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다문화 독일사회 지탱하는 이민자 프로그램 운영,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2024.11.27.)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

이은영 건축가, 1999년 설계 공모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톱7 꼽혀
4개 층 하나로 연결된 서가 시선 압도
기후변화·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 토론
학교·유치원 찾아가 도서관 이용 교육
시가 구매한 작품 2000여점 시민에 대여

상상했던 것 그 이상. 독일 슈투트가르트 시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첫 느낌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익숙했던 순백색의 도서관 내부는 훨씬 더 강렬했다. 슈투트가르트를 찾는 방문객들이 벤츠 박물관 등과 함께 꼭 찾는 핫플레이스인 도서관은 2013년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7곳 중 한곳으로도 선정됐다. 도서관 설계자는1999년 설계 공모전에서 23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선된 한국인 건축가 이은영. 도서관은 2011년 개관 이래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며 여전히 화제의 중심에 있다.

슈투트가르트 중앙역을 나와 10분 정도 걸어가면 흰색 정육면체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세계 유명 도서관들과 달리 직선적이고 단순해 보이는 건물 앞에 서면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하지만 텅 비어 있는, 높은 층고의 출입구를 지나 4개층이 하나로 연결된 순백색 갤러리 형식의 서가와 열람실에 들어서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도서관을 찾아간 날은 공간 정비를 위해 수 개월간의 휴관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여는 날이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도서관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서관의 방문객은 하루 5000여명, 주말에는 7000여명에 달한다.

현재 도서관이 들어선 지역은 공장 지대였다. 시 외곽으로 공장이 옮겨가면서 낙후된 지역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기존 도서관 역시 협소했던 터라 넓은 부지에 대형 도서관을 짓자는 의견이 대두됐다. 죽어가는 지역을 살리는 의미도 있었는데 도서관이 건립된 후 쇼핑센터, 거주공간 등이 들어서면서 목적은 달성됐다.

“도서관은 동기 부여, 문화적 자극을 받는 장소입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이나 직업을 위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람들이 도서관을 ‘나라는 인간이 계속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곳’이자, ‘나에게 집중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겼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취재 과정에서 도서관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 카틴카 에밍거 관장은 “우리 도서관을 설계해 준 나라에서 오신 분들을 만나 반갑다”며 환대했다.

도서관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다채롭다. 특히 시민들과 학자들이 함께 토론하고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기후변화와 민주주의, 문학, 음악 등 다양한 주제들을 통해 시민들의 성장을 돕는다.

독일은 난민문제를 포함해 이민자 관련, 다양한 정책을 운영중이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역시 다문화 독일 사회를 서포트하기 위해 이민자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은 자신의 모국어인 고향의 언어로 뿌리를 알아가고, 배움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도서관을 방문하는 이민자들이 안정감을 느끼며 배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언어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독일어 등 현지 적응을 돕는 언어 교육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공부 자동차(Lernmobil)’는 눈길을 끄는 기획이다. 학습 의욕은 높지만 컴퓨터 등 장비가 부족한 난민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을 위해 캠핑카에 컴퓨터, 인쇄기 등을 싣고 요일마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에 찾아가 사서들이 직접 학습을 도와주는 프로젝트다. 또 다양한 악기를 대여해주는 프로그램은 많은 이들에게 인기가 있지만 특히 이민자들의 호응이 높다. 고향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전통 악기를 빌려 연주하거나 지인들과 합주하면서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

노년층을 위한 기획도 많다. 지역 IT 단체와 결합해 2~3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인터넷, e북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을 상시 진행하며 큰글자책도 최대한 소장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낭독회’는 도서관의 대표 행사다. 라디오 등에서 활동하는 전문 낭독자가 참여해 노인들이 사랑했던 대표 작품들을 낭독하는데 인기가 많다.

책을 읽는 기쁨을 전달하기 위해 어린이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도 의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매체에 노출돼 책이나 도서관과 친해질 기회가 적고, 그만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역 유치원, 도서관과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도서관은 수동적으로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대면한다. 최근에는 독일 학교 시스템의 변화로 종일제가 늘어나 학생들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더 적극적으로 학교를 찾아간다. 특히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해 그림책을 제작하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아카이빙된 그림책은 다른 어린이들에게 동기부여로 작용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회화, 디자인, 사진 작품과 도록, 관련 논문 등의 문화예술 컬렉션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진행하는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게 작품 대여다. 시가 구입한 2000여점의 지역 작가 작품을 한달에 2유로의 비용으로 개인, 병원, 기관 등에 대여해주며 큐레이팅도 직접 해준다. 또 1층 갤러리에는 슈투트가르트의 문학적 유산에 경외심을 표현하는 작품을 전시하는데 국내외 작가들 중 ‘언어’를 영상으로 표현한 작품을 주로 선보인다.

3대 관장인 카틴카 에밍거씨의 미션은 팬데믹 시기를 잘 견디는 것, 그리고 위기가 끝난 후 사람들을 다시 도서관으로 연결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도서관의 역할에 대해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토론을 이어간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은 19개 지역도서관과 책을 대여해 주는 2대의 도서관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3개월에 한 차례 전 지역 도서관 관계자들이 모여 전체 시립도서관의 성격에 만든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각 지역 인구 분포 등을 고려해 자체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도서관은 두 가지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여러 사람이 어우러지는 만남의 광장의 역할입니다. 사회 계층, 경제적 여건과 관계 없이 누구나 항상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고, 그곳에 가면 나를 환영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또 하나는 고요한 공간이라는 개념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가정이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도시 안에서 고요히 공부할 수 있는, 자기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 이게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웨어(도서관 건물)와 소프트웨어(프로그램)가 어우러질 때 도서관은 더 힘을 발휘한다.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경우 현대적인 건축이 젊은 세대를 다시 도서관으로 끌어들이며 젊은이들의 방문이 대폭 늘었고, 치매를 앓고 있는 가정을 위한 교육 등 지역사회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포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해 인기가 높다.

카틴카 에밍거 관장은 슈투트가르트 도서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동료(직원)’를 꼽았다. 결국 모든 프로그램은 직원들에게서 나오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지역사회에 맞춰 그 변화를 빠르고 유연하게 수용하는 능력을 갖춘 직원들이야 말로 최고의 자원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 여러 민족, 언어권의 사람이 더불어 사는 현대 사회에서는 국제적 관점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도서관이 외부 기관이나 단체, 시민들에게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도서관의 프로그램이 훨씬 더 풍부해진다고 강조했다.

슈투트도서관에서 인상적인 곳은 출입구다. 높은 천장 아래 백색의 텅빈 공간. 조만간 이곳에 건축가의 의도대로 분수가 들어서면 유리 천정 위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과 여백을 만들어내는 공기와 물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완성될 것이다.

/글·사진=슈트트가르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2662000776731369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독일 쾰른 칼크·발헴·니페스 도서관(2024.11.24.)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주도(州都)는 뒤셸도르프지만, 사람들에게는 쾰른이 더 익숙한 도시일 것 같다. 연간 600만명이 방문하는 쾰른 대성당의 위상 때문일 터다.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성당 주변에는 대규모 컬렉션을 자랑하는 루드비히 미술관, 쾰른 필하모니 등 문화시설들이 모여 있고 쇼핑가도 이어져 있다.

쾰른 공공도서관(Stadtbibliothek Koln)의 헤드 쿼터 역할을 하는 중앙도서관 역시 성당에서 10여분 떨어진 문화지구에 자리잡고 있다. 쾰른 공공도서관은 2013년 3D 프린터를 세계 최초로 도입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쾰른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하인리히 뵐의 작품을 아카이빙 하고 있다. 쾰른 공공도서관은 시내 각 지역에 모두 11개의 분관을 두고 있다.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지역 도서관들은 주민들과 밀착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리모델링(2028년 마무리 예정)을 위해 오는 12월까지 문을 닫은 후 임시 거처로 옮겨가는 쾰른 중앙도서관의 추천을 받아 주민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는 지역의 도서관을 둘러봤다.

칼크(Kalk) 도서관=쾰른 대성당에서 라인강을 건너가면 만나는 칼크(Kalk) 지역은 이민자들의 비율이 높은 곳이다. 타운홀 1층에 자리한 칼크 지역 도서관은 지난 2018년 리모델링을 통해 새롭게 변신하며 지역의 명소로 떠올랐다. 네덜란드 출신 크리에이터이자 건축가인 아아트 보스가 참여해 공간을 리모델링한 칼크 도서관은 ‘독일 올해의 도서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담한 규모의 도서관은 매력적인 디자인이 눈길을 끄는 모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다. 어린 아이들이 놀고, 책을 읽고, 쉴 수 있는 5m 길이의 대형 토끼 인형이 놓여 있고 마치 집처럼 독서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또 3D 프린터, 커팅 플로터, 프로그래밍 가능한 로봇, 최신 가상 현실 및 게임 장비를 갖춘 메이커스 공간은 새로운 실험을 하기에 적합하다.

