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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30일 월요일

`인도는 그 자신과 투쟁해야 합니다.`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의 평전을 읽었습니다. 샤시 타루르--이 분은 2006년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인도 정부의 추천을 받아 반기문 현 사무총장과 겨루었다는 분입니다.--가 짓고 이석태 변호사가 옮긴 <네루 평전>(탐구사, 2009년 3월 출간)입니다. 학창 시절 <세계사편력>이나 <인도의 발견>과 같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만, 네루의 삶을 주마간산 격이나마 훑어보기는 처음입니다. 그만큼 그의 '바푸'였던 마하트마 간디의 그림자가 컸던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인도 독립 이후 네루가 걸어갔던 길, 그리고 독립투쟁기에 그러한 길을 예정했던 숱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네루가 보여주고 있는 삶의 모습을 <네루평전>은 다루고 있습니다. 인도의 역동성과 잠재력의 원천에 네루가 있다고, 이 책을 번역한 이석태 변호사는 말합니다. "네루가 서구 자본주의를 지나치게 경계하여 사회주의 경제를 고수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야기된 것은 사실이지만, 외국 자본에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경제 체제를 가진 우리의 입장에서 배울 점이 없지 않다." 이것은 이른바 '독자노선'에 대한 번역자의 조심스러운 평가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인도를 볼 때, 과연 인도를 제대로 볼 수나 있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네루가 앙드레 말로에게 했다는 말을 오늘의 한 대목으로 고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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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Jawaharlal Nehru, photograph by Yousuf Karsh, 1956.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art/408232/13197/Jawaharlal-Nehru-photograph-by-Yousuf-Karsh-1956

 

"그는 앙드레 말로에게 자신의 최대의 난제는 '정당한 수단으로 정당한 국가를 창조해 내는 것'일고 말했다. 수단과 목적을 나란히 놓는 것은 근본적으로 간디주의적이었다. 다만 다른 면에서는 네루가 자신은 간디주의자가 아니라고 했을지 모른다. 좌파와 우파 양쪽에서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의 온건함을 미적거림으로 보았다. 좌파는 그가 자본주의에 굴복했다고 공격했고, 우파는 그가 인도의 무슬림들과 파키스탄에 대해 유화적이라고 공격했다. 암베드카르는 그가 국민회의를 원칙도 정책도 없고, '바보와 악당, 친구와 적, 공산주의자와 세속주의자, 개혁가와 정통주의자, 자본주의자와 반자본주의자들 모두에게 열려 있는' 하나의 여행자 쉼터로 전락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것은 자와할랄이 인도 민주주의에 필요하다고 본 것이었다. 그는 말로에게 '인도는 그 자신과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 네루평전, 269쪽에서)

 

 

"한국(인)은  한국(인) 자신과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새겨 읽어봅니다.  

2009년 3월 28일 토요일

희망이라는 이데올로기

"하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어도 없고, 목적어도 없습니다.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야말로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면 되는 것입니까?" 이런 질문이 사라지고 나면, 세상은 끔찍한 지옥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요즘에는 정말 "하면 안된다"는 구호가 절실한 시기가 아닐까요? 그런데 "하면 안된다"는 말에도 주어나 목적어가 없기는 마찬가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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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estlight.tistory.com/category/

 

 

서경식 선생의 <고통과 기억의 연대는 가능한가>(철수와영희, 2009년 1월 출간)를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여섯번째 꼭지인 '희망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넘어서서'라는 글에서  서경식 선생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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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희망이 'hope'일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희망의 희자가 희박하다는 '희' 자이지요. 'lttle', 거의 없다는 겁니다. 절망은 전혀 없다는 것이죠. 끊어버렸다는 것이 절망이고, 소망이 거의 없다는 것이 희망이에요. '우리의 언어에는 희망이 거의 없는 것하고 절대 없는 것,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쓸데없는 생각인지 모르지만 저는 글쟁이니까 항상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163쪽)(중략) 그러니까 우리가 주인공으로, 자신들의 해석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다수자가 그러듯이 "그래도 희망이 있는데......" 하는 식으로 해석을 당해 버리는 것이 서벌턴(기층민중)이죠. "안 그렇다. 희망은 우리에게는 없다 희망은 우리에게는 허망이다." 하고 저항하고 충돌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수자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할 수 있고, 어떤 새로운 개념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190쪽)

 

 

일제히 창의적이 되자?

민들레가 10주년이 되어 오는 3월 14일, 상암동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를 모시고 10주년 잔치 한마당을 한다고 알려왔다. 현병호 선생이나 김경옥 선생이 보고 싶다. 자신의 이야기는 느리게 말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온전히 마음 깊이 새겨듣는 분들이다.

 

벌써 10년이 되었다. 민들레의 누리집(http://www.mindle.org/)에 오랜 만에 들어갔다 왔다. 현병호 선생의 칼럼을 읽는다. '일제히 창의적이 되자?'라는 제목의 글이다.

 

"스스로 서서 스스로 살리는 교육"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열어가려고 애쓰시는 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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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정상화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이 이제 애들을 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같은 시간에 전국의 같은 학년이 같은 문제로 일제히 보는 일제고사. 꽤나 유서 깊은 물건인데, 역시 너무 낡았던지 그 ‘일제히’에 그만 구멍이 났다. 서울 지역의 초등학생 가운데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체험학습 떠난 아이들이 160명에 이르고, 중학생은 150여 명이 거부했다.

수백만 명 중 불과 삼백여 명만이 시험을 거부했지만, 실제로 사보타지 수준의 거부를 한 아이들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른다고 봐야 한다. 초등 아이들의 경우 시험이 뭔지도 모르고 본 아이들이 허다하고, 중학생들의 경우도 상위권 아이들-학급에서 10등까지-말고는 진지하게 시험을 본 아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답안지에 자를 대고서 같은 번호에 죽죽 선을 긋고 엎드려 자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중위권 아이들의 경우도 아는 문제만 풀고 모르는 문제는 애써 찍지도 않고 대충 답안지를 메우고 남는 시간은 엎드려 잔다고 한다. 내신에 반영되지도 않는 시험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단막극으로 끝날 듯하던 이 사건이 최근 2막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1막 ‘일제고사 거부’가 끝나고서 몇 달이 지난 다음에야 오른 2막의 주제는 ‘교사 징계’다. 1막으로 끝내기엔 뭔가 찜찜했던가 보다. 2막은 주인공도 바뀌고 연출자도 바뀌었다. 1막이 주연-아이들, 연출-학부모였다면, 2막은 연출-서울시교육청, 주연-교사로 막이 올랐다.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가는 것을 허락했다는 죄목(?)으로 7명의 교사를 해임 또는 파면한 것이다.

2막은 1막보다 더 드라마틱하다.(역시 서울시교육청의 연출력은 학부모들보다 뛰어나다.) 시교육청은 교사들이 징계 다음날부터 나오지 않도록 해당 학교에 해임통보서를 징계 당일 반드시 전달하도록 주문해서, 어떤 교사는 밤 9시에 해임통보를 전달받기도 했다. 아마도 이튿날 시끄러워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연출자의 치밀한 계산이었던가 보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튿날 모두 출근해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서 눈물을 훔치며 교문을 나오고, 아이들과 부모, 동료들은 해임 결정이 부당하다고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일제고사 부활은 명목상으로 학습부진아를 찾아 지원하고 전체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일제고사를 치르지 않더라도 학습부진아는 담임교사가 파악하고 있기 마련이다. 날마다 만나는 아이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그건 교사의 능력 부족이니 교사 교육을 강화할 일이다. 사실상 일제고사는 아이들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기 위한 조치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교사를 해임한 것은 바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가공무원’ 주제에 국가 시책에 거스르는 행동을 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성추행을 한 교사는 감봉 3개월 처분을 한 전례에 비춰 보건대, 범죄에 대한 교육청의 ‘교육적’ 관점이 새삼 궁금해진다.)

해임의 이유로 명령 불복종을 명시한 것은 그나마 정직한 처사였다. 사실 아이들을 잡으려면 먼저 교사를 잡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눈엣가시 같던 전교조를 길들이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를 입맛대로 수정하듯이 교사들을 입맛대로 길들이지 않고는 체제 유지 또는 개편이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깨닫게 되리라. 밥줄이 걸려 있는 교사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아이들은 이전 모습으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아마도 어르신들은 아이들이 시험을 거부할 수 있다는 걸 상상도 못했을 게다. 일제고사라면 누구나 가슴 졸이면서 고개 처박고 한 문제라도 더 맞추려 애를 쓰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아는 ‘교육자’들은 비록 몇 백 명일지라도 일제고사를 일제히 거부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시험치기를 장난치듯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마도 어르신들은 또 대책을 강구하실 게다.

시험 성적이 내신에 반영되도록 하면 아이들이 시험을 제대로 볼까? 그럼 학력도 따라서 높아질까? 수십 억 예산을 들여 이런 시험을 치르는 교육당국의 교육관을 탓하기 이전에 현실파악 능력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시험지 몇 장으로 아이들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이들을 잡으면 학교가 ‘정상화’되고, 아이들은 교과서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면서 학력도 따라서 높아질까? 그들이 말하는 학력이란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시험 잘 보는 능력을 뜻하지는 않을 게다. 21세기 교육의 으뜸 목표로 창의성을 들고 있는 걸 보면 세상 돌아가는 걸 아주 모르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일제고사가 과연 창의력을 길러줄까?

‘일제히’와 ‘창의적으로’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걸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걸 모른다면 그 ‘무개념’에 경의를 표할 일이지만, 아마도 모르지 않을 게다. 그럼에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 허둥대는 것은 말하자면 정신분열 상태에 놓여 있는 거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잘 먹고 잘 살려면 경쟁력은 있어야겠고, 그러자면 이제는 창의적이어야 하겠는데, 말도 예전처럼 고분고분 잘 들었으면 좋겠다는 거다. 참 어려운 인재다. 이런 인재를 기르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어르신들의 건강이 염려스럽고, 그들의 노고가 인재(人才) 아닌 인재(人災)만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까봐 더 염려스럽다.

_현병호(민들레 발행인)

 

2009년 3월 26일 목요일

책읽는사회 토론학교

책읽는사회 토론학교

 

사람은 토론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토론을 통해 성장하고 사회도 그러합니다. 개인의 발전과 사회활동에 토론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많은 분들이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을 위해서도 성숙한 토론문화가 필요합니다. 토론문화를 키우자면 무엇보다 토론교육이 활발해져야 합니다. 토론할 때 지켜야 할 경청의 예의는 시민의 기본 덕목입니다. 토론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견해를 밝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듣고 타인의 경험과 사유를 접하게 되며 자신의 생각을 넓히고 합리적 사고능력을 키웁니다. 이제는 논술교육을 넘어 토론교육이 모든 교육의 장에 활발히 도입되어야 할 때입니다.

