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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학교는 창의력을 죽이는가?"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지금까지 굉장히 좋았죠? 강연들이 너무 좋아 정신을 못 차리겠네요. 사실 저는 그냥 집에 가야하나 싶어요. (웃음) 이 컨퍼런스에는 3개의 테마가 있습니다. 그 세 가지 테마 모두 제가 오늘 강연할 내용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테마는 우리가 본 강연들에서 나타나는, 또 여러분들이 보여주고 있는 인류의 창의력입니다. 그 창의력이 얼마나 다양하고 광범위한지요. 둘째는, 창의성이라는 것이 미래의 관점에서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저는 교육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아요? 흥미로운 사실이죠. 저녁 모임에 가서 교육 분야에서 일을 한다는 말을 하면 -- 아니죠, 사실 교육자라면, 음, 저녁 모임 같은데는 거의 안 가게 되겠죠? (웃음) 초대를 못 받을 테니까요. 초대 받더라도, 다시는 안 받게 되잖아요? 참 이상한 일이군요. 어쨌든, 그런 모임에서 누구랑 대화를 하다보면, "직업이 뭡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는데 교육자라고 대답을 하면 상대방의 얼굴이 바로 창백해지는 게 보여요. 속으로 "젠장, 왜 하필 나야? 일주일에 겨우 하루 놀러온 건데..." (웃음) 반대로 당신이 상대방의 교육에 관해 질문을 하면 그들이 당신을 놔주지 않을 겁니다. 교육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겠죠. 안 그래요? 종교나, 돈,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죠.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저는 교육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아요. 교육에는 엄청난 이해관계가 걸려있습니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단서가 바로 교육에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겠지요. 생각해보죠. 이번 해에 학교를 시작하는 어린이들은 2065년에 은퇴를 하게 될 겁니다. 지난 4일 동안 보았던 모든 전문지식에도 불구하고 5년 뒤에 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 미지의 미래에 대비하도록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죠. 이 예측불가능성이 참 놀랍다고 생각해요.

 

셋째 주제는 어린이들이 무한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모두들 동의한다는 것이죠. 혁신을 창조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어제 쎄리나, 정말 기특 하지 않았어요? 연주 하는걸 보면서 감동 받았습니다. 비범한 어린이이지만, 이 아이의 어린 시절 전체가 특별하다고 생각되진 않아요. 그보다, 자기의 재능을 찾아내 거기에 남다른 노력을 더한 어린이지요. 저는 모든 어린이들이 대단한 재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우린 이런 재능을 가차없이 억누르기도 하죠. 그래서, 저는 교육과 창의성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의 주장은 이제 창의력을 읽기/쓰기와 같은 수준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수) 감사합니다. 사실 이게 말하려던 전부에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웃음) 음, 15분이나 남았구나... 음, 옛날 옛적에... 아녜요. (웃음)

 

최근에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 참 즐겨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림 수업에 어느 한 여자아이가 있었어요. 여섯 살이었고 교실 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선생님 말로는 다른 수업에서는 거의 집중을 안 하는 애인데 그리기 수업에서는 유독 집중했다고 해요. 선생님은 신기해서 아이한테 "너 무엇을 그리니?"라고 물어 봤더니, "신을 그리고 있어요"라고 하더래요. 선생님이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르잖아?"라고 하니까 어린이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곧 알게 될 거에요!" (웃음)

 

영국에서 제 아들이 네 살이었을 때, 하긴 뭐, 영국 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도 네 살이었겠죠. (웃음) 엄밀히 말하자면, 그 아인 어디를 가든지 상관없이 네 살이겠죠. 그 아이가 예수탄생연극에서 역할을 맡았는데, 그 이야기 기억 하시나요? 유명한 스토리인데.. 아주 대단한 스토리였는데… 멜 깁슨이 후속 편을 만들 정도 였는데. 보셨을지도 몰라요, "예수 탄생 2". 어쨌던, 우리 아들 제임스가 요셉의 역을 맡게 됐어요. 아이가 아주 신나서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족들도 주연 배역인줄 알았죠. “주연: 제임스 로빈슨이 요셉!”이라고 써있는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공연장을 꽉 채워놨어요. (웃음) 그런데 사실 대사는 없더라고요. 아무튼 그 중에 3명의 동방박사가 등장하는 장면 아시죠? 3가지 예물로 황금, 유향과 몰약을 가져오는 장면이죠.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저희는 그냥 관람하고 있었는데, 대사를 조금 틀리게 말했던 것 같았어요. 공연이 끝나고 그 아이에게 가서 물어봤죠. "괜찮니?" 이랬더니 "네. 왜요? 무슨 문제 있었나요?" 라고 대답하더라고요. 잠깐 즉흥대사 했던 것 뿐이었어요. 아무튼, 공연 중에 머리에 행주를 두른 네 살짜리 남자애들 3명이 등장하더니, 상자를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첫 번째 아이는 "황금을 드립니다", 둘째 아이는 "몰약을 드립니다", 셋째 아이는 "프랭크가 배달 보내서 왔습니다" 라고 했어요. (웃음) [역주: "유향"의 영어 발음이 아이가 말한 문장의 발음과 유사함.]

 

이런 이야기들은 보시면 어린이들은 공통적으로 모르더라도 시도를 합니다. 제 말이 맞죠? 실수할까봐 두려워하지 않잖아요 실수하는 것이 창의력을 발휘하는 것과 같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잘못하거나 실수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없다면, 신선하고 독창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면 말입니다. 성인이 될 때쯤이면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그러한 역량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뭔가 실수를 할까봐, 틀릴까봐 걱정을 하면서 살게되죠. 한편 우리의 기업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실수에 대해서는 비난 일색이죠. 오늘날 우리의 교육제도는 실수라는 것은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창의적인 역량을 말살시키고 맙니다. 피카소가 이런 말을 했죠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예술성을 유지 시키는 것이 문제다." 우리는 자라면서 창의력이 계발되기는커녕 있던 창의력도 없어집니다. 교육이 창의력을 빼앗아가는 거죠. 왜 그럴까요?

 

저는 약 오 년 전 까지만 해도 스트랫포드 온 에본에서 (Stratford-on-Avon) 살았어요. 우린 스트랫포드에서 LA로 이사를 했었죠. 얼마나 매끄러운 과정이었는지 모르실 겁니다. (웃음) 사실 저흰 스트랫포드 바로 외곽에 위치한 스니터필드라는 (Snifferfield) 곳에 살았었는데, 셰익스피어의 아버지가 태어난 곳입니다. 재미있는 생각 떠오르지 않으세요? 셰익스피어가 아버지가 있다는 생각은 잘 안 하잖아요? 그렇죠? 왜냐면 셰익스피어가 어린이였을 거라는 생각은 잘 안 하니까요. 일곱 살의 셰익스피어? 잘 상상이 안됩니다. 아니 뭐 언젠가는 일곱 살 이였겠죠, 누군가의 영어 수업도 들었겠죠. 얼마나 짜증났을까요? (웃음)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면서 그 아버지는 셰익스피어에게 "빨리 가서 자라."라고 했겠죠. 바로 그 대문호 셰익스피어에게 "연필 좀 내려 놓고. 그렇게 말하지 좀 마라. 알아들을 수가 없잖니."라고도 했겠죠 (웃음)

 

어쨌든 우린 스트랫포드에서 LA로 이사를 했어요. 이사 과정에 대해 한 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제 아들이 가기 싫어했거든요. 애들이 두 명 있는데, 아들은 21살이고, 딸은 16살이에요. LA를 정말 좋아 하는데도, 가고 싶어 하질 않더라고요. 영국에 사라라고 사랑에 빠진 여자친구가 있었거든요. 한달 동안 알고 지낸 아이인데 벌써 기념일을 4번이나 챙겼더라 구요. 16살일 때는 한 달도 오랜 기간이죠. 비행기에서 정말 마음 아파하면서 "사라 같은 여자를 두 번 다시 못 만날 거야."라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에겐 좋은 소식이었죠. 처음부터 그 여자 때문에 영국을 떠났던 것이거든요. (웃음)

 

미국으로 이사 갈 때나, 세계를 다녀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데, 이 세상의 모든 교육제도들은 동일한 과목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겁니다. 단 하나도, 어딜 가든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설마 안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어도 사실입니다. 맨 위에는 수학과 국어, 언어학이 있고 그 아래는 인문학이고, 그 아래 마지막으로 예술이 들어가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더불어, 모든 교육 체제 내에서 예술과목 사이에도 계층이 존재합니다. 학교에서는 보통 미술과 음악을 드라마나 춤보다 비중을 더 두고 있죠. 어린이들한테 수학을 가르치듯이 매일 춤을 가르쳐 주는 교육제도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요. 왜 그럴까요? 왜 안되는거죠? 제가 보기엔 나름 중요한 분야인데 말이죠. 수학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춤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허락만 한다면 어린이들은 항상 춤을 춥니다. 우리 모두 그렇죠. 다 몸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아니면 제가 뭔가를 잘못 배운 것일 수도 있고... (웃음)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나냐면, 어린이들이 크면서 우리들은 허리 위에서부터 교육을 시키고 나서, 머리에 초점에 둡니다. 그것도 뇌의 한쪽으로 살짝 치우치게 초점을 두죠.

 

당신이 외계인이고, 우리의 교육계를 관찰하며 "공교육은 왜 있는걸까?" 의 답을 찾는다면, 결론은 이럴 것 같아요. -- 교육기관들이 내놓은 성과를 보면 누가 성공을 하는가, 누가 꼬박꼬박 해야 할 일들을 다 하고, 누가 별점을 많이 받고, 누가 승자가 되는지 -- 결론적으로 세계적으로 공교육의 목표는 대학 교수들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하는 사람들이 항상 그들이잖아요. 저도 한때 교수였으니 잘 알아요. (웃음) 사실, 대학 교수들을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의 최고점에 있다고 보면 안됩니다. 인생의 한 형태일 뿐이죠. 그렇지만 유별나게 호기심을 많이 가진 생명체죠. 절대 비난하는 것 아닙니다. 교수들에게는 재미 있는 특징이 있는데, 모두는 아니지만, 그들은 주로 머리 속에서 삽니다. 살짝 한쪽으로 치우친 머리 속에서 살죠. 육체를 이탈했다고 볼 수 있죠. 그들은 몸이란 그저 머리를 이동시키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웃음) 머리를 회의 장소로 이동시키는 수단이죠. 만약 유체이탈현상을 직접 관찰 하고 싶으시다면, 교수학회를 찾아 참석 하시고 마지막 날에 디스코텍에 꼭 들르세요. (웃음) 거기서 보게 되실 겁니다. 아저씨, 아줌마 상관없이 박치들이 몸을 비비꼬는 모습들을… 눈빛에는 빨리 집에나 가서 이 경험에 대해 논문을 쓰고 싶어하는 게 보이죠.

 

우리 교육 제도는 학습 능력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19세기 이전에는 세계 어디에도 공교육 제도가 존재하지 않았어요. 산업사회의 수요에 의해서 생긴 것들이지요. 그러니까 계층구조는 두 가지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죠. 첫 번째는, 직장을 구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과목들이 우위에 있다. 어렸을 때 즐겼던 과목들, 그런 것들에 관심을 둬서는 커서 직장을 절대로 못 구하니까 오히려 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들으셨죠. 제 말이 맞죠? 음악? 음악가 되는 게 쉬운 줄 아니? 미술? 미술가 되면 어떻게 먹고 살려고? 잘 되라고 하는 말이지만 너무나 중대한 착오죠. 전세계가 혁명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둘째는, 대학들이 자기 모습을 본떠서 교육제도를 설계했기 때문에 지성은 ‘학습능력’이라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전세계의 모든 교육 제도들은 대학 입시를 위한 절차라고 보실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많은 훌륭한 재능과 창의력을 가진 자들은 스스로가 그렇지 않다고 착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학교를 다니면서 재능 있었던 것들은 별 가치가 주어지지 않았던가 비난까지 받았으니 더욱이 그렇죠. 더 이상 이런 길로 가면 안됩니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역대 졸업생 숫자 보다는 앞으로 30년 동안의 졸업생 숫자가 더 많을 거라고 합니다. 그건 지금까지 저희가 얘기했던 모든 것들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과학기술, 그리고 기술의 변화가 직업과 인구구조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 갑자기 학위라는 것이 가치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으세요? 제 학창시절에는 학위를 따면 직장을 구할 수 있었어요. 직업이 없었더라면, 원치 않아서 그랬던 것이었죠. 솔직히 저도 그 중의 한 명 이였습니다. (웃음) 요새는 학위를 가진 아이들이 집에 앉아서 오락이나 하고 있지 않나요? 전에는 학사를 필요로 한 직업이 이제는 석사 학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석사 학위를 요구했던 직업들은 이제 박사 학위를 요구합니다. 학위 인플레이션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걸 보시면 교육제도의 전체적인 구조가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저희는 지성을 보는 관점을 많이 바꾸어야 됩니다.

 

지성에 대해 저희는 세가지를 알고 있죠, 첫 번째로, 지성은 다양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관을 가지게 됩니다. 시각, 청각과 운동 감각으로 생각을 하죠. 추상적으로 생각하며, 동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둘째, 지성은 역동적입니다. 어제 여러 발표를 통해 들으셨듯이, 우리의 뇌 작용을 살펴 보시면 지성은 뛰어난 상호작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작은 구역들로 구획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창의력을 가치를 끌어낼 수 있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프로세스라고 보는데요, 창의력은 서로 다르게 발달된 관점들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뇌는 의도적으로… 그건 그렇고, 양쪽 뇌를 이어주는 ‘뇌량’이라는 신경뭉치가 있습니다. 여성들의 뇌량이 더 두껍습니다. 어제 헬렌 씨의 강연에서 이어서 이야기 하자면, 뇌량 덕에 여자들이 남자보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 같은데요? 이것에 대한 연구도 풍부하지만, 전 일상 생활에서도 명확히 보입니다. 아내가 집에서 요리를 하고 있으면 -- 다행히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요 (웃음) 아녜요, 아내가 잘 하는 것도 있어요. 그런데 요리를 하고 있으면서 전화 통화도 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도 하고, 천정 페인트 칠하면서, 심장수술까지 할 수 있는 거에요. 그 반면에, 제가 요리를 하고 있을 때는, 문 닫고, 애들 쫓아 내고, 전화는 절대로 안 받죠. 아내가 들어오면 확 짜증이 납니다. “테리, 계란 후라이 하는데 방해 좀 안 하면 안되겠니? 아 진짜...” (웃음) 그 철학적 구문 아시죠, "숲 속에서 나무가 쓰러지는데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면, 과연 나무가 쓰러진 것인가?" 그 속담 기억 나시나요? 최근에 정말 멋진 티셔츠를 봤는데, 써있기를 "남자가 숲 속에서 자기 생각을 외치는데, 어느 여자도 그 말을 듣지 못했더라면, 그 남자가 한 말은 여전히 헛소리일까?" (웃음)

 

지성의 셋째 포인트는 독특하다는 점입니다. 현재 "에피포니 (Epiphany)"이라는 책을 쓰고 있는데,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재능을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수록한 내용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재능을 찾고 키우는 과정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리안 린이라는 멋진 여성분과의 대화 덕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모르는 분일 것 같긴 합니다만. 들어 보셨나요? 아시는 분 몇 명 있네요. 안무가이시구요. 그분의 작품은 누구나 아는 것들이죠. '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의 안무를 하셨죠. 정말 멋진 분입니다. 제가 영국의 로얄 발레단의 위원이었어요. 보시다시피요. 어쨌던, 어느 날 질리안과 점심을 같이 먹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서 댄서가 되셨어요?"라고 물어 봤더니, 흥미롭게도, 학창 시절 때 점수가 엉망이었다고 하더라고요. 1930년대였는데, 학교서 "질리안은 학습장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라고 편지가 날라왔었대요. 집중을 못하고 안절부절 했었답니다. 오늘날이라면 ADHD(주의결핍 과잉행동 장애)가 있다고 하겠죠? 그런데 아직 1930년대라서 ADHD라는 게 정의가 안 된 시절이었죠. 그런 진단을 받고 싶어도 받을 수가 없었죠. (웃음) 아직 존재하지 않는 장애였어요.

