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윤석열 대통령은 즉각 퇴진하라!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

나는 매일 뉴스로 전쟁과 죽음에 대해 보고 듣고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 전쟁에 연루되려고 하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평화와 생명, 그리고 인류의 공존이라는 가치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가치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역사의 아픔이 부박한 정치적 계산으로 짓밟히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보편적 인권과 피해자의 권리를 위해 피 흘린 지난하면서도 존엄한 역사에 대한 경의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여성과 노동자와 장애인과 외국인에 대한 박절한 혐오와 적대를 본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모든 시민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라고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학생의 안녕을 예전처럼 즐거움과 기대를 섞어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안타까운 젊은 청년이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어도, 어떠한 부조리와 아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알지 못한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군휴학을 앞두고 인사하러 온 학생에게 나라를 지켜줘서 고맙고 건강히 잘 다녀오라고 격려하지 못한다.

나는 대학교 졸업식장에서 졸업생이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번쩍 들려 끌려나가는 것을 보았다. 더 이상 나는 우리의 강의실이 어떠한 완력도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 절대 자유와 비판적 토론의 장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파괴적 속도로 진행되는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두 학기째 텅 비어있는 의과대학 강의실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지금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 교육의 토대가 적어도 사회적 합의에 의해 지탱되기에 허망하게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격노를 듣는다. 잘못을 해도 반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격노의 전언과 지리한 핑계만이 허공에 흩어진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잘못을 하면 사과하고 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도록 다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존중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경계가 무너지며 공정의 최저선이 허물어지는 모습을 보고 듣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공정을 신뢰하며 최선을 다해 성실한 삶을 꾸려가는 것이 인간다운 삶의 보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신뢰와 규범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규범을 지키는 것이 공동체 유지의 첩경이라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수많은 거짓을 목도한다. 거짓이 거짓에 이어지고, 이전의 거짓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더 이상 나는 강의실에서 진실을 담은 생각으로 정직하게 소통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매일 말의 타락을 보고 있다. 군림하는 말은 한없이 무례하며, 자기를 변명하는 말은 오히려 국어사전을 바꾸자고 고집을 부린다. 나는 더 이상 강의실에서 한 번 더 고민하여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말을 건네고 서로의 말에 경청하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는 하루하루 부끄러움을 쌓는다. 부끄러움은 굳은살이 되고, 감각은 무디어진다.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나는 하루하루 인간성을 상실한 절망을 보고 있고, 나 역시 그 절망을 닮아간다.

어느 시인은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의 앞자락에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리라는 미약한 소망을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두었다.

나는 반성한다. 시민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 나는 취약한 사람이다. 부족하고 결여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 역시 취약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취약하기 때문에, 함께 목소리를 낸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인류가 평화를 위해 함께 살아갈 지혜를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역사의 진실 앞에 올바른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모든 사람이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갖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의 생명과 안전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이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자유롭게 생각하고, 스스럼없이 표현할 권리를 천명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우리가 공부하는 대학을 신뢰와 배움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선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잘못을 사과하는 윤리를 쌓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신중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한 규칙을 찾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서로를 믿으면서 우리 사회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진실 앞에 겸허하며, 정직한 삶을 연습하고 싶다.
나는 당신과 함께 다시 존중과 신뢰의 말을 다시금 정련하고 싶다.

우리는 이제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면서 만들어갈 우리의 삶이 어떠한 삶일지 토론한다. 우리는 이제 폐허 속에 부끄럽게 머물지 않고, 인간다움을 삶에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말과 현실을 발명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낸다.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무관심하며, 거짓으로 진실을 가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제멋대로 돌진하는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

2024.11.13.