 

지난 8년간 ‘기적의 도서관’ 건립을 비롯해서 도서관 인프라를 확장하고 독서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온 ‘책읽는사회’가 2009년 봄부터 ‘토론학교’를 엽니다. ‘책읽는사회 토론학교’가 각급 학교의 토론교육을 활성화하고 토론문화가 있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교육 현장에 계신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강 사: 여희숙 선생님

일 시: 2009년 4월 6일 ~ 6월 15일(10주, 30시간)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30분 ~ 10시 30분

장 소: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25-1 일석기념관 2층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강의실 ('찾아오시는 길' 참조)

 

대 상: 초중등 교사, 사서, 학부모, 일반시민, 독서지도 교사

접 수: 2009년 3월 18일부터 전자우편 접수

인 원: 입금자 선착순 50명 (마감 여부 전화로 확인 바람)

수강료: 16만원(교재 및 자료비 포함)

계 좌: 농협 301-0007-7981-71 (예금주: 책읽는사회)

문 의: 신영호 (책읽는사회문화재단 연구원, 독서문화프로그램 담당)

전화 3675-8793, 전자우편: bookculture3@gmail.com

홈페이지 www.bookreader.or.kr

 

주별 강의 주제

1. 왜 토론인가?

2. 토론, 무엇을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

3. 토론 전에 생각해야 할 몇 가지 원칙

4. 토론 안건은 어떻게 정할까?

5. 토론자들의 역할과 토론 전개 원칙

6. 토론의 형식과 종류, 판정에 대하여

7. 토론―준비에서 마무리까지

8. 수업시간의 토론과 독서 토론

9. 토론대회 열어보기

10. 마무리 특강

 

강사

이번 토론학교 강의를 맡게된 여희숙 선생님은 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마산, 하동, 광양, 포항 등지에서 22년 동안 일선 교사로 재직하면서 토론교육 분야를 실천적으로 개척했던 분입니다. 여희숙 선생님은 독서토론이니 토론교육이니 하는 말조차 없었던 20년 전부터 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학교 교실에 토론교육을 도입했습니다. 교사가 혼자 질문하고 답하는 수업이 아니라 학생이 던진 질문에 다른 학생이 답하도록 유도하고 토론을 통해 함께 답을 찾아나가는 여희숙 선생님의 남다른 교육법은 입소문을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독서와 토론 지도 전문가로 여희숙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2009년 3월 25일 수요일

내사...

학창시절을 기억하면, 거기 시 몇 편이 어른거립니다. 그 가운데서도 대동강물이 풀리던 때를 노래하던 정지상의 이별눈물은 꽤나 기억에 남을 만한 노래입니다. 눈물이 있어 가뭄 걱정은 없다는 시인의 과장은 정말 중국 사신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 사신이 오가던 길목이 그 시를 내걸어놓았더니 사신들이 찬탄을 했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묘청의 난에 참가하여 죽임까지 당하였다니.

 

하지만 학창시절의 시로서는 무엇보다도 청록집 시인들,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시는 빼놓을래야 빼놓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박목월 시인이 <나그네>라는 작품을 조지훈 시인에게 보냈다, 아니 조지훈 시인이 <완화삼>을 박목월 시인에게 보낸 것이다. 그런 논란도 흥미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고사를 준비하던 어떤 시험이던가요? <완화삼>의 한 구절인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이 시를 떠올리게 하는 시조는? 그런 문제와 만나곤 하였지요. (답은 이조년의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입니다. ) 말하자면 선생님께서는 그런 문제를 통해 유구한 시적 전통에 대해서 말씀해주고자 했을 것입니다. (아, 그렇게 심오한 뜻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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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338849.html

 

자, 문제가 나갑니다. 쓸데없는 문제입니다. <청록집>의 첫 시는 무엇입니까?

 

이건 정말 쓰잘데기(쓰잘데기는 쓰잘머리의 사투리라고 국립국어원이 밝히고 있지만, 지금까지 살면서 쓰잘머리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도대체 표준어란 무엇일까요?) 없는 질문입니다.

 

답은? <임>입니다. 박목월의 작품입니다. 그 첫대목을 오늘의 한 대목으로 고르고자 합니다.

 

"내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

2009년 3월 24일 화요일

배고픔과 바보스러움

2005년 스탠포드 대학 졸업식장에서 애플 컴퓨터의 씨이오인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행한  연설을 들었습니다. 연설문은 세 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입양, 대학중퇴,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니 실패인 것만 같은 고통의 시간들이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는 것, 일을 사랑한다면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으라는 이야기, 그리고 짧지만 소중한 삶에 대한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진솔하고, 진지한 연설입니다. 불과 몇 분 되지 않지만, 역시 스티브 잡스로구나 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대학 졸업식장에서 대학생활의 낙오자였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죽음의 고마움'을 통해 마음속에 새길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연설도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 연설의 마지막 문장이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Stay hungry, stay foolsih)"입니다. 오늘 이 문장을 마음속에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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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sogum92.tistory.com/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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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 때 이런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후 50살이 되도록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아니오! 라는 답이 여러 날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제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왜냐구요?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앞에서는 모두 밑으로 가라앉고 오직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기에 자신의 마음에 충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 의사들은 거의 확실히 치료가 불가능한 암이라고 했고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 달 안에 다 해치워야 된단 말이었고 가족을 위해서 모든 것을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하란 말이었습니다. 전 불치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암세포를 채취해서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가고 싶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사람들조차도 당장 죽는 건 원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을 것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삶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 죽음이니까요.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지금의 여러분들은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입니다.너무 극단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여러분들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낭비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대로 사는 것, 즉 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요, 타인의 잡음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마음과 직관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 만한 ‘지구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저는 이제 새로운 시작을 앞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분야에서 이런 방법으로 가길 원합니다. 배고픔과 함께 바보스러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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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은
http://news-service.stanford.edu/news/2005/june15/jobs-061505.html.

그 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UF8uR6Z6KLc

그런데 여기 누군가 번역문을 입혀 놓은 영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http://www.mncast.com/pages/player/new_fullplayer.asp?movieid=n200671403236&lp=-1&chknum=1

여기 길담서원의 게시판에는 그 원고까지 볼 수 있었습니다.

http://cafe.naver.com/gildam/1849

 

이 원고를 보시면, 제가 마지막 문장에서 제가 임의로 '미련함'을 '바보스러움'으로 바꾸었음을 아실 것입니다.

 

문장의 위기

오늘은 조금 꼬집어서 한 대목 인용하고자 합니다. 아직 저도 문장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어리벙벙이지만, 이런 문장을 만나면 정말 괴롭습니다. 요령부득입니다.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라는 하승우라는 분의 글입니다. <녹색평론> 2009년 3-4월호(통권 105호) 161쪽의 내용입니다. 제목은 '협동조합운동과 대안경제'입니다. 인용해보겠습니다.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던 사람들조차 신문이나 인터넷의 경제란을 유심히 살필 정도로 위기감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런 위기들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생태계 파괴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아주 근본적인 위기를 뜻한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정말 괴롭습니다. 두 문장 가운데 두번째 문장의 주어는 "이런 위기들"인데 "이런 위기"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습니다.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이런 위기"의 내용으로 읽어야 할 터인데, 과연 그런 것입니까?  "위기감이 퍼지고 있"는 현상을 파악하는 그 심도는 사람들의 관심사 변화의 정도로 파악되고 있음이 첫번째 문장의 내용일 것입니다. 과연 현실 위기, 위기감의 내용이란 그런 것입니까? 궁금합니다.

 

다시 두번째 문장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문장이 아닐뿐만 아니라 사유의 결과도 아닙니다. "이런 위기들은.... 아주 근본적인 위기를 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부족, 생태계 파괴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라는 일종의 부사절은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글쓴이가 진정 깊이 있는 사유의 영역에 기후변화와 에너지부족, 생태계 파괴를 다 포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런 문장이 씌어졌을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이미지출처:  www.marxists.org/subject/praxis/index.htm 이 이미지는 '프락시스'라는 이름을 이미지로 검색한 결과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슨 특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프

 

지행, 즉 앎과 함, 인식과 행동, 사유와 실천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엉성한 인식으로는 그 어떤 행동도 실천도 마냥 엉성해질 뿐입니다.

 

부끄럽습니다.저는 하승우라는 분을 여직 만나뵌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적하는 것은 문장의 위기일 뿐입니다. 하지만 바라건대 부디 지렁이나 굼벵이가 땅 위를 기어가듯 사유의 흔적을 남기면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온몸을 밀고 나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의 잘못을 겨우 눈꼽만큼이나마 바꾸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부질없는 글도 그런 기대의 표현입니다. '협동조합운동'이나 '대안경제'의 내용도 잘 모르면서 이런 지적을 하는 것,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2009년 3월 23일 월요일

꿈--루쉰

블로그 범주에 '하루 한 대목'을 만들고, 블로그 스킨도 1단 형식으로 바꾸었습니다. 포스트도 이제는 조금 짤막한 것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하루 한 대목'의 첫번째 포스트로 루쉰의 글을 골랐습니다.

 

이 대목의 '괴롭다'는 단어는 왜 그런지 저의 '괴로움'도 오랫동안 지속하게 만듭니다.

괴롭습니다. 잊어버릴 수 없어 괴롭습니다.

 

그런데 정말 젊었을 때 꿈을 꾸었던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문득 하게 됩니다.

정말 젊었을 때가 있었던 것일까? 꿈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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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출처: blog.aladdin.co.kr

 

나도 젊었을 때는 많은 꿈을 꾸었다. 나중에는 대부분 잊혀지고 말았지만, 그렇다고 별로 애석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추억이란 것은 사람을 즐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실가닥을 지나가버린 적막의 시간에 매어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그것들을 완전히 잊어버릴 수 없어 괴롭다.

 

--루쉰(魯迅ㆍ1881~1936), <외침訥喊> 서문에서

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이옥순 교수의 인도와 영어

1916년 2월 4일 베나레스의 힌두 대학 개교 기념식장에서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대학의 청년들은 자기의 고유한 방언으로 수업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자신의 반영이지요. 만일 우리의 방언이 가장 위대한 사상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빈약하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이 땅을 떠나는 게 낫소! (중략)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우리 말로 교육을 받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독립 인도에서 살고 있을 깃이며, 학식 있는 우리 동포들이 자기 나라를 외국처럼 느끼지도 않을 것이며 민족의 가슴에 말을 걸 수 있을 것입니다. (<힌두 스와라지> 151쪽의 주석에서)

 

오늘 우리는 민족의 가슴에 말을 걸 줄 아는 사람을 키워내고 있는 것일까?

 

이옥순 교수가 교수신문에 쓴 칼럼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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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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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옥순 연세대·인도근대사

 

 

[문화비평] 영어는 힘이 세다! 

 

연전에 인도에 있는 유명한 영어기숙학교를 방문했다가 재학생의 절반이 한국인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맹모를 능가하는 한국 엄마들의 교육에 대한 열성이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세상과 차단된 그 먼 히말라야 산중의 기숙학교에서 그들을 보니 반가움에 앞서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그 학교 뿐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인도의 웬만한 ‘좋은 학교’에서도 한국 학생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교육을 위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의 입장은 다양할 것이다. 입시위주의 국내 교육에 대한 반감과 그 대안적 선택일 수도 있고, 일찍이 영어로 공부를 시켜 자식을 무한경쟁의 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하려는 욕심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거의 다 현지교육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시설이 좋고 커리큘럼이 다양하며 교사진도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입시로부터 해방감과 영어가 능숙한데서 오는 만족감도 컸다. 

