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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8일 금요일

교과부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 도입 논란 3

김상욱 교수(춘천교대 국어교육과,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대표)는 <교수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의 문제점을 좀 더 자세하게 지적하고 있다.

 

김상욱 교수는 이 글에서 " ‘나는 내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입증하듯, 우리가 읽은 책이야말로, 우리의 생각과 정서의 요체를 이룬다. 따라서 이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록하고, 관리하고,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CCTV로 우리들의 안방까지 들여다보고, 사적인 영역조차 남김없이 평가하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서교육종합지원체제’, 표류하는 독서교육

 

김상욱(춘천교대 국어교육과, 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대표)

 

교육과학기술부(이후 ‘교과부’)는 지난 15일 ‘독서교육종합지원체제’를 통해 학생들의 독서 활동을 종합적으로 관리하고, 이를 입학사정관에게 제공함으로써 대학 입시의 자료로 삼겠다고 발표하였다. 교과부가 새롭게 발표한 정책인 ‘독서교육종합지원체제’는 기왕에 존재하던 부산시 교육청의 ‘독서인증제’를 도서관의 독서활동 운영시스템인 ‘학교도서관지원시스템’과 연계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핵심은 2010학년 2학기부터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의 독서 이력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전 대학교육협의회가 창의적 체험활동의 첫 번째 항목으로 ‘독서 활동’을 들며 대학입학 사정의 자료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논의를 교과부가 이 체제를 통해 체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사실 교과부는 일제고사로 지칭되는 성취도검사를 통해 획일적으로 또 무차별적으로 학생과 학교를 반드시 일렬로 줄을 세우겠다 작심한 바 있다. 그러니 ‘독서교육종합지원체제’가 교육의 본질과 지향에 부응하며, 어린이․청소년들의 바람직한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진지하게 성찰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단적으로 독서를 대학입시와 직접 연계시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독서는 결코 계량화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내밀한 어린이․청소년들의 또 다른 삶의 경험이다. 그런데 그 경험의 결과와 함께 과정까지 대학입시와 연결시키겠다는 발상은 참으로 반문화적인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학생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어떻게 해서든 책을 읽게 만들겠다는 발상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의제 설정이 틀렸다. ‘어떻게 하면 책을 읽게 만들까’의 해답은 ‘이렇게 하면, 또 저렇게 하면’으로 귀결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소극적으로는 당근으로, 적극적으로는 채찍으로 대응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과감하게 대학입시라는 당근으로 포장된 채찍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교과부’가 교육을 염려한다면, 의제는 ‘어떻게’가 아니라, ‘왜 책을 읽지 않을까?’라는 자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교사에게 학부모들이 ‘성취도 검사가 코앞인데 왜 책을 읽으라고 하나요?’라고 따지듯 묻는 상황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독서교육종합지원체제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독서이력을 관리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한심하기 그지 없다. ‘나는 내가 읽은 책이다’라는 말이 입증하듯, 우리가 읽은 책이야말로, 우리의 생각과 정서의 요체를 이룬다. 따라서 이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기록하고, 관리하고, 활용하겠다는 발상은 CCTV로 우리들의 안방까지 들여다보고, 사적인 영역조차 남김없이 평가하겠다는 발상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기록의 주체인 학생들이 그리 성실하게 기록할리 없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결국 거짓이나 형식적으로 기록하거나 또 다른 사교육이 창궐하리라는 것은 확연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료는 지금의 봉사활동과 다를 바 없이 형식화된 채 폐기될 것이다. 실효성이 없는데도 학생과 학부모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거짓말로 기록하고 돈을 들여 기록할 것이다. 결국 실효성을 가져도 문제, 실효성이 없어도 문제이기는 다를 바가 없는 정책인 셈이다.

 

지금의 ‘교과부’가 지금이라도 정신이 번쩍 들어 정책을 철회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새롭게 환골탈태하고자 하는 지역 교육청들이라도 교과부의 정책을 고스란히 실현하는 말단관료의 역할을 하는 대신, 진정 바람직한 독서교육이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숙고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한 마디로 독서교육의 목표는 대학입시를 비롯하여 이러저러한 쓸모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생애의 독자’를 길러내기 위함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책을 읽으며 사유하고 공감하는 어른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따라서 어디까지나 독서는 즐겁고 또 즐거운 경험이어야 한다. 점수를 받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암기하고, 독후감을 억지로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마음에도 와 닿지 않는 필독서를 고르는 한, ‘생애의 독자’는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

 

교육 주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강제로 책을 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싶어하는 모두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독서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학급문고, 학교도서관, 마을문고, 지역도서관 등 모든 단위의 도서관을 활성화하고, 독서교육을 주도할 담당교사와 사서교사를 양성하는 등, 좋은 책이 독자와 만날 다리를 놓는 일에 진력해야 한다. 교육 당국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이것뿐이다. 주제넘게 말에게 강제로 물까지 마시게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기 때문이다.(교수신문 201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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