내걸고 '예술'을 매개로 한 독자적인 도시재생 유형의 사업이 추진됐기 때문이다. 바로 인천아트플랫폼이다. 개항장 문화지구 재생의 앵커시설로써 자치단체의 자발적인 문화재생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왜 '예술'을 선택했을까. 조성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지역 문화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인천 개항장, 예술과 만나다
 
전통시대의 '인천', 개항 이후 구미 세계에 전파된 '제물포', 일제 식민시대의 '진센'. 이들 지명은 인천이라는 도시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세 가지 시선을 대변한다. 이렇게 인천은 개항과 일제 강점기, 6·25전쟁, 산업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인천 개항장에는 삶의 기억과 역사문화유산, 지역 공동체의 흔적이 남아있다. 특히 근대건축물의 경우,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의 잔재이지만 근대를 엿볼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사실관계와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집단 간의 갈등과 공공정책에 대한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에는 옛 애경사 건물의 철거, 북성포구 매립 갈등에 이어 인천항 재개발 방향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앞서 인천개항 100주년 기념탑과 러일전쟁 전사자 추모비, 만국공원 창조적 복원사업, 차이나타운(China Town)에 대응한 재패니즈 타운(Japanese Town), 공자상 설치 문제 등으로 의견 대립의 갈등을 겪었다. 근대역사 유산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할 것이냐는 가치와 철학의 차이와 빈곤을 드러낸 것이다.
 
도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삶의 양식도, 공간의 기능도 재편된다. 번성했던 개항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옛 영화를 뒤로하고 쇠퇴했다. 1970년대 이후 인천시청 이전과 신도시 개발로 인력과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중구 일대는 인천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 중 하나로 전락했다.
 
이에 인천시는 2000년대 들어서 근대건축물 보전 및 정비를 통한 원도심 재생에 나섰다. 이른바, 개항장 문화지구 재생사업이다. 옛 역사의 자취를 재해석해 471476원도심 살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 인천문화재단 이전, 인천개항박물관, 인천개항장근대건축전시관, 짜장면박물관, 구 제물포구락부 등 역사문화콘텐츠를 이용한 도시재생, 문화재생 사업을 펼쳤다. 근대건축물을 활용한 장소거점 구축과 스토리텔링, 전시·체험·축제·교육 프로그램 운영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예술이 문화재생의 목적으로 작동
 
개항장 문화지구 핵심 거점공간은 인천아트플랫폼이다. 중구 해안동 일대 근대 개항기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조성한 문화예술 창작공간이다. 다른 지역의 도시재생 방법과는 다르게 '예술'을 재생의 콘텐츠로 선택했다. 예술가(Artist)들이 창작작업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세우고, 지역에 확산시키며, 세상과 교류하는 플랫폼(Platform)을 구축한 것이다. 아트플랫폼은 특정 장르의 소유공간이 아니라 공유의 공간이며, 가로(Street) 개념의 공간구성으로 시민들이 일상에서 작가와 작품을 우연히 마주치게 했다. '예술이 도시를 바꾼다'는 실험이 도입된 것이다. 문화의 종자라고 할 수 있는 예술이 도시재생, 문화재생의 수단이나 도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2011년에는 개항장 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하고 주민들이 건축자산을 창의적으로 관리, 육성할 수 있는 조례를 제정, 융자금 등을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했다. 이와 함께 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근대화 과정에서 남겨진 교육, 행정, 종교, 산업시설이 밀집한 동구지역(배다리 일대)과 인천역 주변에서 축항선, 항만에 이르는 문화벨트화 사업을 추진했다.
 
인천아트플랫폼 조성 당시 총괄 기획를 맡은 황순우 건축사는 "1887, 1902년에 지어진 건물, 그리고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이 공존하며 각기 시대의 건축 재료가 어우러져 새로운 기능으로 재편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새로운 장소로 탄생했다"면서 "한국근대문학관의 경우 120년이 지나 쌀 창고로, 김치공장으로 변한 초라한 모습의 텅 빈 공간은 오랜 세월을 일상 속에서 사회에 대응하며 살아온 흔적들이 물결치듯 긁힌 벽돌에서, 녹슨 철문에서, 덧바른 몰탈에서 초라하지만 세월의 무게를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10+10 공유 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은 2000년 조성사업을 시작해서 2009년 오픈했으니, 계획에서 완성까지 10년 걸렸다. 그리고 다시 자리잡기까지 10년을 내다봤다. 쇠락의 길이 길었던 만큼 회복하기까지 20년은 그리 길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같은 만만디 전략이 '절반의 성공'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오늘날 개항장 문화지구 일대 예술생태계의 심장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본격 추진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경제기반형의 '인천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과는 그 기본 철학과 진행과정이 전혀 다르다.
 
아트플랫폼은 예술성과 시민성이 공존하는 핵심거점 공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야성 같은 유명 관광지가 되길 바라는 시각이 생겨나면서 예술놀이터라는 원래 기능이 위협 받고 있다. '예술이 도시를 활성화 시킨다'는 가치와 철학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근대건축물 활용이 도시재생의 주요 수단으로 등장했지만, 문화유산을 관광과 돈벌이를 위한 보여주기식 눈요깃 거리로 만드는데 초점을 맞추다보니 보존과 활용이라는 근본적인 취지에서 멀어져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역사가 숨쉬는 건축재생
 
인천 아트플랫폼이라는 앵커시설이 지역 문화생태계에 미친 영향일까. 시민이 스스로 발굴한 개항장 주변 건축물들이 하나씩 천천히 건축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장소적 가치를 부여받은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앵커시설의 파급효과가 민간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1935년 조선건업 관사를 전시장으로 쓰고 있는 '서담재 갤러리', 개항기 하역업체 사무실 '카페 팟알', 일본식 연립주택 나가야를 재생한 '관동갤러리', 1920년대 얼음창고를 건축재생한 '카페 빙고' 개인이 근대건축물을 재생한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개항장 일대 방치된 건물들이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카페와 갤러리 등으로 변신 중이다.
 
이처럼 인천 원도심 지역에는 개항 이후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60, 70년대까지의 근대문화유산과 산업유산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근대건축물과 창고건물, 캠프 마켓, 1·8부두, 동일방직, 삼릉사택, 부영주택 등을 비롯해 크고 작은 의미 있는 근대문화·산업유산들이 개발과 보존, 훼손의 언저리에 위태롭게 서 있다. 시간성과 장소성, 일상성 등 오랜 기억을 보존하고 있는 이들 유산은 원도심 문화재생의 원천 자산일 것이다. 이들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재생 방안이 요구되고 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사진제공=인천문화재단
 
참고자료 : '다시 개항을 꿈꾸며'·'장소의 재탄생을 위해'(황순우 건축사)/도시재생에서 역사문화 콘텐츠 활용의 쟁점 및 정책지원 방안 연구(조광호)
 
전 인천아트플랫폼 총괄 기획가 황순우 건축사
 
인천아트플랫폼 조성 당시 총괄 기획을 담당했던 황순우 건축사는 "첫째, 지구단위 계획 구역의 보존계획을 만들고, 둘째 경관 정비 계획을 세웠다. 이어 앵커시설을 넣었는데, 그것이 '아트플랫폼'이다"면서 "이후 문화지구 지정과 건축자산법을 도입해서 개항장 일대를 보존 활용함으로써 절반의 성공은 거둔 셈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시의 기록은 스토리텔링의 원천 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데, A동에 있던 금마차 다방 등의 아카이빙 작업을 소홀히 했던 점은 아쉽다"면서 "다만 지구단위 계획을 세워서 천천히 추진했기에 10여년 전 한 평에 3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00만원 정도로 올랐지만 급격한 지가 상승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도시를 가장 윤택하게 하는 작업은 결국, 예술가들이기에 '예술'을 매개로 한 앵커시설을 조성했다"면서 "시민들이 걸으면서 예술과 접할 수 있도록 스트리트 컬처 개념을 도입했다"고 밝혔다. 황순우 건축사는 내년에 아트플랫폼 개관 10주년을 맞아 도시비전 등 예술을 매개로 한 도시재생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자를 낼 계획이다.
 
/·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3.산업단지의 문화재생, 전주팔복예술공장 이동화 승인 2018.08.09.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산업동력의 장소를 재발견하는 곳, 탈경계와 낯설음, 날 것의 시공간 이미지 등 비일상의 공간을 '예술의 힘'으로 일상의 덤처럼 얻을 수 있는 곳. 전통과 동시대예술이 공존하는 지역. 문화재생의 힘을 주변 산업단지로까지 확장시켜 나간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치유와 회복의 예술공장, '전주팔복예술공장'을 찾았다. 예술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 보고, 산업단지의 문화재생 사례를 살펴본다.
 