그럼에도 영어가 교육의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그 아이들을 만날 때도 찾아왔다. 교육학에 문외한인 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이방의 문화에서 성장하는 것의 문제를 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인도 근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영국이 인도에 부과한 영어교육의 목표와 그 부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알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우상’이 돼가는 영어교육에 대해 일말의 우려를 갖는 것이다. 인도에서 영토정복을 마무리한 영국은 19세기 전반에 제2의 식민화, 곧 인도인을 영국의 문화에 동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갔다. “일단 전함과 외교관을 보낸 뒤 영어교사를 보낸다”라는 말대로 영국이 시작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인도인에게 영어교육을 부과하는 거였다. 그 이유는 영어로 교육받은 인도인이 머지않아 “피와 피부는 인도인이지만 관점과 취향, 도덕과 지성은 영국인”으로 식민통치의 열성적인 협력자가 되리라고 여긴 때문이었다.

‘갈색 피부의 영국인’인 인도인들이 영국의 통치를 당연시하고 영국산 상품을 선호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거라는 전망은 영어로 교육받은 힌두들이 자기의 종교를 지키지 못하고 ‘갈색의 기독교인’이 될 것이며 “우리 문학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도의 젊은이들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여기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서 영문학이 학교와 대학의 학과목으로 채택된 건 그런 연유였다. 그 결과 양복을 입고 영어에 능통하며 영국적 취향을 가진 ‘유색인 영국신사’가 탄생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우리들의 정신은 유아시절부터 영문학으로 구성됐다”고 고백했듯이 초서와 밀턴을 읽으며 영어교육을 통해 이방의 문화에 노출된 그들은 점차 유럽을 선망하고 그 문화와 가치를 우수하다고 내면화하면서 “인도인의 복잡한 맘을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자신의 전통과 사회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세상이 촘촘히 연결되고 사람의 이동과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에 소통의 언어로서 영어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다. 식민지시대 인도인이 그랬듯이 영어를 배워 경제적 반대급부와 사회적 위상의 이동을 추구하는 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영어라는 창구를 통해 넓은 세계를 내다보고 배울 수 있는 이점도 크다. 험한 세상을 건널 ‘다리(橋)’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셈이랄까. 그러나 유용성만 강조되는 영어교육에도 이면이 없을 순 없다. 식민지시대 인도의 고등학생은 영어와 모국어를 배우는 데 주당 19시간을 들였다. 언어만 학습한 그들에게 큰 미래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목도되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강조도 청소년에게 다양한 걸 배우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영어가 성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영어에 투자 기회가 적은 계층이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갖지 못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의 기반인 문화와 전통에 동화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소외됨을 의미한다. 오늘날 영어로 ‘미드’를 보는 청소년들은 미국의 문화에 친숙해지면서 ‘우리의 것’에서 멀어진다. 피와 피부는 한국인이지만 관점과 취향은 거의 미국인인 그들을 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어교육에 목숨을 걸고 반대한 조상들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만에 우리는 영어에 의식마저 사로잡혀버린, 식민지적 무의식에 포박당하고 말았다. 언어는 때로 총보다 강하다.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교수신문> 09. 03. 17.

 


 

어린이에게 나온 것이니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라

권정생 선생께서는  "어린이에게 나온 것이니 모두 어린이에게 돌려주라"는 뜻을 남겼습니다. 그 뜻은 높고 높습니다. 그 뜻은 저처럼 어리숙하고 어리석은 사람으로서는 그 발끝에도 가까이 하기 어려울 만큼 잡된 것이 섞이지 않은 마음입니다. 권정생 선생은 속된 세상을 살았으되, 속되지 않았던 분이었습니다.

 

권정생 선생의 유언을 오늘 다시금 읽어보았습니다. 선생은 유언장에 남긴 것처럼 "용감하게" 죽었습니다. 부럽습니다.

 

그리고 이십대 청년으로 다시 태어나 어느 아가씨와 재미나게 연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봅니다. 혹시 주변에 어여쁜 아가씨 앞에서 쑥스러워하며 싱거운 웃음을 짓는 이가 있다면 얼굴을 한번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쑥스러워하는 청년,  바로 그이가 권정생 선생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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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 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 다녀 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 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짐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 저기 뿌려 주기 바란다.
  유언장 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 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 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 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0일 쓴 사람 권정생
  주민등록번호 370818-*******
  주소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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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에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출범한다는 소식이 올라왔습니다. 반갑게 옮겨놓습니다. 어여쁜 아가씨 앞에 앉은 청년처럼, 쑥스러워하며, 또 싱겁게 웃으며 좋은 일 많이 하시기를 멀리서나마 기원합니다. 일을 꾸리느라고 아마도 안상확 시인께서 수고 좀 하셨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해주십시오.



원문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life/344658.html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현판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뜻을 기리는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19일 경북 안동시 명륜동 재단 사무실에서 현판식을 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현판(사진) 글씨는 선생의 유언장과 소설 <한티재 하늘> 원고에서 집자를 하고, 판화가 류현복씨가 판각을 했다.

 

재단은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거기서 나온 것을 모두 어린이들에게 돌려주라”는 선생의 유언을 실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선생은 유언장에서 “심성이 착한 사람인 최완택 민들레교회 목사, 잔소리가 심하지만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한 정호경 신부,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 사람 박연철 변호사” 등 3명에게 뒷일을 부탁했다. 이 3명 가운데 정 신부만 건강상 이유로 빠지고 대신 이현주 목사, 아동문학가 강정규씨, 최윤환씨 등이 합류해 5명으로 이사진이 꾸려졌다.

선생이 남긴 10억여원의 유산과 앞으로 나올 모든 인세는 재단기금이 돼 남북한과 분쟁지역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에 쓰이게 된다. 선생이 살던 옛집은 조만간 보수해 선생의 2주기 때부터 작가들의 체험·창작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재단의 안상학 사무처장은 “물질적인 도움보다는 불우한 어린이들이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북돋우는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단은 선생의 2주기인 5월 17일 안동시 조탑동 선생의 옛집과 안동 일원에서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할 계획이다.

안동/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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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처를 내방해주신 문학평론가 손경목 선배께서 앞으로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누구의 글인지 분명하게 구분되도록 글에 색깔을 입히라고 꾸지람을 주셔서, 이후에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아뢰었습니다. 색깔을 입힌 글, 너그러이 보아주시기를. 제가 선택한 색깔은 녹색입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시도 음악도 ....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한류'라는 이름으로 외국의 관객과 시청자들을 매료시킬 때, 한 영화평론가는 사석에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어떻게 '한류'가 가능했는가를 설명하는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한류의 핵심은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이었다. '한류와 민주주의'라는, 언뜻 쉽게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두 항목이 실제로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작가 공지영 씨가 <시사IN>에 쓴 글을 읽어보면, 민주주의가 어떻게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게 된다.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가 너무 후진국이어서 우리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것과 싸우느라 청춘과 재능을 다 소비했어요."라는 말은 조금 과장된 면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청춘과 재능을 온전히 창조적인 일에 쏟아붓기에는 너무 할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이 없는 사회에서 상상력은 말라비틀어지고 만다.

 

촛불을 금지하면 생일 잔치의 촛불조차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작가들의 내면화된 검열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인권은 창조의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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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50#

 

인권위 축소하면 문화·예술 ‘뒷걸음’

소설가 공지영씨는 외국인에게 이렇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형제를 부활하려 하고 인권위를 축소하는 등 우리나라가 다시 ‘후지게’ 돼서, 예술가들이 다시 싸워야 해서 좋은 작품을 쓸 수 없어요.”

 

시사in [78호] 2009년 03월 09일 (월) 10:42:30 공지영 (소설가)

 

   
ⓒ뉴시스
3월5일 열린 ‘국가인권위 독립성 보장 및 지역사무소 폐쇄 저지를 위한 광주대책위원회’ 발대식 모습.

지난 10년간 나랏돈으로 해외여행 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문학번역원의 도움으로 내 책이나 글이 해외에 소개·번역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건 나뿐 아니라 우리나라 다른 작가들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는 굳이 번역원의 도움 없이도 해외 에이전시에서 종종 의뢰가 온다. 그들과 마주 앉으면 어김없이 내게 하는 질문이 있다.

“왜 공지영씨같이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의 글을 우리가 이제야 접하게 되었지요?”

나는 별로 놀라지 않고 대답한다.

 “아하, 그건 그동안 우리나라가 너무 후진국이어서 우리끼리 해야 할 이야기가 좀 있었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것과 싸우느라 청춘과 재능을 다 소비했어요. 하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인권을 보장하는 나라가 됐고, 인류 보편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이제 우리 작품이 당신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우리는 다른 문화 선진국에서는 고민하지 않던 고문·이데올로기·분단·독재와 싸웠지만 이제는 세계적인 자본주의의 횡포·기아·환경·생명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세계인이 공감할 한국의 작품을 많이 보실 거예요. 그 증거로 벌써 ‘한류’라는 게 시작됐고요.”

나는 자신있게 웃었고 그들은 그제야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평적이고 평화적으로 정권 교체한 것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물론 사형제의 실질적 폐지를 비롯해 인권 상황이 눈부시게 향상된 우리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슬며시 일본과 중국의 열악한 인권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이것이 설사 다시 정권이 수평적으로 교체된다 해도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다. 모든 것이 약간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해도 역사를 뒤로 돌리는 일은 없으리라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인간은 역사에서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말했다.

국회에서 열린 사형제 폐지 토론회에서 여당의 한 의원이 “이론적으로는 대통령과 지체장애자의 인권이 평등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라고 한 말에 충격을 받은 이후 “엠네스티의 권고는 한국 물정을 모르는 한 단체의 권고일 뿐이다”라는 발언에 이르기까지 충격은 거의 비현실적으로 계속되고 있다.

“당분간 ‘한류’는 제자리에서 맴돌 겁니다”

나는 정말로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가 그럴 능력이 없으면 내 동료나 후배가 그런 예술가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그것이 자동차 1000대를 수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인 줄 소설책 한 권 읽지 않고 일류 대학에 들어간 위정자들은 알까? 창작자는 권력자에게 빌붙기로 처음부터 작정하지 않은 한, 남의 고통에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좌니 우니 묻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인권위가 나서서 고통받는 가여운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을 돌보아주었을 때,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진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나는 앞으로 또 다른 해외 에이전시와 마주 앉게 될 때 그들에게서 이런 얘기를 듣고 싶지는 않다. “공지영씨의 요즘 작품을 우리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찌 대답하게 될까?

“네, 요즘 우리나라가 다시 후지게 돼서 우리는 다시 그것과 싸우고 있어서 그래요. 세계 140개국에서 사실상 폐기된 사형제를 부활한다고 하고, 준(準) 국제기구인 인권위를 축소한다고 하니, 예술가들이 다시 그걸 말해야 하니까요.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시도 음악도 도도하던 ‘한류’는 당분간 제자리에서 맴돌 겁니다. 어떡하죠?”