칼크 도서관은 전 연령대가 이용하지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특화됐다. 칼크 도서관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직원들과 청소년들이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나눈 후 조성한 2층 공간이다. 이곳은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와 학습, 쉼의 공간이다. 특히 아티스트 그룹 어반스크린(URBANSCREEN)이 개발한 대형 인터랙티브 스크린은 사람들이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면 바로 화면에 영상이 나타나는 전자 태그툴(Tagtool)로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의미있는 장치다.

한켠에는 어린이,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게임을 테스팅하는 방이 있다. 미디어 교육 전문가들이 교육용 게임이나 새롭게 출시된 게임들을 직접 테스팅 한 후 유해성 여부 등을 직접 판단해 부모와 교사들에게 정보를 제공한다.

칼크 도서관 관계자는 “우리 도서관은 학생, 어린이들이 편하게 찾아와 적극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며 “게임을 하든 친구와 놀든 일단 도서관에 찾아오면 궁금한 것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책과 친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발헴(Haus Balchem) 도서관=쾰른시는 1970년대 이후부터 시 소속인 오래된 건물들을 문화공간으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성벽 인근에 자리한 발헴 도서관도 그 중 하나다.

바로크 양식의 외관이 눈에 띄는 발헴 도서관은 15세기 대장간으로 사용되다 1676년부터 양조장으로 활용된 곳으로 도서관 이름은 마지막 소유주인 양조업자 요한 발헴의 이름에서 따왔다.

도서관은 작지만 주민들의 사랑을 가득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2층 한 테이블에서는 30대부터 70대 여성 4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며 퀼트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퀼트 애호가들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젝트다.

만화가 지망생을 위한 ‘코믹 라운지’도 운영한다. 만화를 그리고 싶거나 아이디어 스케치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화가 레오 레오왈드가 진행하는 워크숍을 통해 만화를 소개하고, 브레인스토밍, 캐릭터 디자인, 스타일, 스토리텔링 전략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가장 인기 있는 어린이 관련 프로그램은 연령대별로 5~12명씩 나눠 진행하며 여느 도서관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물품을 빌려주는 장비도서관도 운영중이다.

가비 모크씨는 “도서관의 대표 프로그램이 된 퀼트 모임은 도서관을 즐겨 찾는 이용객의 제안으로 시작됐다”며 “지역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받아들여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니페스(Nippes) 도서관=늦은 오후에 들른 니페스 도서관 2층 서가에 들어섰을 때, 햇빛이 쏟아지는 창가에 놓인 업라이트 피아노에 앉아 헤드셋을 끼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소파에서는 젊은 아빠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 도서관에서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소박한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쾰른 음대가 가까이 있어 재학생들이 연주회를 열곤 하는데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청중이 된다. 취재를 간 날에도 저녁에 음악회가 예정돼 있었다.

니페스 도서관은 쾰른 문맹 퇴치 및 기본 교육 연합의 파트너로 문맹 퇴치 과정을 위한 도서관 투어와 충분히 읽거나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읽기와 쓰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 스튜디오를 운영한다. 또 이민자들을 위한 다문화 도서관과 이민 과정을 돕는 가이드 투어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악기를 대여해주는 도서관은 세계 언어인 에스페란토어로 ‘노래하다’를 의미하는 ‘칸티(Kanti)’를 운영한다. 시민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프로그램으로 매주 한 차례씩 합창단 지휘자, 음악가와 함께 새로운 노래를 배우고 부르며 문화활동을 즐긴다. ‘뜨개질 모임’ 역시 세대간을 이어주는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글·사진=쾰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732445100776623369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도서관은 토론의 장…연구소·대학과 도시 문제 해결 협업, 벨기에 겐트 드 크룩 도서관(2024.11.22.)

 벨기에 겐트 드 크룩 도서관

책 쌓아놓은 듯한 독특한 외관 눈길
14개 분관…겐트 등 벨기에 고서적 소장
매년 한가지 주제 기술적 해결 방안 도출
사회 취약자 겪는 이슈 관심…워크숍 진행
100개 학교와 연결…학교 찾아 프로모션
NGO와 이민자 돕기 프로그램 진행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40분이면 도착하는 겐트는 인근의 브뤼헤와 함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12세기에 축조된 그라벤스틴 고성(古城)을 비롯해 오래된 성당과 도심을 흐르는 운하 등 중세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를 걷다보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인구 30여만명의, 플랑드르(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 지역을 대표하는 겐트는 대학도시로 그 어느 중소도시보다 활력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10월 겐트 공공도서관인 드 크룩도서관(Bibliotheek De Krook)을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건물 앞에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교사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장년층, 그리고 나이든 노인들까지 50여명의 대기자들은 오전 10시 직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문을 열자 행복한 표정으로 도서관에 들어섰다.

겐트 도심을 흐르는 스켈트강 옆에 자리한 드 크룩 도서관은 독특한 외관이 먼저 눈길을 끈다. 건물은 2017년 ‘BBC 선정 아름다운 도서관’에 선정되는 등 개관 당시에 화제가 됐었다. 굴곡진 강의 라인을 따라 자리한 건물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자유롭게 구성돼있는데, 특히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구부러진 건물은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며 철근과 유리 등을 주소재로 한 건물은 인근의 오래된 건축물과 대비를 이루며 현재와 과거, 오래된 것과 새 것을 잇는 접점 역할을 한다. 도서관 이름 ‘크룩’(Krook)은 ‘구부러짐, 꺾어짐’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에서 따왔다.

겐트시는 2005년 도서관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후 12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 2017년 드 크룩의 문을 열었다. 당시 도서관 건립은 6500만유로(약 940억원)가 투입된 대규모 사업으로 낙후된 지역을 재생시키는 의미도 있었다. 도서관 건립의 목표를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삼은 겐트시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만나는 장소를 넘어 더 많은 미션을 수행하는 공간이 될 수 있게 겐트 대학 등 지역 기관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도서관은 장르별로 잘 정리된 서가와 학습 및 작업 공간, 독서 및 스토리텔링 코너, 전시 공간, 독서 카페 및 체험 계단, 메이커스 공간, 어린이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고문서 보존실에는 17세기 도서를 비롯해 벨기에 및 겐트 관련 서적 18만여권이 소장돼 있다. 시내 14개의 분관을 두고 있는 크룩의 지난해 방문객은 90만명 수준이었다.

도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도시가 직면한 사회 현안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 데 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기관들이 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도서관 방문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좀 더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으려 애쓴다.

이런 협업은 도서관 조성 단계에서부터 진행됐으며 현재 도서관과 겐트시, 겐트 대학, IMEC(나노 전자공학 및 디지털 기술에 대한 플랑드르 연구센터)가 주축이 돼 프로젝트를 진행, 도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각 참여단체는 장기간의 토론과 워크숍 등을 통해 1년 동안 매진할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간다. 올해는 의료 관련 주제가 선택됐고 협업 기관과 지역의 의사, 스타트업 기업 등이 정책을 개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때 도서관은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협업을 통해 각자가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면 사고가 확장되는 건 당연합니다.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서 하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골고루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어떤 이슈를 정하는지가 중요한데 특정 분야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취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이슈가 주된 관심입니다. 주거문제, 교통문제 등 많은 주제가 있겠죠.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어떤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지도 철저하게 따져보죠. 취약자를 직접 만나고 토론과 워크숍 등을 통해 기술적인 해결방안 등을 모색합니다.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취약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모여서 하는 게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겐트 대학의 제론 보레오니옹씨는 “프로젝트의 주체들이 도서관 안에 함께 상주하며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100여개 지역 학교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도서관은 다양한 종류의 책 읽기, 깊이 읽기, 부모와 함께 읽기 등 5가지 과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학생과 교사, 부모들에게 독서와 도서관 이용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뉴스레터를 제작해 전달하고 특히 학교로 직접 찾아가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며 12세까지의 학생들은 학교의 의지에 따라 8주에 한번씩은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학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마이크 소머스씨는 “학생들이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학교로 찾아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사들과도 소통을 많이 한다”며 “장래에 교사가 될 학생들에게는 워크숍 참여 등 다양한 기회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델로 참여한 포스터를 도서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어에 익숙치 않은 이민자들의 이용을 독려하고, 동기 의식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도서관은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NGO 단체들과 협업을 통해 공공기관에 이메일 쓰기 등 이민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원어민이 아닌 사람을 위한 함께 읽기’ 등 다양한 독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은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 지역민들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겐트 독서 공동체를 위한 ‘겐트 리드(Ghent Reads)’를 운영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나만의 북클럽 만들기’로 도서관이 제공하는 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 5명 정도가 함께 읽고 토론 내용을 제출하면 사이트에 올려 공유한다. 또 지역 도서관을 비롯해 카페, 공원 등 책읽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고 부두 등 도심 곳곳에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거리의 시’, 작은 책장에 놓인 책 한권을 가져가고 자신의 책 한권을 두고 가는 ‘도서 교환 케비닛’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글·사진=벨기에 겐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2244400776551369

