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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8일 수요일

다문화교육의 전망과 현실(펌)

지난 2009년 1월 17일 대조동꿈나무도서관에서는 다문화다함께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는 주제로 다문화서비스에 대한 도서관 실무자 교육이 있었다. 그날 김찬호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발표문이 누리집에 올라 있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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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www.hani.co.kr/.../006100000200203051848001.html


 

다문화교육의 전망과 현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1. 왜 다문화교육인가?

 

지구가 하나의 마을처럼 촘촘히 엮이는 세계화(글로벌라이제이션)가 급속하게 전개되고 있다. 상품, 자본, 문화, 정보, 인구 이동, 환경 문제 등 여러 차원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한국도 그 시스템에 깊숙하게 편입되어가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은 범지구적인 지평에서 가늠되기 시작한 지 오래고, IMF구제금융사태를 계기로 가정의 살림살이조차 거대한 질서 속에서 좌지우지되고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FTA의 확산은 경제의 상호연관성을 증대시키면서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하더라도 폭넓은 시야로 세상을 조망해야 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한편 정보와 소비문화의 면에서도 글로벌한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일찍이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외국의 대중문화들이 유입되어 왔지만,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유선방송을 통해 예전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문화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젊은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는 미국 드라마 열풍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생활양식 그 자체를 흡수하는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일본과 홍콩 등으로 원정 쇼핑을 나가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들은 한국보다도 그쪽 나라들에 훨씬 친근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교육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우선적으로 체감되는 것은 영어에 대한 강조 내지 강박이다. 곳곳에 영어마을이 들어서고 조기 유학의 열풍 속에 어린 나이에 외국 문화를 경험하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많아진다. 대학에서는 영어 강의를 확대하고, 대학생들에게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는 취업을 위한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 청년들은 자기의 인생을 기획하면서 글로벌한 규모에서 형성되고 변형되는 노동 시장, 그 불확실한 환경에 맞부딪히게 된다.

 

글로벌한 세계를 살아갈 어린 또는 젊은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기존의 교육에서 다루지 않았던 과제가 중대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지금 그것은 유창한 영어 실력, 그리고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이른바 글로벌 리더십을 갖춰 뛰어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만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긴급하게 다뤄야 할 교육적 과제들이 많이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다문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국내에는 190개국 90만 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84%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이 1990년대 이주 노동자들이 몰려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최근에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정착하는 외국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고, 전체 결혼 가운데 15% 정도가 국제결혼이며 전라도나 충청도의 농촌에서는 전체 결혼의 30-40% 정도나 된다. 그 결과, 핏줄에 집착하는 보수적인 농촌에서 순혈주의가 먼저 깨져나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은 심각한 과제를 떠안고 있다.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 부부의 자녀들의 교육 문제가 그것이다. 무엇보다도 한국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해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것을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긴박한 과제로 떠오른다. 물론 국제결혼을 해온 여성들의 한국어와 적응 교육도 거기에 연동하여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사회에 일방적으로 적응하고 통합되는 것만이 교육의 과제인가? 한국사회와 한국인이 새롭게 학습하고 변화를 꾀해야 할 부분은 없는가?

 

바로 여기에서 다문화교육이 제기된다. 다양한 언어적 종족적 배경과 국적을 가진 사회 집단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뿐 아니라 그들 사이에 창조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제고되는 것이 그 교육의 궁극적인 비전이다. 이는 비단 외국인뿐만 아니라 기존의 한국사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소수자 집단, 그리고 앞으로 남북한이 통일되어 가면서 함께 살아가야 할 남한과 북한의 이질적인 국민들을 위해서도 매우 긴요한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다문화교육의 동향과 국내에서의 실천 사례를 분석하고 향후 교육의 개발 과제를 살펴본다.

 

2. 다문화 교육의 흐름과 주요 쟁점

 

다문화교육 (multicultural education)은 문화적 다원주의(cultural pluralism)이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을 사상적 기반으로 하는 교육운동으로서, 미국, 영국, 캐나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 호주 등 국내에 다양한 민족 집단들을 내포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에서 1970년대 이후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국가의 사정에 따라서 이론적 실천적인 전개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다문화교육의 목적은 한 국가 내에 다양성을 존중하고 인족, 민족, 사회계층, 성별 등 모든 문화집단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촉진함으로써 차별이나 편견을 줄이고 균등한 교육의 기회와 문화적 선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각 문화 집단의 학습 양식에 적합한 교수법의 개발, 다양한 문화 집단의 관점에서 교육 내용을 재편성하고, 교사를 포함한 학교 직원들을 여러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원들로 구성하는 것까지도 포함한다.