 

 

권영국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그림출처:  http://blog.naver.com/artline7?Redirect=Log&logNo=120062257728

 

 

펄럭이는 그대 - 권영국 선생을 보내며

도종환

 

그대가 있어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대가 있어서 우리가 한 시대를 덜 부끄럽게 살았습니다
우리의 맨 처음이고 맨 앞이던 그대
우리가 깃발을 들기 두려워하고 주저할 때면
스스로 깃발이 되어 맨 앞에서 펄럭이던 그대
우리가 한 발짝을 먼저 디디면
열 발짝 앞서 있어서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던 그대
먼저 깨닫고 먼저 준비하고
먼저 고난 받던 그대
그대에게 우리는 갚지 못한 빚이 있습니다
그대의 낙천주의 옆에서 함께 웃음을 나누어 먹으면서도
그래서 늘 미안하였습니다
그대가 홀로 힘들어하며 미륵의 계곡을 오르거나
폐허의 서쪽으로 한없이 걸어가고 있는 걸 보았을 때도
그대를 다만 지켜볼 수밖에 없어 마음 아팠습니다
오늘도 먼저 가는 그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어 미안합니다
그러나 대열 맨 앞에 서서 저지선을 향해 나아가다
곤봉에 머리를 맞아 낭자하던 선혈
그 흐르는 피를 싸매던 손수건을
나는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대가 떠난 뒤에도 나는 이 세상에 남아
그대의 핏자국과 함께
피 흘리며 지켜낸 한 시대와 함께
그대를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절망의 텃밭을 어떻게 희망으로 일구어 가는지 알려주고
고난 속에서도 우리가 왜 웃으며 일해야 하는지 보여주고
지금 어렵게 시작하는 일이
나중에 어떤 의미가 되는지 일깨워주고
열정이 우리를 생의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말해주며
서둘러 떠나는 그대
펄럭이는 펄럭이는 그대
그대의 이름을 오래오래 기억할 것입니다

 

시 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4419.html

 

15일 새벽 지병인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권영국(52) 선생은 공주사범대 재학 시절 광주민중항쟁을 주도했다가 구속됐으며 1989년 5월 전교조 충북지부 초대 지부장을 맡아 해직되는 등 참교육을 뿌리내리는 데 힘써 ‘행동하는 교육자’로 지역 사회의 존경을 받아왔다. 동료 교사 등은 16일 저녁 7시 충주 장례식장에서 추모의 밤 행사를 열었다. 발인은 17일 오전 7시. (043)840-8492.

 

권복기 기자

권복기 기자는 한겨레 신문의 건강과 공동체 담당 기자다. 매주 화요일 16면 생활2.0에 우리나라 방방곡곡 건강과 공동체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퍼올리는 이다. 한겨레 신문과 함께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캠페인을 전개할 때 내 짝꿍이 되었던 이다. 꽤 오래 전부터  NGO 활동가로 살면서 뭉쳐져 있는 간사들의 몸과 마음을 짧은 시간이나마 풀어주면 좋겠다고 권 기자가 말했었는데, 일전에 통화하면서 시간 약속을 잡아 월요일 간사회의 이후의 짧은 시간을 내어 권 기자의 체조법을 배우고 소중한 강의를 들었다. 강의 제목은 '권복기 기자의 몸과 마음의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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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들이 '권복기 기자님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반기는 글씨를 현관이 써붙였다. 사진: 안찬수


 

그이의 생각에 따르면 공동체보다 건강이라는 말이 더 크게 사람들을 감싼다고 한다. 몸이 병들고, 마음이 병든 것은 우리의 사람살이가 병들었기 때문이다. 이 병을 치유를 해야 한다.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그런 질문들이 권 기자의 기사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 문명사회에 찌들어가는 현대인들의 병이 어떤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인가를 탐구해보면, 그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이고 사회의 문제다. 그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질병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법일뿐만 아니라 사회의 근본적인 치유법이 된다는 것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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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복기 기자와 간사님들. 사진: 안찬수

 

권 기자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음식, 건강, 숨, 잠, 마음"을 다스리려 함을 이야기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병이 나고, 낫는다고 말하였다. 여러 가지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사례나 면역학+신경학+심리학이 하나로 통합되는 최근 서양 의학의 변화도 곁들이면서 마음의 건강이 몸의 건강에 직결된다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바쁘게 또 다른 취재처로 이동하기 위해 사무처를 나가면서, 권 기자가 간사들에게 한 마디. "미소를 지으세요! 미소를 지으면 얼굴 근육이 다 풀어져요. "

 

지난 해부터 권복기 기자가 주도하여 한겨레자연건강학교를 열고 있는데 사람들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권복기 기자의 건강한 세상 누리집: http://community.hani.co.kr/

권복기 기자의 자연건강학교 블로그: http://blog.hani.co.kr/health9988/

 

 

읽고 생각한다-독이고

어제 그러니까 2009년 3월 16일 여러 언론매체에서 경희대 한의과대학이 올 신입생들에게 '독이고'라는 이름이 붙은 독서노트를 나누어주고, 추천된 고전 2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는 것을 보도했다. 최승훈 학장은 "여러분이 독서를 통해 읽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한다"며 "새 독서프로그램이 여러분과 단과대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고, 조인원 총장도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학문 간 소통에 크게 도움이 된다"며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어 한의학 발전을 이끌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신입생들이 예과 2년 동안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은 독서계의 화제가 될 만하다. 도대체 어떤 책들을 앞으로 한의사가 될 학생들에게 내놓은 것일까. 추천도서는 ‘금강경’ ‘논어’ ‘대학’ 등의 동양고전, ‘군주론’ ‘꿈의 해석’ ‘그리스 로마신화’ 등의 서양고전, ‘과학혁명의 구조’ ‘상대성이론’ 등 자연과학서적, ‘국부론’ ‘유토피아’ ‘자유론’ 등 사회과학서적, ‘간디 자서전’ ‘이방인’ ‘토지’ 등 인문학 관련 서적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경희대 한의과대학 누리집(http://omc.khu.ac.kr/)에 들어가보니 "<한의대 추천도서 100권>은 학업 역량 강화 및 한의학 관련 소양 집중 배양에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100권을 소개해놓고 있다.

 
다음은 <한의대 추천도서 100권>의 목록이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책들도 있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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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문진보 黃堅(황견) 편찬 동양고전
2 관자 동양고전
3 금강경 동양고전
4 노자 동양고전
5 논어 공자 동양고전
6 대학 공자 동양고전
7 맹자 맹자 동양고전
8 법구경 동양고전
9 사기열전 사마천 동양고전
10 손자 손자 동양고전
11 여씨춘추 여불위 동양고전
12 Upanisad(우파니샤드) 동양고전
13 莊子(장자) 莊周(장주) 동양고전
14 周易(주역) 동양고전
15 中庸(중용) 子思(자사) 동양고전
16 天符經(천부경) 동양고전
17 淮南子(회남자) ..安(유안) 동양고전
18 “國富論(The Wealth of Nations: 국부론), 1776 Adam Smith 사회과학
19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사회과학
20 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사회과학
21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다치바나 다카시 사회과학
22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사회과학
23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문명의 충돌), 1996” Samuel Huntington 사회과학
24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문화의 수수께끼), 1982” Marvin Harris 사회과학
25 “Democracy and Education (민주주의와 교육), 1916” John Dewey 사회과학
26 “Revolutionary Wealth (富의 미래), 2006” Alvin Toffler 사회과학
27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사회과학
28 “The Persian Wars (역사), BC 440” Herodotus 사회과학
29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1992” Helena Norberg Hodge 사회과학
30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999” Jean Ziegler 사회과학

31 “Utopia, 1516” Thomas More 사회과학
32 “On Liberty (자유론), 1859” John Stuart Mill 사회과학
33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1989” Todd Buchholz 사회과학
34 “L’ARTE DEL COMANDO (The Art of Commanding: 지도자의 조건), 2002” Francesco Alberoni 사회과학
35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총, 균, 쇠), 1997” Jared Diamond 사회과학
36 한국 현대사 60년 서중석 사회과학
37 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사회과학
38 “Il principe (The Prince: 君主論), 1532” Niccolo` Machiavelli 서양고전
39 “The Age of Fable, or Stories of Gods and Heroes (그리스 로마 신화), 1855” Thomas Bulfinch 서양고전
40 “Die Traumdeutung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꿈의 해석), 1899/1900” Sigmund Freud 서양고전
41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The Social Contract, Or Principles of Political Right: 사회계약론), 1762” Jean-Jacques Rousseau 서양고전
42 “The Story of Art (서양미술사), 1950” Ernst Hans Josef Gombrich 서양고전
43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And Its Connection with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Day (서양철학사), 1945” Bertrand Russell 서양고전
44 聖經(성경) 서양고전
45 “Histoire de la sexualite (The History of Sexuality: 性의 역사), 1976-1984” Michel Foucault 서양고전
46 (소크라테스의) Apology (변명) Plato 서양고전
47 “Kritik der reinen Vernunft (Critique of Pure Reason: 순수이성비판), 1781” Immanuel Kant 서양고전
48 “The Divine Comedy (神曲), 1308-1321” Dante Alighieri 서양고전
49 자기로부터의 혁명 1982 Jiddu Krishnamurti 서양고전
50 “Capital (자본론), 1867,1885,1894” Karl Heinrich Marx 서양고전
51 “L’evolution creatrice (Creative Evolution: 창조적 진화), 1907” Henri-Louis Bergson 서양고전 52 100가지 민족문화 상징사전 주강현 인문학
53 “(The) Fabric of the Cosmos: Space, Time,
and the Texture of Reality (우주의 구조), 2005” Brian Greene 인문학
5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인문학
55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인문학
56 茶山文選(다산문선) 丁若鏞(정약용) 인문학
57 무의식의 분석 Carl Gustav Jung 인문학
58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인문학
59 생각의 지도 최인철 인문학
60 雪國(설국) 가와바다 야스나리 인문학
61 세계종교 둘러보기 오강남 인문학
62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인문학
63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안정효 인문학
64 철학과 굴뚝 청소부 이진경 인문학
65 土地(토지) 박경리 인문학
66 “Autobiography: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간디 자서전), 1927” Mahatma Gandhi 인문학
67 Faust Johann Wolfgang von Goethe 인문학
68 Hamlet 1599-1601 William Shakespeare 인문학
69 Noam Chomsky - on nature and language(촘스키-자연과 언어에 관하여) 이두원 역 인문학
70 “Opening Skinner’s Box :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04” Lauren Slater 인문학

71 “The Brothers Karamazov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1” Fyodor Dostoyevsky 인문학
72 “The Catcher in the Rye, 1951” Jerome David Salinger 인문학
73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1999” Thomas L. Friedman 인문학
74 “The Metamorphosis (변신), 1915” Franz Kafka 인문학
75 “The Stranger, The Outsider, (L’Etranger) 1942異邦人(이방인)” Albert Camus 인문학
76 “Genome, 2006” Matt Ridley 자연과학
77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과학혁명의 구조), 1962” Thomas Samuel Kuhn 자연과학
78 “Complications: A Surgeon’s Notes on an Imperfect Science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2002” Atul Gawande 자연과학