[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도시의 역사 담은 도서관 … 기억을 품고 세대를 잇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공립도서관(2024. 11.20)

 네덜란드 로테르담 공립도서관

2차 세계대전 후 폐허서 재탄생한 ‘건축도시’
큐브하우스 등 유명 건축물과 한 광장에 자리
지역 사람들 이야기 ‘스토리 오브 시티’ 눈길
로테르담 출신 에라스무스 관련 체험프로 진행
재건 때 발굴된 800년 된 배 전시…역사 자료로
국적 170개국 이민자 도시…정착 프로그램 심혈

네덜란드 제2의 도시 로테르담은 폐허에서 재탄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0년 독일군의 폭격으로 도시 대부분은 파괴됐고, 로테르담 재건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통해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다.

로테르담은 ‘건축의 도시’로 꼽힌다. 로테르담의 관문, 중앙역에 도착하는 순간 만나는 첫 건축물이 그 위상을 제대로 보여준다. 벤섬 크로웰이 설계한 로테르담 중앙역사는 도시의 랜드마크로 손색이 없다. 역에서 출발해 시가지 곳곳에서 만나는 독특한 건축물들 역시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로테르담 공립도서관(de Bibliotheek Rotterdam)은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들이 즐비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피트 블롬이 설계한 독특한 형태의 주거 시설 ‘큐브 하우스’를 비롯해 마치 세워둔 연필을 연상시키는 ‘펜슬빌딩’, 현지인은 물론이고 관광객들의 방문 일순위로 꼽히는 ‘마켓홀’ 등 한 번 보면 잊히지 않는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노란색 파이프를 그대로 노출시킨 도서관 건물 역시 인상적이다. 도서관 유리창을 통해 큐브 하우스 등 유명 건물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지난 2013년부터 비영리단체인 로테르담 도서관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도서관은 접근성 좋은 곳에 위치해 있어 시민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240만명이 다녀갔고 대출 건수는 290만건 수준이었다.

도서관은 모두 6층으로 이뤄져 있다. 가장 위층에는 조용히 공부할 수 있는 열람실이 자리하고 있으며 각 층에는 어린이실, 다양한 활동이 이뤄지는 청소년 전용 공간 등을 두었다. 책장은 이용객들의 편의를 위해 낮게 설치하고 서가 사이사이, 에스컬레이터 인근 등 자연스럽게 앉아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는 좌석을 배치했다.

1층은 시민들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대형 체스판 앞은 언제나 게임을 하는 이들로 붐비고 로비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전시가 진행된다. 방문한 날은 현직 소방관과 경찰관에 대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토리 오브 시티(Story of city)’는 도서관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로테르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그들의 생각은 무엇인지 시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아카이빙해 영상으로 보여주는 플랫폼으로 로테르담의 다양성을 보여주고, 시민들이 자연스레 자신의 역할을 찾아보도록 하는 기획이다.

로테르담 공립도서관은 무엇보다 지역의 역사와 인물을 어떻게 기억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는 지 잘 보여주는 장소다. 로테르담의 명물 중 하나는 마스강을 가로질러 로테르담의 남북을 연결하는 에라스무스 다리. 도시의 상징인 다리에 에라스무스의 이름이 붙은 까닭은 그가 로테르담 출신이기 때문이다. 에라스무스 대학 역시 로테르담 최고의 대학으로 꼽힌다.

친필 편지 4통 등 에라스무스 관련 5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은 세계사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1466~1536)의 사상을 연구하고 현대에 계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3층에 자리한 ‘에라스무스 익스피리언스(ERASMUS EXPERIENCE)’ 공간은 이용자들이 흥미롭게 이용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 자료를 통해 에라스무스의 정신을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주 대상자들이지만 시니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안내를 맡은 이네크 반 더 크라머씨는 “에라스무스의 철학을 나누고 공유하는 프로그램으로 재미있게 구성한 자료들을 통해 에라스무스의 사상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며 “특히 시니어들의 참여는 세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도서관이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관련, 연령대별로 기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세대가 모여서 하나의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연스레 세대 간 사고의 차이를 알 수 있고, 공동체 의식도 생긴다는 설명이다.

서가에 전시된 낡은 배도 눈길을 끌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나무 배는 120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유산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할 당시 발굴된 것으로 복원 후 로테르담의 역사를 상징하는 중요한 교육 자료로 활용중이다. 배와 관련한 다양한 내용을 담은 영상자료와 함께 벽에는 로테르담의 역사를 알려주는 일러스트를 그려두었고 학생과 주민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로테르담은 거주자의 국적만 170개국에 달하는 이민자 도시다. 도서관이 네덜란드어 교육 등 언어 관련 프로그램에 힘을 쏟고 있는 이유다. 레벨별로 진행되는 네덜란드어 강좌, 북클럽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고 있으며 자원봉사자들이 적극 참여한다.

언어 교육은 읽기 등 언어 장애를 갖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해서도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봉사자들이 직접 가정을 방문하는 형식으로도 운영된다. 도서관은 네덜란드어 교육과 함께 이민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자국에서 홀로 왔을 가능성이 높은 이민자들이 낯선 나라에서 살아가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들로, 다양한 그룹 활동을 제안한다.

도서관은 또 ‘라이브러리 앳 스쿨’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와 협업도 진행하고 있다.

로테르담 공립도서관은 현재 리노베이션을 진행중이다. 오는 2025년까지 현 건물을 이용하고 약 3년 후인 2028년부터는 새 공간에서 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 최근 마무리된 공모 선정작은 현재의 도서관 형태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은 형태로,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장했다. 현재 1층 로비에는 새로운 도서관에 대한 청사진이 대형 책 형태로 전시돼 있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집처럼 편안한 곳이어야합니다. 또 방문하는 사람들이 안전한 곳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배우며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에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장소이기도합니다. 무엇보다 도서관에서 즐기는 게 중요합니다.”

이네크 반 더 크라머씨는 “도서관은 세대가 어우러지고, 세계가 만나는 장소”라고 말했다.

‘heel de aarde is je vaderland(온 세상이 너의 조국이다)’. 로테르담 공립도서관 외관에 적혀 있는 말이다.

/글·사진=로테르담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2057200776436369

[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유리지붕 아래 웅장한 ‘책의 산’, 발길 부르는 랜드마크,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 북마운틴도서관(2024.11.13)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 북마운틴도서관

‘책 읽는 곳’ 넘어 지역 커뮤니티 역할 기대
남부 소도시에 1000만달러 투입해 건축
빗물 재활용·채광따라 창문 개폐 등 친환경 설계
강연·난독증 교육·창업 지원 등 프로그램 다채
북콘서트·결혼식도 열려…52개 학교에 도서 제공
주민과 소통 최우선…리뷰·설문·심층면접 진행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네덜란드 건축사무소 ‘MVRDV’의 건축가 위니 마스가 도서관 설계를 요청한 지역 관계자들과 첫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때 언급한 단어라고 한다. 도서관이라는 공간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고, 지식을 얻고, 서로 나누길 원했던 그는 ‘환상’과 ‘동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네덜란드 스페이케니서(Spijkenisse) 북마운틴도서관(de Bibliotheek De Boekenberg)에 들어섰을 때 딱 그런 기분이 들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공간.

◇마을의 정체성, 시골 농장을 닮은 도서관

네덜란드 남부에 위치한 스페이케니서는 로테르담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작은 도시다. 2012년 문을 연 도서관은 독특한 건물 외관으로 건립 초기부터 화제가 되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1위, 네덜란드 베스트도서관 2위 등을 수상했다. 지하철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걸으면 만나는 도서관은 도시의 중심 광장에 자리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다. 고풍스러운 교회와 마주하고 서 있는 도서관을 보는 순간 ‘북마운틴’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전면을 유리로 감싼 도서관의 경사진 면이 마치 산을 연상시켰고, 계단과 경사로를 오르며 만나는 ‘책의 산’은 지식의 숲을 거니는 기분을 준다.