 

하여간, 의사를 찾아 갔는데, 어머니와 통나무 판자로 된 방에 들어가서 의사가 어머니와 학교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20분 동안 방 한 끝에서 손을 깔고 앉아 있었어요. 문제라는 것이 숙제를 늦게 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귀찮게 굴고 그런 것들이었는데요. 여덟 살짜리 어린애가 말이죠. 얘기가 끝나자, 의사가 질리안 옆에 앉아 "어머님이 하신 얘기들 다 들었는데, 잠깐 어머님과 따로 얘기를 나누어야 될 것 같아, 잠깐만 나갈테니, 잠깐 기다려줘."라고 하고 그녀를 두고 방을 나갔어요. 그런데, 방을 나가면서 의사는 책상 위에 있던 라디오를 켜고 나갔습니다. 방을 나가자, 어머니에게 "잠깐 여기서 따님을 관찰해 보세요."라고 했어요. 방을 나오는 순간 길리안은 일어나서 음악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어요. 몇 분 관찰하다가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드렸습니다. "린 어머님, 질리안은 문제아가 아니고, 댄서입니다. 댄스 학교로 보내주세요."

 

그 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제가 물었더니 그녀가 "결국 보내주셨어요. 얼마나 환상적이었는지 표현 할 수 가 없어요. 저 같은 사람들이 있는 교실에 들어 갔는데, 저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람들, 생각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되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죠." 몸을 움직여야 생각을 하는 사람들. 발레, 탭댄스, 재즈 댄스, 모던 댄스나 현대적 댄스를 하는 사람들 이었죠. 그녀는 로얄 발레 학교에 오디션을 하게 되었고, 솔로 댄서로서 로얄 발레 학교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게 되었죠. 나중에 로얄 발레 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질리안 린 댄스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우고, 엔드류 로이드 웨버를 만나게 됐어요. 그 후로 그녀는 역대 최고의 여러 뮤지컬을 책임지게 되었고, 수백만 명에게 즐거움을 가져왔고, 백만장자가 됐습니다. 의사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냥 약을 처방하고 진정하라고 꾸짖기나 했겠죠. (박수)

 

결론적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어젯밤 앨 고어 씨가 우리의 자연 생태와 레이첼 카슨 덕에 시작된 혁명에 대해 말씀 해 주셨어요. 인간의 능력의 풍부함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재정립할 수 있는 인간생태계의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미래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습니다. 어디서나 비슷비슷한 광물을 얻기 위해 지구를 갉아먹는 것처럼 우리의 교육제도가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서는 도움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본원칙들에 대해 재고해봐야 합니다. 조너스 솔크가 주장하기를 "세계의 모든 곤충들이 사라진다면, 50년 이내에 모든 생명체가 전멸 할 것이고, 인간들이 전부 사라진다면, 50년 이내에 모든 생명체가 번창 할 것이다." 그 말 맞습니다.

 

TED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재능이며 우리는 이 재능을 현명하게 사용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얘기했던 몇몇 시나리오들을 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창의적인 능력을 보며 그 풍부함을 깨닫고, 아이들을 보며 그들이 희망이라는 것을 꺠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과제는 아이들이 미래에 맞설 수 있도록 전인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미래를 볼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보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미래를 멋지게 만들도록 돕는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조선일보>가 받은 충격

<미디어오늘>의 보도다. "두바이 배우자던 그들, 부끄럽지 않을까" 

 

"두바이가 모라토리엄(채무상환 유예)를 선언했다. 두바이 정부는 26일 두바이월드 채권단에 내년 5월 30일까지 6개월 동안 채무상환을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2008년 2월16일 3면.

 

""한국이 두바이 같은 금융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규제 중복부터 풀고 금융 서비스의 완전한 개방을 꾀해야 합니다." 지난해 2월, 데이비드 엘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가 경쟁력 강화 특위 위원장이 한 말이다. 두바이는 취임 초기 이명박 정부의 정책 화두였다."

 

       *▲ 조선일보 11월27일 8면.

 

그런데, 채 2년도 되지 않은 오늘. 두바이처럼 되자고 외치던 <조선일보>는 두바이의 몰락이 어찌나 충격이 컸던지 2009년 11월 27일자 1면과 8면에 '두바이 쇼크' '설마 두바이가... 아랍판 9.11 경제 충격'이라는 기사를 올리고 있다. 미디어오늘의 시각에서도 조선일보가 이렇게 깜짝 놀라는 모습은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모양이다.

 

<미디어오늘>은 따끔하게 일침을 가한다. "두바이처럼 규제완화를 하자, 두바이처럼 시장을 개방하자, 두바이처럼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자, 그렇게 외쳤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자산가격 거품으로 재미를 봤던 미국과 영국이 박살이 나고 아일랜드가 무너지고 두바이가 무너진 아직까지도 우리의 금융허브의 구상은 현재 진행형이다. 두바이의 몰락이 놀라운가. 두바이를 배우자고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칠 때도 경고는 늘 있었다. 다만 듣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의 '지조론' 가운데 한 대목을 골랐다.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 명언이다”

 

지조란 것은 순일(純一)한 정신을 지키기 위한 불타는 신념이요, 눈물겨운 정성이며, 냉철한 확집(確執)이요, 고귀한 투쟁이기까지 하다. 지조가 교양인의 위의(威儀)를 위하여 얼마나 값지고, 그것이 국민의 교화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크며, 따라서 지조를 지키기 위한 괴로움이 얼마나 가혹한가를 헤아리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먼저 그 지조의 강도(强度)를 살피려 한다. 지조가 없는 지도자는 믿을 수가 없고,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따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 명리(名利)만을 위하여 그 동지와 지지자와 추종자를 일조(一朝)에 함정에 빠뜨리고 달아나는 지조 없는 지도자의 무절제와 배신 앞에 우리는 얼마나 많이 실망하였는가.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임을 아는 까닭에 우리는 지조 있는 지도자를 존경하고 그 곤고(困苦)를 이해할 뿐 아니라 안심하고 그를 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자(者)이기 때문에 지조 없는 지도자, 배신하는 변절자들을 개탄(慨歎)하고 연민(憐憫)하며 그와 같은 변절의 위기의 직전에 있는 인사들에게 경성(警醒)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지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 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 운동의 단계의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그러나 오늘의 정치―정당 운동을 통한 정치도 국리 민복(國利民福)을 위한 정책을 통해서의 정상(政商)인 이상 백성을 버리고 백성이 지지하는 공동 전선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구복(口腹)과 명리(名利)를 위한 부동(浮動)은 무지조(無志操)로 규탄되어 마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과 이 난국을 수습할 지도자의 자격으로 대망하는 정치가는 권모 술수(權謀術數)에 능한 직업 정치인(職業政治人)보다 지사적(志士的) 품격(品格)의 정치 지도자를 더 대망하는 것이 국민 전체의 충정(衷情)인 것이 속일 수 없는 사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염결 공정(廉潔公正) 청백 강의(淸白剛毅)한 지사 정치(志士政治)만이 이 국운을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이상 모든 정치 지도자에 대하여 지조의 깊이를 요청하고 변절의 악풍을 타매(唾罵)하는 것은 백성의 눈물겨운 호소이기도 하다.

 

지조와 정조는 다 같이 절개에 속한다. 지조는 정신적인 것이고, 정조는 육체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지조의 변절도 육체 생활의 이욕(利慾)에 매수된 것이요, 정조의 부정도 정신의 쾌락에 대한 방종에서 비롯된다. 오늘의 정치인의 무절제를 장사꾼적인 이욕의 계교와 음부적(淫婦的) 환락의 탐혹(耽惑)이 합쳐서 놀아난 것이라면 과연 극언이 될 것인가.

 

하기는, 지조와 정조를 논한다는 것부터가 오늘에 와선 이미 시대 착오의 잠꼬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하긴 그렇다. 왜 그러냐 하면, 지조와 정조를 지킨다는 것은 부자연한 일이요, 시세를 거역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과부나 홀아비가 개가(改嫁)하고 재취하는 것은 생리적으로나 가정 생활로나 자연스러운 일이므로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고, 또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개가와 재취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승인하면서도 어떤 과부나 환부(鰥夫)가 사랑하는 옛 짝을 위하여 개가나 속현(續絃)의 길을 버리고 일생을 마치는 그 절제에 대하여 찬탄하는 것을 또한 잊지 않는다. 보통 사람이 능히 하기 어러운 일을 했대서만이 아니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본능고(本能苦)를 이성과 의지로써 초극(超克)한 그 정신이 높이를 보기 때문이다. 정조의 고귀성이 여기에 있다. 지조도 마찬가지다. 자기의 사상과 신념과 양심과 주체는 일찌감치 집어던지고 시세(時勢)에 따라 아무 권력에나 바꾸어 붙어서 구복(口腹)의 걱정이나 덜고 명리(名利)의 세도에 참여하여 꺼덕대는 것이 자연한 일이지, 못나게 쪼를 부린다고 굶주리고 얻어맞고 짓밟히는 것처럼 부자연한 일이 어디 있겠냐고 하면 얼핏 들어 우선 말은 되는 것 같다.

 

여름에 아이스케이크 장사를 하다가 가을 바람만 불면 단팥죽 장사로 간판을 남 먼저 바꾸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장사꾼, 기술자, 사무원의 생활 방도는 이 길이 오히려 정도(正道)이기도 하다. 오늘의 변절자도 자기를 이 같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또 그렇게 자처한다면 별 문제다. 그러나 더러운 변절의 정당화를 위한 엄청난 공언을 늘어놓은 것은 분반(噴飯)할 일이다. 백성들이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먼 줄 알아서는 안 된다. 백주 대로에 돌아앉아 볼기짝을 까고 대변을 보는 격이라면 점잖지 못한 표현이라 할 것인가.

 

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困辱)을 무릅 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 정신의 자존(自尊) 자시(自恃)를 위해서는 자학(自虐)과도 같은 생활을 견디는 힘이 없이는 지조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조의 매운 향기를 지닌 분들은 심한 고집과 기벽(奇癖)까지도 지녔던 것이다. 신단재(申丹劑) 선생은 망명 생활 중 추운 겨울에 세수를 하는데 꼿꼿이 앉아서 두 손으로 물을 움켜다 얼굴을 씻기 때문에 찬물이 모두 소매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한다. 어떤 제자가 그 까닭을 물으매, 내 동서남북 어느 곳에도 머리 숙일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일화(逸話)가 있다.

 

무서운 지조를 지킨 분의 한 분인 한용운(韓龍雲) 선생의 지조 때문에 낳은 많은 기벽의 일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가 지도자와 정치인들에게 바라는 지조는 이토록 삼엄한 것은 아니다. 다만 당신 뒤에는 당신들을 주시하는 국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신의 위의와 정치적 생명을 위하여 좀더 어려운 것을 참고 견디라는 충고 정도다. 한 때의 적막을 받을지언정 만고에 처량한 이름이 되지 말라는 채근담(菜根譚)의 한 구절을 보내고 싶은 심정이란 것이다. 끝까지 참고 견딜 힘도 없으면서 뜻있는 백성을 속여 야당(野黨)의 투사를 가장함으로써 권력의 미끼를 기다리다가 후딱 넘어가는 교지(狡智)를 버리라는 말이다. 욕인(辱人)으로 출세의 바탕을 삼고 항거로써 최대의 아첨을 일삼는 본색을 탄로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언의 근원을 캐면 그 바닥에는 변절하지 말라, 지조의 힘을 기르란 뜻이 깃들어 있다.

 

변절이란 무엇인가. 절개를 바꾸는 것, 곧 자기가 심신으로 이미 신념하고 표방했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철이 들어서 세워 놓은 주체의 자세를 뒤집는 것은 모두 다 넓은 의미의 변절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욕하는 변절은 개과 천선(改過遷善)의 변절이 아니고 좋고 바른 데서 나쁜 방향으로 바꾸는 변절을 변절이라 한다.

 

일제(日帝) 때 경찰에 관계하다 독립 운동으로 바꾼 이가 있거니와 그런 분을 변절이라고 욕하진 않았다. 그러나 독립 운동을 하다가 친일파(親日派)로 전향한 이는 변절자로 욕하였다. 권력에 붙어 벼슬하다가 야당이 된 이도 있다. 지조에 있어 완전히 깨끗하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들에게도 변절자의 비난은 돌아가지 않는다.

 

나머지 하나 협의(狹義)의 변절자, 비난 불신의 대상이 되는 변절자는 야당전선(野黨戰線)에서 이탈하여 권력에 몸을 파는 변절자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이름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다.

 

자기 신념으로 일관한 사람은 변절자가 아니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남한산성(南漢山城)의 치욕에 김상헌(金尙憲)이 찢은 항서(降書)를 도로 주워 모은 주화파(主和派) 최명길은 당시 민족 정기(民族正氣)의 맹렬한 공격을 받았으나, 심양(瀋陽)의 감옥에 김상헌과 같이 갇히어 오해를 풀었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얘기다.

 

최명길은 변절의 사(士)가 아니요 남다른 신념이 한층 강했던 이였음을 알 수 있다. 또 누가 박중양(朴重陽), 문명기(文明琦) 등 허다한 친일파를 변절자라고 욕했는가. 그 사람들은 변절의 비난을 받기 이하의 더러운 친일파로 타기(唾棄)되기는 하였지만 변절자는 아니다.

 

민족 전체의 일을 위하여 몸소 치욕을 무릅쓴 업적이 있을 때는 변절자로 욕하지 않는다. 앞에 든 최명길도 그런 범주에 들거니와, 일제(日帝) 말기 말살되는 국어(國語)의 명맥(命脈)을 붙들고 살렸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 민족 해방의 날을 위한 유일의 준비가 되었던 <맞춤법 통일안>, <표준말 모음>, <큰사전>을 편찬한 <조선어 학회>가 국민 총력 연맹 조선어 학회지부(國民總力聯盟 朝鮮語學會支部)의 간판을 붙인 것을 욕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무런 하는 일도 없었다면, 그 간판은 족히 변절의 비난을 받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좌옹(佐翁), 고우(古友), 육당(六堂), 춘원(春園) 등 잊을 수 없는 업적을 지닌 이들의 일제 말의 대일 협력(對日協力)의 이름은 그 변신(變身)을 통한 아무런 성과도 없었기 때문에 애석하나마 변절의 누명을 씻을 수 없었다. 그분들의 이름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그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은 우리의 기억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이분들은 <반민 특위(反民特委)>에 불리었고, 거기서 그들의 허물을 벗겨 주지 않았던가. 아무것도 못하고 누명만 쓸 바에야 무위(無爲)한 채로 민족 정기의 사표(師表)가 됨만 같지 못한 것이다.