79 “Our Inner Ape 내 안의 유인원, 2005” Frans de Waal 자연과학
80 “Linked: The New Science of Networks 링크, 2002” Albert-La’szlo’Baraba’si 자연과학
81 “면역혁명, 2003” 아보 도오루 자연과학
82 몸과 우주 유아사 야스오 자연과학

83 “Der Teil und das Ganze 부분과 전체, 1969” Werner Heisenberg 자연과학
84 “Newton Highlight (상대성이론), 2006” Albert Einstein/Newton Press 자연과학
85 “The Turning Point: Science, Society, and the Rising Culture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1982” Fritjof Capra 자연과학
86 “Spark of genius 생각의 탄생, 2001” Robert Root-Bernstein 자연과학
87 “What is Life? and Mind and Matter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음과 물질, 1967” Erwin Schrodinger 자연과학

88 One Renegade Cell : How Cancer Begins (1998) 세포의 반란 Robert S. Weinberg 자연과학
89 “The Nature of Space and Time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1996” Stephen Hawking & Roger Penrose 자연과학
90 “(The)secret life of plants 식물의 정신세계,1973” Peter Tompkins & Christopher Bird 자연과학

91 “Entropy: A New World View 엔트로피, 1980” Jeremy Rifkin & Ted Howard 자연과학
92 “The Selfish Gene 이기적 유전자, 1976” Richard Dawkins 자연과학
93 The Double Helix (1968) 이중나선 James Dewey Watson 자연과학
94 Why we age? 인간은 왜 늙는가? 1999 Steven N. Austad 자연과학
95 “On the Origin of Species 종의 기원, 1859” Charles Darwin 자연과학
96 “The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Joseph Needham 자연과학
97 “Chaos im Universum 카오스와 코스모스, 2001” Joachim Bublath 자연과학
98 “Cosmos, 1980” Carl Edward Sagan 자연과학
99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통섭, 1998” Edward O. Wilson 자연과학
100 “iCon: Steve Jobs, the great second act
in the history of business (2005) iCon 스티브 잡스” Jeffrey Young & William Simon 자연과학


※비고:동양고전 17, 서양고전 14, 인문학 24 자연과학 25 사회과학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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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뉴스에 대하여 경향신문의 유병선 논설위원의 짤막한 칼럼.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61814225&code=990201

 

(경향신문 2009. 03. 17) [여적]경희 한의대의 독이고(讀而考)  유병선 논설위원

 

 

요통(腰痛)은 허리가 아픈 상태다. 양방에서는 X선이나 MRI 촬영을 해 뼈나 디스크에 이상이 없다면 근육통에 대한 치료를 한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이완제나 환부에 물리치료를 처방하는 식이다. 한방(韓方)은 다르다. 환부를 손으로 짚어보고(촉진) 맥을 살핀(진맥) 뒤, 음양의 조화가 어디에서 어떻게 깨어졌는가에 따라 처방한다. 아픈 허리가 아니라 다리의 경혈(經穴)에 침을 놓아 기의 흐름을 좋아지게 하거나, 오장육부의 흩어진 조화를 되살려주는 보약을 지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양의와 한의는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한방에선 ‘양기(陽氣)가 허(虛)하다’고 진단되면, 음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양기를 보하는 치료법이 쓰여진다. 중국 고래의 음양론에 바탕을 둔 전통 한의학은 질병을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상태로 여겨, 음양의 균형이 회복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의의 한 갈래인 사상의학(四像醫學)은 사람의 체질을 태양·태음·소양·소음으로 나누어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혁신 한방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음양의 조화와 기의 순환을 기본으로 삼기는 마찬가지다.

음양론의 오묘함만큼이나 한의학을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음양론의 ‘ㅇ’도 모른 채 서양 과학을 교육 받다가 느닷없이 한방 세계로 들어서는 한의대 학생들이 받는 문화적·철학적 단절은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음양론을 자석의 음극·양극과 같은 원리로 받아들인다면 ‘양기가 허하다’는 진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리적으로는 음과 양이 같이 움직이지 한쪽만 상대적으로 약해지거나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적분 풀며 물리학만 배운 학생들을 여하히 음양론과 인술(仁術)의 세계로 이끌 것인가가 한의대의 고민이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어제 ‘추천도서 100권 선포식’을 열었다. 올 신입생들에게 ‘독이고’(讀而考, 읽고 생각한다)라는 독서노트를 나눠주고, 예과 2년 동안 추천 고전(古典) 가운데 2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좋은 한의가 되려면 우주와 자연과 사람에 대한 깊고 폭 넓은 이해를 해야 하는데, 고전 읽기만한 게 없다고 본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과 인문·과학까지 읽고 궁리(窮理)한 한의사가 진맥을 한다면 한결 믿음이 갈 것 같다.


2009년 3월 16일 월요일

꽁치구이와 인문학

제목이 우선 눈에 확 들어왔다. 백원담 교수의 글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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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51829415&code=990509

 

(경향신문 2009.03.16)[경향포럼]꽁치구이와 인문학

 

우리 동네엔 꽁치구이가 유별난 밥집이 있다. 그 집 꽁치는 파랗고 탱탱한 살집이 일품으로 출출한 발길이 그 구수한 유혹을 떨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열흘 전 일이다. 자르르 맛깔난 꽁치구이 한 점을 막 집어들려는데 좀처럼 술을 입에 대지 않던 아줌마가 반쯤 남은 소주병을 들고 와 잔을 권하며 탄성처럼 말을 토한다. “돈벼락 좀 맞았으면….” 들어서면서부터 건장한 어깨의 아저씨와 대거리하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더니 이어지는 아줌마의 한숨소리. “우리 같은 사람 은행에서 돈 빌려주나. 사채를 썼거든요. 두 몸뚱어리를 부지런히 움직이면 되지 싶었는데, 가게를 반으로 줄였지만 턱에도 안 차네요.”

성찰과 참 삶 제시해야할 인문학

며칠 후 걱정스러움에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아저씨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 어깨는 아줌마를 찾아내라며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결해야 한다고 협박이니 차마 앉아있기가 불안한 지경이다.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쪽인 이들 부부의 삶은 고단하기 짝이 없다. 때로 후줄근하게 들어서면 어김없이 그 멋진 꽁치구이로 오랜 친구보다 가깝게 일상의 무게를 나누어 지던 이들과 어느새 칠년지기가 되었건만 돌아오지 못하는 아줌마는 어디서 이 차가운 봄비를 홀로 맞고 있는지.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해도 가족이 생이별을 하고, 생존조차 어려운 곤경은 비단 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 우리 사회의 만연한 병고, 보편적 피해양상이다. 최근 용산의 참사는 그 극명한 표현일 것이다. 노동의 유연화라는 미명으로 불완전고용을 당연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전횡에 일자리를 잃기 무섭게 개발주의의 광풍에 평생의 업을 강제몰수 당하는 상황에서 결국 가파르게 선 곳이 건물옥상이라는 사실. 거기서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해주어야 할 공권력의 탄압으로 죽음을 맞은 사회적 타살의 참상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들의 오늘의 처지를 절박하게 타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참담한 상황에서 사회와 인간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올바른 가치 지향의 제시를 본분으로 하는 인문학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늘의 사회와 대학에서는 고고한 인문학자가 아니라 ‘교양 있고 조리 있는 제너럴리스트’에 대한 수요가 더 크다. 인문 가치, 인문학적 상상력, 이런 것들은 경제의 문화화 과정에서 이윤창출을 높여주는 고감도 광고카피 혹은 문화 콘텐츠산업에서 상품가치로만 효용될 뿐이다. 그야말로 인문학의 존립과 인문학자의 생존 자체도 어려운 실정이다.

참담한 현실서 인문학은 어디에

그러나 TV 드라마조차 사람들에게 꿈을 꾸어라도 보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문학은 사회적 생존의 조타수로서 지배문화의 수동화논리에 끈질기게 대항하는 한편 돈벼락이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향타를 제시하는 데 부심해야 할 것이다. 지루하게 책임공방을 조장하며 생존전선을 무력화하는 정부의 무도함과 무책임함을 날카롭게 적시해내고 사람들의 생존권과 생활권을 폭력으로 짓밟는 자본의 무한 전횡, 그것을 미화하는 안팎의 지배논리, 그 표상체계와 끈질기게 맞붙으면서 노동의 가치가 올바로 구현되는 희망의 사회상을 삶의 현장에서 찾아나서는 일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성찰과 희망의 인문학이 아니라면 그것이 삼삼히 밥상에 올라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는 꽁치 한 마리의 살점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백원담 | 성공회대·중어중국학과 교수>

2009년 3월 15일 일요일

김명신 선생의 북유럽 교육 탐방기

얼마 전에 한겨레21의 권태선 논설위원이 쓴 북유럽의 교육에 대한 글을 이 블로그에 스크랩 한 적이 있었다. 북유럽 교육을 둘러본 이들의 답사기가 반갑다. 프레시안에는 김명신 선생(문화연대 공동대표)의 글이 또 다른 시리즈로 올라오고 있다. 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칼럼 가운데 3꼭지를 옮겨놓는다. 김명신 선생은 지난번에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토론회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다. 단아한 분이다. 이 글을 읽으며 신문사에서 훈련받은 기자나 논설위원과는 다른, 어쩌면 생활현실에 밀착된 시민운동가의 시각이 더 정확하게 사태의 맥락을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첫머리에서 김명신 선생은 미래학교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학교 관계자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학교의 현황 등을 설명할 때 수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다양성에 대한 갈급함이 전해진다. 그런데 나와 같은 독자로서는 김명신 선생의 둘째 아이가 했다는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이 '비난'을 들으며 몇 년 전에 미국의 도서관문화 탐방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뭔가 우리에게 갈급함이 있는데--그것이 교육이든, 도서관이든, 정치든, 경제든--그만큼 갈급하기 때문에 문제를 찬찬히 그리고 천천히 풀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외국 탐방이나 시찰이 백 년 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시리즈 글의 마지막에서 김명신 선생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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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9173149&Section=03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내친 김에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왜 이번에 핀란드를 가는지 궁금해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교육단체들 사이에서 갈수록 시장화되는 한국 교육에 숨이 막힐 지경이면 늘 단골메뉴로 핀란드 교육이 화제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부러움과 절망이 교차했다.

인구 500만 명으로 합의를 존중하는 핀란드. 인구 5000만 명의 다양한 집단 가운데 이미 교육문제가 이념문제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핀란드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내게 연세대 민경찬 교수가 전화로 당부했다. "그들의 상황과 한국 상황은 너무도 다르니 감안하고 보시라."