 

다문화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바탕이 되는 다문화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다문화주의는 사회적, 경제적, 언어 문화적인 불평등을 없애면서 국가 차원에서 일종의 사회통합을 이뤄내려는 정책적인 지도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 구체적인 정책으로서 호주의 경우를 보자면 첫 번째로 다른 언어들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에스닉 커뮤니티를 승인하고 재정을 지원하는 것, 둘 째 이민, 난민, 소수자들의 정치 사회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국외 취득의 학력이나 직업 자격 등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지방 참정권을 보장하는 것, 셋 째 기존의 국민들에게 계몽과 선전을 통해 다른 민족 집단을 차별하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 있다. 바로 세 번째의 영역에서 다문화교육이 대두되는데 학교, 기업, 공공 기관에서 시행된다.

 

한국이나 일본처럼 단일한 민족과 동질적인 문화로 구성된 국가에서 다문화 교육은 1990년대 들어서 (일본은 1980년대부터) 외국과의 교섭이 늘어나면서 그 필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제화(internationalization)를 넘어 세계화(globalization) 또는 초국가화(transnationalization)가 진행되고 있는데, 전자가 국민국가를 전제로 세계적인 상호의존관계가 강화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민간이나 개인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교류나 사람의 이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상황 변화는 다문화 공생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제기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교육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그 핵심은 사회 구성원들이 ‘국민’임과 동시에 ‘지구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보편적인 가치를 습득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 바 국제 감각을 함양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학교 교육 전체의 목표에도 그것을 삽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다문화교육의 본산지인 서구에서 지금 그것은 인종, 민족뿐만 아니라 여성, 동성애자, 고령자, 백인빈곤층, 장애자 등 보다 광범위한 집단 간의 공존과 상호 이해, 평등한 보호를 목표로 하는 교육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적 문화적 다원주의에 기초한 교육으로서, 다문화 다민족 사회에서 인종, 민족, 성, 사회 계층, 장애 등에 관계없이 고유한 가치가 존재하고 누구든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에 입각하여 차이의 다면성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 지향 속에서 시민문화라는 것이 부각되면서 민족문화는 정체성의 일부로 상대화되고, 오히려 다른 민족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보다 코스모폴리탄적인 지구촌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말하자면 열려 있는 공공 영역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는 것이다.

이것은 다문화교육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만큼 중대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다문화교육은 자칫 문화 그 자체를 절대화하면서 민족이나 국가 중심의 문화의 범주를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상정하기 쉽다. 즉 어떤 문화를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다른 문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그 차이로 인해 오해나 대립이 빚어지기 때문에 타문화 이해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문화를 민족, 국가, 사회의 고유한 것으로 고정시키면서 다문화 교육이 종래의 국적에 의해 분리하는 스테레오타입적 인간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이다. 자문화와 타문화라는 이분법에 사로잡혀 그것을 자명한 실체로 전제하면서, 그 각각의 문화에 내재하는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트랜스내셔널한 흐름 속에서 기존의 사회집단의 범주 자체가 흔들리고 문화의 경계가 애매해지고 있다. 각 문화 자체의 다양성이 증가하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경계가 생성되고 변화하면서 구도가 복잡해지고 있다. 다문화교육은 문화와 문화 사이에 있는 사람의 차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여기에는 관계론적인 접근이 필요한데, 여러 현상들을 문화라는 범주로 설명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문맥을 통해 파악해가는 방식을 말한다. 그를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이항대립적인 틀을 들이대기 보다는 자기 나름대로 이해의 틀을 정립해가는 능력, 타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준거의 틀을 확대해가는 태도가 요구된다.

 

3. 공생과 관용이라는 것

 

다문화교육은 다문화 공생이라는 지향을 깔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 공생은 좋은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고, 또 너무 차이를 강조하다 보면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공생이란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한 사회 내에 두 개 이상의 문화가 있다고 할 때 그 존재 방식은 아래와 같이 여러 모델로 생각해볼 수 있다. A를 주류 문화, B를 비주류의 다른 문화라고 가정하자.