 

변절자에게는 저마다 그럴듯한 구실이 있다. 첫째, 좀 크다는 사람들은 말하기를, 백이(伯夷)·숙제(叔齊)는 나도 될 수 있다. 나만이 깨끗이 굶어 죽으면 민족은 어쩌느냐가 그것이다. 범의 굴에 들어가야 범을 잡는다는 투의 이론이요, 그 다음에 바깥에선 아무 일도 안 되니 들어가 싸운다는 것이요, 가장 하치가, 에라 권력에 붙어 이권이나 얻고 가족이나 고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굶어 죽기가 쉽다거나 들어가 싸운다거나 바람이 났거나 간에 그 구실을 뒷받침할 만한 일을 획책(劃策)도 한 번 못해 봤다면 그건 변절의 낙인밖에 얻을 것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일찍이 어떤 선비도 변절하여 권력에 영합해서 들어갔다가 더러운 물을 뒤집어쓰지 않고 깨끗이 물러나온 예를 역사상에서 보지 못했다. 연산주(燕山主)의 황음(荒淫)에 어떤 고관의 부인이 궁중에 불리어 갈 때 온몸을 명주로 동여매고 들어가면서, 만일 욕을 보면 살아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해 놓고 밀실에 들어가서는 그 황홀한 장치와 향기에 취하여 제 손으로 명주를 풀고 눕더라는 야담이 있다. 어떤 강간(强姦)도 나중에는 화간(和姦)이 된다는 이치와 같지 않는가.

 

만근(輓近) 30년래에 우리 나라는 변절자가 많은 나라였다. 일제 말의 친일 전향, 해방 후의 남로당 탈당, 또 최근의 민주당의 탈당, 이것은 20이 넘은, 사상적으로 철이 난 사람들의 주착없는 변절임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궤(同軌)다. 감당도 못할 일을, 제 자신도 율(律)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민족이니 사회니 하고 나섰더라는 말인가. 지성인의 변절은 그것이 개과 천선(改過遷善)이든 무엇이든 인간적으로 일단 모욕을 자취(自取)하는 것임을 알 것이다.

 

우리가 지조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주고 싶은 말은 다음의 한 구절이다. '기녀(妓女)라도 그늘막에 남편을 좇으면 한평생 분냄새가 거리낌 없을 것이요, 정부(貞婦)라도 머리털 센 다음에 정조(貞操)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苦節)이 아랑곳 없으리라. 속담에 말하기를 '사람을 보려면 다만 그 후반을 보라.' 하였으니 참으로 명언이다.

 

차돌에 바람이 들면 백 리를 날아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거니와, 늦바람이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아직 지조를 깨뜨린 적이 없는 이는 만년(晩年)을 더욱 힘 쓸 것이니 사람이란 늙으면 더러워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으로 바람이 났던 이들은 스스로의 후반을 위하여 번연(飜然)히 깨우치라. 한일 합방(韓日合邦) 때 자결(自決)한 지사 시인(志士詩人) 황매천(黃梅泉)은 정탈(定奪)이 매운 분으로 매천 필하 무 완인(梅泉筆下無完人)이란 평을 듣거니와 그 <매천 야록(梅泉野錄)>에 보면, 민충정공(閔忠正公), 이용익(李容翊) 두 분의 초년(初年行績)을 헐뜯은 곳이 있다. 오늘에 누가 민충정공, 이용익 선생을 욕하는 이 있겠는가. 우리는 그분들의 초년을 모른다. 역사에 남은 것은 그분들의 후반이요, 따라서 그분들의 생명은 마지막에 길이 남게 된 것이다.

 

도도(滔滔)히 밀려 오는 망국(亡國)의 탁류(濁流)―이 금력과 권력, 사악 앞에 목숨으로써 방파제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지조의 함성을 높이 외치라. 그 지성 앞에는 사나운 물결도 물러서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천하의 대세가 바른 것을 향하여 다가오는 때에 변절이란 무슨 어처구니없는 말인가. 이완용(李完用)은 나라를 팔아먹어도 자기를 위한 36년의 선견지명(先見之明)(?)은 가졌었다. 무너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권력에 뒤늦게 팔리는 행색(行色)은 딱하기 짝없다. 배고프고 욕된 것을 조금 더 참으라. 그보다 더한 욕이 변절 뒤에 기다리고 있다.

 

'소인기(少忍飢)하라.' 이 말에는 뼈아픈 고사(故事)가 있다. 광해군(光海君)의 난정(亂政) 때 깨끗한 선비들은 나가서 벼슬하지 않았다.

 

어떤 선비들이 모여 바둑과 청담(淸談)으로 소일(消日)하는데, 그 집 주인은 적빈(赤貧)이 여세(如洗)라, 그 부인이 남편의 친구들을 위하여 점심에는 수제비국이라도 끓여 드리려 하니 땔나무가 없었다. 궤짝을 뜯어 도마 위에 놓고 식칼로 쪼개다가 잘못되어 젖을 찍고 말았다.

 

바둑 두던 선비들은 갑자기 안에서 나는 비명을 들었다. 주인이 들어갔다가 나와서 사실 얘기를 하고 추연히 하는 말이, 가난이 죄라고 탄식하였다.

 

그 탄식을 듣고 선비 하나가 일어나서며, 가난이 원순 줄 이제 처음 알았느냐고 야유하고 간 뒤로 그 선비는 다시 그 집에 오지 않았다. 몇 해 뒤에 그 주인은 첫 뜻을 바꾸어 나아가 벼슬하다가 반정(反正) 때 몰리어 죽게 되었다.

 

수레에 실려서 형장(刑場)으로 가는데 길가 숲 속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 수레를 잠시 멈추게 한 다음 가지고 온 닭 한 마리와 술 한 병을 내놓고 같이 나누며 영결(永訣)하였다.

 

그 때 친구의 말이, 자네가 새삼스레 가난을 탄식할 때 나는 자네가 마음이 변할 줄 이미 알고 발을 끊었다고 했다. 고기밥 맛에 끌리어 절개를 팔고 이 꼴이 되었으니 죽으면 고기 맛을 못 잊어서 어쩌겠느냐는 야유가 숨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찾는 것은 우정이었다.

 

죄인은 수레에 다시 타고 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탄식하였다. '소인기 소인기(少忍飢 少忍飢)하라'고…….

 

변절자에게도 양심은 있다. 야당에서 권력에로 팔린 뒤 거드럭거리다 이내 실세(失勢)한 사람도 있고 갓 들어가서 애교를 떠는 축도 있다. 그들은 대개 성명서를 낸 바 있다. 표면으로 성명은 버젓하나 뜻있는 사람을 대하는 그 얼굴에는 수치의 감정이 역연하다. 그것이 바로 양심이란 것이다. 구복(口腹)과 명리를 위한 변절은 말없이 사라지는 것이 좋다. 자기 변명은 도리어 자기를 깎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녀가 아기를 낳아도 핑계는 있다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왜 아기를 배게 됐느냐 하는 그 이야기 자체가 창피하지 않은가.

 

양가(良家)의 부녀가 놀아나고 학자 문인까지 지조를 헌신짝같이 아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으니 변절하는 정치가들은 우리쯤이야 괜찮다고 자위할지 모른다. 그러나 역시 지조는 어느 때나 선비의, 교양인의, 지도자의 생명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지조를 잃고 변절한다는 것은 스스로 그 자임(自任)하는 바를 포기하는 것이다.

 

2009년 11월 23일 월요일

활자는 표류하는 정보 세계의 닻

한국경제신문이  2009년 11월 20일자 커버스토리로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스토리의 힘이 국력이다', '이야기는 문화산업의 꽃',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보석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등이 그것이다. 제목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국력, '문화산업' 등이 역시 한국경제신문의 관심사이다. 이런 패러다임이어야 '말발'이, 즉 설득력이 있다고 한국경제신문은 생각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기사들 가운데, 눈에 띄는 통계 하나. "일본 출판연감에 따르면 신간의 경우 2005년 7만8000여종,14억부가 발행된다. 우리나라는 2007년 신간 발행량이 4만1000종,1억3000만부에 불과하다." 일본의 출판시장은 종수로 따지면 2배쯤 되지만, 발행부수로 따지면 약 10배쯤 된다는 이야기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보석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를 정리한 정진형 기자는 '요미우리신문'이 진행하고 있는 '21세기 활자문화 프로젝트' 의 추진위원장 야마자키 마사카즈(山崎正和) 도아대 대학장의 말은 인용하고 있다. 정진형 기자가 인용한 것 외의 것도 옮겨 놓아 둔다.

 

"활자는 표류하는 정보 세계의 닻이다. 인간은 지금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당황하고 있다. 영상이나 음향을 탄 정보는 자극적이지만 계속해서 흐르고 떠다니면서 도무지 두서가 없다. 일관되게 정리해 의미를 파악하려 하면 그림도 소리도 그 질을 바꿔 버린다. 활자만이 현실을 응축해 의미 있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活字は漂流する情報世界の碇(いかり)である。

 

人間はいま、溢(あふ)れる情報のなかでとまどっている。映像や音響に乗った情報は刺激的だが、つぎつぎに流れ去ってとりとめがない。一つにまとめて意味を捕らえようとすると、絵も音も質を変えてしまう。ただ早回しされたビデオは、ビデオの要約とはいえない。言葉だけが、そして活字だけが、現実を凝縮して、意味あるものに変えることができる

 

きれぎれで脈絡のない情報は、人間を受け身にして、世の中を感情的にする。人の感覚ばかりを誘惑して、落ち着いてものを考えさせない。活字だけが情報と人間の間に距離をつくり、読み取る努力を要求する。そのことが頭を積極的に働かせて、自分で現実を理解したり、解釈したりする人間を育てる。

 

活字は肥満する情報世界の骨格である。

 

無秩序にふくれあがった情報世界は、見渡しがきかない。どこが中心でどこが周辺か、どこが始まりでどこが終わりか、つかみどころがない。活字は編集という作業をともなって、情報に骨組みを与える。新聞には見出しがあり記事の長短があって、毎日の情報に一目でわかる見渡しをつける。本には章立てと目次があって、著者の考えの構造を明らかにする。人間が知識を持つとは、情報にこうした骨格を与えることであるが、活字はそのために欠くことのできない媒体なのである。

 

文字は人間の歴史とともに生まれ、活字は知識が全人類のものになったときに生まれた。活字文化とは人間らしい人間のあり方そのものである。二十一世紀にますます成長するはずの情報世界を迎えて、これを漂流する肥満児にしないために、必要なことはいま、確かな碇と骨格を用意しておくことだろう."

 

 

변화는 '발'에서 시작된다

 

이희욱 씨가 '개념있는 시민학교'의 신영복 선생 강연을 요약하여 올려놓았다. 요약이라고 하지만, 잘 정리된 내용이다. 그 글을 읽는다. 함께 읽고 싶어서 여기에 옮겨놓는다.

 

 

 

<강연 요약>

 

독일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세 주체로 국가, 교육, 대학을 꼽았다. 그의 저서 <대학의 이념>은 국가 권력기관으로부터 대학의 독립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오늘날은 야스퍼스가 상정했던 대학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훨씬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 대학은 그 사회에서 필요한 전문인력도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된 공간으로서의 대학은 현재 이야기할 수 없다.

 

저는 학교 체질이다. 계속 학교에서만 있었다. 도중에 겪었던 20년 감옥 생활도 학교로 쳐준다면. (일동 웃음) 아버지가 선생님이라 저는 학교 사택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학교 사택에서 교실로 내려가 놀았다.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27살에 교도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1988년 출소한 뒤 89년 1학기부터 또 학교로 들어갔다. 내 인생을 돌아보니 20년 주기가 있더라.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감옥 이후 20년이다. 지금도 학교에 잡혀 있다.

 

상아탑에 있다보면 오늘날 복잡한 사회적 쟁점에 대해 열띠게 토론할 입장이 안 된다. 그러나 좀 거리를 두고 근본적 사고를 하는 사람도 사회에 필요하지 싶다. 여러분과 그런 점을 성찰하는 자리를 가지려 한다.

 

감옥에 있을 때 ‘주역’을 많이 읽었다. 주역에 ‘석과’(碩果)란 말이 나온다. ‘씨 과실’이다. 오늘은 씨 과실이 숲으로 가는 길에 대해 얘기하려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웃집 토토로’를 보면 “씨앗은 숲으로 가는 여행이다”라는 구절도 나온다. 마지막 석과가 언제 떨어질 지 모르는 상황, 남은 하나마저 뺏길 지 모르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효4′에 보면 ‘석과불식’(碩果不食)이란 말이 나온다. 씨 과실은 결코 먹지 않는다. 먹지 않고 씨를 받아 땅에 묻는다. 이듬해 새싹으로 돋아난다.

 

이 씨가 숲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첫 번째는 잎사귀를 다 떨어뜨려야 한다. ‘엽낙’(葉落)이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면 몸체를 드러내야 한다. 그게 ‘체로’(体露)다.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건, 거품을 걷어내고 환상을 청산한다는 걸 상징한다. 추경예산 조기집행하고 4대강 사업 추진하면 경제 위기가 극복될 거라는 환상같은. 그런 환상을 걷어내면 뼈대가 선명히 드러낸다. 한 사회, 한 개인의 뼈대, 가장 근본적인 구조가 드러난다. 정치적 자주권은 있는지, 문화적 자존심은 있는지, 식량과 에너지를 어느 정도 자급할 수 있는 경제 구조가 있는지. 소위 말하는 ‘신자유주의’가 굉장히 부당하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옷과 패션을 벗으면 알몸이 된다.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하는 게 첫 번째다.

 

다음은 ‘분본’(賁本). 뿌리를 거름해야 한다. 잎사귀들이 뿌리를 따뜻하게 덮고 거름하는 상태다. 한 사회의 ‘본’이 무엇인가. 여기서 정치적 입장이 나뉜다. ‘본’은 인간이다. 한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게 바로 ‘정’(政), 정치다. 정치는 권력을 쟁취하고 지키는 게 아니다. 한 사회의 잠재적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게 정치다. 지금은 사람을 따뜻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반대다. 사람을 거름으로 쓴다. 끔찍하다.

 

절망적 상황에 직면했을 때 크게 두 가지 방식의 대응 행태가 있다. 하나는 실사구시다. 사실에 다가가서 참됨을 구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가 합의하고 있다. 이건 진리(眞理)가 아니라 물리(物理)다. 사실에 다가가 여러 팩트들의 상호관계를 조정하고 순위를 매기고,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장애를 둘러싼 많은 팩트들을 조정하는 게 실사구시다. 이건 물리적 영역이다.

 

그런데 만약 경제가 애로에 봉착하면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구조조정, 노동유연성 식으로 사람을 조정했다. 다른 하나는 경제란 개념 자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경제가 무엇인가, 왜 경제를 살려야 하는가 하는 근본 개념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게 ‘진리’다. 우리가 익숙한 건 물리적 대응이고, 거기에 합의하는 것은 아닐까. 단기적으로는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근본 방향과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진리 문제에 반드시 부딪힌다. 인간의 근본 문제, 야스퍼스가 지적했듯이 인간에 대한 냉정한 이해와 직시가 필요하다.

 

문제는 ‘머리’다

오늘은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다. 머리, 가슴, 발 세 부분으로 말씀드리겠다. 먼저 머리 부분을 가장 문제삼고 싶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은 우리 생각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선언했다. 근대 사회의 특징이 이성이다. 중세 암흑기에 비추면 데카르트 선언은 굉장히 혁명적이지만, 그 이성이 정말 합리적인가의 문제가 여지없이 해체되는 게 오늘날 지적 상황이다.