▲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김명신


나는 이번 여행을 대학생이 된 두 아이와 함께했다. 두 아이에게 맡긴 역할은 통역 보조였지만 그보다는 교육운동을 하는 엄마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교육 공공성, 한국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교육 공공성을 함께 보고 배울 기회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두 아이 가슴에 핀란드와 스웨덴 교육이 어떤 인상이 남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육운동하는 부모로서 절박한 심정으로 그 애들이 겪은 경쟁 교육, 입시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고스란히 경쟁의 한국 교육을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두 나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여러 급별 학교를 방문하여 그 학교의 설립 취지와 운영 방식을 듣고 교내를 돌아보고 질의 응답하는 것이 주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면서도 교육에 시장화 바람을 도입하려는 스웨덴 국가교육청을 방문하고, 교육이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된 핀란드 지자체협의회 등을 방문해 그들의 교육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분주하고 빡빡한 일정이었다.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한 이번 탐방 길에서 오고간 시간을 합한 9일 동안, 관광이라고는 도합 6~7시간이었으니 이번 여행에 한국 교육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 방문 목적이 대강 짐작이 가리라.

작은 아이는 한시도 쉴 틈 없이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서두르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지만 우리 어른 일행은 그만큼 절박했다.

여행 일정상 먼저 둘러보게 된 스웨덴, 그 첫날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에서 겪은 인상적인 일이 기억난다. 우리 일행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받을 때 각자 다른 유형으로 내용을 기록했다. 노트북에 적는 사람, 메모하는 사람,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영상으로 담는 사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그것을 본 그 학교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은 그렇게 개별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아마 그 장면이 여행의 의미의 처음이자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스웨덴에서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 ⓒ김명신


민주적 가치에 바탕을 둔 스웨덴 교육

스웨덴은 작은 나라로서 인재 양성이 주요 정책 과제이다. 국가가 새로운 인재 유형을 수립하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 교육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서로에게 민주주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오늘의 교육 목표가 내일의 시민을 만드는 것이며 학생의 창조성, 비판적 사고, 자기 신뢰, 사회적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식장인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를 안내하던 한국 이민자이자 그곳 중학교 교사인 한인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시의회장은 사방 막힌 벽이 아닌 양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국민의 의견이 의사당 열린 창으로 들어오고 의회의 결정이 열린 창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또 의사당 좌석 배치가 한 면은 호수를 보이는 멋진 전경이나 호수를 등에 지고 앉는 이들을 위해 맞은편 벽에 아름다운 장식을 해놓았다. 누구도 우연히, 필연적으로 불평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이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 ⓒ김명신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1989년 교육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교육의 목표를 정하고 지방정부는 이러한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고 책임을 진다. 9학년 동안 의무교육을 하는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한다. 이를 두고 미국의 일부 교육평론가들은 스웨덴은 의무교육 기간을 최소한으로 두면서 개인의 자율을 존중한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스웨덴 사회도 변화가 일어 유럽연합(EU)에 가입했고, 국가 기간산업에 민영화 바람이 불었으며, 이민자가 급속히 늘어 10%에 달하게 되었다.

스웨덴은 경제 구조 개편과 효율성을 교육에 연결해 '경쟁'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일부에서 경쟁은 좋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시장 중심적 운영체제를 도입했다.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 '쿤스캅 스쿨'을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자율학교는 운동장 없는 빌딩에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강남 학원 내부 같은 전경이었다. 이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학생 개개인의 교육 성취 목표를 정하고 이를 철저히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이 기계처럼 매주 진보하는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무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핀란드와는 달리 교육 정책에 신자유주의를 일부 도입한 스웨덴은 현재 교육 공공성을 바탕으로 교육에 시장 방식을 도입한 학교,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교, 공공성이 장점인 학교 등 세 종류의 학교 그룹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웁살라 대학에서 만난 스톡홀름 교육청의 황석준 선생님은 스웨덴 내에서도 시장화된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며 우려했다. 이에 교원 차등연봉제, 기업이 참여하는 학교를 설립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핀란드는 단위학교결정권이 있는데 반해 스웨덴은 지역교육청의 감사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핀란드에 비해 학력이 뒤처지는 이유, 스웨덴 교육의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현재로서는 기업학교의 성과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국민 사이에 부정적인 인식은 있으나 큰 저항이 없는 것은 굳건한 사민주의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임금이나 고용 여건이 평등하기 때문에 교육 정책에 일부 시장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한국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남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를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김명신


한국 정부도 교육 개방을 통해 외국의 학교법인이 이익금을 송금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의 사학재단도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학재단들은 그나마 있는 사립학교법을 아예 없애려고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서는 자율형 사립학교, 차터 스쿨 개념을 당연시하는데, 정부는 호시탐탐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교육운동단체는 이를 막으려고 전선을 치고 있다.

한편, 스웨덴은 복지국가답게 교육 취약대상자인 여성, 지역, 노동계층에 동일 교육기회를 주려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식기반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볼로냐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 교육의 국경을 없앴다. 이번에 보니 스웨덴과 핀란드도 그 무렵부터 잘못된 교육을 고치도록 노력했고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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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0203739&Section=03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화염병과 휴대전화의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호수와 숲의 나라이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선전화를 설치하다가 전봇대를 세우며 자연이 파괴되자 무선전화로 획기적으로 바꾸었다고한다. 그 결과 노키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 강국이라도 길거리에서 휴대전화을 꺼내든 이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은 꼭 필요한 전화만 하는 듯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으로부터 700년이라는 오랜 식민지를 거쳤지만 자신들의 언어를 간직한 강인하고 생존력이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화염병이 세계 최초로 생겼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 탱크에 화염병을 몇 개씩 투척해 그들을 막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잘 단결하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사회 시간에 배운 바로는 '핀란드는 분단국과는 교류를 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다가 이후 북쪽과 남쪽 모두 외교를 터서 중립국도 아닌 것이 외교 방식이 낯선 먼(?)나라'로 암기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부터 핀에어라는 직항기가 인천과 헬싱키 직항로가 개설되어 8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국가가 되었다. 지도상에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그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오랜 식민지 기간을 거치다보니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 제도가 있을 리가 없어서 스웨덴과 독일로부터 교육 제도를 수입했는데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자 자신들만의 교육 개혁을 찾아 나섰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통합고등학교 제도를 도입해 학생을 독일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는 것을 피하고 통합 교육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려 애썼다. 특히 1등하는 아이보다는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을 쏟아 위해 평균 학력을 높여 나갔다. 중학교 시기에 학급당 인원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학력차를 보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핀란드도 인구의 도시 집중을 막을 수 없어 날씨가 온화한 남부 해안가에 발달한 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모여들고 이에 따라 학교 간 학력차를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고 한다.

 

▲ 핀란드 라또까르따노 학교. 교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눈썰매를 끌어주고 있다. 아주 춥지 않은 한 겨울철 실외활동은 필수이다. ⓒ오영희


스웨덴과 핀란드가 교육 개혁에 나선 이유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가 교육 개혁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EU국가로서 두 나라의 생존이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위협에 직면한 국가로서 생존에 온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도 유아 교육의 확대, 교사 수준 향상, 부시 정부가 내세운 경쟁 교육 정책의 보완 등을 내세웠다. 교육이 사회 발전에 근본이고 변하지 않고는 도태됨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시장화라는 잘못된 길을 택했으되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핀란드는 그 과제를 국민의 계층 갈등으로, 서열화와 분열로, 구시대적 삽질로 풀지 않고 통합 교육으로 평등성이 담보된 교육 정책으로 풀어 나갔다. 교육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바탕으로 인간 관계안에서의 협동, 자발성과 흥미와 서실과 양심 등 두 나라 모두 각각의 철학과 경제수준에 맞게 최선을 다해 유아부터 직업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특별한 신경을 쏟고 있었다.

특히 두 나라는 '학력'이란 개념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학력을 주입식 교육을 넘어 문제 해결력과 소통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 파악하고 개인의 소양과 역량을 키운다는 것으로 점차 개념을 넓혀가는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지만 그들의 확장된 학력 개념을 접할 때 절로 무릎이 쳐칠 정도였다. 학력 개념 속에는 소통 능력과 시민성을 포함시키며 두 나라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PISA 시험의 의미

세계 각국이 2000년부터 시작된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시험 결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험이 단순히 주입식 학력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 해결력과 그밖에 창의성, 학습에 대한 태도와 지적 호기심 등 여러 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써 점차 한 나라 교육 정책 결정에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얼마전 독일이 PISA 시험 순위가 몇 단계 향상되어 국가적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을 그무렵 독일로 안식년을 갔던 정현백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문인데 한국은 성적이 좋아도 좋은 줄을 모르고 칭찬에 인색하며 교육을 타박만 하니 아쉬움이 크다.

핀란드의 세계적 학업 성취가 화제가 되고 그들의 교육 방식과 한국 교육 방식 사이에 큰 차이가 부각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핀란드에서 중등학교협의회 회장인 피터 교장선생님이 방한하기도 하고 헬싱키 대학의 OECD PISA 토미 연구원과 야리 교수등 관계자가 방한하여 핀란드가 최고의 국제적인 학력으로 우뚝 서게 된 배경에 대해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맘때 문화방송(MBC) 에서는 <열다섯 꿈의 교실>이란 특집방송을 통해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을 집중 조명하며 비교하기도 했다. 두 나라 똑같이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한국은 가장 공부를 많이 해서 얻은 학력이고 하나는 공부에 목을 매지 않고 얻고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얻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방송 중 PISA 관계자는 말했다. "그 이유는 한국 교육의 경쟁과 핀란드 교육의 협력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망치로 머리를 탕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년 내 그 말이 내 속에 맴돌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경쟁은 스포츠에서나 있다."

낙오자 없는 핀란드 교육

핀란드 교육에 낙오자는 없다. 같은 배를 탄 학생들이 하선하지 않고 무사히 안전한 항구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적이라고 얼마 전 방한한 요우니 교수가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일제고사 존재 자체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를 반대한 교사들이 해고를 당했다는 대목에서는 더욱 비판을 했다. 핀란드 학생도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도 치르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0대로서 감당해 낼 수 있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한국보다 훨씬 덜 불행한 10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험은 학생의 서열을 정하기보다 내가 학습하는 태도, 내가 아는 것을 점검해보는 학습의 과정으로 존재한다. 고교 졸업 무렵 다시 한 번 시험을 봐서 대학에 진학한다.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크든 작든 밝고 따뜻한 현관을 가지고 있었고 교장실은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한구석에 자리했다. 각 교실마다 다양한 밝은 천의 커텐이 각 교실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며 부드러운 변화를 주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학처럼 넓은 카페테리아가 학교의 중심에 자리한 학교도 있었다.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는데 마침 눈이 온날이라 운동장에서 흥겨운 눈썰매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방한복을 입고 눈밭에 나가 뒹굴며 놀았다. 모든 아이들은 여벌의 방한 방수 옷을 두고 다니며 놀이에서 돌아와서는 건조시켜 다음날을 대비했다.

