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없는 권력, 권력 없는 헌법>
: 2025년 한국 헌정 위기 시나리오와 결정적 분기점
- 강성현 교수(성공회대, 사회학자)
Ⅰ. 위기의 현재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헌정적 갈등을 단지 하나의 정치 이벤트로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 기능 자체가 구조적으로 정지되어가는 심각한 체제 위기 속에 있다고 판단한다. 2025년 2월, 국회는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그에 따라 대통령은 직무에서 정지되었다. 이후 국무총리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했다. 표면적으로는 헌정 질서가 절차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은 없고, 권한대행은 법의 시간과 기능을 조정하며, 헌법재판소는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헌법이 비워진 자리에서 권력만 남은, 위험한 예외 상태라고 본다.
Ⅱ. 헌정 기능 정지의 기원: 탄핵 이후 한덕수 체제
한덕수는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직후,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인 마은혁의 임명을 거부했다. 헌법재판소가 이 거부를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그는 여전히 지명을 미루고 있다. 나는 이 행위를 단순한 인사상 판단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구성 자체를 마비시킴으로써 탄핵 인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치적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윤석열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둔 채, 헌정 기능을 최소한으로 봉쇄하고, 시간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중심을 재조정하는 시도다.
그는 중립적 관리자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복귀인가, 공백인가, 혹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비윤 카르텔의 질서 재편인가. 나는 그가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헌정의 리듬 자체를 설계하려고 한다고 느낀다. 이처럼 법과 정치, 권력과 헌법 사이의 모든 경계가 뒤섞이고 있는 현재의 국면에서, 나는 가장 유사한 사례를 1979년 최규하 체제에서 찾는다.
Ⅲ. 반복되는 질서 있는 붕괴: 최규하의 실패와 2025년의 교훈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으로 사망한 직후, 국무총리 최규하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다. 그는 곧바로 “질서 있는 이양”을 강조하며 유신체제의 연착륙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 선거 체제를 유지하며 권력의 틀을 자신과 기존 내각 중심으로 유지하려 했다. 나는 당시 최규하가 유신을 해체하려 했다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비군사적 질서를 지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정비하려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공백의 시간 동안, 신군부는 군 내 조직과 정보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전두환과 하나회는 실질적인 권력의 주인이 되었고, 최규하는 형식적 권력만을 가진 채 실질적인 통제력을 상실했다. 나는 이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력의 동원이 아니라 시간의 점유였다고 생각한다. 최규하가 헌정의 틀을 유지하려 한 바로 그 시간 동안, 군은 권력의 틀을 장악했다. 그리고 정치적 결단을 미룬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독재의 정당화에 기여했다.
2025년 현재의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도 놀라울 만큼 이 패턴과 닮아 있다. 그는 중립을 주장하지만, 그 중립은 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는 그가 헌법재판소 구성 지연이라는 ‘사소한’ 절차 속에 담긴 정치적 기획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은 위기다. 그는 최규하처럼 밀려날 수도 있지만, 그가 만들어낸 공백의 시간 속에서 더 위험한 권력 구조가 완성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의 시간이 단지 무기력이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한 정치적 침묵일 수도 있다고 본다.
Ⅳ. 검찰·경찰·사법부의 선택이 결정할 정국의 향방
나는 지금의 헌정 위기를 단지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이 체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체는 검찰, 경찰, 사법부, 이 세 권력기관이다. 이들은 모두 헌법에 따라 독립된 기능을 부여받았지만, 동시에 윤석열 정권의 핵심 권력 기반으로 기능해온 이력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헌법의 복귀냐, 통제의 체제냐, 혹은 공백의 심화냐가 결정될 것이다.
1. 검찰: 권력의 심장 혹은 폭력의 도구
나는 검찰을 윤석열 정치의 본체로 본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부터, 검찰은 단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의 핵심축이었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청와대와 여당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고, 대선 과정에서는 ‘정권 교체의 도구’로 기능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검찰은 내각보다 더 중심적인 권력 행위 주체로 존재해 왔다.
윤석열 탄핵 이후, 검찰 조직은 일견 조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침묵이 자기보호와 전략적 대기라고 본다. 만약 윤이 복귀할 경우, 검찰은 가장 먼저 정치적 보복의 선봉에 설 것이다. 윤 정권을 비판한 언론인, 교수, 시민단체, 변호사, 판사까지 광범위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과거 조국 전 장관, 유시민, TBS, 시민언론, 정의당 등을 상대로 한 수사 방식은 그 시범 운영처럼 보인다.