 

중세는 중세의 문맥이 있다. 예컨대 마녀가 있었다. 시대가 마녀를 인정했고, 심지어 처형된 마녀조차 자기가 마녀란 걸 자백하고 처형당한 경우도 상당하다. 지금 보면 어리석은 문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각을 달리해보자. 우리는 문맥에 갇혀 있지 않은가. 냉정히 보자. 뿌리에 해당하는 인간 이해에 있어 갇혀 있지 않은가. 나는 갇혀 있다고 본다.

 

두 사람이 있다 치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대개는 그 사람의 정보를 면밀히 분석하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을 우리 대부분은 갖고 있다. 사실은 A가 B를 잘 이해하려면 B가 A를 잘 알아야 한다. ‘관계’가 있어야 한다. 관계 없이도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성의 오만의 극치다. 둘 사이에 관계가 있으면 반드시 양방향 변화가 이뤄진다. 변화 없이 일방적인 인식이 누적되고, 그 누적된 인식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성의 오만이다.

 

인식을 예전에는 ‘구도’라고 불렀다. 도에 이르는 데는 고행이 수반된다. 고행을 통해 주체가 변화되는 걸 뜻했다. 그러지 않으면 도에 이르지 못한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자기가 반짝이는 이성만 있으면 상대방을 대상화하고 타자화한다. 우리가 갇힌 근대 문명은 이성의 주체성에 철저히 매몰돼 있는 사고다. 특히 인간 이해에 있어선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문맥은 대단히 많다. 전쟁 문맥도 많다. 아직 한국은 전쟁중이다. 우리나라가 소통이 안 되는 바탕에는 전쟁 문맥이 깔려 있다. 전쟁은 소통 문맥이 아니다. 찬반 양론으로 갈리어 어떻게 소통이 되나. 자기가 변화하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된다. 당신이 얘기해보라, 그래 그 얘기 인정하겠다, 하는 게 무슨 소통인가.

 

우리가 갇혀 있는 문맥은 분석하고 대상화하는 것이다. 상품 문맥도 있다. ‘쌀 한 가마=구두 한 켤레’란 예를 들어보자. 쌀이 상품이라면, 상품은 팔기 위한 것이다. 상품은 등가물로서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상품이 아니면 그냥 먹으면 된다. 사람을 쌀 자리에 놓았을 때 이 사람이 구두 한 켤레와 같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굉장히 섭섭해할 거다. 그런데 그 사람 연봉이 10억원이라고 하면 섭섭해하지 않는다. 구두 한 켤레든, 연봉 10억원이든 등가물이긴 마찬가지다. 품성이나 매력과 상관없이 인간이 등가물로 표현된다. 다른 말로 ‘등신’이라고 불렀다.

 

나도 등신 노릇 많이 했다. 교도소 목공소에서 일할 때다. 나는 기술이 없으니 다른 사람이 톱질할 때 안 흔들리게 나무를 밟고 서 있으라고 하더라. 나도 명색이 대학교수 하다가 감옥 갔는데, 무게와 등가물이 됐다. (일동 웃음).

 

우리 아파트에 유명한 변호사와 별로 미인이 아닌 부인 부부가 있었다. 흔히 말해 어울리지 않는 부부였다. 모든 아파트 사람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파트 사람들이 내린 결론이, 그 부인 집이 부자일 거라고들 했다. (일동 웃음). 루저 파문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키가 작은 남자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게 등가물로 바라보는 거다.

 

근대사회는 자본주의 사회다. 자본은 자기 가치를 증식하는 것이다. 내 돈을 교통비나 밥값으로 쓰면 가치 증식이 아니다. 물건을 사거나 투자하는 게 자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나 단체든, 국가든 자기 가치를 키우는 게 근대사회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다른 사람을 대상화하고 분석한다.

 

내가 감옥 초년에 깨달은 게 있다. 내가 근대적 사고에 충실한 근대인이구나. 죄수들을 바라볼 때 저 사람이 결손가정인지, 지위는 어떤지 계속 분석하고 대상화했다. 그런 기간 동안은 당연히 왕따였다. (일동 웃음)

 

‘가슴’으로 가는 긴 여정

그래도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얘기하고 듣다보니 납득이 가더라. 20년간 한 곳에 갇혀 있었지만 많은 사람을 만났다. 나도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저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생활했다면 저 사람 죄명을 달고 여기 서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머리가 이성적인 영역이라면, 가슴은 공감의 영역이다. 머리로부터 가슴으로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라고 할 때 ‘전두엽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하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라’고 한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생각하는 것이다.

 

해 저문데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를 생각한 적이 있지 않나. 생각은 그런 거다. 이성하고 상관 없다. 생각은 그 대상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가 참여한다는 뜻도 된다. 강도에게 칼을 맞아 쓰러져 있는 유태인을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부축해 여관으로 데려가 치료하고 보호했다. 그건 유태인을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고 생각한 것이다. 세계는 가슴으로 조립하는 것이다.

 

진리는 어떤가. 불변의 진리? 이것이 근대사회의 문맥이다. 초역사적 불변의 진리는 없다. 진리는 조직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조직하는 것이다. 수많은 지난 사건들 가운데 역사가가 일부를 선택해 조직하는 것이다. 사마천 ‘사기’를 읽는 것은 중국 근대사를 읽는 게 아니라 사마천을 읽는 것이다.

 

생각. 대단히 중요하다. 가슴이 생각하는 게 맞다. 멀리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생각하는 건 자기 세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와 관계 없는 걸 대상화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냉혹한 근대 이성을 넘어 가슴까지 오는 것, 사람이 일생동안 하는 여행 중 가장 먼 여행이다.

 

공감 단계에 올 때까지 저도 아픈 기억들이 많다. 그래서 충분히 그 사람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공존할 수 있다는 단계에 와 있다는 걸 스스로 굉장히 흐뭇해했다. 거대한 여행을 끝내고 무척 발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감한다는 것, 애정을 가지고 봉사한다는 것, 대가 없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 미덕이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동정받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동정받는 순간 자기가 동정의 대상이라는 아픈 자각을 다시한번 하게 된다. 돕는다는 건 그래서 우산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주는 것이다.

 

집을 그리는 노인 목수 얘기를 책에도 썼고 여러 번 얘기했다. 그 노인 목수는 집을 주춧돌부터 기둥, 지붕 순서로 그렸다. 그 옆에 앉아서 나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일하는 사람들은 집 짓는 순서와 그림 그리는 순서가 같구나. 선생 아들로 태어나 주욱 학교에서 생활한 나는 지붕부터 그리고 있구나.

 

변화는 ‘발’에서 비롯된다

‘대의’란 이름을 가진 재소자가 있었다. 30대인데도 절도 전과가 서너 개는 있었다. 어느 날 내가 딱히 여겨 물었다. ‘네 이름은 아버지가 지었나?’ 그러니 ‘난 아버지가 없는 고아다’라고 대답하더라. 돌이 채 안 될 때 버려졌는데, 발견된 곳이 광주 대의파출소 바로 옆이라 이름이 대의가 됐다고 했다. 또 충격받았다. 나는 문자가 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구나. 이걸 바꾸려 했다. 가슴에서 발까지 가야 한다.

 

발은 변화를 상징한다. 소통도 변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소통이 아니라고 말했다. 변화를 위한 노력들을 참 많이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주제가 해체와 변화였다. 나는 사회변혁기에는 감옥에 있었지만, 자기 변혁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머리는 사람을 ‘개인’이라 생각하지만 발로 오면 사람은 ‘관계’가 된다.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개인이 안정화된다. 관계속에 서야 한다. 나도 처음엔 감옥에서 왕따였는데, 관계 단계로 오니 감옥이 정말 든든해졌다.

 

징역 말년에는 상당히 편했다. 원래는 내내 요시찰이었다. 대공분실에서 몇 번 와서 추가 조서 받은 적도 있으니까. 다른 재소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했는지 불시에 방 점검도 많이 당했다. 그래서 내 방에는 책이 한 권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적발되면 당장 압수될 수준의 책 40여권을 이동문고로 돌리고 있었다. 다른 재소자들과 손발이 잘 맞았으니까. 절도, 쓸이범 친구들이 얼마나 잘 하는데. (일동 웃음) 그게 관계였다.

 

그런 관계가 대단히 인간적이기도 하다. 이념적 관계도 아니다. 서로의 치부를 다 공유하는 관계임에도 따뜻하다. 아프다고 하면 몰래 숨겨둔 약을 보내주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는 뜨게질한 양말도 나눈다. 생각해보면 그런 관계 덕분에 감옥을 견디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출소 직후만 해도 나는 개인 개조나 변화를 개인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변화도 사람과 더불어 관계맺는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

 

최근 알랭 바디우 책을 읽었다. 탈근대의 철학적 담론들이 다 해체인데, 그럼 주체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하는 새로운 문제제기를 한다. 그러면서 진리란 기존 진리체계의 바깥에서 사건으로 돌출하는 것이라고 바디우는 말한다. 천동설이 진리체계였을 때 지동설은 진리체계 외부에서 사건으로 돌출했다. 후사건적 실천이 주체를 형성한다. 대단히 중요하다.

 

오늘은 여러분과 공유하고픈 게 ‘변화’다. 생각은 실제로 변화해야 한다. 이 변화가 가능하기 위해선 머리부터 가슴, 발까지 길고 먼 여행을 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외부에 대한 사고다. 갇혀 있는 진리체계의 바깥에 사건으로 돌출하는 것. 쇤베르크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적 구성이나 화음이 원래 아인슈타인의 수학 논리처럼 복잡하다. 그걸 7음계로 나눴다. 그걸로는 미분이 안 되니 중간에 반음을 넣었다. 그러다가 12음계로 바꿨다. 쇤베르크가 고전 음악의 진리체계를 무너뜨리고 음악을 진리체계 바깥에서 돌출했다.

 

파리꼬뮌은 또 어떤가. 1871년에 70일 동안 일어난 짧은 사건이다. 베르사이유 궁전에 버려진 노동자와 농민이 자기들만의 정권을 꾸렸다. 파리꼬뮌이란 사건이 돌출하기 이전까지는 노동자나 서민의 정치역량에 대해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후 정치 권력의 한 축으로 당당히 차지했다. 진리는 그렇게 찾아온다.

 

주변부는 변화의 가능성이 훨씬 높다. 중심부는 완강한 구조 탓에 새로운 사고가 나오기 어렵다. 변화는 바깥에서 나온다. 마이너리티가 돼야 한다.

마이너리티는 양적 관점이 아니다. 양적으로는 마이너리티가 아니다. 중심부가 갖는 영향력은 크다. 조중동, 국가, 제도, 법 등 강력한 기제가 있다.

역사적으로 지금이 가장 강력한 기제를 발산하지 않나 생각한다. 과거엔 물리적 기제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상대방 동의에 기초했다는 헤게모니 또는 정서 자체를 포섭한 거대한 구조다. 양적으론 소수이지만 파워면에선 반대다. 문제는 중심부가 행사하는 파워가 어디서부터 나오느냐이다. 바로 주변부에서 온다. 피지배자라는 주변부는 다수이고, 지배하는 중심부는 소수다. 다수는 힘이기도 하고 정의이기도 하다.

 

교도소는 우리 사회의 철저한 마이너리티다. 그 언덕에 기대어 저도 변화를 고민할 수 있었다. 마이너리티의 창조성에 주목해야 한다. 연암 박지원은 우리나라 최고의 사상가이자 문장가다. 우리나라 최고의 저서가 ‘열하일기’다. 연암은 16살에 처음 글공부를 했다. 노론 집안이었지만 가난했기에 배움이 늦었다. 장가든 이후 처삼촌이 글을 가르쳤다. 열하일기를 읽어보라. 문장이 아주 뛰어나고 참신하다.

 

다산은 또 어떤가. 그런 시대에 그런 사고를 했다는 게 우리의 위로이기도 하고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당대의 다산은 어떤가. 다산초당에 앉아 있을 당시 다산은 철저한 마이너리티였다. 그래서 여유당전서를 쓸 수 있었다. 마이너리티가 되자는 실천적 사고를 한 것이 변화의 핵심이다.

 

배워야 한다. 촛불집회 때 보면 사회단체 대표들이 깃발을 들고 주욱 나타난다. 촛불이 이뤄놓은 일정한 성과를 자기 조직을 강화하는 데 고민하는 모습을 봤다. 대단히 안타까웠다. 그 세대, 그 사고들은 어딘가 서버에 접속해야 한다. 웹1.0 세대다. 촛불은 어디에도 접속하지 않는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서버다. 공간공동체란 옛날 관점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 사람이 새로운 사고를 하는 건 굉장히 어렵다.

 

오늘날 변화된 정서나 상황을 과거의 틀, 공간공동체란 문맥이 아닌 다른 문맥으로 키워낼 수 있을까. 그걸 사회운동하는 분들이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전형을 고민해야 한다. 열심히 뛰어 양적으로 많은 모임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잘 되는 게 아니다.

 

감옥에서 네루와 간디를 함께 읽었다. 네루가 쓴 ‘인도의 발견’이란 책이 있다. 결국 인도를 발견한 건 네루가 아니라 간디다. 네루는 근대사회의 인식을 복사해 인도에 인식하려 했다. 간디는 가난하고, 카스트란 사회적 계급구조에 억눌려 있고, 종교란 환상에 젖어 있는 나약한 인도 국민들로부터 식민지 독립을 위한 창조적 동력을 어디서 끌어내야 할 지 꿰뚫어봤다. 그건 ‘비폭력 무저항’이었다. 인도의 현실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항쟁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나는 간디를 종교적 성자가 아닌, 뛰어난 정치전략가라 생각한다. 바이샤 출신의 마이너리티 간디가 가진 자유로움이었다. 결정적인 건,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 중심부를 향한 허망한 콤플렉스를 가져선 안 된다. 콤플렉스는 대단히 완고하다. 한 개인의 판단에 최후까지 작용하는 건 자기도 모르는 콤플렉스다. 한 사회 문화구조 속에 콤플렉스가 굳어 있다면 그 사회는 합리적 가치를 설정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더불어 공감하고 나누는 ‘숲’으로 가자

숲으로 가자. 나무의 완성은 숲이다. 숲에는 서로 공유하는 게 있다. 서로 알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이다. 위로이기도 하고, 약속이기도 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란 책을 본 적 있나. 처음 책 제목을 들었을 때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가 아니라 ‘기쁨’이라니, 한참을 찾았다. 책을 샀더니 쇼펜하우어가 쓴 책이었다. ‘모든 사랑은 아픔’이라는 ‘젊은 베르테르의 고뇌’를 읽은 독자들이 사랑은 이렇게 아픈 것이구나 하고 깨달음을 갖게 된다. 그 아픔이 눈물젖은 아픔이라도 결국 깨달음에 이르고 철학이 되고 지식이 된다. 그래서 고뇌가 아니라 기쁜 것이다, 란 인식이다.

 

숲은 기쁜 곳이다. 에피쿠로스가 말했다. 우정은 음모다. 주변부를 공유하는 게 우정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고 상식에 벗어나는 행동에 대해 질타당할 때 그 사람 옆에 가서 공유하는 것, 비난을 음모하는 게 우정이다. 숲은 우정과 음모를 키우는 진지가 되고, 사회변화 과정에서는 뛰어나가는 거점이 되기도 한다. 자유로운 숲들을 도처에 만들어내는 게 필요하다. 숲의 개념마저도 새로운 개념으로, 개념있는 시민학교가 고민해야 한다.

