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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6일 월요일

녹색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

2012년 1월 16일 한겨레 신문 인터뷰 기사, 이인우 기획위원이 홍세화 진보신당 신임대표를 만나 나눈 이야기. 여기에 옮겨놓고 인터뷰 내용 중에서 곰곰이 생각할 것들을 챙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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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주의-사회주의 적극연대 꿈꿔
자유주의 한계때 대안 역할 할것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을 거부한 진보신당은 지난해 11월25일 홍세화(65)씨를 당 대표로 선출했다. 의석 하나 없이 ‘사회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마이너 정당의 대표가 현실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저명한 언론인 홍세화의 ‘등판’만큼은 뜻밖이었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논객이었지만 직접적인 정치활동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어왔던 그였다. 지인들조차 “괜한 상처만 받을 것”이라며 만류한 길을 굳이 선택한 데는 그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꿈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당원들에게 호소했다. “노동하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꿈을 실현하는 정당, 오늘과는 다른 미래를 선취하는 정당을 건설하는 데 진보신당이 한 알의 밀알이 되자”고. 진보신당은 당원이 고작해야 1만400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 보수정당 등이 보기에 ‘한줌 거리’도 되지 않을 이 숫자는 그와 그의 당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멀고 험난한 길인가를 말없이 웅변한다.
 
-당 대표를 맡아보니 어떤가?
“여전히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느낌이고, 누가 대표님 하고 불러도 고개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당의 영향력도, 재정 상황도 열악하다. <한겨레>에 있을 때도 느꼈지만 가서 보니 진보정당에 대한 언론의 홀대를 더욱 절감한다. 때로 진한 외로움이 다가오기도 한다.”
 
홍 대표는 프랑스 망명기에 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로 대중적인 명성을 얻었다. 귀국(2002년)해서는 지난해까지 한겨레신문의 인기 칼럼니스트이자 대중운동가였다. 그의 칼럼은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적 가치 또는 이념의 실천을 추구하는 가장 명확한 글 중 하나였다. 그는 정당 가입을 사실상 불허하는 언론 풍토 속에서 진보정당 당원의 신분을 끝까지 고집했고, 은퇴하는 순간까지 노동조합의 평조합원임을 자랑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를 어떤 이들은 낭만적 이데올로그로, 또 어떤 이들은 근본주의자로 분류하기도 했다.
 
-직접 진보정당의 전면에 설 줄은 몰랐다.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었나?
“나는 그저 글 쓰는 사람으로서 뒷자리에서 당을 지원하는 평당원의 역할을 하려 했다. 그런데 당을 이끌던 분들이 모두 당을 떠나는 사태가 일어났다. 내게 진보신당은, 그리고 당원들은 무척 소중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당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거기엔 나 자신의 자존감에서 비롯된 반응도 들어 있다.”
 
-민주노동당과의 합당안이 당대회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합당을 추진했던 노회찬·심상정 전 대표 등이 탈당해 통합진보당에 합류했다. 합당파와의 견해차는 무엇이었나?
“진보정당의 정체성, 즉 자신이 누구이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무엇과 싸워야 하고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 이 물음의 실종 혹은 실패의 결과였다고 본다. 합당을 주장한 분들은 처음 민노당이 국민참여당과 합쳐지면 진보정치 전체가 우경화될 위험이 있으니 진보정당끼리 뭉쳐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해 9월4일 당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되자 당을 나가 참여당을 포함한 3자 원샷통합을 했다. 여기에 어떤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가? 진보정치의 가치를 모두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셈법 속에 구겨넣은 것 아니었나. 진보의 미덕 중 하나는 기다림이라 배웠다. 전망의 상실은 기다림의 포기로 이어진다. 가던 길을 돌아서기 전에 성실한 자기고백이 뒤따라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치공학적인 측면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반한나라당 전선으로의 결집이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통합이 1년도 안 되어 사라질 엠비나 한나라당에 맞서는 전선 형성의 전제조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반한나라당 전선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선거연대나 연합전선 구축으로 가능하다. 오히려 정체성이 다른 정당을 ‘묻지마 통합’으로 몰고 가는 것이야말로 정당정치의 책임윤리를 방기하는 것이다. 한 예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통과를 무효화시키기 전에는 등원을 거부하겠다던 민주통합당이 말을 뒤집자 일주일도 안 되어 통합진보당이 등원했다. 에프티에이 폐지라는 중심고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상황에서 연대가 흔들리는 책임이 진보신당에 있는지 되묻고 싶다.”
 