#산업단지의 문화재생
 
산업사회에서 생산기능을 담당하던 산업단지와 산업시설이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로 그 기능을 잃고 유휴공간으로 방치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폐산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문화재생의 사례들이 늘고 있다.
 
문화재생은 '문화의 재생' 혹은 '문화를 통한 재생'을 말한다. 그동안 문화는 도시재생에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해 포장재로 일회성 촉발제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도시의 재생에서 문화는 수단이자 방법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어야 한다.
 
이런 문화적 가치와 힘에 주목해 노후 산업단지와 폐산업시설을 문화와 예술, 지역사회와 소통을 통해 변화시켜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가진 장소로 재창조하는 사업이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이다. 문화주도 도시재생 정책은 1970년대 북미대륙에서,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전략에서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되어온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사업 모델은 대부분 건물을 새로 짓는 방식의 문화토건사업 위주로 추진되다보니,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사업이 사실상 문화토건 사업으로 전락해 문화없는 도시재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 콘텐츠보다는 특정시설이나 건물을 짓는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전주는 '리틀 한양'이었다. 산업화 시대에 섬유와 제지 중심의 산업단지가 허허 벌판에 들어서고 주변 도시의 여성 노동력을 끌어들였다. 산업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일부 공장들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도 떠났다. 공단지역 마을인 전주 팔복동에도 빈집이 남아 돌고, 한때 초등학교 전교생이 2500명이었지만, 지금은 90명으로 줄었다. 추천마을 쪽방촌도 없어졌다. 이는 이미 2, 30년 전 유럽 사회가 겪은 현상이다. 이에 유럽이 지역의 장소성을 기억하고 공동체를 회복시켜 나가는 방안으로 도입한 문화재생 사업을 우리나라도 뒤따라 진행 중이다.
 
전주팔복예술공장은 1980년대 이후 공장 기능을 상실하고 25년 동안 유휴공간으로 방치된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문화재생,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두배 쯤 되는 4500평 규모의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전주제1일반산업단지' 한 가운데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음악산업의 한 장을 열었던 카세트 테이프를 생산하던 쏘렉스 공장이 있던 곳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지로 선정돼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함께 사업을 진행, 지난 31단계 사업을 마쳤다.
 
팔복예술공장은 '동시대 예술의 실험과 창작을 통해 예술공원, 예술공단을 만들고 더 나아가 시민이 즐거운 예술놀이터를 만든다'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예술가와 기업, 주민이 참여해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처음엔 주민들은 세탁장을, 기업주들은 도로나 주차장을, 예술가들은 개인 작업실을, 행정기관은 개별 분양을 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 차이를 담론의 장을 통해 극복하고, 예술공장으로 만들어 낸 곳이다.
 
팔복예술공장은 예술창작공간과 예술교육공간으로 구성됐으며, 예술창작공간에는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내외 13팀의 입주예술가가 입주했다. 팔복예술공장 A1층에는 아트샵과 카페 '써니'가 함께 문을 열어, 근로자와 시민들이 회의장 등으로 이용하는 탈경계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팔복동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민을 바리스타와 주민 도슨트로 채용했다.
 
#치유와 회복의 예술공장
 
'기억의 재생(아카이빙)', '천명의 얼굴과 마음', '예술의 힘'. 전주 팔복예술공장이 제시한 중요한 세가지 개념이다. 이는 유휴공간을 재생하는 기존 사업과는 다른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하드웨어에 집중한 물리적 재생을 했는데, 그 공간이 다시 유휴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기능을 다해서 쓸모가 없어졌기에, 물리적 재생만으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유휴공간이 갖고 있는 장소적인 맥락들을 끄집어내서 기억을 공유하고, 또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그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민과 시민, 전문가 등 분야별로 10~15명이 1주일에 한번씩 이야기는 나누는 라운드테이블(팔복살롱)을 진행했다. 그리고 찾아가는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때 주요 주제는 4가지였다. 섬처럼 고립된 이곳을 어떻게 알리며. 전통도시 전주와 동시대 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운영은 어떻게 하고, 콘텐츠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등이었다. 또 어디는 철거하고 어디는 보존할 것인가. 지붕은 철거하고 벽과 트러스트는 존치하자는 등 철거 방향에 대한 논의까지 그런 고민을 토론하고 인터뷰하기를 1년동안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도출해 낸 6개 키워드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그것을 구동하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오랜 담론 끝에 이끌어 낸 철학과 비전을 담아 내는 설계에 들어간 것이다.
 
'천명의 얼굴과 마음'이라는 다소 비생산적인 소통과 참여의 프로그램은 건축을 디자인을 하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디자인 한 것이었다. 문화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콘텐츠를 넣는 작업이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공장 속의 섬', 팔복예술공장은 지난 6월 한달동안 2만명이 입주작가 전시회를 찾을 만큼 지역사회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했다.
 
황순우 전주팔복예술공장 총괄 감독(건축·예술, 전 인천아트플랫폼 총괄기획자)"앞으로 꿈꾸는 예술놀이터와 철길을 이용한 도시갤러리를 만드는 2, 3단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팔레트와 같은 팔복예술공장을 플랫폼으로 삼아 주변의 산업단지라는 캔버스로 확대하고, 다른 지역까지 네트워크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기고] 문화가 흐르는 도시재생 <2>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
 
도시재생은 지역성·다양성을 강화하고 도시에 활력과 활기를 북돋고 도시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문화가 보존되고 도시의 역사가 기억되고 문화의 기능이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 훌륭한 교육시설, 아름다운 상가, 좋은 의료시설, 편리한 교통보다도 마을 박물관, 소극장, 음악홀, 산책길, 작은공원, 작고 다양한 생활문화센터와 커뮤니티 공간이 도시중심 축에 자리 잡아야 한다. 개발이익으로 생겨난 플래닝 게인(Planning gain)이 우선적으로 공공시설 확충에 쓰여져야 한다.
 
문화는 시민 개개인에게 더 높은 이상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정체성을 갖게 한다. 문화야말로 도시에 운치, 품격, 분위기를 부여한다. 도시는 감정적·심리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생명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삶이 행복하고 즐거운 도시재생이어야 하며 일상의 삶의 공간을 문화공간화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축소도시정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인천시는 그간 송도, 청라, 영종, 검단 등 신도시 건설에 도시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희생양이었다. 이제는 원도심을 재생하고 활성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그럼 원도심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정책을 예시적인 사례를 들어 그 방안을 제시한다. 중구·동구의 경우,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방향에서 창조적으로 재생해야 한다. 금창동같은 곳은 책방거리와 몇 개의 작은 박물관으로 특화 시켰으면 좋겠다. 마을역사박물관, 악기 박물관, 장난감 박물관, 고양이 박물관, 인형 박물관 등 특색있는 작고 귀여운 박물관을 매년 2-3개 세워나가면, 5-10년 후에는 뮤지엄스트리트로 명성을 갖지 않을까? 뉴욕의 뮤지엄 스트리트나 프랑크푸르트의 뮤지엄 스트라세처럼 굉장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작은 박물관을 테마로 세운다면 큰 예산없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개항장 역사문화지구는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화랑, 악기점, 소극장(연극, 무용, 음악 등)으로 특화시킨다면 서울 대학로 못지않은 역사문화예술의 거리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개항장 창조도시 프로젝트까지 추진되고 있어 개항장일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지구가 될 것이다. 인천 내항 1·8부두 항만 재개발이 본 궤도에 이르는 지금이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만석포구, 북성포구, 화도진 일대는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나 나가사키 현대미술관 잔디광장처럼 수변 조각공원, 워터프런트를 조성, 그린 산책로, 수변 무대시설 등을 조성하여 삶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쾌적한 문화의 명소로 가꾸어가면 명품도시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청라지구는 매립지는 순천만의 국가정원처럼 유럽식 정원을 조성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시민의 멋진 휴식공간과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고 동북아의 관광명소로 도시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인운하의 아라뱃길도 전 구간을 획기적인 꽃길을 조성하는 등 문화명소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도시기획자, 건축가, 부동산전문가뿐 아니라 문화전문가, 역사학자, 환경전문가, 심리학자, 주민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도시재생에 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4.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이동화 승인 2018.08.23
 
강을 끼고 제조업이 발달했던 유럽의 도시들은 1970년대 산업과 물류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경제가 침체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공장지대와 버려진 유휴공간들은 방치되고 사람들도 도시를 떠났다. 그렇게 몰락한 도시들은 뒤늦게 도시재생, 문화재생을 통해 새롭게 태어났다.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네르비온 강 주변의 낡은 산업시설을 재생해서, 영국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템스 강변 남쪽 지역의 화력발전소를 재생해서 도시와 지역의 부활에 성공했다. 프랑스 파리의 라 빌레트 공원은 도축장을 파리 최대의 종합공원으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플레노우는 쇠퇴한 공업지역을 재생해 첨단 산업도시로 변모시켰다. 이외에도 독일 에센 지역의 탄광촌과 뒤셀도르프의 티센제철소가 문화예술촌으로, 베이징의 군수공장지대가 다산츠 예술특구로 살아났으며, 일본의 요코하마 역시 근대산업시설의 유산인 공장지대를 집단창작스튜디오나 전시장으로 탈바꿈시킨 지역이다.
 