 

석과에서 숲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인생은 공부라고 생각해야 한다. 먼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공부가 지겹지 않다. 시민학교도 공부하는 장소다. 약속하고 격려하는 장소다. 교도소에서 단기수들은 굉장히 괴로워한다. 하루하루가 지나가는 걸 매일 체크한다. 하루하루를 버리는 것이다. 목표와 관계없이 과정 자체에 대해 자부심과 가치를 느껴야 한다. 그게 중요하다. 먼길을 가는 사람에겐 ‘고진감래’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현실 자체가 즐겁고, 우정이 있고, 음모가 있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만이 직선으로 고속도로를 달린다. 강아지는 그렇지 않다. 길 곳곳의 특질들을 파악하고 흔적을 남긴다. 시속 100km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100m 앞의 코스모스도 보지 못한다. 자기가 하는 일 자체가 보람있고 아름다운 공부여야 한다. 안 그러면 먼 길을 절대 못 간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신적 욕망 구조는 만들어진 욕망 구조다. 자기 주체성을 갖고 자부심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먼 길을 견디는 방법은 우선 길 자체로부터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함께가면 좋다. 함께한다는 데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

 

처음 출소했을 때 한 시민단체에서 기금을 마련한다고 붓글씨를 써달라고 해서 ‘여럿이함께’라고 썼다. 한글로 쉽게 액자체로 쓰고 글씨체도 좋은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 ‘여럿이함께’란 메시지 속에는 방법만 있고 목표가 없다고 하더라. 그 뒤로는 글 밑에 ‘여럿이 함께가면 길은 뒤에 나타난다’고 썼다. 쉽게 변화하리라는 낙관적인 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우리 사회가 가진 완고한 구조, 우리가 갇힌 완고한 문맥속에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사람은 지극히 적다. 그렇기에 자주 만나 우정을, 음모를 돈독히 해야 한다.

 

저강도 전략

김근태의 '한반도 위기와 민주세력의 책임'이라는 강연. 11월 3일. 전남대 용봉홀에서 한반도 위기와 민주세력의 책임이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한다. 손호철 교수는 <프레시안>의 칼럼 '김근태, MB, 저강도 전쟁--MB의 반대세력 탄압, 위험수위 넘어섰다'(2009년 11월 23일자)에서 이 강연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그 대목은 이렇다.

 

이명박 정권은 부익부 빈익빈 정치를 그냥 밀고 나가는 강자, 부자만을 위하는 정권이다. 더 이상의 양극화는 국민을 대대적으로 분열시켜 대립·갈등·투쟁하게 만들 것이다. 이런 걱정과 우려에 대해 한나라당 정권은 수월성 이론과 성장의 과실이 흘러내린다는 ‘흘러내림(Trickle Down)’ 이론을 갖고 정당화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용산참사에서, 쌍용자동차에서 권력은 서민과 노동자를 중산층과 분리 고립시킨다. 배제해서 왕따시키고 억압하고 탄압한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검찰과 일부 기득권 언론 권력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독대 보고를 받고 있는 국정원과 기무사는 정치권력의 모든 대치전선에 전면적으로 복귀했다. 지금은 다만 그것을 감추려 하고 있고, 꼬리가 들켜도 막무가내로 부인하고 있다.

 

이른바 저강도 전략을 펴서, 국민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

 

김제동, 손석희가 중도하차한 것은 부당하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옛날 같이, 미운털 박히면 구속되기도 하던데 그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생활에 쫓기고 있고, 억울하지만 하는 수 없지 않은가하며 사람들은 지나가거나 술자리에서 안주거리로 이야기하고 만다.

 

미네르바는 구속되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당했다. 실형은 받지 않고, 또 폭행이나 고문도 받지 않았다. 지난 군사독재 시절 보다는 상대적으로 온건하게 억압하고, 탄압한다. 그래서 분노가 잘 조직되지 않는다. 분노가 폭발했다가도 이 정권의 저강도 전략과 친 서민 행보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생각해 보자. 저들의 저강도 전략은 이미 미국 부시 정권이 사용했던 수법이다. 그것은 국민의 민주화 투쟁의 성과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효과적으로 비판자, 반대 세력에게 집중 타격을 가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분노와 항의의 폭 넓은 연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교활한 저강도 전략을 국민에게 보여 드려야 한다. 그것은 민간독재의 전형적인 수법임을 만천하에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손호철 교수에 따르면, "'저강도 전쟁' 내지 '저강도 전략'이란 원래 레이건 정부가 1980년대 중미의 죄파 게릴라를 소탕하기 위해 들고 나온 새로운 군사전략으로 부작용이 많은 과거와 같은 전면적인 군사작전 대신에 장기적 프로그램을 갖고 주민들을 중립화시켜 게릴라들을 고립시키고 말 그대로 저강도의 군사작전을 통해 적을 하나둘씩 야금야금 섬멸해 나간다는 고도화된 전략을 의미한다." 손 교수는 김근태가 이명박 정부가 최근 반대세력 탄압을 '저강도 전략'이라는 개념을 원용해 규정한 것을 탁견이라고 말한다.

 

김근태의 언급 가운데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저강도 전략이 "분노와 항의의 폭 넓은 연대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지적이다. '분노와 항의의 폭 넓은 연대'는 2009년 11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 잘 보이지 않도록 차단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11월 22일, 이른바 '영산강 살리기 희망 선포식'이라는 행사가 열릴 때, 행사장에 참석한 기관장들의 모습은 생방송되었지만, 강 건너편에서 열렸던 반대시위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 것처럼.

 

 

» 위의 사진은 폴리뉴스의 전수영 기자가 전하는 사진. 연합뉴스의 사진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 설명은 "22일 오후 광주에서 열린 영산강살리기 희망 선포식이 열렸다.이 자리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 박준영 전남지사, 정종득 목표시장, 박광태 광주시장, 서삼석 무안군수, 박인환 전남도의회 의장, 강박원 광주시의회 의장 등과 많은 지역주민이 참석했다."

 

» 아래 사진은 한겨레의 신소영 기자의 사진. 사진 설명은 이렇다. "영산강 살리기 희망선포식이 열린 22일 오후 광주 승촌동 영산강 둔치 행사장 강 건너 편에서 영산강지키기 광주·전남시민행동 등 지역단체 및 주민들이 사업반대 구호가 적인 팻말을 든 채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부모를 따라온 몇몇 어린이들이 행사장 쪽을 응시하고 있다. 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09년 11월 17일 화요일

책이 없는 집

오늘 점심시간, 김훤주 기자의 블로그에서 만난 글입니다. 제목은 '텔레비전 보다가 전유성이 좋아졌다.'

 

 

KBS 1TV <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허정도라는 분, 경남도민일보 전 사장이자 <책 읽어주는 남편>이라는 책을 쓴 분, 건축가로 거창샛별초등학교 등을 설계하신 분, 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도 하고, 지역신문협회 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는 분, 이 분이 출연했는데, 이 프로그램의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개그맨 엄용수이 들려주는 전유성에 대한 이야기를 김훤주 기자는 전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허정도 사장은 <책 읽어주는 남편>이라는, 책에 대한 책을 펴낸 계기로 <화요 초대석>에 초대받았는데 그러니까 엄용수가 책 이야기를 하게 됐겠지요. 전유성의 책 얘기를 했습니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 그 선배는, 책도 많이 읽고 책 선물도 많이 해요. 언제나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지요. 후배들한테 '야, 이 책 좋더라.' 하면서 던져 주고 '야, 이 책 아주 재미있더라.' 하면서 건네준단 말이죠."

 

책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들한테 책 선물도 많이 하니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을 부러워 할 일은 돼도 좋아할 일까지는 못 되지요. 그런데 다음 대목에서 확 빨려들어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선배 집에 가면, 책이 하나도 없어요. 깨끗해요. 텅텅 비어 있어요. 왜냐고요? 책 보고 나서 집에 책꽂이에 꽂아두는 게 아니라 짚히는대로 후배들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줘버리니까요."  

 

물론 웃자고 한 얘기겠지만 제게는 전혀 우습지 않았습니다. 그냥 몸이 좀 서늘해졌고 머리는 좀 얻어맞은 것 같았을 따름입니다. 그러고는 빈틈없이 꽂혀 있는 제 책장 제 책꽂이가 순간 떠올랐을 뿐입니다.

 

거기에는 언제 읽었는지 기억도 희미한,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도 잘 모르겠는, 지금은 책으로서 값어치보다는 그냥 유물로서 값어치가 더 나가는 그런 책들이 잔뜩 있습니다. 제 욕심에 발목이 잡혀서 돌고돌아가는 세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끄집어내어져 있는 것들입니다.

 

제 집이 작기도 하지만, 그러다 보니 책이 막 곳곳에 쌓여 있습니다. 책은 자꾸 생기는데, 원래 있던 책은 버리지 못하니까, 조금씩이라도 빈틈을 만들어 책을 자꾸자꾸 재어 놓습니다. 이런 저를 엄용수의 전유성 이야기가 돌아보게 했습니다.

 

김훤주는 전유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전유성은 책을 열심히 읽는다는 데서는 참 좋은 사람입니다. 이웃이랑 나눌 줄 안다는 면에서는 참으로 따뜻한 사람입니다. 욕심을 없앴다는 면에서는 아주 바람직하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가져봐야 오히려 해코지만 된다는 진실을 직시했다는 점에서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라 해야겠지요."

 

한 사람을 이렇게 '좋은 사람, 따뜻한 사람, 깨달은 사람, 현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을 문득 하면서도, 저도 남에 다 주어버려서 책 한 권 없는, 전유성의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유성을 천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천재가 아니라 선지식이라 해야 할 듯싶습니다.

지역으로의 회귀

 

안 르페브르 발레이디에 지음, 김용석 옮김, <값싼 석유의 종말, 그리고 우리의 미래>(현실문화, 2009년 11월 1일 초판)을 훑어보았다. 눈에 띄는 한 대목.

 

석유가 없게 되면,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는 모든 상업적 논리는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계화' 대신에 '지역'으로의 회귀가 동반될 것이다.

--안 르페브르 발레이디에, <값싼 석유의 종말, 그리고 우리의 미래>, 179쪽

 

2009년 11월 16일 월요일

마음공부

오늘 아침 다산연구소 박석무 선생께서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신 글입니다. 제목이 '죽을 때까지 마음공부나 하겠노라'. 1811년 다산 선생이 둘째형님께 보낸 편지 가운데 한 대목이라고 합니다.

 

이 인용문에서 눈에 띄는 것이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합니다."는 문장입니다. 다산의 숱한 저술을 학문적 성과로도 읽을 것이지만, 동시에 마음공부의 결과로도 읽어야 할 듯싶습니다.

 

 

죽을 때까지 마음공부나 하겠노라


1815년은 다산의 나이 54세, 귀양살이 15년째를 맞는 해였습니다. 사서육경(四書六經)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마치고 더 높은 단계의 학문연구에 마음을 기우리고 싶었습니다. 보통의 인간에서 한 단계 수준이 높은 현인(賢人)이 되는 길을 찾고싶어했습니다. 부패한 세상을 개혁하고,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제하고 싶던 마음을 놓지 못하면서도, 자신의 인간공부에 대한 욕구를 멈출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인 마음공부를 위한 저술에 착수합니다. 이름하여 『심경밀험(心經密驗)』이라는 책인데, 저술한 해가 바로 1815년이고 5월 그믐날에 지은 서문까지 실려있습니다. 마음 바깥의 행위규범으로는 『소학(小學)』이라는 책을 최고로 여겨 『소학지언(小學枝言)』이라는 책을 저술하고, 마음공부의 핵심에는 『심경(心經)』이라는 책을 꼽고, 두 책을 통해 현인이 되는 길을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소학과 심경 두 책자만이 모든 경서 중에서 뛰어난 책이다. 두 책을 진정으로 연구하여 마음을 가라앉히고 제대로 실천해야 한다. 『소학』으로는 나의 바깥 행실을 독려하고, 『심경』으로 나의 내부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아마도 현인이 되는 길이 있을 것이다.(希賢有路)”라고 『심경밀험』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공부(治心之工)에 매달리던 다산의 노력은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점차로 하던 일을 거두고 이제는 마음공부에 힘쓰고 싶습니다.…… 스스로 살날이 길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바깥일에만 마음이 치달리니, 이는 주자(朱子)께서도 만년에 뉘우쳤던 바였습니다. 어찌 두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고요히 앉아 마음을 맑게 하고자 하다보면 세간의 잡념이 천갈래 만갈래로 어지럽게 일어나 무엇하나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으니, 마음공부로는 저술보다 나은 게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습니다. 이 때문에 문득 그만두지 못합니다.”(上仲氏)

1811년에 흑산도의 둘째 형님께 보낸 장문의 편지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때 벌써 마음공부의 중요함을 알았으면서도 복잡한 심사를 가누지 못해, 저술 작업에 몰두할 수밖에 없다는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경학연구도 대체로 마친 1815년에 『심경』 연구서를 저술하고는 "이제부터는 죽는날까지 온갖 힘을 마음공부에 기우리고 싶다. 심경을 연구하는 것으로 경학공부를 마치려고 하는데, 과연 실천이 가능할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물욕, 권력욕, 명예욕 등 온갖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 어떻게 해야 그런 욕심을 이기고, 격조 높은 인격에 이르러 현인의 길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다산처럼, 마음공부에 여생을 바치고픈 생각이 저절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아이 정치가

쉬는 날, 돌아보는 것, 주변을 돌아보고 옛날 보았던 책들을 다시 뒤적거려 보고 혹 내가 놓쳤던 선현들의 말씀을 다시금 되새겨 보는 것, 이런 날을 참 즐겁습니다. 즐거움은 아주 느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천천히 호흡할 때 생겨나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기쁨은 왠지 반짝거리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잠시 왔다가 문득 가버리는 것, 그것이 기쁨입니다. 즐거움은 신생아를 안은 엄마를 위해서 잔불에 오랫동안 끓여내는 미역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함석헌 선생의 글 가운데 '모산야우(毛山夜雨)'라는 짤막한 글이 있습니다. 함석헌 전집 제8권 '씨알에게 보내는 편지1'에 나오는 글입니다. (아래 아 자가 이 블로그에서는 써지지 않습니다.) 오늘 그 한 대목을 다시 읽어봅니다.

 

정치한다는 사람들 보십시오. 저 사람도 일찍이 아이였던 일이 있나, 또 아이들을 길러본 일이 있나, 의심날 만큼 어른인 척하려 하고 건방지고 무정하고 강압적이고 권위주의적입니다. 나는 그래서 정치가 싫습니다. 나는 죽음 죽었지, '일벌백계'를 방패로 내세우며 앞날이 바다를 내다보는 강물 같은 젊은 목숨을, 설혹 죄가 있다 한들,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놈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보잔 생각도 없이 어찌 내 생각만 절대화할 수 있습니까? 남들은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다"라고까지 하는데.

 

내 생각으로는 아이들과 놀 줄 아는 정치가여야 참 큰 인물이라고 합니다. 나는 그래서 황희 정승을 존경합니다. 종의 자식들도 그 무릎에 올라가 수염을 끄들며 놀았다 하지 않습니까?

