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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0일 월요일

나미에 켄(浪江虔 なみえ・けん1910-1999) 약력 메모

 나미에 켄(浪江虔 なみえ・けん1910-1999)

 

 

2023321~22일 경주,

엄대섭 선생의 발자취 답사를 위한 메모

안찬수, 20230319

 

나미에 켄 지음, 도서관운동 50図書館運動五十年』(일본도서관협회, 1981. 8) 권말에 수록되어 있는 자필 연보 참조. 

1910년 삿포로 출생, 1930년 도쿄제국대학 문학부미학과 입학하지만 곧 휴학, 프롤레타리아음악가동맹에 가입. 11월 전국농민조합 도쿄부연합회 서기, 1931년 소작쟁의가 일어나고 있던 츠루가와(鶴川村, 현재 町田市)에서 농민조합운동, 조합원과 함께 생활. 도쿄제대 퇴학. 1932년 일본 공산당 입당. 1933년 검거. 투옥. 1935년 농민을 위해 일할 것을 결심하고 전향을 표명. 농촌도서관을 건립할 것을 결심하고 도서를 수집. 1936浪江八重子와 만남, 1938년 결혼. 193911평의 건물을 마련. 私立南多摩農村図書館 가개관, 1940년 정식 개관. 다시 기소. 1941년 도쿄구치소 수감. 1944년 만기 석방. 1945년 형이 요코하마 형무소에서 영양실조로 사망(37). 1946년 일본 공산당에 재입당, 농촌운동, 농촌도서관 운동에 진력. 1947<농촌도서관-태어나고 자란다> 農村図書館-かくれかく출간(河出書房). 鶴川村議会 議員選挙에 입후보, 당선. ‘농문협社団法人農山漁村文化協会의 이사. 1948<, 마을마을에>  々に 출간(柏葉書院), 1950<누구나 알 수 있는 비료의 지식>にもわかる肥料知識 출간(농문협) *일본 도서관법 공포, 한국전쟁 발발. 1952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마을의 도서실図書室 시리즈 기획위원, 1954<농촌교육의 사막>農村教育砂漠 출간(長野農文協) *일본 전국도서관대회 도서관의 자유에 관한 선언채택 1958<농촌의 독서운동> 農村読書運動 출간(新評論) 1959년 일본도서관협회 평의원이 됨. 1963년 일본도서관협회의 중소리포트中小都市における公共図書館運営를 지지하며 보급활동 전개. 1964년 히노시日野市사회교육특별위원으로 위촉됨. 히노시 도서관계획 원안 작성에 협력. 1965년 일본도서관협회 이사로 선출됨. *이시이 모모꼬 石井桃子 <어린이도서관>どもの図書館이 출간됨(岩波新書) 1968년 츠루가와 지역이 주택지로 개발되자 도서관 이름을 사립츠루가와도서관私立鶴川図書館으로 개칭. 1969년 일본도서관협회에 문고만들기운동 文庫づくり運動에 대한 조사를 제안, 문고만들기운동조사위원회文庫づくり運動調査委員会의 일원으로 활동. 1970년 일본도서관협회 <시민의 도서관>市民図書館 간행. 1972년 일본도서관협회 <지역 가정문고 현상과 과제> 地域家庭文庫現状課題, <모든 이에게 책을, 도서관백서1972>みんなに図書館白書1972 분담 집필. *유네스코 세계책의해国際図書年 1977<공민관 도서관 박물관>(小林文人編, 亜紀書房) ‘문고운동과 도서관운동집필. 1979년 사립츠루가와도서관 40년전 개최 私立南多摩農村-私立鶴川図書館401981. 일본도서관협회 상무이사, 도서관조사위원회위원장. <도서관연감> 발행 계획 확정 후,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도서관운동50>(일본도서관협회) 출간. 19839월 엄대섭 선생의 초청을 받아, 부인과 함께 한국행. 마을문고マウル村落文庫를 둘러봄. 1984<도서관잡지> 3월호에 한국의 마을문고 방문기 집필. 7월에 일본도서관협회에 마을문고조사연구임시위원회マウル文庫調査研究臨時委員会 발족. 1985년 일본도서관협회 이사 및 도서관조사위원회위원장에서 물러남. 마을문고조사위원회 멤버로 511일 방한. 현지조사. *8WLIC 도쿄대회 개최, 회의에 참가. 1987<마을(촌락)문고조사연구보고서マウル村落文庫調査研究報告書 출간(일본도서관협회) 1988년 일본도서관협회 도서관대회에서 공로자로 표창. 1989년 사립츠루가와도서관 폐관 1996<도서관 그리고 민주주의 -나미에 켄 논문집>図書館 そして民主主義 浪江虔論文集 발간(まちだ自治研究センター) 1999년 사망. 

참고 

나미에 켄, 한국의 마을문고 운동, 도서관잡지図書館雜誌78권 제3, 일본도서관협회, 1984320.

*도서관잡지図書館雜誌78권 제3, 일본도서관협회, 1984320

번역 원문은 도서관 그리고 민주주의 図書館そして民主主義浪江虔論文集,

마치다자치연구센터, 1996, 188~196.

https://transpoet-textcube.blogspot.com/2019/02/78-3-1984-3-20.html?m=0

 

엄 씨의 도서관운동은 우선 19516월에 고향인 울산에 사립 도서관을 창립하면서 시작된다. 장서 3천 권에 불과한 조촐한 도서관이었지만 한국에서는 최초의 무료 도서관이었다. 엄 씨는 순회문고용 상자를 50개 정도 만들어 요소요소에 자전거로 배포하여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지만 그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읽게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너무 강했기에 도리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리라. 그러나 그는 이 실패에서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어서 이후 마을문고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 교훈은 문고 운영의 핵심인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었으며 자주성(自主性) 자발성(自發性)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그들의 강력한 원조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었다.

울산에서 물러나와 1953년에 경주에 도서관을 열고 그것을 읍립(邑立, 나중에 市立)으로 만들고 스스로 초대 관장을 지낸 10년 동안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일을 실행한다. 하나는 한국도서관협회(韓國圖書館協會)를 결성하고 1955년부터 1961년까지 초대 사무국장 겸 상무이사가 된 일이었다. 이 일은 경주의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또 한 가지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을문고 운동이다. 마을문고 운동은 1960년에 구상하여 1961년에 시작했는데, 처음 2년간 생겨난 100개의 문고에 대해서는 사재를 털어 책장과 책 수십 권을 제공했다.

실은 이 책장이 마을문고 운동의 성공의 열쇠다. 1980년에 간행된 마을문고 운영과 활동 사례에도 상세하게 그 제작 방법이 실려 있는데, 이 자료에 따르면 엄 씨 자신이 고안하고 설계하여 형무소에서 염가로 제작한 책장은 높이 135센티미터, 91센티미터, 깊이 28.5센티미터, 유리창이 달린 문짝, 2개의 서랍이 달려 있는 것으로, 2백 권의 책을 꽂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도서관(小圖書館)’이며, 마을문고의 상징이기도 하다. 수천 권의 장서를 갖고 있는 큰 문고로 성장한 곳도 어김없이 이 책장이 한 구석에 놓여 있다. 

 

*이용남, 마을문고운동 추진 전략과 행태에 대한 분석적 고찰,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36권 제1, 2002, 주석3) 주석7)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0220417556613.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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