검찰은 보복과 통제를 ‘법적 정당성’이라는 외피로 포장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이다. 나는 이 조직이 복귀 후 ‘합법적 공포 정치’를 재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한다. 동시에 검찰 내부에는 일정 정도의 피로감과 이탈도 존재한다. 특히 중간 간부 이하에서 ‘정치검찰’ 프레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흐름이 있다. 윤 복귀 이후 무리한 수사 지시에 따른 내부 균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윤석열 복귀 시 가장 즉각적으로 가동될 국가폭력 기관이다.
반면, 탄핵 인용이 확정되면 검찰은 한동안 정체 상태에 빠질 것이다. 주요 수사 라인이 방향을 잃고, 친윤 인사들은 내부에서 도려낼 수 없을 만큼 장악된 상태다. 탄핵 인용 이후의 검찰개혁 논의는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다시 재개될 수 있다. 나는 검찰이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어떤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 파괴자로 남게 될 것이라 본다.
2. 경찰: 복귀 체제의 통제자, 혹은 거리 민주주의의 최후 장벽
경찰은 윤석열 정권 하에서 고위 간부진을 중심으로 급속한 친윤화가 이루어진 조직이다. 이상민 장관 체제와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통해 경찰에 대한 직접 통제 구조가 강화되었고, 윤심에 부합하는 간부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그 결과, 윤석열 복귀 시 경찰은 물리적 통제 체제의 전위조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 시나리오에서 경찰이 거리 시위 해산, 시민단체 단속, 야당 행사 통제, 언론사 앞 저지선 설치 등 물리적 억압의 선봉에 설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과거 용산참사 당시 경찰 작전, 이태원 참사 대응 실패 등에서 보였던 현장 통제 중심주의는 복귀 이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경찰은 검찰과 달리 수직 통제력이 약하고, 지역과 계급별로 이질성이 크다. 나는 일선 경찰 조직 내부에서 복귀 체제에 대한 불복종과 내부 이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특히 2022년 경찰서장 회의 사태 이후 형성된 내부 자율권 요구 흐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탄핵 인용 이후 경찰 조직은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헌정 회복에 따라 경찰 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본격화되는 흐름, 다른 하나는 친윤 고위직의 내부 저항이다. 나는 탄핵 인용 직후 경찰 인사와 조직 개편이 늦어진다면, 특정 지역이나 현장에서 자의적 해석에 따른 충돌이 일어날 위험도 크다고 판단한다.
3. 사법부: 침묵하는 중립인가, 조율된 회피인가
사법부는 지금까지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행위자였다. 나는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들을 보며, 사법부가 중립을 가장한 선택적 판단을 해왔다고 본다. 일부 재판에서는 명백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고, 윤 정권의 법리 논리를 정당화해주는 방향의 결론이 반복되어 왔다.
윤석열이 복귀할 경우, 사법부는 ‘대통령 복귀는 합헌적 절차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후 정치보복이나 시민사회의 저항을 ‘형법상 내란 선동’, ‘공무집행 방해’, ‘가짜뉴스 유포’ 등으로 규정할 경우, 사법부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는 법률적 정당화 기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선별적 기소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구속영장 발부, 집회금지 가처분 기각 등이 이어진다면, 법정은 사실상 정치 탄압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사법부 내부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자율성을 지키려는 흐름도 있다고 본다. 일부 판사 모임, 연구회, 지방 법원에서의 조심스러운 논의, 법관회의 소수 의견 등은 사법 독립의 불씨로 남아 있다. 탄핵 인용 이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사법 개혁의 발판이 마련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시점에서 사법부는 여전히 정치적 방향에 따라 해석 가능한 판결을 양산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제3권이다. 나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복귀 이후에는 법이 아니라 판결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요약하자면, 나는 검찰이 윤석열의 복귀 이후 즉시 가동될 보복 정권의 두뇌, 경찰이 그 팔과 다리, 그리고 사법부가 그 정당성의 가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반대로 탄핵이 인용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면, 이 세 기관 모두는 해체가 아닌 철저하게 민주주에 입각한 재정립과 통제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기관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이들의 선택이 어디로 기울어질지를 분석하는 것은 단순한 정세 해석이 아니라, 민주적 헌정 질서 회복의 핵심 조건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Ⅴ. 네 가지 시나리오: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네 개의 주요 정치 경로 앞에 서 있다고 본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단순한 가능성 나열이 아니라, 각기 다른 권력 구성, 제도적 조건, 그리고 정치적 결단의 방향에 따라 실현 가능한 구체적 시나리오들이다. 이 시나리오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상호 전환되거나 결합되어 더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아래에서 나는 각 시나리오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 전개 양상, 핵심 행위자의 역할, 시민사회의 반응, 그리고 장기적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시나리오 1. [정상회복형] 헌법이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한 길
이 시나리오는 헌법재판소가 제 역할을 하고, 국회와 권한대행이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경우에 가능한 유일한 이상적 경로다. 이 경우, 한덕수 권한대행은 마은혁 재판관을 신속히 임명하고, 헌법재판소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전에 8인의 전원 일치로 윤석열 탄핵을 인용한다. 그 결과 윤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복귀 시도는 법적으로 차단된다.