경희대학교·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연구자

강내영, 강성범, 강세찬, 강신호, 강윤주, 강인욱, 고봉준, 고 원, 고인환, 고재흥, 공문규, 곽봉재, 구만옥, 구철모, 권순대, 권영균, 권현형, 김경숙, 김광표, 김기국, 김남일, 김대환, 김도한, 김동건, 김만권, 김미연, 김선경, 김선일, 김성용, 김성일, 김세희, 김수종, 김숭현, 김승래, 김승림, 김양진, 김원경, 김윤철, 김은성, 김은정, 김은하, 김일현, 김재인, 김종인, 김주희, 김준영, 김종곤, 김종수, 김종욱, 김종호, 김지형, 김진해, 김진희, 김태림, 김홍두, 김효영, 김혜란, 노상균, 노지영, 문 돈, 문지회, 민경배, 민관동, 민승기, 민유기, 박상근, 박성호, 박승민, 박승준, 박신영, 박신의, 박원서, 박윤영, 박윤재, 박정원, 박종무, 박증석, 박진빈, 박진옥, 박찬욱, 박환희, 백남인, 서덕영, 서동은, 서보학, 서유경, 서진숙, 석소현, 성열관, 손보미, 손일석, 손지연, 손희정, 송병록, 송영복, 신동면, 신자란, 신현숙, 안광석, 안병진, 안현종, 양정애, 엄규숙, 엄혜진, 오태호, 오현숙, 오현순, 오흥명, 우정길, 유승호, 유영학, 유원준, 유한범, 윤재학, 은영규, 이관석, 이기라, 이기형, 이명원, 이명호, 이문재, 이민아, 이봉일, 이상덕, 이상원, 이상원, 이선이, 이선행, 이성재, 이순웅, 이승현, 이영주, 이영찬, 이윤성, 이은배, 이은영, 이재훈, 이정빈, 이정선, 이종민, 이종혁, 이진석, 이진영, 이진오, 이진옥, 이찬우, 이창수, 이해미, 이효인, 임승태, 임우형, 임형진, 장문석, 장미라, 전중환, 정 웅, 정의헌, 정지호, 정진임, 정태호, 정하용, 정환욱, 조대희, 조민하, 조성관, 조세형, 조아랑, 조정은, 조진만, 조태구, 조혜영, 지상현, 지혜경, 진상욱, 진은진, 차선일, 차성연, 차웅석, 차충환, 천장환, 최서희, 최성민, 최원재, 최재구, 최정욱, 최지안, 최행규, 하선화, 한기창, 한미영, 한은주, 허성혁, 호정은, 홍승태, 홍연경, 홍윤기, 무기명 참여 30명, 총 226명

2024년 4월 16일 화요일

도서관은 행동해야 합니다! Libraries, take action!

 도서관은 행동해야 합니다! Libraries, take action!

"...지금은 평범한 시기가 아닙니다. 특히 공공도서관에 대한 조직적인 검열의 전례 없는 물결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도서관 단체과 사서의 권위를 훼손하는 법안이 전국의 입법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는 계속해서 도서관에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건물이 손상되었으며 또 다른 지역에서는 도서관이 복구 센터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예산 삭감과 인력 부족으로 이러한 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특별한 시기에 도서관은 행동해야 합니다."

But these are not ordinary times. The unprecedented wave of organized censorship intensifies, particularly in our public libraries. Adverse legislation that would undermine librarian agency and authority is getting a hearing in legislatures across the country. Climate change continues to impact libraries, damaging buildings in some areas and turning libraries into recovery centers in others. Budget cuts and staffing challenges undermine our ability to fulfill our missions. In these extraordinary times, libraries take action

(2024년 4월 8일, 미국도서관협회가 미국 도서관계의 현황을 정리한 보고서 <State of America's Libraries Report>의 서문, 에밀리 드라빈스키Emily Drabinski 미국도서관협회 회장의 '지금은 평범한 시기가 아닙니다. These Are Not Ordinary Times에서)

https://www.ala.org/news/sites/ala.org.news/files/content/state-of-americas-libraries-report-2024-acc-3.pdf

2024년 2월 19일 월요일

문화화폐(文化幣)

문화화폐(文化幣)

220일부터 독서가 일으키는 물결(閱讀造浪)이라는 주제를 걸고 개막하는 타이페이 국제도서전(台北國際書展). 이모저모를 누리집을 통해 살펴보다가, 문화화폐(文化幣)라는 단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국식으로 말하면 바우처(voucher)일 듯한데, 16~22세 청소년에게 정기적으로 발행, 배포되는 화폐라고 합니다. 타이완의 청소년은 이 문화화폐를 이용하여 도서전 입장이 가능하다는 것.