스페이케니서는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의 위성도시로 별다른 특징이 없는 곳이었다. 1960년대 2000명 정도였던 인구는 현재 8만명까지 늘어난 상태. 인구 증가로 인해 시민들을 위한 인프라를 갖춰야 할 시점이 되자 지방 정부는 시설 확충과 동시에 도시의 이미지를 만드는 랜드마크를 구상했다. 이 때 떠오른 핵심시설이 도서관과 극장이었다. 당시 주민들의 수입은 타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읽는 것’에 문제를 갖고 있는 비율은 11%로 전체 네덜란드 평균보다 2%나 높았다. 도서관 건립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탓에 찬반 논란도 불거졌다.

“도서관이 책만 읽으면 되는 공간인데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지을 필요가 있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하지만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죠. 도서관이 책 읽는 장소를 넘어 지역 커뮤니티에 다양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되야한다고 생각했고, 도시 이미지를 향상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공청회를 여러차례 열어 주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죠. 도서관이 건립되고 나서는 투어를 진행하는 등 도서관과 친숙해지도록 유도하고 시민들의 의견에 귀기울였습니다. 지금은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됐죠.”

도서관 투어를 함께한 바베트 플립스씨는 “현재는 건축가, 도서관 애호가, 사진작가들의 방문이 이어져 도시 이미지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건물 외관, 특히 지붕은 도서관이 들어선 지역에 농장이 많았다는 점에 착안, 네덜란드 전통 농장의 형태를 모티브로 삼았다. ‘MVRDV’는 도서관 주변 42개 주택도 함께 설계했는데, 도서관에서 주소재로 사용한 벽돌로 외장을 마감하고, 지붕 형태를 유사하게 디자인하는 등 통일감을 부여했다.

2000장의 유리 지붕과 이를 지탱하는 역할을 하는 116개의 나무 트러스로 이뤄진 건물은 ‘안과 밖’을 하나로 만든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쌓여 있는 수많은 책들을 보며 도서관 안으로의 여행을 생각하고, 내부에서는 유리창 밖 마을 전경을 조망하며 편안함을 느낀다. 건물 내부의 모든 벽면에 서가를 설치했는데 최고층(5층)까지 480m에 달하는 나선형 책장은 한걸음, 한걸음 ‘책의 산’을 오르는 듯한 기분을 준다. 또 다양한 형태의 스터디룸과 건물 구석 구석 자리한 독서 공간은 편안함을 전한다. 도서관 안에는 마치 보물찾기 하듯 숨겨진 공간들이 눈길을 끌며 벽면에 감춰진 엘리베이터도 인상적이다.

도서관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건물이다. 빗물을 모아 냉난방과 화장실 물로 재활용하고, 유리벽의 창문은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열리고 닫힌다. 또 햇빛의 양과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블라인드가 내려오는 자외선 차단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내부 주재료로 사용한 나무와 벽돌은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특히 벽돌은 열을 흡수하며 흡음 기능을 해 소음을 잡아준다. 도서관을 가득 채운 책장은 화분을 재활용해 제작했다.

◇ 학교·지역사회와 다채로운 프로그램 진행

북마운틴도서관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자체 프로그램과 함께 학교, 지역문화센터 등 외부 단체와 협업하며 공공 서비스를 충실히 제공한다. 독서관련 프로그램을 기본으로 난독증 어린이 교육, 어르신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을 진행하며 20~30대와 스타트업 기업을 대상으로 법률상담 등 창업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Together on Saturday’는 주민들이 함께 식사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소셜 다이닝이다. 모여서 책을 읽기도 하고 필라테스, 음악감상, 뜨개질 클럽 등 참여자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프로그램을 짠다.

2층에 자리한 카페는 지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사람들을 도서관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최고층인 테라스 공간에서는 북콘서트, 강연, 이벤트가 열리며 지역 회사들에게 대여도 해준다. 취재 며칠 전에는 결혼식이 열리기도 했다.

북마운틴도서관은 지역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초중고 52개 지역 학교에 장서를 제공하고 직접 학교에 찾아가 독서문화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학생들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사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힘을 쏟고 있다.

북마운틴도서관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주민과의 소통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늘 바뀌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듣고 변화하는 게 중요하다. 도서관이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를 살피고 설문조사를 꾸준히 진행, 이용자들의 반응과 관심 사항을 챙긴다.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중요시하며 특히 1년에 두차례 심층면접을 통해 요구사항을 파악한다. 현재 도서관이 중점을 두는 연령대는 20대(18세~30세)다. 어렸을 때 부모와 함께 도서관을 방문했던 이들이 다시 자신의 아이와 도서관을 방문하는 30~40대가 되기 전까지는 도서관 이용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북마운틴도서관은 입주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업한다. 외부 업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소설 다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체스협회와 협업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또 건물 1층에서 스페이케니서 역사홀을 운영하는 사회단체가 진행하는, ‘지역 역사와 도서관 투어’에도 힘을 힘을 보탠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사람들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요. 단순히 책만 빌리는 게 아니라 도서관에서 많은 것을 하며 시간을 보내려는 이용자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합니다. 모든 도시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작은 도시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합니다.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단순히 책만 소장하고 있는 공간이 아닌, 사회적 역할을 하는 장소가 돼야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자산관리, 이혼 컨설팅까지도 해줄 수 있어야죠. 모든 연령층의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얼마나 보완할 수 있는가, 자신의 삶에 실제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케팅 책임자 올가 반 리드)

/네덜란드=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1452400776141369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194만권 ‘지식의 숲 ’ 읽고 배우고 최고의 ‘시민 놀이터’, 국회부산도서관 (2024.11.5.)

 국회부산도서관

여의도 국회도서관 기록물 포화
2022년 부산에 첫 분관 열어
법학 도서·국회 발간물·의회 법령
의회·금융 교실 운영하고 상설 전시
첫 해 히트상품 5위…총 91만명 방문
2031년 세종 분원…광주시도 유치 노력

책의 숲에서 사람과 만나고 미래를 키웁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은 1952년 의정활동 지원기관으로 문을 열어 입법과 정책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장서와 기록물이 매년 증가하면서 보존에 한계가 발생, 지난 2014년부터 국회도서관 분관 건립을 추진했다. 지식과 문화의 지역 균형 발전도 국회도서관이 지방 분관 개관을 진행한 이유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부산에 첫 분관을 열었으며 오는 2031년 완공 예정인 국회 세종의사당에도 도서관 분관을 오픈할 계획이다.

책의 켜와 휘어진 모습을 모티브로 설계된 국회부산도서관은 연면적 1만3661㎡(4132평), 지상 3층 규모로 모두 42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도서관이 자리한 곳은 명지국제신도시. 당초 부산시민공원 내 설립 등이 논의됐으나 부산 동·서 지역 간 문화 격차 해소 등을 위해 현재의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평일 찾은 국회부산도서관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도서관은 개관 당시인 2022년 부산 히트상품 5위에 꼽혔으며 개관 이후 지금까지 91만 여명이 다녀갔다.

도서관 1층에 들어서면 탁 트인 로비와 편하게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눈에 띈다. 일자로 펼쳐진 서가와 시민들이 읽고 싶은 책을 나누는 공유서가가 자리한 계단식 열람실도 인상적이다.

국회부산도서관은 서울 본관과 달리 고유의 의회도서관 역할과 함께 일반 공공도서관의 역할을 함께 하고 있다. 여느 도서관처럼 시민들에게 책을 대출해 주고 지역민들과 함께 하는 책 관련 프로그램, 강연, 공연, 전시 등을 진행하는 지식센터이자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잡았다.

도서관이 보유하고 있는 장서는 8월 현재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옮겨온 책 등 194만여 권이며 최대 소장량은 약 350만 권이다. 근무 인원은 기획관리과, 정보 관리과, 정보 서비스과 등 3개과 45명(열람 등 공무직 21명 별도)이다.

1층에는 종합자료실, 어린이자료실(유아실·수유실 포함), 계단 열람석, 로비(열람공간 포함), 전시실, 카페가 자리한다. 전시실은 국회도서관의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1948년 제헌국회부터 현재까지 국회의 역사를 조망하고, 국회의 기능과 역할을 알려주는 상설전시 ‘국회, 나라의 뜻이 모이다’를 열고 있으며 매년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현재는 ‘문자 경계를 넘다’ 전시가 진행중이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자료실은 유아·아동책 약 9000권을 소장하고 있다.

2층에는 의회·주제자료실, 세미나실, 미디어창작실, 문화교실, 영상세미나실, 지식정원(강의실), 생각정원(의전 및 홍보 시설), 시각·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대면 낭독실을 갖추고 있다. 보존서고는 2층과 3층에 조성돼 있으며 재난이나 해킹에 대비한 디지털 자료 보존실도 운영 중이다.