이후 국회는 국무위원 탄핵 절차를 통해 책임 정부의 구성을 촉구하거나, 과도내각 구성을 협상하게 된다. 정치권은 조기 대선 일정, 개헌 논의, 권력구조 개편 등 실질적 헌정 회복을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시민사회는 거리에서 헌법 수호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광장과 언론, 문화적 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논의를 이끌어낸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단순한 대통령 파면 이상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본다. 정치권의 책임 구조가 회복되고, 검찰과 경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지며, 특히 윤 정권에서 파괴되었던 정치 윤리와 행정 책임, 공공 규범이 다시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모든 핵심 주체가 동시에 결단을 내려야 하며, 특히 헌재의 단일한 의지와 국회의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도달 가능한 유일한 정상적 경로다.
시나리오 2. [동결관리형] 아무도 결단하지 않을 때 생기는 구조
이 시나리오는 권력기관 모두가 결단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유예할 경우에 발생한다. 한덕수는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지 않고, 헌재는 문형배·이미선 퇴임 이후 6인 체제로 전환되어 심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국회는 윤석열 탄핵 소추 이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치권은 각자의 계산에 따라 침묵하거나 눈치를 본다. 시민사회는 분열, 피로, 전략 부재로 인해 거리에서 이탈하고, 언론은 ‘혼란보다는 안정’을 외치며 모든 것을 침묵시킨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현재 가장 현실적인 경로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경로는 누구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으며,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외형적 질서를 보장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는 행정부가 돌아가고, 예산이 집행되며, 법률이 통과된다. 그러나 실질적 권력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정치적 판단은 유예된다. 이것은 헌법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헌법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국가다.
나는 이 상황을 가장 위험한 ‘무정치의 정치’라 본다. 정치적 선택이 불가능해지면, 결국 가장 폭력적인 주체가 그 공백을 점유하게 된다. 그것이 자본일 수도, 극우일 수도, 또는 군 내부 조직일 수도 있다. 정치는 멈췄지만 통치는 지속되는 이 구조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쉽게 붕괴하는 방식이다.
시나리오 3. [복귀통제형] 윤이 돌아올 때 민주주의가 사라진다
이 시나리오는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못하고,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경우다. 나는 이 복귀가 단지 권력의 회복이 아니라, 법과 사법, 공권력을 활용한 보복과 통제 체제로의 이행일 것이라 본다. 복귀 직후 검찰은 정적 수사에 돌입하고, 경찰은 거리 통제를 강화하며, 국민의힘과 극우 매체는 ‘내란 음모’ 프레임으로 반대 세력을 공격할 것이다. 거리와 뉴미디어의 극우는 광기화 국면으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계엄 없는(-지만) 계엄상태, 형식적 법치 속의 사실상 독재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법률은 유지되지만, 그 해석과 집행이 독점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법부는 복귀를 정당화하고, 언론은 자율적 통제를 강화하며, 시민사회는 감시와 체포, 고립으로 분해된다.
이 경로가 현실화될 경우, 나는 민주주의 회복이 최소 10년 이상 유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시민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학습하게 되고, 정치는 권력만 남는 비정치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시나리오 4. [공백격돌형] 모든 기능이 정지될 때 발생하는 무정부 상태
이 시나리오는 국회가 국무위원 탄핵을 다수 가결해 국무회의가 기능 정족수를 상실하고, 윤의 복귀도 헌재의 인용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실질적 ‘헌정 공백 상태’라고 규정한다. 대통령은 복귀하지 못하고, 대행 체제도 멈추며, 행정권은 마비된다. 국가 기능의 정지는 곧 시민사회의 급진적 재등장과 정치적 충돌로 이어진다.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다. 동시에 극우 세력은 이를 ‘내란 선동’으로 규정하고 폭력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 경찰 내부는 갈등하고, 검찰은 선택을 요구받으며, 일부 군 내 조직은 ‘질서 유지를 위한 개입’이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민주주의 재구성의 가능성과, 전체주의적 복귀의 위험을 동시에 담고 있다. 나는 이 경로를 가장 불확실하지만,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체제 전환의 계기로 본다. 그러나 그 전환은 결코 안정적이거나 평화로운 과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시나리오 유형 명명, 내용 정리 및 서술에 챗지피티의 조력을 받으며 작성했음)
Ⅵ.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
이 네 가지 시나리오 모두를 종결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있다. 나는 그것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전원 일치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라고 확신한다. 이 결정은 단지 법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마지막 정치적 수단이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다시 선언하는 역사적 행위다.
