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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일 월요일

"권력을 갖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2012년 1월 2일자 민중의소리 이동권 기자의 신년 인터뷰. 도종환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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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답거나 생명력이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운 마음을 밖으로 빼내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나누는 삶을 뜻한다. 그래서 생긴 모양이나 가진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행복의 씨도, 불행의 씨도 될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이 단순한 진리를 아주 쉽게 알려줬다. 진정 아름다운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삶을 채워가야 하는지.

도종환 시인은 지병으로 오랜 시간 마늘밭에 지은 황토집, '구구산방'에 들어가 요양했다. 구구산방에서 구구는 거북이구(龜)자로, 거북이처럼 오래살고 싶다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문득 '구구산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어버린다. 건강이 나쁘면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최근에도 그는 산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글을 쓴다. 한 달 전에는 이런 시간들이 모아져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시집이 나왔다. 그는 2012년에도 물론 왕성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책을 2~3권정도 준비 중이다. 쭈욱 이어서 나온다. 산문집도 낸다.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소개하는 책이다. 예를 들면 학생, 기업인, 연애하는 사람들이 볼만한 시를 소개하는 책이다. 시 읽는 사람들을 늘리는데 기여하고 싶다. 10년, 20년 금방이다. 20년 전의 일도 다 기억이 난다. 순간순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도 금방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이다. 상상력이 허락될 때까지 글을 써야하지 않겠나."

2012년 그의 모토는 '더 조용하게 살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올 한 해 살기가 더욱 걱정이다.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어지러워서 여러 군데 불려 다닐 것 같다는 이유다. 2011년도 만만치 않은 한해였는지 한숨부터 내쉰다.

"연초부터 구제역으로 살아있는 짐승을 생매장하고, 쓰나미로 원전이 터져 한 나라의 재앙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는 위기를 느끼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발표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권력을 가진 상층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살기가 점점 어려워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시나 글로 형상화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스스로 부족해보여 개인적으로도 안타깝다. "

예술,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최근 문화계도 인간의 정신이나 실존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룬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예술가들이 대부분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화두로 꺼내들고 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그러했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러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새로 나온 책을 이야기하고, 연극과 오페라가 대화의 소재가 되고, 영화가 바꿔놓고 싶어하는 세상이 화제가 돼야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에 문화가 너무 쏠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렇지 않을 것인데,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본다. 문화는 삶의 모습,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분노했다. 도가니가 단순히 학교, 사립재단, 교사 개인의 노력 때문에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사학이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이 사학을 감싸고, 그것을 덮어주는 보수언론과 그것을 유리하게 판결해주는 사법부, 이 부패와 비리의 커넥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해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도 그렇다. 문자는 권력의 진입수단이었고, 그들 기득권층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민중이 문자를 갖게 되면 기득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백성들이 문자로 지식을 얻고, 지식의 민주화가 일어나면 엄청나게 큰 충격과 저항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기존 드라마들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만 당대를 분석했지만 이 드라마는 문자를 통한 민중권력과 기득권력의 대립을 그렸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했다. 아니 30년, 50년 뒤에라도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한가.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 수 없는 노릇. 내 것, 네 것을 다툼 없이 나누는 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인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욕심이 많아 조용한 날이 찾아올 수 있을지 진정 의문이다.
아마 그도 그런 생각을 깊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올 것인가. 그럴 때는 뭔가 강력한 힘에 의해 세상이 균형이 맞춰지면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이 너무도 시끄러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의 얘기처럼 우리가 문화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총선은 문제없다. 그러나 대선은...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모든 이들과 같이 도종환 시인도 진보진영의 집권에 대한 강한 열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권력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살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 아메리칸 드림보다 유로피안 드림을, 승자독식 군사적 패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확대하기 위한 것을 고민하면서 빼앗긴 권력을 가져와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소망,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한나라당, 수구권력이 다시는 온갖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서 개혁진보세력이 승리하는 것이다. 분명 가능한 지점도 있고 아닌 지점도 있다. 당위적으로 옳아도 자기 입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통합을 해낸다면 총선에서는 크게 이길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통일, 복지 모든 면에서 한나라당이 역행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야권에 표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선의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했다. 이를테면 집권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젠다(agenda)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선은 변수가 많다. 권력을 갖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의회권력, 행정권력을 가졌을 때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 학습효과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2013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자는 결의로 모아져야 한다. 이번에 권력을 잡았으니까 맘껏 휘둘러 봐야지라는 생각보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개혁진보가, 다음에는 수구보수가, 이런 식으로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혜의 총량을 모아보자. 총선 끝나면 창조적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다. 변화를 향한 힘과 에너지, 추진력이 있다."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 달라

<민중의소리> 독자들을 위해 도종환 시인에게 새해 덕담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민중의소리> 독자들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양보하고 배려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만나고 생각이 틀리면 상대도 안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선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도 남이 나와 똑같아지길 바라지 않는 진보,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극단적 논리보다는 포용하면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분들이 되어 달라. 폭 넓고, 깊이 있는 진보가 됐으면 좋겠다."

삶은 동질적인 생존법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만 보거나 아래를 무시하고 살면 막연한 불안과 동요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방법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며, 사람 사는 모양이 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착지를 돌아보면 삶의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어차피 모두 죽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동질적인 생존법칙의 끝인 것이다. 이미 결과가 같다면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할 일도 아니고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도종환 시인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도종환 시인은 신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족한 존재이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사람.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해답이라는 것을 배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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