 

1. 흡수, 동화 : A + B --> A

2. 대립, 갈등 : A + B --> A <--> B

3. 분절, 고립 : A + B --> A + B

4. 융합, 창조 : A +B --> C

(그러나 이 경우 A가 완전히 다른 것으로 변하기는 어렵고 현실적으로는 A′가 된다)

여기에서 1과 2는 공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3의 경우 서로 상관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평화가 실현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 정도도 이뤄지기가 매우 어려운 경우가 아주 많다. 상충하는 가치관이나 종교 등을 지니고 있는 집단이 싸우지 않고 최소한의 공존하는 정도만이라도 달성하기가 무척 힘든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경우도 많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덕목이 바로 관용(tolerance)인데, 자기와 이질적인 타자를 거부하거나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으로 흔히 해석된다. 여기에서 초점은 대립적이고 배타적인 관계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관계로 어떻게 이행할 수 있을까에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심성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좀처럼 어렵다. 보다 현실적인 요구가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울 만큼 이질적인 관습, 행동, 신념 등을 가진 타자의 존재를 마주할 때 드는 거북한 느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누구나 자기가 자라난 문화에 익숙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다른 문화를 판단하면서 지나치게 차이가 날 때 불쾌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느낌이 든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배척하고 적대시하고 비난하고 소탕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본원적이고 자연발생적인 감정을 넘어서 타자의 존재를 승인하는 것이 관용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개념을 잡아야 하는가? 마음이 한없이 넓거나 다양한 문화에 대해서 워낙 경험이나 학습이 많이 이뤄져 있어서 웬만큼 다른 문화를 접해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관용의 태도를 갖는 것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관용이란 내면의 세밀한 느낌 차원에서 저항감 없이 이질적인 타문화들을 받아들이는 너그러움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그 수준으로까지 변화하기 전에도 관용은 이뤄질 수 있다. 관용과 불관용이 완전히 상극을 이루는 정신적 태도가 아니라,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에, 역시 인정할 수 없다’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소한 차이가 전쟁과 평화라는 엄청난 차이로 귀결된다. 관용은 품성 자체의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변화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이질적인 타자 또는 그 문화가 자신과 하나의 사회에 공존하는 것을 인정하고 함께 살 수 있음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행동을 제어하는 수준에서 관용은 이뤄질 수 있다.

 

그러한 관용은 차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개인의 자아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는데, 우선 자기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형성되어야 한다. 자기의 확립(자존감, 자기 긍정, 사고력, 판단력, 자기 표현력, 소통 능력 등)과 더불어 사는 것(공감 능력, 협력적 태도, 다양성의 인식 등)을 양 바퀴로 하는 품성의 육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4. 이주노동자 자녀들을 위한 학급 운영 사례


한국에서 다문화교육은 유네스코 등 민간기구에서 1990년대에 처음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최근 공교육에서도 다문화교육을 도입하고 있는데, 주로 외국인 내지 국제결혼 부부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행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06년 한국에서 최초로 안산과 시흥 지역에 [외국인근로자 자녀 특별학급]을 설치하여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한국에서 살면서 겪는 두려움과 부적응을 줄이고 불법 체류 이주 노동자 자녀 등 취약 계층의 교육권을 보장하려는 취지에서였다. 교과 내용은 언어뿐만 아니라 한국문화의 체험까지 아우르는데, 그를 통해 정상적인 초등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한국인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함으로써 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안산의 원일초등학교에 설치된 특별학급에는 러시아, 몽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 일본, 중국에서 온 12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다. 수업시간과 일상생활의 공용어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다. 입학 당시 아이들은 한국어 실력이 크게 부족했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의 체류 기간도 차이가 많았다. 한국어를 조금 알아들을 수는 있어도 발음이 매우 어눌하고, 그럴수록 발음이 이상하다고 놀림을 받을까봐 기존의 학급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집에서 부모 형제와 모국어로 대화를 하기 때문에 한국어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별학급을 담당하는 손소연 교사는 어떻게 학급을 운영하고 학습을 이끌고 있는가.