-이전 칼럼들은 물론이고 지금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 국민참여당 쪽 사람들에게 유감이 많은 것 같다.
“유감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 참여당은 몇 년 전만 해도 진보정당에 표를 주면 사표가 된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이 정당과 합친 당을 진보정당으로 분립시키고 민주통합당과의 차별성을 주장하는 것은 매우 어색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한지붕 세가족’을 묶는 끈이라고 말하는 복지가 좌클릭된 민주당의 복지와 무엇이 다른지도 알 수 없다. 금융자본주의가 전면 위기를 맞은 시대에 진보정치의 정책은 보수나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것이어야 한다.”
 
-어쨌든 반엠비 전선의 결집이란 측면에서 보면 진보신당은 고립의 길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혹자는 3자 통합을 마치 진보신당 내 독자파 탓으로 돌리는데, 나는 이에 분노한다. 독자파라는 것이 있다면, 이들은 어떤 통합이냐고 물었던 사람일 뿐이다. 자본이 인간을 모멸하는 시대에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을 중심으로 진보정당이 통합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노동자의 절반이 이미 비정규화되어 있고, ‘1 대 99’ 사회가 현실이 되는 상황에서 더 왼쪽으로,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오른쪽과 타협하지 않는다고 고립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고립을 감수할 것이다. 나는 평소 톨레랑스(관용)를 주장해온 사람이다. 진보신당은 고립을 원한 것이 아니라 강요당한 것이다. 진보정치의 꿈을 포기한 사람들에 의해서.”
 
-백낙청 교수 같은 분은 ‘2013년 체제’를 이야기하면서 야권이 연합정치로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한 후 새로운 정치시스템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했는데?
“2013년 체제는 보수도 진보도 모두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 야권으로의 정권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보면 그 자체만으론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좋은 시절에는 시혜적 복지의 대상으로, 위험 시기에는 위기관리의 대상으로 존재할 뿐이라면, 노동자 처지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어설픈 당근과 가혹한 채찍 사이에서 삶의 불안이 가중되는 시대가 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다시 밀려올 때 수구적 보수세력인 한나라당만이 야당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유리할까?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자유주의 주도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파쇼적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 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역할이어야 한다.”
 
-21세기 글로벌 경제 차원에서 볼 때 일국 단위의 노동 대 자본의 계급적 이분법이 여전히 유효한가 하는 비판이 있다.
“한편으로 맞고 한편으론 틀린 지적이다.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이동하므로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거나 국내자본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에 일말의 현실성이 있다 치자. 그러나 아이엠에프 체제 이래 위기와 고통은 고스란히 노동에 집중되었고 재벌국가 체제는 강화되었다. 자본 대 노동의 긴장관계가 완화된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지만 이는 대기업 중심의 노동조합운동이 일정 시간 타협주의로 흘러온 데 기인한다. 하지만 대기업 사업장 밖으로 시선을 돌리면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한-미 에프티에이 체제 이후의 노동운동은 전면적인 방향전환이 요구된다. 대기업 노조 중심의 조직이 비정규직을 포함하는 수평적 형태로 재편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올바른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측면에서도 ‘배타적 지지’ 등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관행은 극복돼야 한다.”

‘제3노총’ 등 노조조직 분화 상황서
구조변혁 못하면 노동운동 큰 위기
 
-민주노총이 아닌 별도의 새로운 노동자 조직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인가?
“당장 민주노총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3노총이 가시화되고 있고 노조 조직들이 분화되는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구조를 변화시키고 민주노조 진영의 독자적인 요구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노동운동 자체가 거대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면에서 그렇다. ‘고용 없는 사회’로 급속히 변해가는 현실에서 노동영역에 문제를 국한시키지 않는 광범한 사회적 연대가 구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현재 진보신당은 계급 정당인가?
“사회주의를 강령으로 채택하고 있지는 않은데, 굳이 말하자면 ‘사회주의 이후’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홍 대표 개인의 지향은?
“개인적으로 나는 생태주의와 사회주의의 적극적 연대의 실현으로서 생태사회주의를 지향한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녹색 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이 내가 그리는 당의 표상이다.”
진보신당은 총선에 대비해 2월쯤 공약 등 당의 정책을 정리해 내놓을 계획이다. 현재 진보신당의 핵심 주장은 노동자 경영권, 기본소득제(모든 사회구성원에게 균등하게 지급되는 소득) 실시, 서울대 폐지 및 대학 평준화, 탈핵(원전 폐지), 한-미 에프티에이 폐기 등이다.