문화화폐 누리집에 들어가보니, 타이완 정부는 문화예술 소비자층을 양성하고 문화창의산업 활성화 및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문화예술 체험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문화화폐' 개념을 추진하여, 2012년에 18~21세 청소년을 우선적으로 지원했으며, 2013년부터 공식예산에 편입되어 표준화된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것. APP을 다운받고 회원가입 및 본인인증을 완료하시면 문화코인 1,200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고, 문화코인 1포인트는 NT$1 상당.

참고 https://twcp.moc.gov.tw/prec-u/

 

 

2024년 1월 31일 수요일

일본 예술가 4,317명이 서명했다는 성명서

일본 예술가 4,317명이 서명했다는 성명서
“일본 예술가들도 추도비 철거 반대를 요구하는 4300여명의 서명지를 모아 지난 26일 군마현에 제출했다.”는 문장(한겨레신문 김소연 특파원의 기사, 2024년 1월 30일자, <가림막 치고 ‘강제동원 추도비’ 철거…한마디 못하는 윤 정부>에 나오는 문장)을 단서로 어떤 예술가들이 어떤 서명을 받았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총 4,317명의 예술가들이 서명했다는 그 성명서(일본 표현으로는 要望書)에 나오는 대목.
--------
지사를 비롯한 현청·현 의회·현 직원 여러분이 꼭 인식해 주셨으면 하는 것은, 이 비의 사회적, 역사적 중요성입니다.
이 비는 역사·정치·문화·커뮤니티의 연결과 합의 하에 세워졌습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 중 일본 정부·민간에 의해 당시 '일본인'이었던 조선인을 대상으로 강제적인 노동이 이루어지고, 사람들은 차별, 살상, 학대, 병사, 사고사 등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희생되었습니다. 그들을 추도하는 비석은 도치기현, 나가노현, 미에현, 나라현 등 다양한 지역에 있습니다.
당시, 군마현 내에는 광산이나 군수 공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징병된 일본인들을 대신하여 노동하고 이 땅에서 몰린 많은 조선인 사람들의 위령과 추도를 위해 기념하는 비석이 ‘군마의 숲’에 있는 필연성이 있는 것입니다.
'협화사업기구조協和事業機構調'(1943년 3월)에 따르면 군마현 19지회의 조선인은 5467명으로 동원 강화로 반년에 약 6000명이 증가하고 1943년 말에는 1만200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또, 지사사무인계서知事事務引継書(1944년 2월)의 기재에 따르면, 나카지마 비행기 고이즈미 공장에는 1943년 12월에 조선인 20명이 징용徴用된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비석에 새겨진 문장입니다. 어쨌든, 이 기억과 뜻을 지우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사실과 함께 살아 미래 세대에 대해 전할 책임이 있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한때 우리나라가 조선인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게 기억에 남기고 진심으로 반성하며 다시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결의를 표명한다. 과거를 잊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고 새로운 상호 이해와 우호를 깊게 해 나가고 싶어 여기에 노무동원에 의한 조선인 희생자를 진심으로 추도하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한다. 우리의 추억을 차세대로 이어주아 아시아의 평화와 우호의 발전을 바라는 것이다”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dgrU6MD8tVcO_zbzP6YRrO_mKzzgcdvaJ9bbhkRTON8Njiow/viewform


2024년 1월 26일 금요일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으며 검열 또한 필요 없습니다.