학교를 개축하느라 임시교사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밖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교실 안은 따뜻해 일부 학생들은 반팔차림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때부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교사, 학생,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고 교육목표를 공동으로 세운다. 교사가 사회적으로 신뢰받으므로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는 그다지 필요치 않으며 대신 개별 학생의 학습 목표를 논의하거나 교육 과정을 의논할 때 학부모는 반드시 참여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자협의를 통해 개별 학생에게 필요한 공부와 진도를 선택하고 결과를 점검하고 다시 한번 학습 계획을 협의해 나간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중3때 전국시험을 봐서 진학한다. 약간의 선호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집근처 학교에 진학하고 5킬로미터(㎞) 이상 통학할 경우 국가에서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무학년으로 각자 필요한 코스를 이수하도록 했다. 중3때, 고3때 시험을 치룬다.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1000여 명이 가까운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어서 대학생처럼 고등학교에서는 18개 코스를 정해 이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건물은 방사형으로 지어져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한 중앙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분산되게 설계되어있다. 체육이 필수 과목이라 중요시하고 체육실이 위치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위해 5~6인씩 그룹으로 베드민턴, 농구, 여자하키 코스를 돌아가며 섭렵했다.

▲ 중앙홀이 있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박원순 변호사 모습이 보인다. ⓒ김명신

첨단산업이 발전된 나라답게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자기 카드를 현관문에 접속해야만 문이 열리는데 이를 통해 그 학생의 학교 수업 행적이 다 기록된다고 한다. 직업반과 인문반의 넘나듦이 유연한 통합 고등학교과정을 택하고 '평준화다 아니다'를 거론할 필요없이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한데 어울려 협동과 개별학습을 벌인다.

한 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칠판에 섹스, 오랄섹스, 키스 등 '사랑'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놓았고 교사는 학생들의 흥미를 바탕으로 종교, 성교육,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사랑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세 시간씩 6주간 인터넷사이트를 활용하고 학생들은 에세이 발표를 하며 통합적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에 집중한다. 오래전 내 아이도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세계사 시간에 한 학기 동안 제2차 세계 대전만 배운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깊게 공부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고 평가를 통해 자신의 학습태도를 보완해나가는 과정이 학교이자 학습이었다.

핀란드에서는 학생의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와 학습의 우열이 본격화적으로 드러날 즈음인 중학교 때는 학급당 인원수를 반으로 줄여 학력차를 좁힌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비해 학급당 인원수가 절반이다. 이처럼 잘하는 학생은 그냥 두어도 잘하므로 그대로 두고 못하는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핀란드 교육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별화 교육과 다양화 교육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2년 반부터 4년 사이에 마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인턴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휴식기를 가진 후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 방문객들에게 학교를 설명하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학생과 방문 일행. ⓒ김명신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핀란드는 직업 교육이 활발하다. 졸업생이 고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막바로 투입될 것을 상정해 핀란드는 고등학교에서 직업학교에서 직업 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옴니아 직업고교, 직업 교육 센터를 방문했다. 여학생 직업반 중 현재 인기 직업은 미용 직종이다. 그래서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 미용반에서는 미용 중 가장 흔한 일중 하나인 머리 감기기와 머리 맛사지 시험에 교사가 모델이 되어 깔깔거리고 웃으며 시험 평가를 하고 있었다. 동네사람들도 동네 미용실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발적으로 머리커트, 피부 맛사지 등 기꺼이 학생들의 미용실기대상이 되어준다. 그 애들이라고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먹고 사는데 필요한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이민자는 받지않고 난민만 허락하는데 이민자가 급증하므로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직업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지 의료보조원 교육을 받는 구성원은 모두가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했다.

▲ 옴니아 직업학교. ⓒ오영희


한국의 교육운동가로 살면서 한국 교육을 고발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학벌주의, 학력 간 임금 격차 등을 다 제쳐놓고라도 한국이 실업계 학생이 절반인데 그들 교육에 손놓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실업계 학생들은 앞다투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MB정부는 마이스터교를 100개 세운다고하나 직업 교육이 바로서지 않는 한 현재 질곡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옴니아 직업고교를 방문해 핀란드 직업 교육을 돌아보며 '누구는 나라 잘 만나서 웃고 사는구나, 누구는 나라 잘못 만나서 근심이 떠나지 않네…'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때마침 용산 참사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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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1403&Section=01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이번에 만난 헬싱키시 인근 에스푸지역의 포요이스 따삐올라 중·고교 교장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지난해 경기여고 100주년 초청 행사로 '핀란드의 여성'을 강연하고자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짧은 방한 기간이었으나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학부모와 교사들은 심리학을 다시 한 번 배웠으면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학습이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한국 학부모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려를 담아 말했다.

지금 한국은 핀란드와 상황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마구잡이로 일제고사와 대학 입시에 내몰려 있다. 학생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분기별로 나오는 성적표에 의해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높이높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으며 대부분 아이가 피라미드에 쌓인 받침돌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분모가 되는 학생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육을 택해야 하는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 다른 아이는 서로 다르게 학습한다."

한편, 이번 여행의 코디네이터 중 하나인 핀란드에 사는 교민 곽수현 씨에게 들은 바로는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과 관련해 집중력에 매우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집중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열중해 노는 한두 시간 동안은 절대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지 않는다고 했다. 레고 블록을 만들 때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중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특수교육 차원에서 배려했다.

이에 반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노는 꼴을 거의 못 보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시간을 엄마가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아이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후 네 시, 일찌감치 어두워지는 북부 유럽의 저녁 엄마들은 아이들을 5겹으로 싸서 유모차에 끌고 다녔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밖에서 재우는 것을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만큼 일상화시킨다고 했다. 하긴 늦은 저녁 아이를 셋이나 동행한 유모차 엄마를 지하철에서 흔히 목격했다.

▲ 핀란드 옴니아 직업학교의 건축과 실습현장. ⓒ오영희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

이번 여행 중 핀란드에서건 스웨덴에서건 목이 마르면 아무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셨다. 처음엔 생수 생각이 간절했는데 날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들은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물을 사먹는 돈을 세금으로 낸 후 수돗물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개인노력의 분명한 한계를 공동으로 풀어낸 것이다.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와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겪었고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 나라는 교육의 철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평등의 가치 위에서 교육을 보았고 누구든 교육의 의지가 있는한, 한 학생이라도 배에서 내리게 하지 않고 낙오시키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학생을 대했다. 결국 핀란드는 자율성과 다양성, 국가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

반면 한국은 학생을 상품화시키고 서열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교육을 생각할 여유도 정치적 리더쉽도 가치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아이들이 불행하고 교육이 실종된 것이다. 각자 열심히 마우저뚱 초상을 그렸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메릴린 먼로의 초상이 되어버린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각자 열심히 교육에 매진했는데 결국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라는 괴물만 남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교육 개혁이란 것이 학생들의 취미와 적성을 살리고 교육을 통해 행복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하는데 학생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교사에게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도리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학벌이 문제이고 공교육 부실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학벌 대책은 늘 중장기 대책으로 밀어놓는다. 정권을 5년 잡는 정부가 학벌 대책을 중장기로 밀어놓는다는 것은 결국 안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 부실의 1순위로 모두들 거대학교, 과밀학급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33.6명, 중등이 35.5명이다. 올해 발표된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OECD 국가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21.4명, 중등은 24.1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개발 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를 외면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자연적으로 인구수가 감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밀학급이 아닌 농어촌 교육은 무사한가? 아니다.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특목고가 점차 모든 중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었는데 특목고는 행복한가? 아니다, 특목고생도 사교육을 받는다. 강남 지역 학생들도 천차만별 차별을 당하고 있다. 학벌 때문에 명문대, 지방대학생이 분노한다. 그러면 명문대생은 행복한가? 그들도 취직을 위해 영어 점수 높이기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백수 혹은 청년 인턴 대열에 분노하며 혹은 크리넥스 티슈처럼 풀죽어 합류해 있다.

결국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 핀란드에서 핀란드어 시간에 학년이 섞여서 조별 수업을 하고 있는 장면. ⓒ오영희

핀란드는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되나 한국은 27%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 사교육비를 더하면 40%도 훌쩍 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 관계자들은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세금부담률이 다르다'는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돈의 문제, 인식의 문제가 철저하게 다른데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문제는 이 지점부터 풀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실종된 한국 교육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이번 여행에 동행한 38분의 교사, 교수, 운동가, 학생, 이번 여행이 있기까지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용관, 안승문 선생, 핀란드 현지의 안애경씨, 통역에 수고한 이병곤, 동원, 라슈, 교육외 부문에서 참여한 권태선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님과 박원순 변호사와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이부영 님과 헬싱키에서 시를 낭송해주신 도종환 시인께 감사말씀을 전한다. 우리들 일행은 거의 모두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한국 교육을 고민하면서 그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한 전문가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행 중 수없이 동어반복을 했지만 그 열정과 의지, 그 진정성 하나로 2월부터 다시 만나 한국교육의 새로운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


어린이책과 사회

한겨레 신문 김일주 기자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 작가)을 취재하여 보도한 기사. 어린이책 작가들과 사회문제는 일견 쉽게 어울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문학 작품이라 할 수 있는, 방정환의 <만년 샤쓰>나 권정생의 <몽실언니>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작가의 깊은 관심이 없이는 쓸 수 없고 씌어질 수 없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작가들의 모임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궁금하다.

 

원문출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44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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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러운 세상, 따뜻한 이야기만 쓰기엔…

사회 문제 고민하는 어린이책 작가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 회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어린이와 문학> 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작가 김해원, 공진하, 임정자, 박서영, 이현씨.

 

 

대운하 반대 집회등 참석자들 주축 ‘더 작가’ 결성
용산참사 토론회도…“작품에 문제의식 스며들 것”

 

어린이책 작가들이 사회 문제에 팔을 걷어붙였다. 어린이책 작가 100여 명이 모인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 모임’(더 작가) 회원들은 일제고사 문제로 해임된 교사들과 교문 투쟁을 함께하고 용산 철거민 참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다.

“동화작가는 사회 문제를 고민한다기보다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동화 쓰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둘러싼 사회 문제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에요.”(임정자 동화작가)

“사회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밑에 있는 게 아이들입니다. 문제가 터졌을 때 모든 어려움을 겪는 것도 아이들이죠. 그런 때문인지 소설이나 시 부문에서는 1990년대 들어오면서 리얼리즘적인 맥이 상실된 상태이지만 동화에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이 지금까지 주요한 영역으로 자리잡고 있어요.”(이현 동화작가)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월간 <어린이와 문학> 사무실에서 세 번째 운영진 회의를 연 작가들을 만났다. 본디 “집회에 혼자 가기가 어색해” 시작한 일이었다. <어린이와 문학> 회원들을 중심으로 어린이책 작가들이 지난해부터 대운하 반대 집회 등을 벌이며 ‘작은 실천’을 함께 하는 모임을 가졌던 게 씨앗이 됐다.