의회자료실은 국회 소속기관의 발간자료와 참고자료, 국정감사 및 예산·결산자료, 지방의회 및 지방자치 및 법학 분야 자료, 의회법령, 외국신문 등을 제공한다. 또 ‘국제안보와 국방개혁’, ‘주민등록법과 인구정책’, ‘스포츠&법’ 등 다양한 주제로 의회정보 큐레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의회 관련 자료 수집, 특화주제도서 중점 수집도 하고 있다. 특히 부산, 울산, 경남지역 지방의정지원 서비스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국회부산도서관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도서관의 특성을 살린 ‘열린 의회 교실’은 이 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책 속으로 떠나는 의회민주주의 여행’과 ‘생활속 법령알기’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인문학 북토크, 작가와의 만남, 문화가 있는 날 등 전문가와 함께하는 인문학 특강 등으로 구성된 ‘인문학 산책’, 그림책 테라피, 인문학 고전 읽기, 가족 독서캠프 등 지역과 수요자 특성에 맞춘 독서 및 문화프로그램, 각종 지식 문화프로그램 등도 운영한다.

부산시와 함께하는 ‘어린이 디지털 교육’, BNK부산은행과 함께하는 ‘BNK 부산은행 금융교실’ 등 지자체, 지역기업과 함께 하는 협력프로그램도 눈길을 끌며 ‘알아두면 쓸 데 있는 신비한 법률’ 등 생활과 밀착된 기획도 꾸준히 진행한다.

개관 초기부터 불거졌던 접근성 문제는 지난 6월부터 인근 아파트와 학교 등을 경유하는 ‘국회부산도서관 셔틀버스’를 운영하면서 일정 정도 해소됐다. 도서관은 평일은 밤 9시까지, 토·일요일은 오후 5시까지 운영하며 부산 지역의 다른 도서관들이 휴관하는 월요일을 피해 매주 화요일 문을 닫는다.

국회부산도서관 우혜정 주무관은 “국회부산도서관은 국가문헌의 보존 공간 확보와 지식·문화의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건립된 공간”이라며 “국회도서관이라는 특징을 살린 프로그램과 함께 지역민들 위한 프로그램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광주시가 최근 국회도서관 광주 분관 유치에 적극 나서 눈길을 끈다. 지난 30일 정준호 의원 등 광주 지역 국회의원 8명이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토론회 ‘국회도서관 호남분관 왜 광주인가’는 유치를 향한 첫 발걸음이다. 이날 행사에서 발제자로 나선 박노수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국회도서관이 단순한 자료 저장소를 넘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 허브와 지식공유 플랫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각 지역거점에 분관을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술·음악·건축·사진…예술서적 여기 다있네

‘F1963 도서관’ 1만3000여권 소장… 희귀 원서·작품집·음반 등 소장

부산의 핫 플레이스 중 한 곳인 ‘F1963’은 고려제강이 설립한 복합문화공간이다. ‘F’는 Factory(공장), ‘1963’은 고려제강의 모태가 된 수영공장이 완공된 연도를 의미한다. 2008년까지 45년간 와이어로프를 생산해 온 수영공장 부지는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복합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됐다.

F1963에는 Yes24 중고서점, 카페 테라로사, 국제갤러리 부산점, 공연장 석천홀과 마에스트로 금난새가 참여한 음악공간 GMC 등이 들어서 있다.

공간을 꼼꼼히 돌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운 F1963 도서관은 예술 전문도서관이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누군가의 거대한 서재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당초 이 곳은 대형 크레인이 매달려 있던 공간으로 층고가 낮아 답답함을 느낄 수 있는 단점을 바닥을 낮추고 천창을 활용해 해소했다. 중앙홀에는 매킨토시 75 진공관 앰프 등을 갖춘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악이 흘러나온다.

도서관은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사진 관련 책 1만 3000여권을 소장하고 있다. 세계 미술의 역사와 주요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집, 국내외 유명 미술관에서 발행한 전시 도록, 근·현대 사진가들의 작품집, 국내외 명반과 공연 영상물, 악보, 유명 건축가 작품집을 비롯해 분야별 예술 관련 인문학 서적도 갖추고 있다.

특히 호안 미로의 석판화와 단 270권만 출간된 조르주 루오의 판화집을 비롯해 500여권의 희귀 서적이 눈길을 끈다.

도서관에서는 음악 아카데미, 건축 아카데미, 미술 아카데미, 사진 아카데미 등 관련 강좌를 꾸준히 개최하며 음악회도 열고 있다. 회원제(연 10만원)로 운영되고 있으며 비회원은 일일권(5000원· 3시간)을 끊어 이용할 수 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0766600775781369

[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음악·미술·과학·영어…‘특성화 도서관’ 돌며 지식 투어, ‘도서관 도시’ 경기도 의정부 (2024.10.22.)

 ‘도서관 도시’ 경기도 의정부

지역 역사·정체성 아우르는 전략

다양한 주제 도서관 건립, 벤치마킹 이어져

음악도서관, LP·악보 등 1만2000점 보유

미술도서관, ‘BTS’ RM 등 도서 기증관 운영

노숙자 급식하던 지하철 역사 활용한

가재울도서관, 쇠락한 원도심 재생 효과


기차 소리가 들리는 도서관이라니. 지하철 1호선(경원선) 가능역의 ‘의정부 가재울도서관’은 왠지 낭만적이었다. 예전에 접했던 몇몇 역사의 작은 도서관을 떠올렸던 나에게 가재울도서관은 새롭게 다가왔다. 오래 머물고 싶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이었다. 벽에 붙은 사진들을 보면 이곳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가재가 많이 사는 연못’인 가재못이 있었던 자리였기에 그 의미를 살린 ‘가재울도서관’은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던 지하철 역사의 하부 공간을 활용했다. 사람들이 떠나는 원도심이 도심재생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은 멋진 장소다.

1층은 130석의 독서공간이 마련된 도서관과 북카페, 2층은 12만권의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의정부도서관 보존 서고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을 배려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문을 열고 인근 도봉산, 소요산을 비롯, 전철을 타고 나들이를 떠나는 이들을 위해 ‘여행n 도서관’ 코너도 마련했다.

‘도서관 도시’로 알려진 의정부의 도서관 정책은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아우르는 ‘특성화’ 전략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미술, 음악, 과학, 영어 등 다양한 주제로 도서관이 만들어졌고 현재 의정부디자인도서관 착공을 앞두고 있다.

‘도서관 도시’로 명성이 자자해지면서 벤치마킹하는 지자체의 방문이 이어져 아예 매주 목요일을 ‘도서관 투어 날’로 정해두었다. 지난 2023년에만 243개 기관에서 2896명이 방문했고, 올해 8월까지 114개 기관 1442명이 도서관을 찾았다. 의정부 경전철이 도서관들을 경유하면서 접근성도 좋아졌다.

의회와 한 건물을 쓰고 있는 의정부정보도서관에서 도서관 투어를 시작했다. 2003년 시 최초로 문을 연 공공도서관으로 다양한 장서와 서비스를 갖추고 지역의 다문화 거점 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가장 기대가 많았던 의정부음악도서관은 낮과 밤의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장안발곡근린공원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자리한 도서관의 노란 불빛은 밤늦은 시간 귀가하는 시민들을 위로하는 듯했다. 넓게 난 창 너머로 푸른 나무와 녹지가 그대로 쏟아져 들어오는 낮의 도서관은 힐링의 장소였다.

지상 3층 규모로 책과 음악과 공간이 어우러진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지난 2021년 문을 열었다. 미군 부대가 있었던 장소의 역사성을 살린 ‘블랙뮤직’과 올해 23회째를 맞은 의정부음악극축제 등 지역의 음악자산을 모티브로 한 도서관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힙합, 재즈 등을 연주하고 있는 뮤지션의 모습을 그래피티로 그려넣은 계단을 비롯해 구석 구석 ‘음악’을 상징하는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7500점에 이르는 음악CD를 비롯해 LP(1700점), DVD(1200점)가 갖춰진 3층 뮤직스테이지는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탐나는 공간이다. 곳곳에서 편하게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뮤직홀과 오디오룸도 자리하고 있다. 매일 오전·오후 두 차례씩 스테인웨이 피아노를 통해 자동연주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발레나, 음악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또 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 체험을 해 볼 수 있으며 자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1층과 2층에는 음악도서 1500여권을 비롯해 일반 도서 등 모두 1만2000여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악기별로 분류된 악보 3200여점도 갖추고 있다. 책 뿐 아니라 음반, 악보 등 모든 자료가 대출 가능하며 매주 수요일에는 도서관 투어프로그램도 진행한다.

