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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유리지붕 아래 웅장한 ‘책의 산’, 발길 부르는 랜드마크,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 북마운틴도서관(2024.11.13)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 북마운틴도서관

‘책 읽는 곳’ 넘어 지역 커뮤니티 역할 기대
남부 소도시에 1000만달러 투입해 건축
빗물 재활용·채광따라 창문 개폐 등 친환경 설계
강연·난독증 교육·창업 지원 등 프로그램 다채
북콘서트·결혼식도 열려…52개 학교에 도서 제공
주민과 소통 최우선…리뷰·설문·심층면접 진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의 건축가 위니 마스가 도서관 설계를 요청한 지역 관계자들과 첫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때 언급한 단어라고 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얻고, 서로 나누길 원했던 그는 ‘환상’과 ‘동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Spijkenisse) 북마운틴도서관(de Bibliotheek De Boekenberg)에 들어섰을 때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공간.

◇마을의 정체성, 시골 농장을 닮은 도서관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스페이케니서는 로테르담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다. 2012년 문을 연 도서관은 독특한 건물 외관으로 건립 초기부터 화제가 되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1위, 네덜란드 베스트도서관 2위 등을 수상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만나는 도서관은 도시의 중심 광장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고풍스러운 교회와 마주하고 서 있는 도서관을 보는 순간 ‘북마운틴’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전면을 유리로 감싼 도서관의 경사진 면이 마치 산을 연상시켰고, 계단과 경사로를 오르며 만나는 ‘책의 산’은 지식의 숲을 거니는 기분을 준다.

스페이케니서는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의 위성도시로 별다른 특징이 없는 곳이었다. 1960년대 2000명 정도였던 인구는 현재 8만명까지 늘어난 상태. 인구 증가로 인해 시민들을 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할 시점이 되자 지방 정부는 시설 확충과 동시에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랜드마크를 구상했다. 이 때 떠오른 핵심시설이 도서관과 극장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수입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읽는 것’에 문제를 갖고 있는 비율은 11%로 전체 네덜란드 평균보다 2%나 높았다. 도서관 건립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탓에 찬반 논란도 불거졌다.

“도서관이 책만 읽으면 되는 공간인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을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죠. 도서관이 책 읽는 장소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야한다고 생각했고, 도시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공청회를 여러차례 열어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죠. 도서관이 건립되고 나서는 투어를 진행하는 등 도서관과 친숙해지도록 유도하고 시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였습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됐죠.”

도서관 투어를 함께한 바베트 플립스씨는 “현재는 건축가, 도서관 애호가, 사진작가들의 방문이 이어져 도시 이미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건물 외관, 특히 지붕은 도서관이 들어선 지역에 농장이 많았다는 점에 착안, 네덜란드 전통 농장의 형태를 모티브로 삼았다. ‘MVRDV’는 도서관 주변 42개 주택도 함께 설계했는데, 도서관에서 주소재로 사용한 벽돌로 외장을 마감하고, 지붕 형태를 유사하게 디자인하는 등 통일감을 부여했다.

2000장의 유리 지붕과 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116개의 나무 트러스로 이뤄진 건물은 ‘안과 밖’을 하나로 만든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쌓여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도서관 안으로의 여행을 생각하고, 내부에서는 유리창 밖 마을 전경을 조망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건물 내부의 모든 벽면에 서가를 설치했는데 최고층(5층)까지 480m에 달하는 나선형 책장은 한걸음, 한걸음 ‘책의 산’을 오르는 듯한 기분을 준다. 또 다양한 형태의 스터디룸과 건물 구석 구석 자리한 독서 공간은 편안함을 전한다. 도서관 안에는 마치 보물찾기 하듯 숨겨진 공간들이 눈길을 끌며 벽면에 감춰진 엘리베이터도 인상적이다.

도서관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건물이다. 빗물을 모아 냉난방과 화장실 물로 재활용하고, 유리벽의 창문은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또 햇빛의 양과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내려오는 자외선 차단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내부 주재료로 사용한 나무와 벽돌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특히 벽돌은 열을 흡수하며 흡음 기능을 해 소음을 잡아준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장은 화분을 재활용해 제작했다.

◇ 학교·지역사회와 다채로운 프로그램 진행

북마운틴도서관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자체 프로그램과 함께 학교, 지역문화센터 등 외부 단체와 협업하며 공공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한다. 독서관련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난독증 어린이 교육, 어르신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을 진행하며 20~30대와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상담 등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Together on Saturday’는 주민들이 함께 식사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셜 다이닝이다. 모여서 책을 읽기도 하고 필라테스, 음악감상, 뜨개질 클럽 등 참여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프로그램을 짠다.

2층에 자리한 카페는 지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최고층인 테라스 공간에서는 북콘서트, 강연, 이벤트가 열리며 지역 회사들에게 대여도 해준다. 취재 며칠 전에는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북마운틴도서관은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초중고 52개 지역 학교에 장서를 제공하고 직접 학교에 찾아가 독서문화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학생들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북마운틴도서관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주민과의 소통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늘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듣고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를 살피고 설문조사를 꾸준히 진행, 이용자들의 반응과 관심 사항을 챙긴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중요시하며 특히 1년에 두차례 심층면접을 통해 요구사항을 파악한다. 현재 도서관이 중점을 두는 연령대는 20대(18세~30세)다.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했던 이들이 다시 자신의 아이와 도서관을 방문하는 30~40대가 되기 전까지는 도서관 이용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마운틴도서관은 입주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외부 업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소설 다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체스협회와 협업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또 건물 1층에서 스페이케니서 역사홀을 운영하는 사회단체가 진행하는, ‘지역 역사와 도서관 투어’에도 힘을 힘을 보탠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요. 단순히 책만 빌리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많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는 이용자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합니다. 모든 도시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작은 도시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단순히 책만 소장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 사회적 역할을 하는 장소가 돼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산관리, 이혼 컨설팅까지도 해줄 수 있어야죠. 모든 연령층의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는가, 자신의 삶에 실제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책임자 올가 반 리드)

/네덜란드=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145240077614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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