이제 이들 지역은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며, 관광 목적지이기도 하다. 문화가 거대 브랜드 파워로 작동하고 있는 현장이고, 문화적 파급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곳이다. 도시는 흔히 유기체에 비유된다. 그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물리적 현상보다는 오랜 시간을 두고 장소에 뿌리를 내린 삶, 즉 문화가 그 결정체이다. 요즘 도시의 재생을 이끄는 강력한 힘으로 문화가 작동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 아닐까. 유럽의 문화재생은 어떻게 진행됐으며, 지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얼마나 많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해 도시경쟁력을 높이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스페인 빌바오의 도시재생
 
서유럽 스페인 바스크 자치주 비스까야(Viscaya) 지방의 수도인 빌바오(Bilbao)시는 유럽의 여느 도시처럼 네르비온(Nervion)이라는 강을 끼고 강철과 조선, 화학산업이 발달한 항구도시이며, 700년 역사를 지닌 스페인 대표 산업도시였다. 하지만 1970년대 산업과 물류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986년에는 실업률이 26%까지 치솟았다. 여기에 중공업 발달의 폐단으로 공기, , 토양 등 환경오염이 심각하고, 네르비온 강은 생태학적으로 죽은 강이었다. 이같은 산업의 위기와 도시의 쇠퇴, 반환경적인 도시환경, 여기에 고질적인 테러(ETA, Euskadi ta Askatasuna, 바스크 조국과 자유)문제와 대홍수까지 겹치면서 빌바오는 급속히 침체했다.
 
이에 바스크 정부는 문화정책에 주목하고 위기 극복의 방안으로 문화산업을 선택한다. 도시의 이미지를 산업도시에서 'post-산업' 도시로 이미지 변화를 시도한다. 문화정책은 지역경제의 다변화뿐만 아니라 사회통합과 투자유치, 이해관계의 조화, 도시와 개인의 자긍심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바스크 정부는 1991'빌바오 메트로 폴리-30(Bilbao Metropoli-30)'이라는 기구를 창설하고 21세기에 걸맞는 도시재생 전략안을 수립한다. 공공기관과 민간부문의 대표자로 구성된 민관협력체인 메트로 폴리-30지식기반 산업영역 조성 구도심 재생 환경보호 문화주도 재생을 통한 문화적 정체성 강화 등 4가지 실행 계획을 제시했다. 학자와 전문가 800여명이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와 수질개선, 강가의 공원 계획을 주도하고, 시내와 강변을 잇는 교통체계의 도입 등을 고민했다.
 
이어 1992년에는 공공자금의 지원을 받는 도시개발공사 '빌바오 리아 2000(Bilbao Ria 2000)'을 창설, 아반도이바라(Abandoibarra) 지역에 관한 플랜을 진행했다. 네르비온 강의 중심이지만 과거에 항구시설과 컨테이너를 위한 철도역과 조선소가 있어서 가장 낙후된 이곳에 주거와 업무, 상업,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비즈니스센터를 조성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메트로 폴리-30이 빌바오의 비전 수립과 공공, 민간부문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면, 리아 2000은 계획을 실행하는 기관이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의 유치는 세계적인 명성을 보유하고 있는 '구겐하임'의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 옛 산업도시라는 기존의 이미지에서 현대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도시로 변신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네르비온 강변은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는 관광객이 아니라 평범한 빌바오 시민들의 운동, 산책, 놀이공간이며, 주민의 사랑을 받는 도시의 핵심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빌바오의 도심을 가로 지르는 강, 네르비온은 이 같은 도시의 흥망성쇠를 기억하며, 오늘도 흐르고 있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 Bilbao)은 미래도시 빌바오를 표방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일명 '구겐하임 효과(Guggenheim Effect)'라고 부를 정도로 침체된 산업도시 빌바오를 일약 문화예술도시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개관한 구겐하임 미술관은 개관 후 1년만에 예상 방문객의 3배에 달하는 연간 관광객 130만명이 몰려들어 16000만 달러의 수입을 창출하는 '신화'를 만들어낸다.
 
특히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미술관의 독특한 외관이 눈길을 끈다. '메탈 플라워(metal flower)' 혹은 '물고기 비늘'이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비행기 외장재인 티타늄의 거대한 금속 패널들이 건물 대부분을 감싸고 돌면서 마치 춤을 추는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이러한 외관은 주변의 구획 도로들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면서 강렬하면서도 극적인 효과를 낸다. 시간과 날씨, 조명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더욱이 네르비온 강이 미술관의 모습을 투영해 내고 있어 마치 미술관과 강이 하나가 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전체적으로 예술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것에 비해, 작품보다는 건물 자체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대형 금속물은 빌바오의 현재와 미래를 대변하고 있는 것 같고, 옛 공장지대는 재생으로 매력적인 공간으로 바꿨다.
 
빌바오 도시재생, 문화재생 프로젝트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함으로써 시작할 때부터 어느 정도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구겐하임'이라는 브랜드는 예술시장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이름 중 하나이기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어떻든 빌바오는 단박에 문화예술도시의 대열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러나 프로젝트의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지방정부 주도의 탑 다운(top-down) 방식과 지역사회로부터 의견수렴과정의 생략과 지지의 결여는 민주사회의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는 대형프로젝트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성이다. 더욱이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분관 중 하나라는 사실은 미술관의 차별화를 이끌어 내고 고유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제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 문화재생의 핵심이며, 바스크 지방 전체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무덥고 추한 광산도시'로 묘사한 빌바오가 산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도약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빌바오 도시재생의 성공비밀은 주민의 보행권과 지역사를 중시한 주민중심의 철학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빌바오 시청 도시계획국장은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를 국제화하는 데 역할을 한 것뿐이며, 빌바오의 도시재생은 수많은 프로젝트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구겐하임 효과로 불리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압도적인 랜드마크가 빌바오의 부흥을 불러온 것은 아니라,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함께 진행됐다는 것이다.
 
기자가 찾은 빌바오는 관광객과 전시 관람자가 뒤섞여 발을 딛고 서 있을 틈조차 없는 미술관보다는,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는 네르비온 강변의 산책로가 있기에 더욱 빛나 보였다. 네르비온 강변은 주민들이 걷고 뛰고 사색하는 거대한 문화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 빌바오=·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5. 화력발전소에서 문화발전소로,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 이동화 승인 2018.09.06
 
 
20년간 버려진 발전소 건물 '공공디자인 프로젝트' 추진
원형살려 '미술관'으로 단장 '낙후지 일자리·수익 창출'
 
오늘날 영국 런던은 역사와 전통, 금융, 예술, 문화, 교육의 아이콘으로 다시금 현대판 '해가지지 않는 도시'를 꿈꾸고 있다. 런던의 도시재생은 주로 템스강 남북 강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템스강변 남쪽에 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화력발전소를 문화발전소로 탈바꿈 시킨 곳이다. 검은 연기를 내뿜던 화력발전소는 문화와 예술을 내뿜는 장소로 문화재생에 성공한 것이다. 노후 산업시설을 활용한 문화재생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새로운 예술의 패러다임을 이끌어가고 있는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찾아가 본다.
 
#낙후 지역 화력발전소가 관광 명소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 미술관이다. 영국 런던 템스(Thames)강 남부에 있다. 현대미술의 대중적 접근을 시도하며 국제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런던에 전력을 공급하며 산업화를 이끌다가 1981년 문을 닫은 이후 20년 동안 버려진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Bankside Power Station)를 문화발전소로 문화재생한 곳이다. 1995년 영국 정부는 낙후지역을 발전시키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한 공공디자인 계획인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템스강 북쪽에 있는 세인트폴성당에서 강을 가로지르는 밀레니엄 브리지를 놓는다. 이 때 남쪽 끝에 흉물로 전락한 발전소를 주목한 것이다.
 