 

씨알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의 심정을 알고 아이들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어른 정치가 아닌, 아이 정치가들, 천하를 좀 둬둘 줄 아는 정치가를 좀 보내주시구려!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쌀

 

우리교육에서 펴낸 <참 아름다운 당신>(2009년 11월 12일 초판)을 읽었다. 도종환, 공선옥, 김중미, 박정애, 전성태 등 13명의 작가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 이웃사람들 이야기를 쓴 것을 묶은 책이다.

 

도종환 시인은 보은 내북면 법주리의 그 산속 외딴 황토집, 산골길을 넘어야 하는 그 집을 찾아오는 길만영 집배원 이야기를 들여준다. 김중미 씨는 프레스공 고경순 씨를 만석동의 천연기념물로 소개하면서 그이의 삶 한 자락을 펼쳐보인다. 그런 이야기들 가운데 내 가슴을 저며들게 하는 이야기가 있었다. 공선옥 씨의 큰아버지 이야기. 그 가운데서 비료 포대에 조카 먹으라고 담아준 쌀 이야기를 읽으며 가슴이 짠하게 저 밑바닥에서부터 아파오며 쓸쓸해졌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고향을 떠나 살던 어느 해, 큰집에 갔다. 내가 작가가 되고 나서 어느 방송국에서 작가의 고향을 찍고 싶다고 해서였다. 우리 집은 이미 허물어져 밭이 된 지 오래였다. 당연히 큰집으로 갔다. 큰어머니가 방송국 사람들에게 밥을 해서 내놓았다. 아, 그 밥! 큰어머니는 도시 사람들 왔다고, 시골 사람들이 언제나 그러는 것처럼 '계란 부침개'를 내놓으셨다. 그것은 반찬이 맨 '시골 반찬'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내놓은 반찬이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었을 그 계란 반찬을 보고 나는 눈물이 났다. 그때 큰아버지는 방송국 사람들이 작가인 조카를 찍는 것을 마루에 앉아 물끄러미, 그리고 신기해 하면서 바라보셨다. 그것이 내가 살아생전 본 큰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돌아가려고 하자 큰아버지는 큰 짐바리 자전거에 뭔가를 싣고 동구 밖까지 따라 나오셨다.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그것은 쌀이었다. 방송국 차에 큰아버지가 주신 쌀을 싣고 도시로 돌아오면서 나는 울었다. 요소 비료 포대에 담긴 쌀이 나를 울렸다. 나는 집에 와서 쌀을 쌀통에 쏟아붓지 못하고 한참 동안 요소 비료 포대째로 거실에 놓아두었다. 쌀 포대가 된 비료 포대.

 

비료 포대는 언제나 나를 눈물 나게 한다. 떡방앗간에서 제사나 명절에 쓸 떡을 해서 그 비료 포대에 담아 가지고 온 적이 나도 있었다. 광주에서 자취할 때, 나는 또 김치를 그 비료 포대에 담아 가지고 머리에 이고 왔다. 그런 추억들이 나를 울리고, 해가 지는 저물 무렵 큰아버지가 동구 밖까지 따라 나와 쌀을 실어 주고 나서 하염없이 손을 흔드시는 모습이 나를 울렸다. 아버지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없는 고향에 이제 등 굽은 나의 큰아버지가 내게는 아버지였다. 그리고 지금 어디를 가도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평생을 농사짓고 사는 농부를 보면 문득 아버지, 하고 뇌게 된다. 모든 농부는 세상 모든 이의 아버지다.

 

-공선옥, '진짜 농부, 우리 큰아버지', <참 아름다운 당신>(우리교육, 2009) 44-47쪽

 

 

 

스타벅스보다 아름다운 북카페

 *사진출처: http://www.housingworks.org/social-enterprise/

 

하승창(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운영위원장)이 포스코 청암재단의 후원을 받아 미국 뉴욕에서 갖게 되었던 연수 기간 동안 <오마이뉴스> 등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책, <스타벅스보다 아름다운 북카페>(아르케, 2008년 4월 16일 초판)를 읽는다기보다는 넘겨본다는 식으로 보았다. 이 책은 아르케 출판사가 창고에 재고로 쌓여 있는 책을 묶어서 '책읽는사회'의 후원자들이나 도움이 될 만한 곳에 보내주기를 바라면서 보내 준 책 가운데 한 권이다. 일종의 미국 견문기라 할 만한 내용인데,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역시 이 책의 제목으로 삼은 북카페였다.

 

미술의 거리로 알려져 있는 뉴욕의 소호거리(SOHO, South of Houston)에 있는 북카페를 소개하는 꼭지다. 3만 명이 넘는 뉴욕의 노숙자들에게 적절한 주거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해 1990년에 설립된 '하우징 웍스(Housing Works)' 라는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하우징 웍스 유즈드 북카페'.

 

Housing Works Bookstore Cafe has established itself as a New York downtown institution and tourist destination for the last decade. Special events and a fully stocked cafe make this a great place to meet friends, relax and shop the best book, movie and music selection in New York City. Our one of a kind space is available for rental and all of our merchandise is donated. We are staffed almost entirely by volunteers and 100% of our profits go to Housing Works, Inc.

--하우징 웍스 누리집에서

하우징웍스의 북카페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 공간이자, 중고책을 중심으로 판매하고 있는 재활용운동이고, 노숙자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운동의 공간이기도 했다.

--하승창, <스타벅스보다 아름다운 북카페> 77쪽

 

'사회디자인'에 대한 생각

'사회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널리 퍼뜨린 사람은 박원순(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라는 '직함'을 새기고 다닌다고 한다.

 

박원순의 '미국식' 사회 디자인에 대하여, 자칭 'B급좌파'라는 김규항의 따끔한 똥침. 이 칼럼은 짤막하지만, 곱씹어 볼 내용은 풍부하다. 한겨레 2009년 10월 28일자 '야!한국사회'의 칼럼 '사회 디자인' 이다.

 

능력이나 노력의 차이에 따라 부의 격차가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똑같은 인간이기에 그 격차는 지나쳐선 안 된다. 이를테면 오늘 평범한 정규직 노동자 한 사람이 이건희 씨의 재산만큼 벌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꼬박 50만 년을 모아야 하는데 우리는 이것을 능력과 노력에 따른 정당한 격차로 인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큰 틀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즉 사회의 미래를 디자인하는 작업도 결국 그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 어떻게 하면 부자들의 돈을 빼서 가난한 약자들의 삶을 괼 수 있는가 하는 데서 출발한다.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독점함으로써 그걸 해결하려던 현실 사회주의가 일단 퇴장한 오늘, 우리 앞엔 대략 두 가지 사회 디자인이 제출되어 있다. 첫째는 기부나 자선을 기반으로 하는 미국식 사회 디자인이다. 빌 게이츠 같은 이가 엄청난 거액을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부모들은 제 아이에게 말한다. “부자가 되어야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단다.” 그러나 미국식 사회디자인은 부자들의 일방적인 의사로 운영된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알다시피 세상엔 남을 위해 한 푼도 내놓지 않으려는 부자가 훨씬 더 많고, 천사 같은 얼굴로 내놓다가 제멋대로 돈줄을 끊어버리는 부자도 많다.


세금을 기반으로 하는 유럽식은 그런 결함을 상당 부분 보완한 사회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거액을 기부한 부자가 사회적 영웅이 되고 가난한 약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그 부자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풍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부자들은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든 사악한 마음을 가졌든 내고 싶든 내고 싶지 않든 상관없이 내야 한다. 그들이 내는가 안 내는가, 혹은 얼마를 내는가를 결정하는 건 그들 자신이 아니라 사회다. 사회적 약자들은 그 부자들을 의식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연하다는 얼굴로 사회적 도움을 받는다.


사실 당연한 것 아닌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부를 가진 사람이 사회에 더 많은 돈을 내놓는 건 말이다. 또한 사회 성원으로서 의무를 다하며 살아온 사람이, 말하자면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심지어 병역의 의무도 이행해온 사람이 삶의 위기에 빠졌을 때 사회로부터 도움을 받는 건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대체 왜 법을 지키고 세금을 내고 군대를 가야 하는가? 미국식 사회 디자인은 바로 그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비굴하게 구걸하게 만드는 부자들의 쇼다.


애석하게도 우리 사회는 이미 미국식으로 접어들었다. 그 흐름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인물은 역시 박원순 씨일 게다. 그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하며 부자들과 손잡고 일해왔다. 그러나 얼마 전 국정원의 명예훼손 소송에 대응하여 발표한 그의 글은 그의 사회 디자인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드러낸다. “(이명박 정권 이후)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를 드나들었던 기업인들이나 대기업의 임원들은 철새처럼 모두들 날아갔습니다. 다시 원점에 섰습니다.”


그는 그 모든 게 대통령 후보 시절까지도 돈독한 사이였다는 이명박 씨의 변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의 사회 디자인에 있다. 양식을 가진 사람 가운데 박원순 씨의 인간적 진정성과 사회적 헌신을 의심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의 실패, 지난 10년 이상 우리사회의 의인이자 대표적 사회 디자이너로 추앙받아온 그가 부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김규항, 사회 디자인, <한겨레> 2009년 10월 28일자

 

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박정희와 박근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 민족문제연구소의 누리집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고 있다. 위클리오피니언 53호를 통해 밝힌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결과는 일반 국민들 가운데 잘한 일이라는 평가가 58.6%, 잘못한 일이란 평가가 31.8%라고 한다.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인물 4,389명 가운데서 논쟁의 한가운데로 불려나온 인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박정희대통령 인터넷기념관에 들어가보니 여기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를 조사한 결과, 국가 발전에 기여한 대통령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꼽은 응답자가 53.4%로 가장 많았다고 26일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5.4%로 뒤를 이었고, 노무현(12.4%), 전두환(2.2%), 윤보선(1.8%), 이승만(1.6%), 노태우(1.3%), 김영삼(1.3%), 최규하(0.5%) 전 대통령 순으로 조사됐다."

 

윤평중 교수(한신대 철학과,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논쟁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동아일보 2009년 11월 13일자 '동아광장'의 글 '박정희는 과연 친일파인가'. 윤평중은 이 글에서 " 전 대통령은 과연 친일파인가,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가 친일파였다고 본다."고 말하면서도 <친일인명사전>에 오를 만한 인물이 아니라고 한다. "한마디로 박정희가 일제 35년 동안의 대일부역행위를 대표하는 4389명의 한 사람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미미한 ‘피라미 친일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윤평중은 <친일인명사전>에 박정희의 이름이 오른 이유는 "한국 보수세력의 거대한 성채인 박정희를 흠집 내자는 것"으로, "대다수 시민에게 신화로 남은 ‘박정희 현상’을 한국인의 역린()인 민족정서를 동원해 해체하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말하자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친일파이긴 한데 '피라미 친일파'라는 것이, 윤평중의 논지다.

 

이에 대해 박한영(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평화방송의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 의 인터뷰 내용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금년 서거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역사적 재평가 작업이 이뤄지고 있고 또  박근혜 전 대표의 부친이기도 한데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논란이 큰데 ?

"가장 큰 오해가 있는 것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군 소위인데 ,피래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군대서 소위면 가장 초급장교다, 말단 초급장교다. 그래서 일각에선  박 전 대통령이  일제시기에 만주국 중위로 8.15 맞이 했는데 그런 사람까지 친일로 만드는 것은 심하다. 이 친일인명사전은 박 정희 전 대통령을 인명사전에 넣기 위해서 소위 이상을 수록한 것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1991년도에 만들어졌다.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그 당시 정치에 입문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우리가 친일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된 게 아니다 . 그리고 소위문제를  대한민국 소위하고 같이 봐선 안된다 . 황군소위다. 천황의 소위다 . 정확하게 얘기하면 고등관이다.  일제 식민지시대 군국주의 때는 군인이 최고이던 시대고 나라였다. 소위 이상이 고등관이다 . 군수에 해당한다 .이것이 차이가 있다.

조선인이 일본인 장교, 만주국 장교가 되는 것은 그 시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시절이었다. 일본육군 사관학교에 들어간 조선인 숫자를 살펴보면 1917년 이후  일년에 한 명도 못 들어갔다 . 만주군관학교도 마찬가지다. 만주군관학교는 1932년부터 45년까지 있었다 여기는  일년에 4.8명 정도가 조선인이 들어갔다 .
 
이 당시는 일제가 만주에서 조선인 독립군과 싸우던 시절이었다 .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달에 일본에 선전포고한다. 여기에 자발적으로 일본군 장교가 된다, 만주국 장교가 된다는 것은 직업군인으로 출세하는 것이다 . 박 정희 전 대통령은 1939년도에 지원해서 1940년에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한다 .이른바 신경 군관학교이고 .그리고 42년도에 성적우수자로 일본육군사관학교에 가서 44년도 1월 달에 졸업해서 만주로 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혈서 지원 잘 아시지 않나?, 우리들로서도 충격을 받은 내용이다 .  박 전  대통령이 그 당시 교사를 했다는 것은 그 당시 조선인으로서 대단히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이 분은 군대를  갈 이유도 없고 갈 나이도 지났다. 당시 교사라는 것은 그 당시 엘리트다 . 사리판단이 된 분이다. 당시 학생을 가르쳤고 이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모를 리가 없다 . 특히 그의 형님은 박상인씨라고  그 당시 독립운동하고 있었다 . 박 전 대통령이  1939년도에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했을 때 만주에 있는 일본 관동군과 만주군이 합동으로 물론 만주군은 관동군의 별동대다, 하수부대인데 거기에 있는 마지막 천여명의 조선인과 중국인으로 이뤄진 마지막 항일 독립군, 그때는 동북항일연군이라고 불렸는데, 이들을 마지막으로  이른바 소탕하기위해서 제 3차 동변도 , 쉽게 말하면 연변지역이다, 제 3차 동변도 치안숙청사업을 하고 있었다. 일명 진드기 작전이다. 완전히 섬멸시키는 작전이다. 이것이 대대적으로 국내와 만주에 보도되고 있었다 .이 시기에 지식인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45년 8월 15일 현재 ,일본군 예비역 소위에 만주국 협력 중위였다 .그리고 1941년 12월 임시정부는 일본과 만주에 선전포고를 했다.  적국 장교였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8.15 해방을 맞이 하지 못하고 패전을 맞이한 패전장교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부하였던 중국군인에 의해서  무장해제를 당했다.

-친일인명사전에 포함된 박정희 전 대통령은  60년대 우리나라를 일으키고 산업화시키고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그런 점이 정상 참작이 될 수는 없었나?

"친일청산은 해방직후에 했어야 한다 . 아니면 이승만 정부 때 있었던 반민특위가 제대로 할 수 있었어야 한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그고 새롭게 대한민국은 출발했어야 한다 . 그래서 그분들  친일했던 사람들을 죽이거나 벌준다는 개념이 아니고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을 느끼게 함으로써 건국에는 참여시키지 않더라도 건국된 이후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기회로 친일청산이 필요했다는 것인데 그 당시 친일파가 반대했지 않나, 그래서 60년동안 미뤄졌어요. 이 인명사전은 1945년 8.15일까지의  사실을 다루는 것이다. 해방된 이후 대통령이 되었으니까 일제시대 친일행위에서  대통령이니까 빠지거나 이렇게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하면 기준 성립이 필요없지요. 그렇게되면 대한민국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 기준으로 일제시대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친일 문제를 정리할 수도 없다. 저희도 유족들에게는 저희들도 같이 가슴아픈 문제다 .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일제식민시대 행적에 대한 사실적 기초, 객관적 기준에 의한 부분이다.  한 인간은 젊은 시대 그렇게 보낼 수도 있다. 해방이후 삶은  또 다른 기회였지 않나.그래서  그런 부분을 끊어서 봐야지  섞어버리면 각각의 역사적 시기가 성격이 다른데 같이 섞어서 얘기하긴 어렵다.  친일인명사전은 일종의 전문사전이다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일제 식민시기 행적을 중심으로 한 기록이고 물론 사전의 기술상 앞 시기나 뒷 시기도 서술은 되지만 가치평가를 하지 않는다. 사실적 기준에서 봐야 하고 이 시대에 관한 애기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재는 잣대로서  삼으라는 것은 아니다 .