 

“아이들이 한국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야 합니다. 학교는 가정이나 사회와는 다른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고, 한국학교는 또한 아이들이 모국에서 다니던 학교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때 학교행사에 참여하면서 배울 수 있는 언어, 친구들과 놀면서 사용할 수 있는 언어, 공부시간에 사용하는 말 등을 우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의사소통능력이 많이 신장되었어요. 학교생활에 관련된 말들을 집중적으로 익히고, 일반 학급에서 한국 친구들이 말하는 것을 반복해서 들으면서 함께 어울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 아이들이 특별학급에서만 있었다면 그렇게 빠르게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손소연 교사는 중앙도서관을 방문하여 도서관 이용법을 배우고, 호수공원에 가서 한국의 식물을 관찰하는 등 학교 밖으로 나아가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했는데, 현장에 나가기 전에 체험학습에 필요한 낱말과 그림을 먼저 배우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학교에서는 평소에 학교에 방문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근로자의 날’에 체육대회를 개최하였는데, 특별학급 아이들은 단체 생활이나 운동회 준비에서 필요한 말을 미리 배우고 행사에 참여했다.

 

원일초등학교의 다문화 교육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것은 일반학급 아이들도 참여하는 문화교실수업(CCAP)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지원으로 매월 한 차례씩 진행하는 이 수업에는 외국인근로자 자녀와 한국학생이 함께 참여하여 문화의 다양성과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넓혀간다. 해당 국가 출신으로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근로자나 NGO 활동가 등이 특별 강사로 초빙된다. 한국학생들은 특별학급 친구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고, 그 문화가 한국문화와 무엇이 다르고 비슷한지 등에 대해 배우게 된다.

 

“우즈베키스탄 문화교실 수업에서는 연극을 함께 했고 러시아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역사적인 상황에 대해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본문화교실수업에서는 전통의상을 입어보기도 했고, 다양한 풍습에 대해 배우면서 일본인 친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특별학급 아이들은 자기 나라 사람이 모국의 문화를 한국 아이들에게 한국어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자기 나라 애국가를 함께 부르면서 새삼 긍지를 갖게 되는 것 같았어요.”

 

외국인 또는 국제결혼 자녀들이 한국사회에 일방적으로 적응하고 통합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상대방 문화를 공부하고 한국 학생들도 그들을 통해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세계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다문화교실의 진정한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학교의 특별 학급은 매우 적절한 방향 설정과 운영 방침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별학급 아이들은 예전에 한국어도 못하고 불법체류 신분이라서 집에 갇혀 지내거나 피시방에서 소일하고 밤에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과 어울리곤 했는데, 이제는 학교에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게 되어 즐겁다고 말한다. 그들이 모국어를 말하고 자신의 문화를 소개할 때 한국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배우려고 애를 쓰는 분위기도 형성되었다고 한다.

 

“급식 문제도 어렵습니다. 문화권에 따라서 식성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몽골 아이들은 생선을 절대 먹지 않습니다. 그것에 대하 한국 아이들은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다문화교실을 통해 그것이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차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통역사 이외에는 별다른 꿈이 없었던 특별학급 아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긍정적인 자아관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은 교사가 몽골어 사전만 가지고 다녀도 자기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도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지금 학교에서 이뤄지는 다문화교육은 교사 개인의 노력과 헌신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고,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아서 교사들은 기피하는 경향이 짙다. 10명 남짓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제각각이라서 교사와 학생 사이에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소통에 큰 어려움이 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자기 나라 말로 욕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교사가 적어도 그 아이가 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야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 손 교사의 경우 해당국가의 언어로 쓰이는 주요한 욕설들을 익혀두고 대처하고 있다.