국제 현상공모에서 모든 건축가가 발전소를 헐어버리고 새 건물을 짓자고 제안했으나, 단 한 작품만 리모델링을 제안했다. 결국 영국의 빨간색 공중전화 박스를 디자인한 가일스 길버트 스코트 경이 설계한 발전소 건물의 원형을 유지한 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당선작의 핵심 개념은 개방성, 융통성, 실용성이었다.
 
8년 공사 끝에 2000512일 개관한 테이트 모던은 외관의 80% 이상을 원형 보존하고 내부는 미술관의 기능에 맞춰 새롭게 단장했다. 다만 외부는 지붕 위 두 개층으로 된 유리박스 형태의 라이트빔 만을 증축하고, 내부는 터빈 등 기계들을 철거하고 미술관 용도와 기능에 맞게 전면 변형시켰다. 직육면체 박스형의 7층으로 변신한 테이트 모던을 수직으로 양분하는 산업시대의 유산인 높이 99m의 거대한 굴뚝은 미술관의 랜드마크이며, 런던의 상징이 됐다. 또 이곳이 옛날에 발전소였다는 누적된 시간의 흔적처럼 남아 있다.
 
이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지난해 관람객 560만명이 찾은 영국 런던의 새로운 명소로 떠올랐다. 미술품 감상뿐만 아니라 만남과 사교, 휴식이 이뤄지는 소통의 장소로 자리잡았다. 여기에 일자리 창출과 관광 수입을 올리고, 템스강 남쪽 낙후 지역을 살리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국제 현대미술 흐름 한눈에 파악
 
7층으로 이뤄진 테이트 모던은 190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현대미술과 실험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국제 현대미술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LEVEL 0이라는 지하 1층에는 터빈홀이, LEVEL 1에는 티켓 판매소와 안내 데스크가 있고, 2층과 3, 4층이 전시공간이다. 5층은 멤버십 룸이, 6층에는 레스토랑과 바가 자리하고 있다.
 
LEVEL 0으로 표기된 본관 출입구가 있는 터빈홀은 특별전시공간으로 큰 작품을 전시하거나 영화상영, 퍼포먼스 등이 이뤄진다. 화력발전소의 터빈이 있던 장소이기에 건물 전체를 관통하는 실내 높이 35m, 길이 155m에 바닥면적 3400의 운동장 같은 거대한 공간이다. 2층에 상설전시관, 3층 특별 기획전시관, 4층 상설전시관으로 이뤄졌다. 사진과 영화, 설치미술품 등 다양한 현대미술을 살펴볼 수 있는 2층과 4층 상설전시관에는 앤디 워홀과 앙리 마티스, 마르셀 뒤샹 등 세계적인 거장과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보통 상설 전시가 시대별로 작품을 모아놓는 것과 다르게 풍경(물질, 환경), 정물(사물), 역사(기억과 사회), 누드(행위, 신체) 4가지 주제별로 구성해 놓았다. 3층 특별전시관은 보통 3~4개월 동안 특별기획전시가 열리며 유료 입장이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피카소 기획전(PICASSO 1932)이 열리고 있었다. 4층 인터렉티브 존에서는 시청각 자료를 통해 20세기 예술과 예술가의 정보를 알려주며, 퀴즈와 게임으로 작품 정보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테이트 모던 직원 제이슨은 "테이트 모던이 연간 560만명이 방문, 대영박물관(590만명) 다음으로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면서 "영국에서 두 번째로 많이 찾는 박물관"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 템스강변
 
영국 런던은 2000년 역사의 산물이다. 최첨단 도시와 중세도시, 디자인 도시가 서로 동시대처럼 넘나들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급속히 성장한 런던은 2차 대전 이후 경제구조 재편에 따른 쇠퇴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시의 성장과 쇠퇴가 필연적 과정이라면, 도시재생은 쇠퇴해 가는 도시의 물리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환경적 차원에 관여해 도시 쇠퇴를 치유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영국 런던도 이 같은 도시재생의 과정을 거친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물리적 환경을 개선했다면, 1990년대 이후는 기존 시가지를 종합적인 재생프로그램을 통해 부흥시키려는 통합적 접근방식으로 변화했다. 경제개발촉진에서 지속가능한 개발로, 쇠퇴지역에 대한 문제해결식 대응에서 광역적 접근으로, 중앙정부 위주에서 지방정부와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
 
런던의 도시재생은 주로 템스강 남북 강변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템스강 남동쪽, 런던 32개 자치구 중 가장 가난한 자치구인 사우스 워크(South wark) 지역은 강둑을 따라 사우스 뱅크(South Bank)로 이어지며, 예로부터 산업지대였다. 슬럼화 된 공장들이 즐비하고 시끄러운 철도가 관통하고, 노동인구가 주로 거주하는 런던의 쇠퇴지역이었다. 그런데 영국정부와 테이트 재단이 넓은 건물면적과 가까운 지하철역 등 발전 잠재력을 보고 화력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재생시킨 것이다.
 
템스강 유역은 과거 전 세계 식민지들과 교역하던 운송통로이자 런던시민의 쉼터인 공원이고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이 같은 인지도에 힘입어 세계 최대 규모(높이 135m) 런던아이(London Eye), 밀레니엄 돔, 밀레니엄 브리지, 세인트폴성당, 테이트 모던 미술관, 빅밴, 국회의사당, 웸블리스타디움 등 독특한 구조물이자 건축물을 세우고 정비했다. 이를 통해 주변 지역의 개발을 유도하는 등 여전히 런던 도시재생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템스강변을 걷다보면 거리 예술가들을 만난다. 롤링스톤즈, 비틀즈 등 런던 출신의 유명 뮤지션들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거리에서 술집과 클럽에서 공연을 펼쳤다. 클래식, , 록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꽃피웠기에 런던은 음악도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새로운 예술의 패러다임을 이끌어 가는 테이트 모던은 템스강변의 도시재생에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세인트폴성당에 밀레니엄 브리지로 이어지면서 템스강 남북을 연결시키는 강한 도시 축으로 기틀을 잡았다. 이것이 '아이콘 런던'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입지적 장점과 장소성을 재해석, 세인트폴성당~밀레니엄 브리지~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남북을 하나로 묶어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템스강의 분위기를 바꾸고, 낙후지역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영국 런던=·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6. 영국 런던 킹스 크로스역, 빈민촌에서 관광명소로 변신 이동화 승인 2018.09.20
 
영국 런던 킹스 크로스역 일대는 빈민촌에서 관광명소로 재탄생한 곳이다. 킹스 크로스역 재생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은 참여와 소통이었다. 처음부터 거창한 개발계획은 없었다. 실행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부터 지역주민과 이해관계자 7500명이 6년 동안 353차례나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조율한 끝에 기본원칙을 이끌어 내고, 종합계획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오늘날 킹스 크로스역과 광장은 교통·문화·상업의 중심지로 변모하고, 도시경쟁력을 창출하는 핵심 거점으로 진화했다. 킹스 크로스역 재생 프로젝트의 마스터 플랜이 나오기까지 어떤 소통과 합의의 과정을 거쳤는지를 들여다본다.
 
#영국 런던 킹스 크로스 역세권 재생사업
 
영국 런던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낯익은 장소다. 영화 속 킹스 크로스역은 해리가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찾는 기차역으로 등장한다. 해리가 이용한 93/4 플랫폼 벽에 카트가 반쯤 박혀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놓는 등 관광상품으로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1852년 완공된 킹스 크로스역은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그 역사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잉글랜드 북동부와 스코틀랜드 동부 해안을 잇는 기차가 출발하고 도착하는 역이며, 뉴캐슬이나 에든버러 또는 애버딘 쪽으로 가는 열차의 시발점이다. 지하로 이어지는 유럽 고속철도가 출발하는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 역과 지하철 6개 노선이 교차하는 철도교통의 요충지인 것이다.
 
런던 중심부에서 3km정도 떨어진 킹스 크로스역 주변은 1850년대 유럽의 교통·산업·물류의 중심지로 지역성장을 이끌었다. 그러나 100여년이 지나면서 상업과 철도산업의 쇠퇴로 중심지 기능을 잃었다. 결국 킹스 크로스역 주변은 버려진 땅으로 방치되면서 빈민촌으로 전락하자 재생사업에 나섰다.
 