-친일인명사전이 특히 세간에 논란이 된 배경 중에는 지금 현재 유력 정치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부친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인데 그런 점에서 유력 정치인인 박근혜 전 대표에게 이 친일인명사전이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하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

"사실 연구소는 거듭 말씀드리자면 이 사전은 연구소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만든 것이다. 150명의 학자들이 다 다양한 생각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한 인물을 놓고 얘기했다면 그 편찬위원회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 저는 이렇게 본다 .친일 문제를 정치화시키는 오히려 한국의 정치 풍토가 문제라고 본다 . 두번째로 이것은 복잡한 문제는 아니다. 박정희 전 생애를 봤을 때 (이것은) 20대 때예요. 아버지가 수십년  대한민국 국군 장교로서 있었고 장군까지 했고 또 대통령까지 한 시기도 있다. 이런 점에서  후손들이 공은 받아들이겠지만  과는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취사선택하는 태도는 공인으로서는 좋지 않다고 본다 . 그러나 그것은 저희가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후손들로서는 언제나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 그것은 인지상정이다 . 하지만 때로는 살다보면  후손이란 것은 참 고통스런 존재다. 공도 후손에게 가고 과도 후손에게 갈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어떻게 당당하게 대면하는가 하는 문제기 때문에 오히려 죽은 분들의 문제가 아니고  살아있는 분들이  과거 아픈 역사를 어떻게 대면하느냐 하는 문제는 각각의 자신들의 역사철학에 담겨있는  몫이라고 본다.

-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친일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바로 친 딸이 어떻게 대권을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비판적 시각도 있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도 위험한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잘 아시다시피 선친에게 있었던 흠결을 도덕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후손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연좌제로 적용돼선 안 된다 .우리는 이미 6.25 부역혐의자 처리문제로  우리 역사에서 연좌제가 적용돼서 수많은 불행을 겪지 않았나.  연좌제는 전 근대적인 야만적인 인식이라 말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들이 볼 때 어떤 돌아가신 분의 친일행위가 그 후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으로 가는 방식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 후손들의 경우에는 다만 공인으로서 그러한 과거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스스로 어떻게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은 공인이 가져야 할 역사적 안목의 문제다.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 그에 대한 논란은 즉각 현실정치의 일부분으로 바뀌고 만다. 왜냐면 친일파 박정희든, 피라미 친일파 박정희든 그 이름은 현실정치의 중심에 있는 박근혜라는 이름을 즉각 불러오기 때문이다. 박한영은 연좌제를 전근대적인 야만적인 인식으로 어떤 분의 친일행위가 그 후손에게 직접적인 불이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과연 우리의 현실에서 '친일파'에 대한 논의 자체가 정치적인 것임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윤평중 교수로 말미암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친일파 가운데서도 '피라미'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바뀐 것인가. 그렇게 바뀌었다 하더라도 이 논의 자체가 정치적인 것임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정치다.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너희들은 내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 11월 13일은 한국 현대사의 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39년 전인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이 노동자도 인간이라고 스스로 불꽃이 된 날입니다.

 

전태일은 1948년 생입니다. 살아 있다면 진갑의 나이입니다. 그냥 문득 이런 나이를 따져보게 됩니다. 나이를...... 22살 어린 청년의 마음을 들끓게 하였던 그 간절함을 다시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나의 22살을, 그때의 그 간절함도 되돌아봅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마음의 고향이로다.

 

-전태일, 1970년 8월 9일 일기에서

 

 

 

 

 

 

인제 북스타트 선포식

2009년 11월 12일 오전 11시, 인제하늘내린센터에서 '인제 북스타트 선포식'이 열렸습니다.

 

*인제하늘내린센터. 인제하늘내린센터는 문화와 복지와 체육 센터를 한 곳에 모아놓은, 총규모 1만3천636제곱미터, 지하1층 지상4층의 종합문화복지체육시설이었습니다. 2005년 8월 367억6천만원의 예산으로 착공하여 4년만인 2009년 8월 6일 개관하였다 합니다. 제일 왼쪽의 누리채는 수영장과 헬스실, 스쿼시장, 체력측정실 등이 들어선 스포츠센터이고, 미소채는 686석의 공연장과 200석의 소공연장, 사진에는 안 보이는 제일 오른쪽의 공간인 나리채는 노인 및 장애인의 집과 여성의 집, 청소년의 집 등을 비롯한 복지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현재 '인제문화재단'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미소채 정문의 전광판에 '인제 북스타트 선포식'이라는 글자가 선명합니다.

 

*이 날 '인제 북스타트 선포식'에는 인제군 기획감사실 이순선 실장님이 박삼래 군수님을 대신하여 참석하였고, 인제군의회 남덕우 부의장님, 인제교육청 김영각 교육장님, 하이원리조트 고필훈 주임님, 인제 솔방울어린이도서관의 임기혁 관장님, 그리고 제천기적의도서관 강정아 사서님, 이소영, 김문순, 정성하 님께서 참석하였습니다.

 

*인제까지 가는 길을 3시간 정도 예상하고 아침에 집을 나섰는데, 2시간 남짓밖에 안 걸렸습니다. 예전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 해서 못 살겠네'라는 속담 아닌 속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아침에 출발해서 인제 오냐'라고 해야 할 듯싶습니다. 일찍 도착해서 인제하늘내린센터를 둘러보고, 선포식이 열리는 소공연장을 찾아가니 일찍부터 자원활동가 분들이 행사를 준비하며 손님맞이를 채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신종플루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상태였기 때문에 행사를 준비하시는 분들께서는 상당히 우려를 하고 계셨습니다. 만 2돌까지의 영아를 키우고 있는 집집마다 편지로 통문을 다 돌렸는데, 인제 지역에 거주하고 계시는 분들 가운데 상당수는 군인가족인 경우가 많아, 주소지 변경 때문에 절반 정도의 편지가 반송되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인제북스타트위원회는 처음에는 '인제참여시민연대'가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지만, 이 날 행사를 중심적으로 꾸린 최문경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인제참여시민연대'가 북스타트의 중심이 되는 것은 맞지 않다는 판단 아래 인제북스타트위원회를 별도로 조직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인제교육청 김영각 교육장님께서 축하와 응원의 한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김영각 교육장님은 <대통령의 어머니들>이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로 먼저 말문을 여셨습니다. "대통령의 어머니들이 가진 공통점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북스타트 소개 및 인제북스타트 선포문 낭독은 제가 했습니다만, 제 사진기에는 제 사진이 없습니다.

 

*현재 인제군은 약 3만2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데, 신생아는 약 350명 정도가 태어나서 다른 지역보다는 신생아가 많이 태어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외지로 빠져나가는 이들도 많아서 인제군의 주민수는 크게 변동이 없는 상태라고 남덕우 인제군의회 부의장님께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남덕우 부의장께서 자원활동가들에게 위촉장을 주고 있습니다. 제일 왼쪽의 첫번째 분이 바로 이 날 선포식의 사회를 본 최문경 씨입니다.

 

*인제군 기획감사실 이순선 실장님께서 그림책  <누구 그림자일까>를 읽어주었습니다. 자제분이 대학도 졸업하여 시집, 장가 갈 나이가 되어서, 아이들 키우던 때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하시면서도 아주 재미있게 읽어주셨습니다. <누구 그림자일까>라는 그림책은 최숙희 씨의 그림책.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사진은 '하늘사랑'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분의 블로그  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사회를 본 최문경 선생의 '북스타트 그림책 책놀이' 소개가 이어집니다. "북스타트 운동은 전국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요, 가장 강력한 자원활동가 조직과 활동력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꼽히는 곳이 바로 제천기적의도서관 자원활동가들입니다. 바로 이 분들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여기 이 자리에 함께하신 우리 어머님들의 미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죠. 이제 출발하는 인제 지역의 북스타트 활동을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제천기적의도서관 자원활동가들의 그림책놀이 시간입니다. 제천기적의도서관 자원활동가 이소영, 김문순, 정성하 님입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함께 자리한 엄마와 아기들이 책꾸러미를 받아들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제북스타트위원회에서는 자원활동가 양성과 부모님들을 위한 후속교육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오는 11월 24일 화요일부터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30분에는 인제도서관 영유아도서실에서 24개월 미만의 아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림책 활동이 있을 것입니다.

 

 

'강원도 북스타트'는 하이원리조트의 가장 대표적인 사회공헌사업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 북스타트코리아에게도 강원도 북스타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올해에만도 약 2만 명에 이르는 강원도 내 영유아들에게 북스타트 꾸러미를 나누어줄 수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각 시도, 각 마을이 북스타트를 계기로 좀 더 따뜻한 정이 넘치고,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으로, 사회자본이 풍부한 곳으로 변화해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책과 관련된 수능문제, 답은?

오늘 2010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되었다. 전국의 수험장에서 67만여 명의 수험생들이 시험을 보느라 고생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한파'가 반복되었다. 참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올해는 신종플루 때문에 격리된 상태에서 시험을 본 학생들도 이천팔백여 명이나 되었다 한다. 이래저래 학생들에게는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아무튼 인터넷 상에서 올려져 있는 시험 문제지를 우연하게 살펴보게 되었다. 그 가운데 1교시 언어영역 홀수형/짝수형 10번 문제다. 책과 도서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문제의 정답은? 쉽지가 않다. 2,3번이 모두 답이 될 수 있을 듯도 싶은데, 과연 정답은?

10. 대출 도서에 붙일 스티커를 제작하고자 한다.

<보기>의 조건에 따라 작성한 문구로 적절한 것은? [1점]


<보 기>
의도 : 대출 도서를 훼손하지 않도록 함.
표현 : 의인화와 대구를 활용함.


① 책과 함께 하는 세상
남과 함께 사는 세상
② 책에 흔적을 남기기보다
당신의 마음에 지혜의 흔적을
③ 제 몸 곳곳에 늘어나는 상처
당신의 양심에 새겨지는 낙서
④ 지나친 손길로 얼룩져 갈수록
지울 수 없는 아픔의 시간들
⑤ 늘어나는 책꽂이의 빈자리
나눌 줄 모르는 당신의 빈 가슴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

로쟈 이현우 씨의 블로그에서 한 대목 옮겨온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말하는 <출판저널> 2009년 11월호의 글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면서 니체의 가장 난해한 책' 가운데 한 대목이다.

 

싱클레어의 책상에도 놓여있었을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는 그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낙타와 사자와 어린아이가 그것이다. 니체는 다윈의 진화론에 크게 고무되었지만 종의 진화라는 관점, 곧 하나의 종으로서 다수의 인간 무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아무런 목표점 없이 진화한다는 다윈의 생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에게 진화는 선택된 개인의 진화였고 그 목표는 인간의 자기극복으로서의 초인(위버멘쉬)이어야 했다. 그 초인에 이르는 길로 제시한 것이 낙타가 사자가 되고, 사자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는 정신의 세 단계 변화다.  

 

낙타란 짐을 지는 정신이다.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지고 총총히 사막으로 들어간다. 낙타는 “너는 해야 한다”는 주인의 명령에 순응하는 정신이다. 반면에 사자는 “나는 하고자 한다”라고 말하는 정신이다. 비록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지는 못하지만 사자는 그러한 창조를 위한 자유는 쟁취해낸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아이. 어린아이는 순진함이자 망각이고, 새로운 시작이자 놀이이며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여기서 니체는 신성한 긍정이야말로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무엇에 대한 긍정인가? 운명에 대한 긍정이고 영원회귀에 대한 긍정이다.

 

 

정의와 복지

                <표> OECD 국가의 총지출 대비 구성비 (2002)             단위: %

         ※출처: OECD, National Accounts of OECD Countries: General Government of Accounts, 2005.

 

 

(1)2002년 기준 OECD 주요국과 한국의 정부지출 내역을 비교할 때 특이한 것은 사회보장 지출 비중은 총 국가지출의 9.7%로 OECD 평균(34.7%)의 28%, 즉 약 1/3에 불과하다.

 

(2) 국방관련 지출은 239%, 경제사업 관련지출은 208%, 주택·지역개발 관련 지출은 181%로 매우 높다. 교육 분야 지출도 OECD평균의 141%로 한국이 최고수준이다.(OECD 대부분의 국가의 경우 초중등 교육비의 평균 50%를 지방정부가 부담하는데 반해 한국은 중앙정부가 약 87%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3)GDP 대비 높은 건설 투자 : 1995~2006년까지 12년 동안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19.22%로, OECD 평균 11.67%에 비해 훨씬 높다.  건설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는 후발 개도국인 터키(11.02%), 폴란드(11.4%), 멕시코(9.94%) 보다 높고, 악명 높은 토건 국가인 일본(13.19%) 보다도 높다. 

 

(4)증세-감세 시비는 세금 및 재정의 구조에 숨어있는 심각한 불의로 집중되어야 할 사회적 관심을 엉뚱한 데로 돌린다. ‘(큰 폭의 적자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지 재정을 대폭 늘리자’는 이른바 ‘전투적 복지주의’로 불리는 주장도 공공부문이 안고 있는 명백한 불의에는 대체로 전투적이지 않기에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요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한 시점(대략 1990년)의 OECD 23개국 공공사회 지출 규모는 GDP의 17.9%였다. 그런데 2만 불을 돌파한 한국의 복지재정 규모는 아직도 GDP의 7.8%(2008년 예산 기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결코 신자유주의자의 농간이 아니다. 그것은 토건족, 지방의회를 장악한 토호들, 각종 이익집단, 관료, 정치인의 오랜 유착구조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제도(특히 선거제도)의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이 구조는 경제가 성장하고, 복지재정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정말 한국 재정 할당 양상이나 재정 구조를 보면, 로비력이 강한 집단이나 정보가 빠른 집단의 ‘먹튀’ 징후가 뚜렷하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핵심들은 정권을 무슨 비즈니스(수익) 모델로 간주하는지, 큰 폭의 적자 재정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자기 패거리와 친화적인 상층이 대부분의 혜택을 보는 감세를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동시에 토건족 또는 재벌.대기업이 대부분의 혜택을 보는 재정 배분 계획(산업분야와 SOC 분야 집중 지원)을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또한 자질도 능력도 없는 자들을 자기 패거리라는 이유로 온갖 변칙, 편법을 써가며 공기업, 공공기관 등에 밀어 넣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재정 할당이나  자리 배분에서 점점 더 ‘먹튀’들의 노략질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는 ‘도적 정치’를 닮아가고 있다. 