 

그리고 문화적 배경의 차이도 커다란 어려움으로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성교육을 하는 경우, 몽골 아이들은 유목민들의 거주 공간의 특성 때문에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성생활에 노출되어 왔기에 성적인 교섭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몽골 출신의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하면서도 그 내용과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걸맞게 커리큘럼과 교수법을 개발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5. 다문화 사회를 위한 전략

 

그런데 한국이 아시아 시민들의 삶터가 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조건들이 많다. 예를 들어 경기도 파주에는 멋진 영어마을이 들어서 있다. 그 풍경은 유럽의 어느 마을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모습이다. 거기에서 만나는 외국인들도 거의 다 서양 출신들이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가운데 대다수를 이루는 아시아인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은 지극히 빈곤한 실정이다. ‘한류’가 아시아 각국에 흘러들어 한국에 대한 관심과 선망이 높아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결혼을 위해 한국에 들어와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의 사회와 문화(어떤 이는 이를 가리켜 ‘사돈의 문화’라고도 한다)에 무지하다. 향후의 문화정책은 그러한 불균형을 시정하는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글로벌 무대에서 아시아는 일차적인 대상이다. 한국 안에 ‘베트남류(流)’ ‘버마류’ ‘필리핀류’ 등 다양한 아시아 문화의 바람이 일어나도록 촉매해 주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 거주하는 여러 민족 집단들이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몽고나 스리랑카 등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의 자녀들 가운데 한국어는 유창한데 모국어는 전혀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아예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모국으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그 부모들은 고민이 많고 때로 갈등을 빚기도 한다. 아이들이 그러한 생각을 갖는 것은 경제적인 수준으로만 사회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문화를 열등시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아이들이 귀화하여 한국인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그러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다양한 국적이나 태생의 외국인들이 자신의 문화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더욱 활기차게 가꿔가는 것은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위해서도 도움이 된다.

 

행정은 주요 언어권별로 2세들이 자국어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지원해줄 수 있다. 필요하다면 그 국가 출신들의 전담 교사를 선발하여 인건비를 지급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지자체마다 그러한 문화가 지속적으로 창조될 수 있는 거점 공간을 확보해주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그 국가 출신들이 수시로 드나들고 언제든지 모여서 교류할 수 있다면 한국사회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재생산해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의 대학로에 일요일마다 필리핀 시장이 열리는 것이나 안산시 원곡동의 테마거리 조성 등은 참고가 될 만한 사례이다.

 

그렇게 해서 형성되는 다양한 외국 문화들은 폐쇄적으로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문화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필요하다. 단순히 보여주기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어떨까.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음악 동호회’, ‘베트남 문학 연구회’, ‘태국 요리 클럽’, ‘인도 영화 마니아’,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화 포럼’ 같은 모임이 형성되는 것을 상상해본다. 물론 거기에는 그 국가 출신의 외국인이 참여할 수 있고 해당 국가의 문화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서 보다 깊이 있고 지속적으로 타문화를 이해하고 체험하면서 한국 문화의 자양분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경기도는 그러한 모임들이 형성되고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지원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주민자치센터나 문화회관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한 가지 방안이다.

 

그렇게 하여 창조되는 문화를 사회에 널리 알리는 이벤트로서 ‘아시아 문화 주간’ 같은 것을 제안해본다. 일 년에 일 주일 정도를 지정하여 예술문화회관 등에서 하루에 한 국가씩 공연이나 전시를 하는 것이다. 그 프로그램은 한국에 거주하는 그 국가 출신 외국인들이 일부 채우고, 한국인 동호회가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낼 수도 있다. 조금 수준 있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전문적인 예술인들을 특별히 초대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이벤트는 경기도에 많이 존재하는 대학들의 축제에서도 부분적으로 열릴 수 있다. 그를 통하여 한국인들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사회와 문화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지역 출신들의 외국인들이 자기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다문화교육과 관련해서 활용할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서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필자가 10년 전 일본에서 머물 때 경험한 일이다. 어느 날 인근의 중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토요일에 수업 대신 외국인들을 초빙하여 1학년 학생들에게 자국의 문화를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갖기로 했으니, 강사로 참여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중학교 어느 학급에 들어가 세 시간 동안 한국의 문화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사물놀이 비디오를 보여주고 제기 차기 등의 놀이를 가르쳐주었다. 그 학교는 그날의 특별 수업을 위하여 지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을 파악하여 10여 개국 출신들을 초빙하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그런 식으로 외국인을 직접 접하여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국제 이해 교육’ 분야에 한국보다 훨씬 먼저 눈을 뜨고 다양한 시도를 펼쳐온 일본에서 그런 식의 프로그램을 배워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를 통해 한국 청소년들이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것은 물론, 참여하는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사회와의 놀라운 인터페이스를 갖게 된다. 그런 자리에 강사로 올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어가 일정한 수준이 되어야 하고, 자기 문화에 대한 소양과 해석 및 전달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의 경우 보조 교사가 따라붙고, 문화 컨텐츠의 경우 해당 국가의 문화원이나 위에서 언급한 동호회의 도움을 받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는 그것을 실행할 경우 필요한 인적 자원을 파악하여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학년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공급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교실에 찾아가 강좌나 워크숍을 하는 것 이외에도 학생들이 외국인을 찾아가 인터뷰 하거나 살아가는 모습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꾸려볼 수도 있다.