킹스 크로스 역세권 재생사업 대상지역은 킹스 크로스 역을 시작으로 뒤편 리젠트 운하까지 연결되는 1구간을 포함한 전체 약 27의 토지와 낙후된 건물들이었다. 그런데 그 첫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사업기간만 20년인 데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사업계획서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렇게 장기간 진행될 복잡성이 높은 사업에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리는 계획 대신 모든 이해관계자가 재생사업 계획에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적인 프로세스를 어떻게 진행할지 원칙과 과정을 제시한다."
 
2001년 실시한 도시재생사업 공모에서 부동산 전문 개발사 아전트(Argent)가 이 같은 재생사업의 원칙과 과정을 담은 달랑 한 페이지짜리 계획서를 제출했는데, 런던 시정부가 이 업체를 사업자로 선정한 것이다.
 
그리고 6년 동안 준비했다. 공청회와 워크숍, 길거리 미팅, 이벤트 등 353회에 걸친 만남에 7500여명이 참여하는 소통의 과정을 거쳤다. 저렴한 임대주택 공급 등 6가지 합의 내용을 담은 마스터 플랜을 만드는데 합의했다. 또한 이 마스터플랜에는 전체 재생 대상 지역의 80%만을 구체화하고 20%는 남겨뒀는데, 이는 다음세대 몫으로 돌린 것이다. 대부분 대형사업들이 이미 마스터 플랜을 만들어 놓고 공청회에서 주민들에게 그 내용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과정을 밟은 사업 추진방식이었다.
 
이어 공공영역에서 2006년 철도역 주변의 토지 매입을 시작으로 재생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기존 철도부지를 중심으로 교통인프라의 복합적 활용과 주변지역과 연계한 재생사업, 시민친화적 공간 조성에 나섰다. 공공은 토지를 제공하고 민간개발업자는 지방자치단체와 협의, 기업유치, 사업 추진 등 실질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을 확실히 했다.
 
전체 면적 중 40%를 공원과 광장 등 공공의 공간으로 계획하고, 고밀복합개발 방식을 통해 주거, 상업, 업무, 숙박, 문화, 주거 등 다양한 기능을 도입해 낙후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기존 건물을 전부 철거하는 대신 역사적 건물은 보존하면서 새로 짓는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품 상하차장으로 쓰이던 빅토리아 시대의 그래너리 빌딩은 개·보수 이후 영국 최고 예술대학인 런던예술대학교(University of the Art London, UAL) 센트럴 세인트 마틴 캠퍼스가 이전해 왔다. 지상 11층짜리 오피스 건물 '랜드스크래퍼'에는 글로벌 기업 구글의 영국 본사가 입주했다. 세인트 마틴 캠퍼스와 구글 본사는 킹스 크로스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루이비통과 유니버설뮤직도 둥지를 틀었다.
 
연면적 8규모 커뮤니티 시설에서는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열린다. 거의 매일 10여개씩 전시·공연·문화 행사가 개최된다. 그래너리광장의 거대 분수를 비롯한 공원과 볼거리도 다양하다. 킹스 크로스는 영국 최대 도시재생 사업일 뿐만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유럽을 대표하는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고, 산업시대라는 과거와 창의적인 현재의 모습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영국 도시계획 분야의 전문가인 피터비숍 런던대 교수는 "재생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해 6년간 7500명이 353차례의 미팅을 열어 106개의 합의사항을 만들어냈다""합의사항은 개발사와 관청, 주민들이 소통을 통해 최종 마스터플랜으로 완성시켰다"고 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충돌과 도심 땅값 상승으로 인해 재생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해 관계자들과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주요 산업의 몰락에 따라 역세권, 산업유휴지, 원도심 등을 대상으로 한 해외 도시재생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킹스 크로스 역세권 개발의 경우, 대도시를 중심으로 공공주도형 사업을 통해 민간투자를 유인하고, 공공이 사업을 효율적으로 진행함으로써 공공성과 수익성을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민관 파트너십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했으며, 공공은 단계적 개발을 통해 시장수요에 따른 적정규모 공급, 행정절차의 간소화,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기능·임대방식의 도입 등의 재생 전략을 추진했다. 지방정부의 유연한 사업추진방식은 민간기업의 부담을 줄이면서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었다.
 
/영국 런던=·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구도심 산업단지 재생, 스페인 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
 
스페인 포블레노우는 구도심 재생을 통한 혁신거점 조성에 성공한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 꼽히는 지역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동남쪽 22지구에 있는 포블레노우(Poblenou) 지역은 1960년대 전까지 제조업(방직산업) 산업단지로 유명한 곳이었다. 200ha 규모로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탈 산업화 등으로 1963년부터 1990년까지 1300여개 공장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쇠퇴했다.
 
2000년 들어 산업단지 재생에 관한 논의를 시작하고 '22@plan'이라는 도시계획안을 수립하고 본격적인 조성사업에 들어갔다. 사업내용은 주택건설, 녹지공간조성, 신규 도시시설 설치, 신규 일자리 창출, 도시인프라 구축 등이다.
 
이를 위해 2002년 가동한 '22@Barcellona 프로젝트'는 포블레노우 전통 제조업 산업단지를 주거와 문화, 과학과 교육, 생산과 레저가 공존하고 상호 소통하는 지식집약형 첨단산업지역 조성을 목표로 했다. 쇠퇴한 주거, 문화 등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미디어와 ICT, 에너지 등 지식창출 산업을 접목시켜 지식 집약형 클러스터를 육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도심 상업지구와 연결되는 간선도로 설치, 대중교통망(트램, 버스) 정비, 통신망 등 스마트시티 인프라 등의 기반시설을 정비해, 새로운 도시공간창출을 위한 물리적 환경을 개선했다. 이어 미디어, ICT, 에너지, 메드테크 등 4가지 주요사업의 클러스터를 구축, 이 산업과 관련된 주체의 협력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포블레노우 산업단지를 환경친화적으로 재정비해 지역경제 침체를 해결했으며, 노후 산업단지를 미디어, ICT, 에너지, 의학기술 등 핵심 선도 산업 등 구조고도화와 기반시설 재정비가 동시에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업 추진 결과, 기업체 925곳이 입주했으며, 고용인구도 32478명에 이르는 고용창출 효과를 가져왔다.
 
포블레노우에는 산업시대의 상징물인 굴뚝들이 곳곳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기에 기자는 이곳이 옛 산업단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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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생, 시민의 삷을 디자인하다] 7.프랑스 파리 라 빌레트 공원, 도축장에서 파리 최대 종합복합공원으로 이동화 승인 2018.10.04
 
 
도시공원은 도시의 그린 인프라다. '녹색 허파', '녹색 살롱'이라고 한다. 도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여가활동을 즐기는 삶의 현장이며 공공의 열린 공간이다. 현대의 도시공원은 시가지 확산을 막고, 도시 기능을 분리하고, 노후 불량지역을 재생시키고, 도시의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프랑스 파리에는 저마다 역사의 흔적을 가진 도시공원 500여개가 있다. 그 가운데 파리 북동쪽 19구에 있는 라 빌레트 공원(Le Parc de la Villette)옛 시립 도축장을 문화재생한 21세기 현대식 도시공원이다. 이 공원이 얼마나 주민생활에 밀착돼 있으며, 공원이 탄생하기까지 과정과 주요 공원 구성요소 등을 알아본다.
 
#파리의 도시계획과 문화재생
 
프랑스 파리는 1850년대부터 도시재생을 시작할 만큼 오랜 재생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파리 인구는 이미 100만을 넘었으며, 일자리를 찾아서 온 이주 노동자들은 파리 외곽, 도시 중심부까지 밀려 들어와 무허가 판잣집에서 살았다.
 
오늘날 파리가 근대도시로 거듭난 것은 나폴레옹 3세 때다. 1853년 파리 지사로 임명된 조르주 외젠 오스만(Georges Eugene Haussmann)은 도시를 관통하는 큰 도로 50개를 건설하고, 도시 가로축에 개선문, 콩코드 광장, 루브르 궁 같은 거대한 상징물을 지어 파리를 바꿔나갔다. 무질서한 판자촌과 미로같이 얽힌 골목을 정비하는 등 도시구조를 개혁한 것이다.
 