지역 1~2곳·비례대표 3% 득표 목표
의회정치-직접 민주주의 결합 노력
 
-진보신당은 노동자의 경영권 참여를 주장하는데 현실성이 있는가?
“오늘날 노동자들보다 기업의 운명에 따라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가? 쌍용자동차의 경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반면 삼성은 이건희씨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그것은 아무 문제가 없나? 재벌의 기업소유권 역시 피터 드러커의 연기금 자본주의론에 의해서 이미 근거 없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 경영권의 비현실성을 말하기에 앞서 먼저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한다. 노동자 경영권은 과거 사회주의체제의 국유화론에 가려 잘못 이해된 측면이 있지만, 독일 등 유럽에서는 성공적인 사례도 많이 있다. 삼성과 같이 책임지지 않는 소유·경영 구조도 아니고, 국유화 구조도 아닌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4월이 총선이다. 주요 정당들이 점점 선거 대형으로 옮겨가는 중이다. 선거 목표는 설정했는가?
“목표는 의석을 획득해 원내에 진입하는 것이다. 지역 선거에서 1~2곳, 비례대표에서 총 유효득표 3%가 목표다.”
 
-홍 대표도 출마하는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심중이다. 더불어 이것 하나는 꼭 이야기해 두고 싶다. 진보정치의 가치는 선거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을 펼쳐가려 한다. 그것은 의회정치와 직접민주주의를 결합해 중앙과 지역, 삶의 현장을 연결하고, 그 속에서 당원이, 민중이 주인이 되는 정당운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 지역에 마련되고 있는 ‘민중의 집’ 모델을 참고하려는 것인데, 머지않아 이는 중앙당을 ‘전태일의 집’으로 만드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홍 대표는 어느 책의 자서에서 자신의 꿈을 “시어질 때까지 수염 풀풀 날리는 척탄병이고 싶다”고 했다. 백발의 노전사가 총탄이 빗발치는 최전위에서 적진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는 모습.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이데올로기 전장에서나 포착될 법한 이 장렬함 속에는 변방을 유랑했던 이름없는 혁명가의 이상과 열정이 포연처럼 스며 있다.

얼마간의 나르시시즘을 내포한 그의 바람은 2012년을 기점으로 현실적 투쟁성을 획득했다. ‘영원한 사병’에서 사령관의 계급장을 달고 전선으로 나서는 그의 출사표 제목은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며’였다. 사회주의자 홍세화의 전쟁이 시작됐다.

홍세화는
자본주의 모순 향해 “개똥!” 외치는 ‘백발의 척탄병’
옛날 서당 선생이 삼형제를 가르치면서 장래 희망을 물었다. 맏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하자 훈장은 아주 흡족해했다.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내는 모름지기 포부가 커야지. 막내 차례가 되었을 때, 막내는 잠깐 생각을 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개똥 세 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훈장이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나보다 글 읽기를 싫어하는 큰형이 정승이 되겠다고 하니 한 개를 먹이고 싶고, 겁쟁이인 둘째 형이 장군이 되겠다 큰소리치니 또 한 개를 먹이고 싶고… 그러고 나서 말을 주저하자 훈장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럼 마지막 한 개는? 여기까지 말씀하신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세화야, 막내가 뭐라고 말했겠니? 나는 대답했다. 그거야 서당 선생 먹으라고 했겠지요. 왜 그러냐? 형들의 엉터리 같은 말을 듣고 좋아했으니까요. 네 말이 옳다. 그런데 만약 네가 그 막내였다면 그 말을 서당 선생에게 할 수 있었겠느냐? 어린 나는 그렇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세화야, 앞으로 그 말을 못하게 되면 세 개째의 개똥은 네 차지라는 것을 잊지 마라.
자본주의의 모순을 향해 서슴없이 ‘개똥!’이라고 외치는 언론인 홍세화, ‘백발의 척탄병’을 꿈꾸는 홍세화는 이 이야기 속에서 태어났는지 모르겠다.

△1947년 서울 △경기중·고, 서울대 외교학과 △남민전 사건으로 프랑스 망명 △2002년 귀국 후 <한겨레> 기획위원, 칼럼니스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인 △저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 <생각의 좌표>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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