존 밀턴 지음, 박상익 옮김, 주석, 연구 아레오파기티카 Areopagitica인간사랑, 20161230, 1쇄 

(562)어떤 사람이 지식의 깊은 광산에서 극도로 고된 노동을 한 끝에, 발굴한 모든 것을 무기로 삼고, 그의 이성을 총동원합니다. 그것은 마치 한 군대가 적을 평원으로 불러내, 아군에게 유리한 바람과 태양의 위치를 확보한 후, 전진을 가로막는 모든 반대 세력을 조준·분산·패배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오직 논거의 힘으로 이런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의 적은 살금살금 숨어 매복한 채, 검열이라고 하는 비좁은 다리를 지키면서, 도전자가 그 다리를 통과하기만을 기다립니다. 군인으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용감한 일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리의 싸움에서는 허약한 겁쟁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563)진리가 전능한 하나님 다음으로 강하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진리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 없고 전략도 필요 없으며 검열 또한 필요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오류가 진리의 힘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하는 계략이며 방책입니다. 진리에게 단지 대결의 장()을 허용해 주십시오. 그리고 진리가 잠들었을 대 묶어놓지 마십시오. 진리는 묶여 있을 때는 진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로잡혀 꽁꽁 묶일 때에만 신탁을 말하는 늙은 프로테우스(Proteus)와는 다릅니다. 진리는 구속을 받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온갖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마치 미가야(Micaiah)가 아합(Ahab) 왕 앞에서 했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때에 따라 바꿀 것입니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청할 때까지 그러할 것입니다.  

이 날은 특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2024 01주 이시무레 미치코石牟澧 道子, 김경인 옮김, 고해정토-나의 미타마타병, 200765일 제11, 2022118일 제21, 달팽이출판 

이 날은 특히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이 혐오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카마 츠루마츠 씨의 슬픈 산양 같은, 물고기 같은 눈동자와 바닷물에 떠밀려온 나무토막 같은 자태와 결코 왕생할 수 없는 혼백은 그날부로 송두리째 내 안으로 옮겨왔다.(129쪽)

이 원고의 일부는 19601서클촌에 발표, 같은 해 일본 잔혹이야기(平凡社, 간행)에 싣고, 후에 속편을 싣느라 1963현대의 기록을 창간했는데, 자금난으로 질소공장 안정임금반대쟁의 특집호로 일단 끝냈다가, 1965구마모토 풍토기창간과 동시에 원고를 다듬어 이 잡지의 폐간 때까지 천천히 썼다. 원제는 바다와 하늘 사이.(이시무레 미치고, 19681221일 새벽, 작가후기, 304) 

이시무레 미치코가 환자와 그 가족들과 더불어 서 있는 곳은, 이 세상 존재의 구조와 도저히 어울릴 수 없게 된 사람 즉 인간세계 밖으로 추방된 사람의 영역이며, 한번 그런 위치로 내쫓긴 사람은 환상의 작은 새를 향해 정처 없는 출항을 시도해볼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타나베 교지, 이시무레 미치코의 세계, 326) 

이시무레는 타고난 무당입니다. 이 작가가 미나마타의 비극 가운데서 포착해낸 것은 이 살아 있는 생명감각이 빚어내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극한적인 절망과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 가고 있는 환자들을 통해서, 말하자면 고해정토(苦海淨土)의 원리를 발견한 거죠. 즉 지독한 절망과 고통이 도리어 축복이 되는 상황 말입니다. 이시무레는 치유 불가능한 병고의 고통과 절망의 한가운데서 호나자들이 여태까지 당연하게 여겨왔던 자신들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지극히 순결한 영혼의 정화를 경험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누려온 토착적 삶이야말로 어디에도 비할 바 없이 지복(至福)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김종철, 전 녹색평론 발행인, 4)

하지만 희망도 절망도 없이 걷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2024-01주 고병권, 묵묵돌베개, 2018125일 초판. 

하지만 희망도 절망도 없이 걷는 것은 얼마나 힘든가. 루쉰의 글 희망의 어느 대목을 읽다 한참을 머물렀다. 헝가리 혁명 시인 페퇴피 산도르(Petőfi Sándor)의 시를 인용하면서 달아 놓은 구절 하나. “참혹한 인생이여! 페퇴피처럼 용감한 사람도 어둔 밤을 마주하여 걸음을 멈추고 아득한 동쪽을 돌아보았다.” , 용감한 시인도 캄캄한 밤길을 걷다 동쪽으로 고개를 돌렸구나. 사람을 홀려 청춘을 앗아간다고 희망을 욕했던 시인도 한번은 해 뜨는 쪽을 보았던 것이다. 그래도 그는 어둔 동쪽 하늘에 절망하지 않았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이 그런 것과 같으니.”(7,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