특히 파리 시는 1867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기존 도축장 5개를 폐쇄하고 라 빌레트 지역에 통합 시립 도축장을 조성했다. 운하를 운송 수단으로 이용한 시립 도축장에는 도축업자 12000명이 활동할 만큼 한때 번성한 곳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냉동산업의 출현으로 도축장은 혐오시설로 전락한다. 결국 파리 시정부는 1976년 시립 도축장마저 폐쇄하고, 이곳에 박물관과 음악당을 만들고 모든 사람들에게 공원을 개방하자는 의견을 채택한다.
 
라 빌레트 공원을 설계한 사람은 1982년 도시재개발 프로젝트 국제 공모전에 당선된 스위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 1944~). 해체주의적 건축관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이 공원에서 조경적, 공간적, 프로그램적으로 연결되는 시퀸스(sequence, 공원의 개별요소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 개념을 사용했다. 점과 선, 면을 이용해 공원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하고 있다. 점이 되는 붉은 큐빅(Cubic) 구조물인 폴리(folie, 17세기 이래 시가지 외곽의 전원에 연회나 유흥을 목적으로 설치한 별장을 의미) 26개를 격자형으로 배치했다. 폴리는 안내소나 간이식당, 매점, 어린이 놀이집 등으로 각기 다른 모형과 기능을 하고 있다.
 
라 빌레트 공원은 과학과 영화, 음악을 주제로 다양한 문화적인 총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공원이다. 우르크 운하를 활용한 수변 공간축을 조성하고 주제공원 12개가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에서부터 미테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정부가 파리를 예술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도시환경을 재정비하고 문화 예술시설을 대규모로 늘리는 '그랑 트라보'(Grands Travaux) 사업의 일환으로 라 빌레트 공원 조성을 추진했다. 1970년대~1990년대에 퐁피두 센터와 오르세미술관, 아랍세계연구소, 비스티유 오페라 하우스, 라테팡스 아르쉬, 루브르 박물관 피라미드, 재무성건물, 국립도서관 등을 지었다.
 
특히 라 빌레트 지역은 도축장과 시장 부지로, 주로 북아프리카에서 온 이민노동자들이 밀집한 지역이었다. 이 같은 도시 외곽의 소외된 우범지역을 탈바꿈시키고자 1에 달하는 부지에 2억 달러를 들여 15(1982~1997)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종합 복합단지로 조성했다. 도시의 부적격 시설을 활용한 도시재생의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라 빌레트 공원은 자연공원 역할보다는 문화기획 공간으로서 다양한 멀티 프로그램을 수용하는 복합단지다.
 
#파리 최대 종합공원, 라 빌레트 공원
 
라 빌레트 공원(Le Parc de la Villette)은 프랑스 파리 북동쪽 19구에 있다. 옛 시립 도축장이 있던 곳을 공원과 첨단과학문화공원으로 재탄생시킨 곳이다. 낙후된 파리의 외곽 지역을 과학과 음악, 체육, 문화, 생태 등이 어우러진 21세기 현대식 도시공원으로 변모시킨 파리 최대 종합복합공원이다.
 
전체 면적이 55ha에 달하는데도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벽이나 철책이 없다. 반듯한 입구조차 없으며, 연중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휴식과 놀이, 음악, 영화, 과학, 기술, 운동, 회의, 역사 탐방, 원예, 생태, 미술품 관람, 텃밭체험, 식사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공원이다. 지하철 제5호선 포르트 드 팡탱 역과 프르트 라 빌레트 역을 끼고 있다.
 
기자는 퐁피두 센터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로 라 빌레트 공원으로 이동했다. 라 빌레트 역에서 내려 공원까지 5분 정도를 걸었다. 길가에는 옛날 전통을 이어가려는 듯 대형 정육점이 눈에 띄었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축의 피를 연상시키려는 듯한 강렬한 붉은 색 건물과 마주쳤다. 이정표 구조물과 안내시설인 폴리(folie)였다. 이어 전면이 유리로 된 과학산업관이 눈에 들어왔다. 제법 규모가 큰 과학관을 나와 남북 간 보행 통로인 빌레트 회랑을 따라 각기 주제를 달리한 초록의 주제정원을 걸었다. 공원 이용객들이 공원안에 흐르는 운하를 따라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과 길게 이어진 자전거 행렬이 여유로워 보였다. 잔디밭에서는 일광욕을 즐기고 체조를 하는 시민들이 느긋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공원 남쪽 출입구에 있는 거대한 철골 구조물로 된 그랜드 홀은 라 빌레트 도축장에서 가장 중심적 건물이었는데, 현재는 각종 문화행사와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공원의 중앙에 우르크 운하가 흐르고 서쪽은 생 드니 운하와 접한다. 우르크 운하의 북쪽에 과학산업관, 지오라마 상영관, 승마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에는 음악의 전당, 파리 국립고등음악무용원, 그랜드 홀, 록 공연장 제니스가 있다. 그리고 우르크 운하의 남과 북에 걸쳐 잔디광장 3, 주제정원 12개가 있다. 특히 공원요소들이 점, , 면의 체계를 형성하면서 공원의 내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있다.
 
원형 초원의 가장자리, 우르크 운하를 횡단하는 육교 근처 공중곡예 정원에는 운동시설이 있고, 산책로 북동쪽 끝에 있는 섬 정원은 승마장과 원형초원, 계단형 폴리와 가깝다. 과학관과 육교로 연결된 제오드(Geode)는 기하학적 원형의 대형 구() 형태의 미러 조형물로 주변 시설물과 파란하늘을 투영하고 있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 빌레트 공원의 기본설계는 회랑과 산책로, 폴리, 건축물 등이다. 높이 5m 길이 1에 달하는 물결 모양의 지붕이 덮인 회랑은 공원의 남북을 관통한다. 삼각형과 원형의 초원, 주제정원으로 이어지는 산책로가 4에 달한다. 핵심 주제는 '21세기를 위한 미래의 공원'이다. 이를 바탕으로 자연과 문화, 기술, 산업, 과학,역사, 음악, 현재와 미래 등을 담으면서도 역사적 유산은 원형을 보존해 놓았다.
 
/프랑스 파리=글 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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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8.지역을 변화시키는 작은미술관의 힘, 인천 만석동 우리미술관 이동화 승인 2018.10.18.
 
골목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버겁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서로 의지라도 하듯이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있다. 그 사이로 하늘이 길게 열려있다. 인천의 배릿한 바다 냄새와 지난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이다. 그곳에 비집고 들어선 한 칸의 공간. 3년 전 '미술관'이라고 생뚱맞은 '이름표'를 덧댄 작은 미술관, 우리미술관이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은 예술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대표적인 원도심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너머 문화적 불평등마저 무뎌진 곳이다. 평생 미술관 한 번 가 본적이 없을 것 같은 문화소외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미술관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미술관은 이런 환경적인 한계를 극복하려고 젊고 발랄하며, 재미있는 기발한 작품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교육관과 사무실에서는 마을 어른신과 주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술관 근처에 자리잡은 창작문화공간, '만석' 레지던시는 시각예술작가들이 지역성과 역사성을 탐구하고 지역 주민의 삶 속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이렇듯 우리미술관은 공동체적 삶을 토대로 인천의 지역성과 예술성을 가진 모두에게 열린공간으로, 만석동에 예술과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이곳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짚어본다.
 
#낯선 경계 허물기
 
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사람들과 길 건너 아파트 주민들은 한 동네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지냈다. 그런데, 미술관은 지역 안의 이런 폐쇄성을 무너트렸다.
 
아파트에 살던 주부가 7~8년 만에 길을 건넜다. 미술관 교육프로램인 목공예 수업과 도자기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물리적 거리는 7미터 정도였건만, 심리적으로는 7정도 떨어진 것 같은 '거리감의 벽'을 쌓고 살던 주민들이 '심리적 거리의 벽'을 허문 것이다. 미술관이 마련한 마을잔치 때는 아파트 주부들이 괭이부리 할머니들을 위한 배식봉사를 담당한다. 주부들은 오며가며 할머니들을 만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다.
 
"그거 뭐 사셨어요." "황토고구마예요." "아니야, 호박 고구마야! 맛있어."
",선생님한테 줄 것 있어." 그러더니 할머니는 집에서 뭔가 들고 나온다. "이거, 옥수수 삶은거야!"
 
그렇게 자연스런 말걸기를 이어가고, 정을 건냈다. 낯선 경계심이 누그러진 평범한 이웃이었다. 서로 미술관에서 목공예 등을 배우고 전시하는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접점을 공유한다. 이렇게 괭이부리마을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삶의 온기를 주고 받았다. 여기에 열린 사고의 예술가들과 젊은 청년들이 마을을 찾는 발걸음도 잦아지면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역에 생기 북돋는 문화공간
 
인천시 동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지역이다. 올해 인구 7만이 무너졌다. 특히 동구의 괭이부리마을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하지만 현재는 소설의 쓰여 진 시기처럼 어린이들이 많지 않고 대다수 주민이 노인이다.
 
