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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지식·예술·자연 한곳에 … 지역 살리는 ‘문화의 힘’, 강원 ‘인제 기적의도서관’ (2024.10.1.)

 강원 ‘인제 기적의도서관’

햇살 부서지는 천장·3개층 탁 트인 개방감
2만5000여권 장서와 계단식 열람실 ‘신세계’
아트·뮤직 스튜디오, 동아리실 등 갖춰
인구 3만 지자체, 개관 1년만에 10만명 방문
관광지 경유 목적 아닌 순수 방문자 급증
주말 정주율 급등…152개 지역서 벤치마킹

‘학교에선 마음의 그릇을 빚고 도서관에선 그 그릇을 채운다’(2023년 2월 지수민)

빼곡이 책이 꽂힌 서가 옆 기둥에 적힌 글을 살펴본다. 수민 양은 인제군이 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2022년 꾸린 청소년준비단 중 한명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동네에 어떤 도서관이 생길까 상상하며 아이디어를 냈다. ‘설악’, ‘꿈드림’ 등 6개의 스튜디오 이름과 테마 색깔은 모두 아이들의 의견을 담았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수민양과 친구들은 이 도서관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해 6월, 인구 3만명의 시골 마을에 문을 연 인제 기적의도서관이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개관 1년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가며 시골마을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적의도서관은 지난 2013년 순천에 첫 선을 보였다. 인제는 전국에서는 17번째, 강원도에서는 처음 문을 연 기적의도서관이다. 대지면적 1만 1121㎡, 연면적 2292㎡ 규모로, 1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시작돼 2023년 마무리됐다.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문학관 옆에 둥지를 튼 도서관의 외관은 조금은 소박한 모습이었다. 이웃한 문학관과 위화감이 없도록 같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도서관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훼손하지 않도록 낮게 설계했다. 건물은 2024년 한국문화공간상 도서관 부문을 수상했다.

소박한 모자상이 반기는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중앙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뚫려 있어 개방감이 느껴진다. 건물과 자연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색다르다. 유리 천장에서 도서관 내부로 햇살이 쏟아지는데,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친환경 요소인 태양광 패널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그림같은 격자무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정된, 닫힌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환대하는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이다.

탁 트인 천장 아래 원형극장에서는 음악회,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어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없는 계단식 열람석은 열려 있지만, 고개를 숙이면 자기만의 공간이 된다. 도서관은 미술 작업공간 아트스튜디오, 뮤직 스튜디오, 동아리실 ‘설악’과 ‘백담’, 프로그램실 ‘꿈드림’ 등도 갖추고 있다. 복도에는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서관 밖에 풍경과 도서관 내부에 설치된 ‘인제의 자연’ 등 영상물을 감상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2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은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XR-뮤지엄 메타버스 공간과 예술 관련 서적이 모여 있는 예술갤러리는 근사하다. 멋진 가구가 놓인 응접실에 앉아 빈센트 반고흐의 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서가에서 관련 서적들을 뽑아 바로 읽어볼 수 있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시골 마을 도서관으로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처음 도서관을 구상할 때만 해도 과연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도서관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난감박물관 등을 넣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온전히 도서관의 기능에 올인하면서 변화를 주기로 했다. 도서관인데 몰입형 미디어 공간 등이 왜 필요하냐, 책에 더 투자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역시 논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도서관은 마을의 거실 역할을 해야하고, 지방시대에는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도서관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자산, 아름다운 자연까지 함께 담았다. 공공도서관 최초로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을 만들어 인제 설악이 담고 있는 역사를 알리고 원대리 자작나무숲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행복을 선사한다. 또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 알리는 것도 도서관의 역할이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사랑채’는 인제 전통가옥의 문창살을 그대로 재현했고 도서관 옆에는 전통가옥 한채를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어린이열람실 쪽의 ‘어깨동무담’도 눈길을 끈다. 모든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자라고 있음을 상징하는 담으로 인제군의 어린이 378명과 전국의 기적의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 129명이 참여했다.

지역과 밀착된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끈다. 12사단 군장병들이 참여하는 ‘접경지역 장병들과 함께 하는 밀리터리 인문학’이 대표적이다. ‘다스림-다살림’을 주제로 다양한 강연과 공연 등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이다. 인제군이 지자체 최초로 지역 교육 격차 해소와 문화사업 추진을 위해 EBS 미디어와 업무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미디어×EBS’ 공간을 마련, 매주 수요일 18만개의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EBS상영관’도 운영한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지방시대, 문화 인프라가 지역의 이미지를 어떻게 업그레이드 시키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더불어 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게 어떤 효과가 있는 지 증명해 보인다. 특히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위기에 직면한 지자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제는 다른 강원도 지역에 비해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속초나 강릉, 춘천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10만명이 다녀갔다는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도서관 자체’를 보려는 외지인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백담사나 원대리 자작나무숲 등 인제의 유명 관광지를 찾았다 도서관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이 들어오면서 인구 구성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접경 지역 군부대의 경우 군인들이 홀로 부임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도서관 개관 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주말이면 속초나 춘천으로 빠져 나가던 주민들이 도서관에 머물며 주말 정주율도 높아졌다.

그밖에 서울 등 대도시 거주민들이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자연이 어우러진, 생태 자연학교 느낌이 강해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잘 만든 공공도서관이 지역을 살리는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시 등 전국 152개 지역에서 2861명이 다녀갔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우리 지역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게 큰 성과였다.

도서관 안내를 맡은 심민석 인제 기적의도서관 관장은 “마을 규모나 인구수에 집착해 무조건 도서관을 작게 짓게 되면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 규모의 도서관을 짓는 게 중요하다”며 “대신 빈 공간이 없이 제대로 활용해 도서관이 마을의 거실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적의도서관을 방문했다면 또 다른 책공간을 찾아가도 좋다. 점심식사를 하러 간 도서관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방 나무야’는 커피 한잔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박한 책방에서 주인장의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책들을 만나고 ‘블라인드 북’ 코너에서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20분 거리의 만해마을 북카페 ‘깃듸일 북카페’, 소양호가 바라다 보이는 인제 스마트 복합 쉼터의 무인책방 역시 들러볼 만하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의 슬로건은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이다. 도서관에 첫 발을 딛는 순간 ‘상상의 문’이 열린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27787000774337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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