작가들이 모여서 “사회적인 책임을 작게라도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자연스레 나왔고 지난해 12월26일 첫 모임을 가졌다. 그날 모인 40여 명으로 시작한 ‘더 작가’ 회원은 현재 작가와 어린이책 편집자까지 12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달마다 사회적 의제를 함께 고민하는 토론회를 연다. 지난달에는 해직교사인 서울 길동초등학교 최혜원씨와 청운초등학교 김윤주씨를 초청해 ‘일제고사와 우리 시대의 교육 문제’에 관해 토론회를 열었고, 이번 달에는 용산 범대위 관계자를 초청해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카페(cafe.daum.net/childand...)에는 회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가며 칼럼을 연재하는 ‘더 작가의 목소리’ 게시판도 운영한다. 지난 2월 초에는 용산 참사 제3차 추모대회에 맞춰 ‘더 작가’ 이름으로 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동화작가 김해원씨는 “모임을 통해 사회 현안이 지닌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함께 계속한다면 각자의 작품에도 이런 문제의식이 자연스럽게 스며들 거라고 생각한다”며 “세상이 좋아지고 아이들 삶이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글·사진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기사등록 : 2009-03-15 오후 06:01:20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서평의 제목 달기

이런 서평은 그 자체로 공부거리다. 장정일의 내공이 온전하게 묻어나는 듯하다.

 

특히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라고 묻는 대목이나,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 그리고 '진지한 작가생활'을 언급하는 대목 등등은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그런데 이 서평이 실은 프레시안의 제목달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100년 전 한 소설가의 경고…'결국 전쟁인가?' "라는 제목은 너무 선정적이다.

 

어떤 제목을 달아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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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2040&section=04

 

▲ 잭 런던(Jack London·1876~1916). <강철군화>를 비롯한 그의 소설이 약 20년 만에 새번역으로 재간되었다. ⓒ궁리
궁리에서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 가운데 1차분 세 권을 읽었다. 연번대로 나열하면 <비포 아담>(1907)·<버닝 데이라이트>(1910)·<강철군화>(1908)인데, 괄호 속은 작가가 작품을 발표했던 연도다.

책을 좀 읽은 내 또래의 독자들은 1989년도에 한울에서 출간된 <강철군화>의 강렬함을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같은 출판사는 의욕적으로 <마틴 에덴>·<잭 런던 모험소설>을 연이어 펴냈고, 마지막엔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까지 내놨다. 여담이지만, 잭 런던에 혹해 그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순식간에 읽고 난 후 남은 것은 허전함이었다. 아니 배반감이란 표현이 더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라는 실망감을 역자 서문에 솔직히 적어 놓았다.

실제로 그 여행기는 잭 런던의 우생학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고약하게 드러나 있으며, 제국주의 일본·러시아·중국에 끼어 신음하는 조선의 운명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행여 이 책을 찾아 읽으실 독자는,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책세상 펴냄)을 함께 읽으시라. 알고 보면 잭 런던의 기분 나쁜 '조선 관찰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 지식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한계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반짝 소개된 잭 런던은 오랫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다가, 몇 년 전에 잭 런던의 미완성 유고인 <암살주식회사>(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되었다. 여담을 더 하자면, 이 소설이 쓰인 계기가 재미있다. 당대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엄청나게 씀씀이가 늘어났던 반면, 스물네 살 때 첫 단편집을 낸 이래로 쉬지 않고 작품을 쓰다 보니 상상력과 소재가 고갈됐다. 그래서 돈을 주고 이야깃거리를 샀는데, 34세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소재를 판 사람은 25세의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였다.

<암살주식회사>는 1910년 3월에 잭 런던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70달러를 주고 샀던 열네 편의 짧은 소설 개요 가운데 하나다. 그는 개요를 받자마자 반 넘어 썼던 이 소설을 중도에 포기했는데, 사후 40여 년이 훨씬 지난 1963년에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L 피시가 결말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잭 런던의 화제작 <강철군화> 이후, 작가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다. 참고로 싱클레어 루이스는 훗날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펴냄). ⓒ프레시안
다시 '잭 런던 걸작선'이다. 나는 세 권의 책을 받고나서, 국내 초역된 두 권의 책이 궁금하기보다, 재간된 <강철군화>가 더 반가웠다.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

<강철군화>가 처음 번역되었던 1989년 7월, 이 소설은 일개 문학 작품이 얻기 어려운 '소설 자본론'이란 명망을 얻었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소설의 줄거리보다, 소설 속의 정치·경제적 분석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자본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번역서가 나오고 난지 불과 몇 달 뒤인 11월,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고, 몇 년 뒤인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됐다. 그러면서 <강철군화>는 시나브로 절판의 수순을 밟게 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망각됐다.

이 소설은 공상적 사회주의가 완성된 2632년, 우연히 발견된 미국 혁명 투사들의 기록을 발굴하게 된 형식을 취한다. 부연하면 이 소설의 시간적 무대는 사회주의 혁명 투사들이 미국의 과두지배 계급에 대항해서 일으켰던 1차 봉기가 실패하고, 새로 준비된 2차 봉기를 목전에 둔 1912년과 1932년 사이다. 소설 속의 과두계급은 의회·법원·군대는 물론이고 언론·학교·교회까지 물샐 틈 없이 장악하고 있는 독점 자본가들이다. 향후 300년간 지속될 작중의 과두계급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빈곤·실업·산업 재해에 무방비인 채 노예로 살아가며, 언론인·지식인·종교인들은 끽 소리 없이 과두계급에 기생한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서를 펼치면 <강철군화>가 재현하고 있는 묵시록적인 풍경이 작가의 공상이 아니라, 잭 런던이 생존했던 시대(1876~1916)의 가감 없는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분화하면서 최초의 양극화를 맞이하는 시기였으며, 독점이 가속화되던 때였다. 중산층은 나날이 몰락하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당연히 노동운동이 불타올랐으나, 독점재벌의 사주를 받은 파업 파괴자들의 총격에 쓰러져 갔고, 경찰과 언론이 그런 불법을 비호했다.

<강철군화>는 앨런 브링클리가 쓴 방대한 저서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 펴냄)에 쓰인 것처럼 "미국 역사에서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시기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많은 지지를 받은 때는 없었다"(2권, 501쪽)던 그 시절에 나왔다. 하므로 이 소설은 열아홉 살 때 사회당과 처음 접촉하고 스물다섯 살 때 사회당 후보로 오클랜드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던 사회주의자로서의 작가의 이력, 1860년대 초부터 번성한 폭로작가들(muckrakers)의 전통, 그리고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작 10만 명도 되지 않던 사회당 지지자들이 1912년에는 100만으로 늘어났던 그 시대의 혁신주의 정신이 낳은 혼합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잭 런던의 사회주의적 지식과 사태 분석이 이루어낸 예언의 정확성이다. 그는 국내의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한 나라의 파시즘을 추동하게 되며, 출구를 찾지 못한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분석하면서, 미구에 있을 제1차 세계 대전을 미리 예언했다. 길지만 인용한다.

"(미국의) 과두지배체제는 독일과의 전쟁을 원했다. 그들이 전쟁을 원하는 이유는 열두 가지쯤 되었다. 그러한 전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카드를 다시 섞어 새로운 조약과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과두지배체제는 얻을 게 많았다. 더 나아가, 전쟁은 국가의 많은 잉여를 없애주고, 모든 나라를 위협하는 실직자 군단을 줄이고, 과두지배체제에게는 그들의 계획을 완성하여 수행할 수 있는 숨 쉴 여유를 줄 것이다. 그런 전쟁은 사실상 과두지배체제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전쟁은 해산할 필요가 없는 대규모 상비군을 창출한 것이며, 대중의 머릿속에 '사회주의 대 과두지배체제' 대신 '미국 대 독일'이라는 쟁점을 심어줄 것이다."

잭 런던은 1907년에 쓰고 1908년에 발표한 <강철군화>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1912년 12월 4일에 미국 공사(公使)가 독일 수도를 철수했다. 그날 밤 독일 함대는 호놀룰루를 급습해 미국 순양함 세 척과 밀수 감시선 한 척을 침몰시키고 도시를 폭격했다. 다음 날, 독일과 미합중국 둘 다 전쟁을 선포"했다고 건조하게 써놓았다. 2년 뒤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의 적중시킨 것이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란 말인가? 20년 만에 새 번역으로 재독한 <강철군화>는 과두지배와 파시즘에 대한 20세기 초의 공포를 비웃게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세계 대전을 점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석유와 군산업체의 이익에 휘둘린 미국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을 보건대,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국지적인 저강도 전쟁을 잦게 하리란 우려는 할 수 있다.

<강철군화>에 자세히 설명되었듯이 과두계급이란 한 나라의 부를 몽땅 차지한 한줌의 독점재벌과 그들의 정권을 가리킨다. 이들은 국가의 행정기관을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무료 '서비스 기관'으로 축소시키고, 국가의 사법기관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법을 무마해주는 '로펌'으로 전락시키며, 국가의 공권력은 '용역(깡패)회사'로 만든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오치 미치오의 <와스프(WASP)-미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살림 펴냄)를 보면, 헤밍웨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잭 런던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학교 이사회에 나가 "이런 책을 읽히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후 맥락이 모자라긴 하지만, <비포 아담>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철군화>가 '소설 자본론'이라면 이 소설은 '소설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잭 런던은 자서전적인 소설 <마틴 에덴>이 출간된 1909년 이후, 진지한 작가 생활을 포기했다고 본다. 무명의 작가에게 작품의 소재를 양도받은 행각이 그런 심증을 갖게 하는데다가, 쓰다가 말았던 <암살주식회사>가 암살단을 만들어 비윤리적인 사업가를 한 명씩 제거한다는 '윤리적 광인'들의 순진 소박한 문제 해결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애독자로 거느리기도 했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 후퇴다.

▲ <버닝 데이라이트>(잭 런던 지음, 정주연 옮김, 궁리 펴냄)
<마틴 에덴> 이후로도 잭 런던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타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평이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자서전적 소설 <버닝 데이라이트>는 누구나 흉내 내고 싶은 태양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남자라면 자신의 힘으로 도시를 건설해 봐야 한다! 그런데 버닝 데이라이트는 무려 두 개의 도시를 세우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한 아르카디아를 만들어, 거기에 은거한다.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스토우 부인과 마크 트웨인을 잇는 미국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잭 런던은 '미국의 꿈'을 실현한 행운아이면서,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스르는 '빨갱이'가 됐다. 성공한 부르주아이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을 추구했던 그는 입방아를 찧기 좋은 먹이였다. 내가 본 미국 문학사는 잭 런던을 거의 난외로 처리하거나, 소략하게 다룬다. 그러면서 예의 '자기모순에 빠진 작가'라느니 '알코올 중독자'면서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였다는 인물평을 앞세운다.

이런 꼬투리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마르크시즘의 영향력과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원천 소거하기 위한, 강단 연구가들의 정직하지 못한 술책이다. 대체 자기모순이라곤 없으며, 술독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가 아니었던 작가가 어느 세상에 존재하는가? 주류 미국 문학사가 떠받들고 있는 헨리 제임스·헤밍웨이·피츠제럴드·포크너도 알고 보면 더했다.

작가에 대한 풍문을 제거하고 나면, 훨씬 윤택해지는 텍스트가 잭 런던이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가 자국의 양극화와 20세기 최초의 세계화로 몸살을 전운(戰雲)을 앓던 시대였던 만큼, 그것과 똑같은 국내 문제와 21세기의 세계화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들에겐 더욱 각별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