그래서 우리미술관은 어르신들의 여가와 문화생활은 물론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도 주력하고 있다. 젊은 층이 들어와서 지역에 생기를 북돋아 주는 지역재생, 도시재생을 위해서다. 주부와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는 문화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문화시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작은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다. 슈퍼스타급 작가가 아니면 큰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미술관은 공동체적 삶을 토대로 인천의 지역성과 예술성을 가진,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랑방으로서의 작은 미술관을 지향한다.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곳으로 문화예술로 숨쉬고 살아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주민들이 교류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많은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 마침, 아이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전시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에 오래 머무르도록 했다. 오는 1023일 매년 마을에서 개최하는 괭이부리 마을 잔치를 앞두고 있다. 주민들이 교육프로그램에서 배운 악기연주와 노래를 발표하고, 전시회에서 주민들의 작품도 전시한다.
 
#주민이 찾는 문화 사랑방
 
우리미술관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괭이부리마을 한 가운데 공간에 들어선 조그만 미술관이다. 문화예술 교육과 기획전을 통해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지향하고 있다. 인천시 동구청으로부터 빈집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공문화시설이다.
 
기획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과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관·사무실, 작가가 거주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창작문화공간 만석/금창), 예술창작공간인 스튜디오(공동창고)로 구성됐다. 문화나눔 프로그램은 어린이반, 주부반, 어르신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은 주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마을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리미술관은 원도심에서 문화예술로 활기를 불어넣고, 특색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로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와 지역 대학생들이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매년 지역대학과 연계한 아트프로젝트다. 지역의 예술관련 학과 대학생이 동구 만석동 지역을 탐색하고 참신한 시각으로 창작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해에는 인하대학교 시각디자인과(학부)에 이어 올해는 인천대학교 미술과(대학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5년부터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 지역 내 작지만 큰 의미를 갖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주민들 간 심리적 거리로 이 차도를 건너 괭이부리마을을 오고가지 않았다. 그러던 주민들이 우리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여를 계기로 한자리에서 만나고, 마을잔치도 준비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문화예술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미술관은 단순한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한다. 3개의 거점공간(시민향유거점, 예술창작거점, 참여형예술문화거점)을 중심으로 긴밀하고 유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살아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경계심 푼 주민들, 표정이 달라졌어요"
 
구영은 우리미술관 담당자
 
-미술관이 생기고 나서 마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3년째인 올 봄부터는 주민들은 미술관 식구들과 관람객들에게 낯선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주고 있다. 문화로서 삶이 향상되는 것을 수치로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주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같은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그런 걸 몰라!"라고. 미술관 프로그램 참여에도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시간나면 한 두번씩은 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민요도 배우고 한다.
 
-지난 3년 동안 성과는
 
주민의 삶과 일상생활에 미술문화를 확장시키고 지역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했다. 올해에도 현재 전시중인 <키치키치부두의 아이돌>을 비롯해 12회 전시를 준비(현재 10월 기준 9차 전시 완료)했다. 주민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다양한 연령계층이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특히 2016년부터 지역설화인 '괭이부리 호랑이'를 주제로 미술, 음악, 연극 등 세개의 장르를 아우르는 통합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시행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미술관의 모습은 사건이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지역 사람의 관심과 노고, 열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술관 공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하겠다.
 
-우리미술관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은
 
우리미술관의 각 시설들은 복잡하게 연결된 골목길과 작은 집들로 구성된 지역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평면작품, 설치작품 등 다양한 시각예술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지역 및 공간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였다. 시각문화를 확산하는 예술 공간이자 지역의 요구를 반영하는 공공문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미술관은 전문 작가의 전시뿐만 아니라, 주민과 작가가 함께 만드는 전시와 주민 스스로 전시를 준비하는 전시 등 주민이 예술을 통해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인지도와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쪽방', '가난' 단어를 떠올리며 이곳을 찾아왔다. 지금은 미술관 작품을 관람하고,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많은 외부 사람들이 우리미술관을 찾는다. 주민들이 프로그램 참여자로 함께 만난다. 늘어난 방문객들은 괭이부리마을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전시 관람만을 목적으로 방문하며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없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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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9.DMZ 평화정거장, 파주 캠프 그리브스의 변신 이동화 승인 2018.11.01.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는 전쟁의 시간이 담긴 아픔의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DMZ는 분단의 역사와 다가올 평화통일을 준비하는 플랫폼이 되어가고 있다. 미군이 떠난 이후 반환공여구역이라 불리는 반환대상 미군기지가 생겨나면서 이들 유휴공간들이 사회기반시설이나 교육 및 문화관광시설 등으로 재생되고 있다.
 
2002년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 협정 체결(LPP, Land Partnership Plan)에 따른 국내 반환대상 미군기지는 80개소에 이른다. 반세기 동안 미군이 주둔했기에 미군의 흔적과 분단의 현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캠프 그리브스(Camp Greaves). 민간인 통제구역 내, 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떨어진 유일한 미군 반환지이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적십자로 137 일원에 있다. 통일촌 마을이 지척이다. 19537월 미군기지로 공여되고 20048월 철수할 때까지 50여년 간 미군이 주둔했던 공간이다. 미군이 떠나도 유휴지로 남아있던 캠프 그리브스가 문화재생을 통해 평화·생태·문화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기억과 기다림'이라는 대주제의 문화재생 사업을 통해서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미군의 건축양식이 축적된 퀀셋막사와 탄약고 등 36개의 시설물은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이 중 12개 동이 리뉴얼 후 숙박시설과 전시관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군 숙소는 체험형 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로, 탄약고 등은 전시관과 창작공간으로 바뀌었다.
 
캠프 그리브스는 DMZ 역사의 하나의 표상이다. 미군이 주둔했던 아픔의 땅이 이제 단절의 역사를 넘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세계평화를 노래하는 발신지이며, 새로운 소통의 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미군기지의 문화재생은 아픈 기억과 상처의 회복을 통해 평화로 향하는 동력을 생산하는 새로운 장소성을 구축해 내고 있다.
 
기자는 지난 1019일 임진강을 건너는 파주 민간인통제구역인 통일대교를 건넜다. 검문을 받고 직진하다보면 만나는 통일촌 삼거리에서 좌회전해서 1.2를 더 들어가자 옛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가 나왔다. 이곳이 문화를 통해 어떻게 변화,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DMZ 미군기지의 문화재생
 
미군기지 캠프 그리브스는 2007년 기지 반환이 이뤄진다. 이후 활용 방안을 놓고 관계기관마다 서로 다른 방안을 제시한다. 당초 국방부는 캠프 그리브스가 군사작전시설인 만큼 군사시설로 사용하기를 원한다. 반면 50여년간 미군주둔으로 지역발전에 어려움을 겪은 파주시와 경기도는 남북 및 국제문화예술교류협력단지로 활용할 것으로 제안한다. 그리고 시민단체는 원형보존을 건의한다. 결국 5년간의 논의 끝에 2013년 경기도와 1사단, 파주시, 경기관광공사는 원형보존 원칙을 바탕으로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의 협약서를 작성하기에 이른다. 201312월 장교숙소로 사용한 건물을 활용해서 병영체험시설인 유스호스텔을 개관,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파주 캠프 그리브스는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그 변화를 본격 시작한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2015~2016년까지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연차적 문화재생 사업에 들어간다. 문화재생사업의 기본 방향은 공간의 장소성을 세우고 캠프 내에 있는 다양한 건물과 구역의 정체성을 수립하고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20166월 캠프 그리브스 역사공원 조성계획 승인을 고시한데 이어 9월에는 문화재생사업 추진에 따른 실시설계와 시공을 마치고 1차 전시회를 갖는다. 이후 캠프 그리브스는 '역사의 보존, 문화공간 조성, 생태자원 활용,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기본 취지에 맞춰 문화재생사업을 연차적으로 추진해 나가고 있다.
 
#이야기 담긴 공간의 정체성 찾기
 
캠프 그리브스는 이야기와 희소성이 있는 공간이다. 'DMZ에서 하룻밤'이라는 낭만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민간인 통제구역 내 유일한 대중숙박시설인 유스호스텔이 있기 때문이다.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주요 촬영지이며,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모델인 101공수 506연대가 주둔했던 곳이다. 캠프 그리브스는 '한국전쟁의 한 자락을 함께 한 곳이고 그에 대한 기억이 모여 있는 곳'이다. 다양한 국적의 UN, 미국군, 한국인 근무자들과 지역주민 등 공간을 거쳐간 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진 곳이다.
 