정의가 무참하게 강간을 당하고, 재정이 엉뚱한 곳으로 콸콸 새는 마당에 큰 폭의 적자 재정을 감수하고서라도 복지 재정을 대폭 늘리고, 공공부문을 유지, 확대하자는 것은 그 속마음은 어떤지 몰라도 객관적으로는 반동이 아닐 수 없다. 발전 국가, 개발독재의 유산과 사민주의가 이종 교배하면 재정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불가사리 같은 괴물을 낳을 뿐이다. 현재 한국에서 복지 가치는 (투자/고용 의욕과 근로/피고용 의욕 자체를 맛이 가게함으로서) 일자리 자체를 죽여 거대한 복지 수요층을 양산하는,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정치,경제,사회 구조를 뜯어고치지 못한다. 조세 저변을 늘리지도 못하고, 조세 부담 의지도 늘리지 못한다. 백년 갈 가치 생산 생태계를 불태워 찰나의 이익을 취하는 화전민 마인드도 퇴치하지 못한다.  그러나 정의는 이 모든 것을 정조준한다.  그러므로 더 따뜻한 나라를 만들려면 더 차가운 정의를 세워야 한다. 더 큰 복지, 더 많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더 확고한 정의를 세워야 한다.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출처: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복지가 아니라 정의가 먼저다'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고향을 돌아보라, 천사여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포럼 <통찰과 연대>는?

 

자유실천위원회는 회원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투쟁과 연대 방식으로 다소 소극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포럼 형식을 빌리기로 했습니다. 이는 광장에서의 퇴각도 아니고 좁은 자아로의 환원도 아닙니다. 지금껏 광장에 임했던 시간을 성찰하면서 함께 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내미는 손인 동시에, 지금 전개되는 미증유의 현실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 것인가 함께 대화를 나눠보는 자리입니다. 문학과 운동의 저 지루한 대치 국면을 이제 어떻게든 허물어야 하는 게 자유실천위원회의 몫이라면 몫이겠고 더 거창하게는 지금-여기의 요구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저 지독한 용산 참사가 상기시키듯, 역사 속에서 되찾은 문학의 양심을 자본과 권력이 조롱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그래서 소박하게나마 한국작가회의의 역량을 점검하는 일을 진행하면서 없는 역량이나마 함께 공유하고자 포럼을 기획하게 된 것입니다. 이 포럼은 보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일보를 내딛게 하기 위한 주춧돌을 자청할 것입니다. 그래서 내년도 2월까지 3회에 걸쳐 진행되지만, 그 이후에는 아마 더 많은 분들이! 함께 고민하고 힘을 보탤 마당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회로 아래와 같이 포럼이 시작됨을 뱃고동처럼 길고 깊이 울리는 바입니다.

 

나무들 다시 비탈에 서다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 사람의 한 걸음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하고자 합니다."라는 머리말. 12개의 연속강좌. 그 첫머리에 도정일 교수의 강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나무들 다시 비탈에서 서다--1987년 6월과 2009년 11월 사이에서".

 

손가락셈과 백년대계

다음은 월간 <라이브러리 & 리브로> 2009년 11월호의 권두시론, 안찬수의 '손가락셈과 백년대계'이다. 카피레프트의 원고이다. 오늘 문득 미국에서 학교도서관에 최소 1인 이상의 도서관 미디어 전문가를 배치하고자 하는 법률안이 제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내용을 검토하다가 생각나서 올리는 것이다.

 

손가락셈과 백년대계

 

어떤 사람이 매년 일천만 원씩 저축한다고 가정해보자. 금리는 전혀 계산하지 않고. 이십조 원을 모으려면 이백만 년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88만원 세대'라서 매년 백만 원밖에 저축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백만 년이 아니라 이천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국정감사와 관련된 언론보도를 접하게 된다. 그 보도의 알맹이는 국정감사 자료를 통해 확인하게 되는 우리나라 살림살이의 규모나 실태다. 그런데 나는 워낙 숫자에 어두운 사람이라서, 숫자만 나오면 한참 동안이나 손가락셈을 해보게 된다.

 

국가채무의 규모에 대해 논란이 있는 모양이다. 정부에서 밝히기로는 국가직접채무가 2008년 308조원인데, ‘사실상국가채무’는 추산하는 곳에 따라, 추산하는 방식에 따라 거의 고무줄 수준으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는 688.4~1,198조원(’07)이라고 하는데,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은 1,281.4조원(’07), 한국조세연구원 추산은 986조원(’07), 그런데 이한구 의원은 1,285조원(’07)이라고 주장한다.

 

4대강 사업에 들어갈 예산에 대해서도 논란이 격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나라살림의 규모가 훤한데 4대강에 들어갈 예산을 만들려고 하니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정부의 손가락셈이다.

 

한때 시민사회단체들이 경제위기 하에 괜찮은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여 공공서비스를 획기적으로 늘리자고 했을 때, 백만 원의 월급을 백만 명에게 주기 위해 필요한 재원이 십조 원이라 주장한 적이 있었다. 복지 부문의 전문가인 이태수 교수는 저출산 사회에서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한 무상보육에 육조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대학의 무상교육을 위해서 필요한 재원도 십조 원이면 된다고 한다. 이것이 선진복지국가를 꿈꾸는 사람들의 손가락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도서관계에서 꺼지지 않는 이슈인 학교도서관 전담 인력, 사서교사 배치 문제를 떠올렸다. 전국의 초중고 약 만 개 학교에 이천만 원의 연봉을 주어야 하는 사서교사를 뽑아서 배치하려면 이천억 원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십조 원이라는 돈은 초중고 만 개 학교에 사서교사를 ‘백 년 동안’이나 고용할 수 있는 돈이다. 말 그대로 백년지대계인 셈이다. 이것이 나의 손가락셈이다. (*)

 

2009년 10월 26일 미국 하원 교육노동위원회에 제출된 법안의 정식 명칭은 'Strengthening Kids' Interest in Learning and Libraries Act. 직역하자면, "배움과 도서관에 대한 어린이들의 흥미를 강화하는 법"이라고 할 수 있을 듯싶다. 두음자만 뽑아서 'SKILLs Act".  

 

이 법안의 목표는 뚜렷하다. 어떻게 하면 미국 내 각 학교에 1명 이상의 도서관 미디어 전문가를 배치할 것이며, 그 재원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것도 2010-2011학년도가 시작되기 전에 배치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the State educational agency will establish a goal of having not less than 1 State - certified school library media specialist in each public school that receives funds under this part'./ Each State educational agency receiving assistance under this part shall specify a date by which the State will reach this goal, which date shall be not later than the beginning of the 2010-2011 school year')

 

이러한 법안이 제출되는 사회문화적 근원은 무엇인가. 이 법안에서도 나오듯이, 자라나는 세대가 학교도서관을 통해 충실하게 정보와 지식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와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미디어를 다룰 수 있는, 즉 리터러시라는 능력을 지닌 시민으로 성장하는 것, 다시 말해 시민적 자질과 인간적 소양을 키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국가와 아나키스트, 협동조합과 국제운동

오늘 새로 나온 <녹색평론> (녹색평론사, 2009년 11-12월호, 통권 109호, 2009년 11월 5일 발행)을 읽다가 흥미로운 논의를 보았습니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쓴 '세계 위기 속의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世界危機の中のアソシエーション・協同組合)'이라는 글 속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월간지 <社會運動> 2009년 9월호에 게재.)

 

맑스는 국가 그 자체가 자립적인 주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그 내부에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는 프루동과 같습니다. 프루동은 국가의 폐기라는 문제를 일국적 시각에서만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서 존재하고 있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한 것은 그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간단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나키스트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국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할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왜냐면, 이미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긴 터널과 같은 위기라는 것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문명적인 것이고, 그 문명이란 결국 자본주의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담 스미스가 예상한 바와 같이, 세계는 경제성장이 없는 정상(定常) 상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그것에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광신적인 종교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그러한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타니는 "그 경우, 역시 유엔을 매개로 한 국제적인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엔이라는 것이 매개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인 것입니다.

 

2009년 11월 9일 월요일

김정환과 5.16-쉼표와 등호

아침 출근 길에 김정환 시인의 <이 세상의 모든 시인과 화가>(삼인, 2009.8.31 초판)을 읽는다. 재미있다. 술술 넘어간다. 아니 김정환 시인의 표현 식으로 말하면, "술술 넘어간다, 가 아니라, 넘어가다, 걸리고, 걸려서 쉼표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쉼표는 사고의 호흡은 쉬게 하지만, 사고는 쉬지 않고 진행된다. 쉼표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빠져나오지 못하면, 책을 더 이상 읽을 수 없다. 쉼표는 생각과 회억과 반추의 늪이다."

 

김정환 시인의 문장 곳곳에 박혀 있는 쉼표들이 독자의 호흡을 잠시 차단하는 듯하다가 다시 사고의 회전을 통해 추스려지는 것을 음미한다. 거기, 바로 그 쉼표 속에서 내가 읽게 되는 것은, 쉽게 말들을 말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회로를 가진 시인의 언어가 회오리치는 모습이다.

 

사회과학 서적들에서나 나와야 할 단어들이 불쑥불쑥 미학적 용어들과 뒤섞이며,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려고 애쓰는 것만 같던 김정환 시인의 문장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이제서야 보여주는 것만 같다. 육체 때문이다. 육체적일 수밖에 없는 언어 때문이다. 황석영에 대한 글의 한 대목에서 김정환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좌우를 아우른다, 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정치적이다. 정치는 현실이기에 그렇다. 문학은, 비현실적이라서가 아니라 현실의 극복을 꿈꾸므로, 그런 얼개 혹은 범주에 원래 낯설다.(127쪽)

 

독자는 정치는 현실이라면 문학은 비현실적이겠지 하다가, "문학은, 비현실적이라서가 아니라 현실의 극복을 꿈꾸므로"라는 구절의 그 쉼표 때문에 사고의 회전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문장도 이런 문장은 오로지 쉼표 때문에 가능한 문장이다. "좌우를 아우른다, 는 것은, 아무리 잘해도 정치적이다."

 

아무튼 이런 쉼표들 속에서 5.16을 반추하는 대목을 만난다.

 

내 아버지는 육군본부 헌병감실 주임상사까지 올라간 경력의 직업군인 출신이다. 그리고 제대 후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외제 깡통(통조림) 장사로 꽤 재산을 모으다가 이승만의 '국산품 애용' 정책에 된서리를 맞았다. 5.16은 가족이 다시 먹고살게 된 계기로 작용했다. 아버지는 청와대 경호실에 들어가 경호실장 바로 아래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아 새끼들 노는 거 눈꼴시어서' 때려치우고 사업에 나섰지만 옛날만 못했다. 아니 '주임상사' 시절이 제일 화려했을 게다.(35쪽)

 

또 하나 눈에 들어오는 것을 정말 문장으로는 말할 수 없는 '등호'다. 이것도 오로지 수식의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인성의 알몸'을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옷 입어도 알몸인 얼굴은 피골상접을 묘한 해골의 미학으로 전화하고 그것에 약간의 각선미를, 흑백 대비 선명하게 주면서 다시, 애매한 문학의 권위를 참칭, 미학이므로, 기묘하나마 어쨌듯 아름다움이라고 우기는 형용이다. 옷 벗어 알몸인 몸통과 팔다리는? 미이라의 미학이었다. 그런데 일순, 그의 몸이 대리석처럼 차갑게 빛나는, 광경이 내 눈을 스치고 지나갔다. 뭐지? 아아, 그의 소설의, 문체? 이 자리에서 그의 소설을 논할 수는 없다. 설령 있단들, 나는 그의 소설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소설을 다 이해한다는 발상은, 이인성 같은 소설가에게는 특히, 모종의 모멸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나를 놀래키고 겁먹게 하고, 늘 주눅 들게 만드는 그의 소설의, 시보다 더 팽팽한 문제,의 '차가움=빛남'의 '몸=대리석!' 그가 시를 좋아하고 분석하고 소설에 인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소설이 시를 지향한다고 말하는 것은 또한 모멸이다. 그는 시보다 더 팽팽하게 긴장한 문법과 문체로 세상보다 넓고 심오한 소설 '세계'를 구축한다. 그런 의미의 시와 소설 사이에서 그의 '차가운=빛나는' '대리석=몸'은 문체로 깎이고 또 깎인다. 그래서 그는 내게 좌파다.(70-71쪽)

등호는 사실상 부등호이기도 하다.

 

이 책의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등호의 좌변과 우변은 사실상 등호를 사이에 두고 만나기 어려운 말들이다(어렵지만 만나야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등호로 엮여 있기 때문에 의미를 만들어내다가, 의미와 무의미의 사이를 가로지른다.

 

예를 들어 "사랑=죽음"(14쪽) "조형=영원=내용"(23쪽) "동심=죽음'(56쪽) "대리석=몸"(71쪽) "소설=식빵 굽는 시간"(75쪽) "시력=나의 생애"(106쪽) "가벼움=단순함'(186쪽) "삶=절망"(208쪽) "내용=형식"(228쪽) "뒤늦음=미학"(296쪽) "공간=풍경=생애"(297쪽) "몸=예술"(320쪽) "노래=이야기"(348쪽) "에로틱=장면"(351쪽) "마음=고향"(353쪽) 기타 등등. 그의 글(쓰기)가 그러하다. 그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떤 흐름을 붙잡는다.

예술 장르는 이 세상 모든 삶의 액정화이고, 그 액정화 속에 둘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지만 양극단, 혹시 그 너머에까지 달하는지 모른다. 그 둘 사이를 춤이 춤답게 음악이 음악답게 소설이 소설답게 결국 흐른다. 그것은 안다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 그 속에 자리 잡힌다면 우리는 모두 예술가다.(20쪽)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박정희와 5.16과 노무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 다 쓴 회고록'이라는 <성공과 좌절>(2009.9.22 초판, 학고재)에 나오는 이야기다. 자신의 성장기를 반추하는 가운데 4.19와 5.16에 대해 이야기하는 '4.19와 5.16의 기억'이라는 꼭지(120-126쪽)의 한 부분이다.

 

5.16 하면 가장 크게 남아 있는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마을과 이웃마을에는 6.25 당시 보도연맹 사건으로 죽은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4.19 이후 마을 사람들이 집단으로 학살당한 이들이 묻힌 곳에서 시신을 다시 거두었습니다. 우리 마을에도 그 살마들의 가족들이 있었는데, 다녀와서 하는 말이 신원을 확인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치아로 또 어떤 사람들은 옷 다누를 가지고 확인을 하는데 대다수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에 뼈의 주인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가 없어서 결국 큰 무덤을 하나 만들어 합장하고 합동 위령제를 지냈습니다.

 

김해에 있는 이모님 댁이나 누님 댁에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오른쪽에 큰 묘가 하나있었습니다. 바로 그 묘입니다. 그 묘지를 보면서 그 일을 떠올리고는 했는데 5.16이 일어난 뒤에 누군가 그 묘를 파헤쳐버렸습니다.

 

싸하올렸던 견치돌 間知石 들을 모두 뽑아 이리저리 팽개치고 묘의 봉분까지 다 파헤쳐버렸습니다. 봉분만 파헤친 것인지, 아니면 뼈까지 꺼내 어디로 흩어 놓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부마국도변, 버스에서 볼 때 20-30미터 떨어져 있는 그곳을 다 파헤쳐놓은 것입니다. 당시 어린 생각으로도 묘의 봉분을 파헤친다는 것은 아주 끔찍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5.16에 대한 기억으로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것이 5.16의 실체입니다.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 이야기를 하게 되면 그 일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저 역시 박대통령에 대해서는 공과 과를 따로 평가해야 한다고 하다가도, 당시 파헤쳐진 묘의 모습이 떠오르면 '어떻게 공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하며 생각이 바뀌어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