지금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수호자이자, 체제의 최종 관리자이며, 역사의 피고석 앞에 선 주체다.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제 법률 문구의 해석자에서, 헌법정신의 책임자로 전환되었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 헌법의 이름으로 침묵하거나, 다수의 선택에 기대거나, 타이밍을 놓친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헌정국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 본다.
전원 일치는 어렵고, 두려운 결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헌법정신의 실현이다. 나는 이 결정을 단지 탄핵 인용 여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다시 쓸 수 있는 마지막 문장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시나리오 2·3·4가 연쇄적으로 펼쳐지며, 복귀와 보복, 공백과 충돌, 침묵과 붕괴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헌재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헌법의 마지막 문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내리는 결단이 바로, 우리 모두가 다시 헌법 아래 살아갈 수 있느냐를 가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윤석열의 복귀가 아니라, 헌법의 복귀다. 그리고 그 복귀는 단 하나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결론: 헌법이 돌아오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끝난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단순히 한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사건은 훨씬 더 깊고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했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헌법적 승계가 아니라,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권력을 공백 속에 고정시키려는 체제 전략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한덕수 총리는 ‘시간’을 권력화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방식이다.
나는 이 시간이 단순히 정치의 지연이 아니라, 정치적 복귀 혹은 체제 붕괴를 위한 여유 기간이라고 판단한다. 한덕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으며, 헌재는 이 상태에서 조만간 6인 체제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탄핵 인용은 불가능해지고, 윤석열의 복귀는 기술적으로는 열려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사전적 전략과 구조적 공모의 결과라고 본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고 동시에 침묵하고 있는 주체는 검찰, 경찰, 사법부다. 나는 그들이 침묵함으로써 윤석열 복귀에 필요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탄핵 인용 이후에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검찰은 정치적 보복의 중심, 경찰은 거리 통제의 실행 주체, 사법부는 보복을 정당화하는 기구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세 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겪을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준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 체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구조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갈 수 있는 길을 네 가지 시나리오로 나누어 분석했다. 첫 번째 정상회복 시나리오는 헌재의 결단, 국회의 후속 조치,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모두 결합해야 가능한 길이다. 두 번째 동결관리 시나리오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헌법이 기능을 정지하고, 권력만 유지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세 번째 복귀통제 시나리오는 윤석열이 돌아오고, 보복과 억압이 다시 제도화되는 경로이며, 나는 이것이 가장 파괴적인 민주주의의 사망선고가 될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 네 번째 공백격돌 시나리오는 행정부의 기능이 멈추고 거리에서의 충돌과 저항이 이어지는 경로로, 급진적 체제 전환과 위기의 폭발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헌정질서의 파괴 또는 복원을 예고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가능성을 종결시키고, 위기를 ‘제도 안에서’ 정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전원 일치에 의한 탄핵 인용이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대통령 복귀는 불가능해지고, 권한대행 체제도 그 명분을 상실하게 되며, 정치권은 헌정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결정은 단지 헌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선언이자, 헌법이 여전히 민주주의의 최종 심급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지금 헌법재판관들이 단순히 법률을 따지는 판사들이 아니라, 공화국의 존립 조건을 결정짓는 마지막 정치 주체라고 본다.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결단해야 한다. 전원 일치는 어렵지만, 바로 그 어려움 속에 헌법정신의 진실이 있다.
만약 헌재가 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나는 이 나라는 더 이상 ‘헌정국가’라 부를 수 없다고 본다. 헌법은 공백 속에서 무력화되고, 윤석열은 복귀하거나 그 복귀 가능성만으로도 정국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한덕수는 중립을 가장한 권력 장악자, 국회는 탄핵 이후 무력한 대립 구조, 시민사회는 분열과 탄압 속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헌재가 결정하지 않는 순간, 모든 결정은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거리에서, 조직에서, 혹은 우발적 폭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정치권, 시민사회,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 모두가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헌법은 살아 있는가?”라고. 그 질문에 지금 헌재가 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거리에서 피 흘리는 시민이 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를 막는 유일한 길이,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다.
우리는 윤석열의 복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헌법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