2019년 문을 연 의정부미술도서관은 가장 핫한 공간으로 주말에는 3000여명이 방문하는 인기 스폿이다. 인터넷과 언론 등을 통해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도서관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책만 읽는 것을 넘어 예술적 감성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을 지향하는 도서관은 3층 높이의 공간 내부가 시각적으로 오픈돼 있고, 넓은 창문 너머로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인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을 모은 ‘호크니 빅북’을 비롯해 1만3000여권의 국내외 예술관련 도서와 전시도록, 일반도서, 아동도서 등 5만 3000여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미술애호가로 알려진 BTS 리더 RM과 LA미술관 등의 기증도서도 만날 수 있다.

이 도서관 역시 지역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다. 의정부에서 활동한 백영수 화백의 존재다. 1940~1950년대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로 활동한 그는 신사실파의 마지막 생존 작가로 작품활동을 이어오다 지난 2018년 별세했다. 1973년부터 사용하던 화실은 백영수미술관으로 활용됐고, 현재는 백영수미술관을 시립미술관으로 조성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중이다. 미술도서관 앞에는 백 화백의 모자상이 세워져 있고, ‘신사실파’ 관련 자료도 꾸준히 수집하고 있다. 또 매년 2명의 지역작가들을 대상으로 오픈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인물을 키우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영어도서관은 기존 어린이도서관을 리모델링해 지난 2022년 재개관했다. 영어 원서 1만5000여권을 포함해 약 5만 6000종의 자료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어 독서의 시작을 돕기 위해 영어그림책을 수준에 맞게 구성해 제공하는 ‘영어 책가방’ 대출 서비스 ‘부꾸부꾸’는 특히 인기가 높다.

천문우주특화 도서관으로 개관한 의정부과학도서관은 범위를 확장해 기초과학 프로그램 개발 및 과학 분야 컬렉션을 갖추고 있다. 전체 21만 3000권의 자료 중 과학도서는 3만 1000권이다. 특히 천체투영실, 4D영상체험실, 지구와 환경에너지 등을 다루는 기초과학 전시실로 구성된 3층 어린이과학체험실은 인기 만점이다. 개관 당시 함께 문을 열었던 의정부천문대는 지난 2019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운영중이다.

그밖에 고산 신도시에 들어서는 의정부 디자인도서관은 최근 설계 공모를 끝내고 착공을 기다리고 있다.

94명의 직원이 연간 46억원의 예산을 운용하는의정부 도서관을 둘러보며 인상적이었던 건 큐레이션이었다. 여타의 도서관과 달리 사서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전문도서관의 큐레이션은 방문객들을 책의 세계로 인도하는 근사한 길라잡이었다. 또 도서관에서 대출한 도서를 반납하면 독서포인트가 적립돼 지역의 협약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할 때 현금처럼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는 ‘독서포인트 멤버십’도 눈길을 끈다.

의정부시청 도서관 정책팀 이소영 팀장은 “눈길을 끄는 도서관이 많아 지역 주민들 뿐 아니라 외지에서도 도서관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며 “각각의 도서관이 지역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점이 의미있다”고 말했다.

/글·사진=의정부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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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지식·예술·자연 한곳에 … 지역 살리는 ‘문화의 힘’, 강원 ‘인제 기적의도서관’ (2024.10.1.)

 강원 ‘인제 기적의도서관’

햇살 부서지는 천장·3개층 탁 트인 개방감
2만5000여권 장서와 계단식 열람실 ‘신세계’
아트·뮤직 스튜디오, 동아리실 등 갖춰
인구 3만 지자체, 개관 1년만에 10만명 방문
관광지 경유 목적 아닌 순수 방문자 급증
주말 정주율 급등…152개 지역서 벤치마킹

‘학교에선 마음의 그릇을 빚고 도서관에선 그 그릇을 채운다’(2023년 2월 지수민)

빼곡이 책이 꽂힌 서가 옆 기둥에 적힌 글을 살펴본다. 수민 양은 인제군이 도서관 개관을 앞두고 2022년 꾸린 청소년준비단 중 한명이었다. 아이들은 우리 동네에 어떤 도서관이 생길까 상상하며 아이디어를 냈다. ‘설악’, ‘꿈드림’ 등 6개의 스튜디오 이름과 테마 색깔은 모두 아이들의 의견을 담았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 됐을 수민양과 친구들은 이 도서관에서 어떤 꿈을 꾸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난해 6월, 인구 3만명의 시골 마을에 문을 연 인제 기적의도서관이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개관 1년만에 10만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가며 시골마을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적의도서관은 지난 2013년 순천에 첫 선을 보였다. 인제는 전국에서는 17번째, 강원도에서는 처음 문을 연 기적의도서관이다. 대지면적 1만 1121㎡, 연면적 2292㎡ 규모로, 18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2017년 시작돼 2023년 마무리됐다.

‘목마와 숙녀’로 유명한 박인환문학관 옆에 둥지를 튼 도서관의 외관은 조금은 소박한 모습이었다. 이웃한 문학관과 위화감이 없도록 같은 콘크리트를 사용하고 무엇보다 도서관 뒤로 보이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훼손하지 않도록 낮게 설계했다. 건물은 2024년 한국문화공간상 도서관 부문을 수상했다.

소박한 모자상이 반기는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중앙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뚫려 있어 개방감이 느껴진다. 건물과 자연환경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은 색다르다. 유리 천장에서 도서관 내부로 햇살이 쏟아지는데, 아침, 점심, 저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한다. 친환경 요소인 태양광 패널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공간을 가로지르는 그림같은 격자무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정된, 닫힌 공간이 아니라 누구나 환대하는 열린 공간이라는 느낌이다.

탁 트인 천장 아래 원형극장에서는 음악회,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어느 도서관에서도 볼 수 없는 계단식 열람석은 열려 있지만, 고개를 숙이면 자기만의 공간이 된다. 도서관은 미술 작업공간 아트스튜디오, 뮤직 스튜디오, 동아리실 ‘설악’과 ‘백담’, 프로그램실 ‘꿈드림’ 등도 갖추고 있다. 복도에는 ‘갤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도서관 밖에 풍경과 도서관 내부에 설치된 ‘인제의 자연’ 등 영상물을 감상하며 걷는 즐거움이 있다. 2만5000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도서관은 불필요한 공간을 최소화하며 효율적으로 활용한다.

XR-뮤지엄 메타버스 공간과 예술 관련 서적이 모여 있는 예술갤러리는 근사하다. 멋진 가구가 놓인 응접실에 앉아 빈센트 반고흐의 작품을 영상으로 감상하고, 서가에서 관련 서적들을 뽑아 바로 읽어볼 수 있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시골 마을 도서관으로는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처음 도서관을 구상할 때만 해도 과연 작은 마을에 이렇게 큰 도서관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난감박물관 등을 넣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온전히 도서관의 기능에 올인하면서 변화를 주기로 했다. 도서관인데 몰입형 미디어 공간 등이 왜 필요하냐, 책에 더 투자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역시 논의 과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특히 도서관은 마을의 거실 역할을 해야하고, 지방시대에는 주민들이 원하는 공간이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공간을 구성했다.

도서관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자산, 아름다운 자연까지 함께 담았다. 공공도서관 최초로 몰입형 미디어아트 공간을 만들어 인제 설악이 담고 있는 역사를 알리고 원대리 자작나무숲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행복을 선사한다. 또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 알리는 것도 도서관의 역할이다.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 ‘사랑채’는 인제 전통가옥의 문창살을 그대로 재현했고 도서관 옆에는 전통가옥 한채를 그대로 복원해 두었다. 어린이열람실 쪽의 ‘어깨동무담’도 눈길을 끈다. 모든 어린이가 어깨동무를 하며 함께 자라고 있음을 상징하는 담으로 인제군의 어린이 378명과 전국의 기적의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 129명이 참여했다.

지역과 밀착된 프로그램들이 눈길을 끈다. 12사단 군장병들이 참여하는 ‘접경지역 장병들과 함께 하는 밀리터리 인문학’이 대표적이다. ‘다스림-다살림’을 주제로 다양한 강연과 공연 등이 어우러진 프로그램이다. 인제군이 지자체 최초로 지역 교육 격차 해소와 문화사업 추진을 위해 EBS 미디어와 업무협약을 체결함에 따라 ‘미디어×EBS’ 공간을 마련, 매주 수요일 18만개의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EBS상영관’도 운영한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은 지방시대, 문화 인프라가 지역의 이미지를 어떻게 업그레이드 시키는지 제대로 보여준다. 더불어 문화와 예술에 투자하는 게 어떤 효과가 있는 지 증명해 보인다. 특히 인구 감소로 지역 소멸위기에 직면한 지자체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제는 다른 강원도 지역에 비해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았다. 속초나 강릉, 춘천으로 가기 위해 거쳐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10만명이 다녀갔다는 수치에서 알 수 있듯, 지역 주민 뿐 아니라 ‘도서관 자체’를 보려는 외지인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백담사나 원대리 자작나무숲 등 인제의 유명 관광지를 찾았다 도서관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관광객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이 들어오면서 인구 구성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접경 지역 군부대의 경우 군인들이 홀로 부임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도서관 개관 후에는 가족 모두가 함께 이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주말이면 속초나 춘천으로 빠져 나가던 주민들이 도서관에 머물며 주말 정주율도 높아졌다.