 

또 한 가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다문화 방송국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새터민, 이주 노동자 및 그 자녀들, 결혼 이민자 등이 소통하는 미디어를 청소년들이 주역이 되어 만들어 가보면 어떨까. 통일 이후에 절실하게 필요해질 사회 내의 문화적 다양성, 차이에 대한 관용, 보편적인 인권 의식 등이라고 할 때 그것을 실질적으로 학습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서 방송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영상 페스티발 같은 것도 괜찮을 것이다.

 

미디어의 영토가 폭발적으로 넓어지고 채널이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공간은 아직 황무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이외의 언어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 시도해본다면 많은 외국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주요 언어권 별로 인터넷 라디오 방송이나 유선 방송을 개설하는 것이다. 또는 독자적인 인터넷 사이트나 그것을 묶어주는 포털 사이트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 프로그램들에 어떤 정보를 담으면 좋을까. 우선 한국어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주요 국가 언어권으로 나눠 맞춤형으로 한국어 강좌가 열리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주택 관련 상담, 구인 정보, 한국에 살아가면서 겪는 각종 문화 충격에 대처하는 방법 등...

 

정부에서는 그러한 방송이나 정보 교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인프라를 제공하고, 거기에 필요한 최소한의 예산을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외국인들만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문화적인 감수성을 다양하게 키워가는 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미디어를 그 각각의 나라들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6. 마무리

 

한국인들은 아직도 단일민족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한국땅은 한국민족만이 살아가는 땅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들도 잠깐 머물다가 돌아갈 이방인들로 여기며 소홀하게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날 뿐 아니라 한국에서 2세 3세로 이어지면서 뿌리를 내릴 것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세계 각지에 뻗어나가 정착하였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미래를 전제로 문화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즉 한국 내에 ‘베트남 커뮤니티’ ‘인도네시아 커뮤니티’ 등 다양한 종족들이 한국인들과 함께 영구히 살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듯 다양한 부류의 문화를 가진 인구 집단이 공존하는 사회의 모습을 전제로 하여 문화의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

 

‘코리안’은 한국 민족만이 아니다. 필리핀계 한국인, 베트남계 한국인, 중국계 한국인 등 다양한 코리안들이 출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은 아직 거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엄연히 주민등록증이 있는데도 한국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기가 일쑤고, 지방자치 선거 때 투표장에서 외국인이 왜 투표를 하러 왔느냐고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들이 한국사회 안에 보다 깊숙하게 섞여들 수 있도록, 사람들의 의식과 느낌이 변화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차원에서 촉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외국계 한국인들이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외국인 관련 업무를 맡는다거나, 학교에서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도록 교사 연수나 교재 개발을 시행할 수 있다. 그리고 관광 상품이나 문화 콘텐츠 개발에 외국인들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함으로써, 그들이 단순히 잠깐 머물다 갈 손님이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임을 깨닫게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다문화 정책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외국인들만은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도와 별로 상관없이 이뤄지는 급격한 인구 집단의 구성 변화는 한국사회의 문화적 다양성과 유연성을 제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단일 민족이라는 신화가 급속한 산업화와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되었던 단계를 지나 이제 오히려 걸림돌이 되는 현실에서, 그렇듯 이질적인 문화가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불편하게 만들면서 인식의 확장을 유도할 수 있다. 21세기에 피할 수 없는 글로벌 현실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대안적인 사회 원리를 시뮬레이션하는 파트너로서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재발견되어야 한다. 그를 통하여 일어나는 변화는 외국인들뿐 아니라 새터민 그리고 한국 사회 내의 다양한 소수자 집단의 사회적 입지를 넓히는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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