남아 있는 건물 자체가 근현대 건축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유형자산이다. 과거 미군이 사용하던 막사, 볼링장, 장교클럽 등에는 특유의 창틀, 안내표지, 건물모양이 남아있다. 일부 건물을 리모델링했지만 그 본래의 형태나 흔적은 여전하다. 또 정전이후 60여 년 이상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돼 그대로 보존된 자연환경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다.
 
이러한 이야기와 희소성을 바탕으로 문화재생사업을 시작하면서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해 나갔다. 캠프 그리브스 내 13개 공간을 문화재생 사업으로 리모델링 해서 새로운 플랫폼으로 세워 나갔다. 탄약고, 퀀셋막사, 조적조 건물, 2층 하사관 숙소, 볼링장 등 다양한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 세워진 유스호스텔과 함께 전체 공간의 활용도를 높였다. 이러한 변화를 알리고 공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한 두 차례의 파일럿 전시를 통해 캠프 그리브스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올렸다.
 
#공간의 재구성 재생
 
캠프 그리브스 공간재생의 기본방향은 현재의 모습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며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건축물의 외형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브제로 역할을 하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모던한 공간으로 완성해 과거와 현재의 접점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수렴했다. 공간의 역사성은 형상으로 드러나지만 그 활용을 통해 새롭게 규정된다.
 
전체 면적 중 문화재생사업 구역도 기존에 사용되던 유스호스텔 등과 근접한 지역을 선정함으로써 활용도를 높였다. 산책로와 잔디밭 등 외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건물들을 대상구역으로 선정해 활용도를 높이기 위한 리모델링을 진행함으로써 향후 개발 예정인 공간들의 파일럿 작업으로 그 의미를 더했다.
 
캠프 그리브스는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미군 건축양식이 축적된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기지의 주된 건축물은 텐트형 막사였다. 휴전협정 이후 미군이 본격적으로 주둔하면서 내구성이 강한 아연도금 골강판으로 제작되고, 조립과 철거 등이 쉬운 퀀셋막사를 짓기 시작했다. 퀀셋막사는 반원형의 긴 형태를 기본으로 병사들의 숙소와 사무실, 식당 등 사용 목적과 용도에 따라서 형태가 변형됐다. 이들 공간을 문화재생사업을 통해 전시 공간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문화재생사업에서 선정된 재생공간은 유스호스텔과 근접해 활용도가 높고, 캠프 그리브스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산책로 조성을 시작으로 공간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준비했다. 공간 구성에서 길은 단순히 동선으로서 의미를넘어 그 공간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이해를 높이는 하나의 도구로 작동한다.
 
각각의 용도와 역할이 있는 건축물들은 새롭게 조성되는 공원의 미래모습을 준비함에 있어 아카이빙의 도구로 작동한다. 다양한 건축물의 형상을 그대로 남김으로써 과거의 모습은 기억된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두는 것은 리모델링이 진행되지 않은 많은 건축물을 통해 보여주고, 재생의 대상이 된 건축물들은 형태적 특징을 남긴 채 새롭게 규정된 공간의 성격에 맞게 리모델링했다. 이렇게 DMZ의 옛 미군기지는 전쟁과 냉전의 상징에서 생명이 넘치는 희망의 땅으로 되살아나, 평화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문화예술 창작 공간으로 변신했다.
 
/·사진 이동화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전시공간 '다큐멘타관' 주한미군 흔적이
 
캠프 그리브스에 조성된 전시공간은 다큐멘타관(1·2·3)과 기획전시관, 오픈스튜디오 등으로 구성된다. 다큐멘타관은 미군이 사용했던 퀜셋막사를 리뉴얼한 전시관이다. 퀜셋막사는 비품실, 화장실 및 샤워실, 보일러실, 중대사무실, 저장고와 보급소 등으로 사용한 공간이었다. 이들 전시관은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과 주요 통계 숫자를 통해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또 정전 이후 DMZ를 중심으로 주둔한 주한미군의 모습을 당시 영상과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기획전시관은 DMZ국제다큐영화제의 의미와 역사의 가치를 담고 있는 다큐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DMZ 다큐시네마전'과 정전협정 이후 남북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은 '정전 65주넌 기념 NNSC' 사진전' 등 다양한 기획전을 관람할 수 있다. 이들 캠프 그리브스 전시관에서는 2016년과 2017년에 이어 올해는 8월부터 10월까지 세번째 전시를 가졌다. 특히 올해는 캠프 그리브스 DMZ 평화정거장 사업의 메인 행사인 예술창작 전시로 탄약고 프로젝트, 정비고 프로젝트, 미디어 프로젝트와 'DMZ 평화의 정원'으로 구성, 17개 작품을 선보였다.
 
/·사진 이동화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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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생, 시민의 삶을 디자인하다] 10.인천항 재생의 마중물 '상상플랫폼' 폐 곡물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동화 승인 2018.11.15.
 
인천시가 인천항 폐 창고를 '상상플랫폼'으로 재창조한다. '인천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확정한 25개 단위사업 가운데 하나다. 인천항 재생의 마중물인 셈이다. 시는 이를 포함해 올 연말까지 인천 내항 종합발전 청사진을 담은 통합 마스터 플랜을 내놓을 예정이다. 상상플랫폼이 어떻게 조성되는지를 살펴본다.
 
그동안 인천일보는 '문화재생'을 화두로 국·내외 도시재생의 사례들을 연재했다. 물리적 재생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재생은 이미 실패가 검증된 경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도시재생 예산을 따내서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데 집착하다보면 실패한 도시재생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인천에서 문화재생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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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내항에 방치된 옛 곡물 창고가 '문화'를 통해 복합문화공간, '상상플랫폼'으로 변신한다. 인천시는 지난 10월 상상플랫폼 운영사업자로 문화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CGV를 선정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다.
 
상상플랫폼은 인천항 8부두 옛 곡물 창고(인천시 중구 북성동 1)를 리모델링해 문화혁신 공간으로 조성하는 사업이다. 철골구조로 1978년 건립된 이 창고는 길이 270m, 너비 40m, 높이 20~27m, 전체 넓이 12150규모다. 기둥과 내벽이 없는 단일 창고로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했지만, 항만 재배치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고 2016년부터 폐쇄됐다.
 
인천시와 CJ CGV는 협업을 통해 내년 하반기까지 396억원을 들여 옛 곡물창고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즐기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으로 만든다. 청년창업·지원공간, 첨단문화산업, 드라마·영상·음악 등 지역 문화·공연, 관광제품 생산·판매 시설을 갖춘다. 창고를 문화·관광시설로 용도를 바꾼 것이다. 제기능을 잃고 방치된 유휴공간을 문화적 기능을 지닌 공간으로 재활성화하려는 것이다.
 
시는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인천항 재개발이 속도를 내 지역경제와 산업구조를 탈바꿈시키는 마중물 사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상상플랫폼은 국토부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의 25개 단위사업 중 하나로 내항 재개발과 원도심 재생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시는 운영사업자를 공모로 선정하면서 청년창업지원과 일자리창출, 대규모 집객 효과를 창출토록 했다. 또 건축연면적의 20%이상을 지역주민과 문화예술인 등을 위한 창업·창작지원, 교육체험 등 공공기능을 확보할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시는 상상플랫폼을 중심거점으로 개항장 역사문화자원과 연계한 월미도, 인천역,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동인천 배다리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지역문화관광벨트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는 사람중심의 내항 1·8부두 재개발 등이 탄력을 받아 그 파급효과가 원도심으로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시민에게 바다를 돌려주는 공공성의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 정서를 반영하기 어려운 대기업이 사업 운영자로 선정되면서 대기업의 상업적 속성으로 개항장 일대 아트플랫폼 등의 관광연계성과 주변 상권에 미치는 시너지 효과도 미미하고 골목상권의 파괴도 우려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적 자산에 대한 보존과 활용에 대한 고려가 없는 또 다른 개발방식의 하나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인천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무상운영체계를 구축하고, 지역 문화단체 등의 콘텐츠, 프로그램 협력 및 참여로 상생방안을 마련했다"면서 "시설별 파트장 및 운영인력으로 직접 일자리 200개를 만들고 30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 이동화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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