그밖에 서울 등 대도시 거주민들이 세컨하우스 개념으로 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도서관과 자연이 어우러진, 생태 자연학교 느낌이 강해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잘 만든 공공도서관이 지역을 살리는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시 등 전국 152개 지역에서 2861명이 다녀갔다. 무엇보다 주민들이 “우리 지역에 이렇게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게 큰 성과였다.

도서관 안내를 맡은 심민석 인제 기적의도서관 관장은 “마을 규모나 인구수에 집착해 무조건 도서관을 작게 짓게 되면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일정 규모의 도서관을 짓는 게 중요하다”며 “대신 빈 공간이 없이 제대로 활용해 도서관이 마을의 거실이 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기적의도서관을 방문했다면 또 다른 책공간을 찾아가도 좋다. 점심식사를 하러 간 도서관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방 나무야’는 커피 한잔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소박한 책방에서 주인장의 큐레이션이 돋보이는 책들을 만나고 ‘블라인드 북’ 코너에서는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20분 거리의 만해마을 북카페 ‘깃듸일 북카페’, 소양호가 바라다 보이는 인제 스마트 복합 쉼터의 무인책방 역시 들러볼 만하다.

인제 기적의도서관의 슬로건은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이다. 도서관에 첫 발을 딛는 순간 ‘상상의 문’이 열린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27787000774337369

[모두의 도서관] 느린 학습자를 위한 ‘라이브러리 피치’ (2024.9.24.)

문해력·인지력 돕기 위한 ‘쉬운 책’ 가득

가전제품 설명서·잡지·소설 등 300여권 비치

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쉬운 레시피’ 포스터였다. 짜파게티 떡볶이, 멸치볶음, 뉴욕 핫도그, 대패삼겹살 짬뽕라면 등의 요리법을 쉽게 풀어쓴 레시피 포스터는 쉬운 언어 도서를 펴내는 피치마켓이 셰프들과 함께 제작한 것이다. 자립을 위해 꼭 필요한 요리를 누구나 할 수 있도록 무료로 배포한다는 안내문도 함께 붙어 있었다.

서울 대학로에 자리한 ‘라이브러리 피치’(이하 피치)는 도서문화재단 씨앗과 피치마켓이 함께 운영하는 느린 학습자를 위한 도서관, 쉬운 글이 있는 도서관이다. 물론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다.

흔히 학습과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경계선 지능인’ 또는 ‘느린 학습자’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문해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많아 문제가 되고 있는데 느린학습자는 문해력이 부족한 누구나 해당한다. 이들은 글을 알기는 하지만 너무 어려운 글은 이해하지 못한다. 피치가 의미있는 건 문해력이 부족하면 정보에서 소외되기 쉽고 소통의 어려움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문제점을 해결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쉬운 글은 단순히 단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느린학습자가 이해하기 쉽게 스토리부터 디자인까지 재구성한 글을 말한다. 도서관에는 쉬운 글로 제작된 300여권이 비치돼 있다. 전자제품 설명서부터 그림 사전, 소설, 잡지 등 장르도 다양하다.

피치는 느린학습자가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서관이다. 이곳은 느린학습자와 관련된 교사. 활동가, 연구자,창작자가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공부하며 관계를 만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1층에는 다양한 장르의 쉬운 글 도서가 비치돼 있으며 흥미로운 주제로 특별전시회가 열리기도 한다. 2층은 쉬운 글 콘텐츠 창작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지하에서는 자유롭게 독서를 하며 생각을 나눌 수 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27132400773998369

[우리동네 랜드마크-모두의 도서관]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트윈세대’만의 문화 놀이터, 서울 선유도서관 ‘사이로’ (2024.9.24.)

 서울 선유도서관 ‘사이로’

도서문화재단 씨앗 ‘SPACE T’프로젝트
시간의 틈, 공간 사이 넘나들며 상상하는 장소
독립된 인격 주체…또래만의 소통 공간 마련
메이킹존·사진존·스토리존·베이킹존 등 다채
공간마다 감성 가득…경험 쌓으며 꿈 키워

영등포 선유도서관에는 어른 출입 금지 지역이 있다. 유아나 저학년 어린이도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트윈세대(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 3 또는 이에 해당하는 연령대)만이 당당히 출입할 수 있다. 전용 공간 ‘사이로’다.

이 곳에서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쿠키를 만든다. 나만의 책을 직접 제작하고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공간 어딘가에 앉아 홀로 시간을 보내거나 천정에 설치된 철봉에 매달려 힘자랑을 해도 된다.

사이로는 영등포구청과 ‘도서문화재단 씨앗’(이하 씨앗)이 협업해 만들었다. 씨앗이 진행하는 ‘스페이스 티(Space T)’는 트윈 세대를 위한 사업으로 아이들이 자유롭게 탐색하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넓혀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공공도서관에 만드는 프로젝트다. 지난 2020년 전주 꽃심도서관 안에 국내 첫 스페이스 티 ‘우주로 1216’이 문을 열었고 지난 2월 개관한 사이로는 여섯 번째 공간이다.

사이로 개관을 위해 씨앗은 프로젝트 기획, 공간 설계 및 시공, 콘텐츠 기획 등에 10억원의 기금을 투입했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영등포구는 스페이스티 공간을 제공하고 콘텐츠 준비, 전담 운영 인력 배치 등을 맡았다.

영등포구는 새로운 공간 조성을 앞두고 주민설명회를 열었다. 기존 도서관의 열람실을 없애야 하는 상황이라 주민들의 적극적인 이해가 필수였다. 트윈세대는 도서관 이용률이 급격히 감소하는 연령대다. 부모를 따라 도서관을 다니던 아이들 대부분이 보통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학교와 학원에 집중하면서 좀처럼 도서관을 찾지 않는다. 편의점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 한 곳이라는 통계도 있었다. 도서관 주변에 도보로 접근 가능한 학교가 5개 있어 학부모들의 호응이 있었다. 운영을 맡은 사서들은 공간 컨셉을 잡고 콘텐츠 기획 학교 등에 다니며 개관을 준비했다.

공간 이름 사이로는 ‘시간의 틈, 공간의 사이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탐색하고 상상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아이들은 공간 조성 당시부터 주인공이었다. 구청은 스페이스 티 공모에 선정된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영등포에 거주하는 트윈세대 3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 취향과 취미 등을 살피고 네이밍과 설계, 공간 구성에 적극 반영했다. 당시 설문 결과 초등학생들이 가장 원한 공간은 베이킹이었고 중학생들은 음악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이로는 선유도서관 2, 3층에 복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메이킹 존은 준비된 재료를 이용해 상상하는 것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채로운 작업물이 생산된다. 특히 이곳에서는 다양한 메이킹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자연스레 책을 참고할 수 있도록 도서 배치와 큐레이션 등에 신경을 써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안쪽에는 영화, 애니메이션 등 영상 콘텐츠를 즐기고 편하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무비존, 보드게임과 비디오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게임존, 다양한 카메라를 만져보고 직접 사진과 영상 촬영을 배워보는 사진존 등이 있다.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정원을 조성해 푸릇푸릇한 자연 느낌이 나는 힐링 공간으로 조성했다. ‘더현대’ 조경을 맡았던 팀이 공간을 구성해 도시의 세련미와 자연친화적 요소를 함께 담아냈다. 이 역시 트윈세대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3층은 보다 색다른 공간으로 채워졌다. 나만의 책을 직접 집필해 보는 스토리존에서는 책 제본과 함께 스스로 작가 명함을 만들기도 한다. 또 레코드와 턴테이블로 음악을 감상하고 연주나 작곡까지 할 수 있도록 전자키보드가 있는 음악존, 스콘이나 빵을 직접 만들 수 있는 베이킹존도 인기가 높다.

사이로에서 활동하는 청소년들은 ‘작가님’으로 불린다. 드로잉, 공예, 글쓰기, 사진,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고 공간을 같이 이용하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구경하며 영감을 얻기도 한다. 또 작업을 시작하려는 사이로 작가들을 위해 실제 작가를 초청, ‘작가 대 작가’로 평소 긍금했던 것들을 질문하고, 같은 주제로 ‘함께’ 작업하는 시간도 갖는다.

