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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음악·미술·과학·영어…‘특성화 도서관’ 돌며 지식 투어, ‘도서관 도시’ 경기도 의정부 (2024.10.22.)

 ‘도서관 도시’ 경기도 의정부

지역 역사·정체성 아우르는 전략

다양한 주제 도서관 건립, 벤치마킹 이어져

음악도서관, LP·악보 등 1만2000점 보유

미술도서관, ‘BTS’ RM 등 도서 기증관 운영

노숙자 급식하던 지하철 역사 활용한

가재울도서관, 쇠락한 원도심 재생 효과


기차 소리가 들리는 도서관이라니. 지하철 1호선(경원선) 가능역의 ‘의정부 가재울도서관’은 왠지 낭만적이었다. 예전에 접했던 몇몇 역사의 작은 도서관을 떠올렸던 나에게 가재울도서관은 새롭게 다가왔다. 오래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이었다. 벽에 붙은 사진들을 보면 이곳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재가 많이 사는 연못’인 가재못이 있었던 자리였기에 그 의미를 살린 ‘가재울도서관’은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던 지하철 역사의 하부 공간을 활용했다. 사람들이 떠나는 원도심이 도심재생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멋진 장소다.

1층은 130석의 독서공간이 마련된 도서관과 북카페, 2층은 12만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의정부도서관 보존 서고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열고 인근 도봉산, 소요산을 비롯, 전철을 타고 나들이를 떠나는 이들을 위해 ‘여행n 도서관’ 코너도 마련했다.

‘도서관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의 도서관 정책은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아우르는 ‘특성화’ 전략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미술, 음악, 과학, 영어 등 다양한 주제로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현재 의정부디자인도서관 착공을 앞두고 있다.

‘도서관 도시’로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벤치마킹하는 지자체의 방문이 이어져 아예 매주 목요일을 ‘도서관 투어 날’로 정해두었다. 지난 2023년에만 243개 기관에서 2896명이 방문했고, 올해 8월까지 114개 기관 1442명이 도서관을 찾았다. 의정부 경전철이 도서관들을 경유하면서 접근성도 좋아졌다.

의회와 한 건물을 쓰고 있는 의정부정보도서관에서 도서관 투어를 시작했다. 2003년 시 최초로 문을 연 공공도서관으로 다양한 장서와 서비스를 갖추고 지역의 다문화 거점 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가장 기대가 많았던 의정부음악도서관은 낮과 밤의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장안발곡근린공원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자리한 도서관의 노란 불빛은 밤늦은 시간 귀가하는 시민들을 위로하는 듯했다. 넓게 난 창 너머로 푸른 나무와 녹지가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낮의 도서관은 힐링의 장소였다.

지상 3층 규모로 책과 음악과 공간이 어우러진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지난 2021년 문을 열었다. 미군 부대가 있었던 장소의 역사성을 살린 ‘블랙뮤직’과 올해 23회째를 맞은 의정부음악극축제 등 지역의 음악자산을 모티브로 한 도서관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힙합, 재즈 등을 연주하고 있는 뮤지션의 모습을 그래피티로 그려넣은 계단을 비롯해 구석 구석 ‘음악’을 상징하는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7500점에 이르는 음악CD를 비롯해 LP(1700점), DVD(1200점)가 갖춰진 3층 뮤직스테이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탐나는 공간이다. 곳곳에서 편하게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뮤직홀과 오디오룸도 자리하고 있다. 매일 오전·오후 두 차례씩 스테인웨이 피아노를 통해 자동연주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발레나, 음악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또 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 체험을 해 볼 수 있으며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1층과 2층에는 음악도서 1500여권을 비롯해 일반 도서 등 모두 1만2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악기별로 분류된 악보 3200여점도 갖추고 있다. 책 뿐 아니라 음반, 악보 등 모든 자료가 대출 가능하며 매주 수요일에는 도서관 투어프로그램도 진행한다.

2019년 문을 연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가장 핫한 공간으로 주말에는 3000여명이 방문하는 인기 스폿이다.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도서관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책만 읽는 것을 넘어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도서관은 3층 높이의 공간 내부가 시각적으로 오픈돼 있고, 넓은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모은 ‘호크니 빅북’을 비롯해 1만3000여권의 국내외 예술관련 도서와 전시도록, 일반도서, 아동도서 등 5만 3000여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BTS 리더 RM과 LA미술관 등의 기증도서도 만날 수 있다.

이 도서관 역시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의정부에서 활동한 백영수 화백의 존재다. 1940~1950년대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로 활동한 그는 신사실파의 마지막 생존 작가로 작품활동을 이어오다 지난 2018년 별세했다. 1973년부터 사용하던 화실은 백영수미술관으로 활용됐고, 현재는 백영수미술관을 시립미술관으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중이다. 미술도서관 앞에는 백 화백의 모자상이 세워져 있고, ‘신사실파’ 관련 자료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또 매년 2명의 지역작가들을 대상으로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인물을 키우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영어도서관은 기존 어린이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2022년 재개관했다. 영어 원서 1만5000여권을 포함해 약 5만 6000종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어 독서의 시작을 돕기 위해 영어그림책을 수준에 맞게 구성해 제공하는 ‘영어 책가방’ 대출 서비스 ‘부꾸부꾸’는 특히 인기가 높다.

천문우주특화 도서관으로 개관한 의정부과학도서관은 범위를 확장해 기초과학 프로그램 개발 및 과학 분야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전체 21만 3000권의 자료 중 과학도서는 3만 1000권이다. 특히 천체투영실, 4D영상체험실, 지구와 환경에너지 등을 다루는 기초과학 전시실로 구성된 3층 어린이과학체험실은 인기 만점이다. 개관 당시 함께 문을 열었던 의정부천문대는 지난 201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운영중이다.

그밖에 고산 신도시에 들어서는 의정부 디자인도서관은 최근 설계 공모를 끝내고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94명의 직원이 연간 46억원의 예산을 운용하는의정부 도서관을 둘러보며 인상적이었던 건 큐레이션이었다. 여타의 도서관과 달리 사서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전문도서관의 큐레이션은 방문객들을 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근사한 길라잡이었다. 또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반납하면 독서포인트가 적립돼 지역의 협약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할 때 현금처럼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독서포인트 멤버십’도 눈길을 끈다.

의정부시청 도서관 정책팀 이소영 팀장은 “눈길을 끄는 도서관이 많아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도서관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각각의 도서관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의정부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29522800775154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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