사이로가 보유하고 있는 장서는 도서 1904권, 독립출판물 190권, 비도서 1205점 등이다. 매번 특정 책을 만나는 주제서가를 꾸리는 한편 ‘그리다’, ‘만들다’ 등 참가자들의 활동과 연계된 ‘동사 서가’를 운영해 창작 활동을 돕는다.

개성 넘치는 사이로에서 아이들은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며 자신만의 꿈을 키워나간다. 운영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의견을 적극 반영해 기획한다. 얼마 전에는 도서관에 1박2일 머무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또 아이들이 어떤 공간을 이용하는 지 궁금해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탐방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하민 선유도서관 사이로 사서는 “낯선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워갈 수 있도록 하나 하나 알려주는 대신 스스로 찾아가고 고민해 보도록 한다”며 “무엇보다 자연스레 독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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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숲속·공원 도서관서 유유자적…마냥 머물고 싶어라, 도서관의 도시 ‘전주’ (2024.9.10.)

 도서관의 도시 ‘전주’

시 조직 도서관본부, 관련 업무 총괄
시집·여행…테마 도서관 등 148곳
오래된 건물 리모델링…자연 친화적
‘내집 거실’처럼 편안한 분위기 매력
전용버스 타고 13개 도서관 투어 인기
도서관서 업무 보는 ‘워케이션’ 서비스

도서관에 진심인 도시. 한옥마을로 유명한 전주에 이제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야 할 것 같다. 숲속 시집 도서관에서, 공원 안 한옥 도서관에서, 기차역 인근 여행자도서관에서 머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서관은 전주를 찾는 관광객객들에게만 흥미로운 공간이 아니다. 시민들에게도 더없이 유익한 장소다. 마침 취재간 날은 1989년 개관한 완산도서관이 리모델링을 마치고 새롭게 문을 연 날이었다. 원도심 언덕길에 자리한 전형적인 옛 느낌의 도서관으로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풍경이 펼쳐졌다. 지역 주민들은 이날 근사한 선물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었다.

전주시는 지난 2021년 조직 개편을 통해 산업, 정책, 운영, 시설 4개과로 구성된 ‘도서관본부’를 만들었다. 130억원의 예산을 바탕으로 도서관, 책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과 프로그램 개발 등 관련 사업을 체계적으로 전개하고 무엇보다 ‘긴 호흡’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도서관과 책의 도시’를 만드는 교두보 역할을 한다. 지자체장이 바뀐 후에도 사업이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전주시의 도서관은 모두 148곳으로 이중 공공도서관이 12곳, 특성화도서관이 12곳, 작은 도서관이 124곳(공립 26곳·사립 98곳)이다. 앞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도서관 설계자 이은영 건축가가 참여한 전북 대표도서관이 조성될 예정이며 아중호수도서관도 설계를 마치고 착공을 준비중이다.

전주의 공공도서관은 공간 혁신이 눈에 띈다. ‘개방형 창의도서관’을 목표로 삼은 시는 지난 2019년부터 낙후된 기존 도서관의 리모델링 작업을 진행,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12개의 공립도서관 중 8월 현재 8개 도서관이 완료됐으며 2025년이면 전체 리모델링이 끝난다.

재단장한 도서관은 마치 시민들의 거실처럼 이용된다. 2022년 재개관한 금암도서관을 찾았을 때 서가 이곳 저곳에 배치된 의자에 편하게 책을 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거주 인구가 적은 완산도서관은 서가를 줄이는 대신 ‘책 쓰는 도서관’을 표방하며 기성 작가들과 시민작가들에게 공간을 적극적으로 내주고 있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 ‘씨앗’이 전주시 대표도서관 ‘꽃심’에 조성한 12~16세 전용공간 ‘우주로 1216’은 개관 후 1만6000여명이 방문,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책과 도서관의 도시’ 전주가 자랑하는 것은 특성화 도서관이다. 지난 2020년 문을 열자마자 유명세를 탄 전주시청 책기둥 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주제로 꾸려진 도서관은 즐거운 여행을 이끈다.

취재 중 인상적이었던 곳 중 하나는 ‘학산 숲속 시집도서관’이었다. 이름처럼 숲속에 안긴 이 작은 도서관은 주변 환경을 훼손시키지 않고 지형을 그대로 살려 자연친화적으로 조성했다. 넓은 통창으로 보이는 푸른 나무가 인상적인 곳으로 국내외 시인들의 시집 2000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작은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활용한 공간이 눈길을 끄는데, 다락에서 조용히 시집을 읽고 있는 이의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덕진공원 안에 자리한 ‘연화정 도서관’은 또 어떤가. 여름이면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넓은 연못을 배경으로 자리한 도서관은 한옥으로 지어졌다. 일부러 찾는 이들도 있지만, 시민들의 휴식장소인 공원을 산책하다 자연스레 들러 책을 집어드는 이들도 많았다. 붉은색 컨테이너 박스로 만들어진 ‘첫마중길 여행자 도서관’은 여행과 예술 관련 책들이 주를 이룬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대형 화집이 방문객을 맞는 도서관에 들어서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게 만드는 책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예술가들의 거리로 불리는 서학마을에 문을 연 서학예술마을 도서관은 원래 1960년대 의원과 주택으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후 한 도예가가 카페와 갤러리로 운영했고,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난 2022년 도서관으로 변신했다. 그늘을 드리우는 커다란 팽나무와 담쟁이 넝쿨, 낡은 도서관 바닥과 벽 등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은 주택을 개조한 곳답게 집안의 거실처럼 편안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바로 옆 신축 건물에서는 다양한 강연 등을 진행한다. 그밖에 동문헌책 도서관, 다가여행자도서관, 한옥마을 도서관, 건지산 숲속 작은도서관도 눈길을 끈다.

◇전주 도서관을 여행하는 법

전주는 도서관과 관련해 ‘최초’가 많다. 업무를 총괄하는 도서관 본부가 처음 생겼고, 도서관 투어 버스도 최초로 운영중이다. 12~16 전용 공간도 전국 최초로 문을 열었다.

다양한 인프라가 조성돼 있기에 가능한 게 ‘전주도서관 여행’다. 전용버스를 타고 해설사와 함께 13개 도서관을 돌아보는 여행은 인기가 많다. 매주 토요일 3차례(9~11월 금요일 야간코스 진행)씩 운행되는 코스는 하루 코스(6000원)와 반일 코스(5000원)로 나뉜다. 책문화 코스, 그림책 코스, 예술문화 코스, 비밀 코스, 정원 코스 등 다양한 주제로 구성돼 있으며 반려식물 프로그램 등 코스에 어울리는 이벤트도 진행한다. 올해 상반기까지 428명이 이용했다.

7월부터는 ‘나는 전주도서관으로 출근한다’를 타이틀로 ‘전주 워케이션 도서관 여행’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전국 최초다. 한옥마을과 가까운 숙소에서 머물며 취향에 맞는 도서관에서 개별 업무를 마치고 전주 도서관 여행, 북크닉(book+picnic)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의 독서 열기를 북돋우는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전주 책사랑 포인트 ‘책쿵 20’이 대표적이다. 지역서점에서 현금처럼 이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도서관에서 빌린 도서를 반납하면 1권 당 50포인트를 지급하고, 49개 참여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때 20% 할인을 받는 제도다. 최대 5만원까지 할인 받을 수 있으며 현재 2700여명이 이용 중이다.

지난 2021년 시작된 ‘전주시 고전 100권 함께 읽기’는 고전 목록 150권을 선정하고 5년 동안 100권을 읽는 독서운동이다. 현재 23개반 383명이 활동중이며 학교로 찾아가는 고전독서모임도 있다. 또 독서동아리 길잡이 파견, 역량강화 교육 및 문학기행, 연합문집 제작도 지원한다. 그밖에 공공도서관이 지역 서점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책 관련 축제도 함께 꾸리는 등 지역 책방과도 밀접한 관계을 이어가고 있다.

책 관련 축제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전주국제그림책 도서전에는 3만 5000여명이 다녀갔고 ‘전주 그림책 키움터’에서는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그림책 작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매년 10월 전주종합경기장에서 3일간 열리는전주독서대전은 지난 2017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전주에서 열렸던 대한민국독서대전에서 출발한 축제다. 지역서점, 출판사, 작은 도서관 등 100여개 단체가 참여하는 메머드급 행사로 ‘전주 올해의 책’과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한다. 올해는 독립출판 북페어 ‘전주책쾌’가 첫선을 보였고 전국에서 89팀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이날의 ‘도서관 취재 여행’에서 만난 공간은 모두 6곳. 방문하는 곳마다 좀 더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다음에 전주를 찾을 땐 하룻밤 묵으며 느리게 도서관을 둘러보고 싶어졌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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