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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3일 수요일

달팽이와 김환영

환영이 형

 

형의 시를 읽었어요. 보고 싶습니다.

 

시 같지도 않은 시를 시라고 발표하는 '거지보다 많은 시인의 세상'에서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숨을 호흡하며 살고 있지요.

 

형이 보고 싶어요.

얼마 전 영근이 형 기일에 언뜻 형을 생각했더랬어요.

 

그러다 오늘 <창비어린이>(2009년 여름호 통권 25호)를 읽다가 형의 시를 만났지요.

반갑고 미안했어요.

 

 

달팽이 집

 

 

                                        김환영(화가)

 

달팽이는 날 때부터

집 한 채씩 지고 왔으니,

 

월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전세 살 일 없어 좋겠습니다!

 

몸집이 커지면

집 평수도 절로 커지니,

 

아사 갈 일 없어 좋겠습니다!

사고팔 일 없어 좋겠습니다!

 

뼛속까지 얼어드는

엄동설한에,

 

쫓겨날 일 없어 좋겠습니다다!

불 지를 놈 없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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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한 번!

만날 날이 있겠지요?

정말?

그런 날이 올런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www.changbi.com/author/content.asp?pAID=0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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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시간으로 오라



가평으로 들어온 지 꼭 10년이다. 옛날식으로 말한다면 강산이 한번 변했다. 요즘 식으로 말한다면 강산이 물구나무섰다고 해야 하나.

연고도 계획도 없이 빈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무작정이었다. 짐이라야 빠렛트와 물감과 종이, 그리고 이불 한 채에 밥그릇 정도. 130만원 빌려 집값을 치뤘다.

처음 빈집에 들어왔을 때, 마루 벽 괘종시계가 멈춰 있었다. 태엽 감으려고 시계를 내리는데 머리 위로 지푸라기와 흙이 쏟아졌다. 시계 윗면에 새가 둥지를 튼 것이다. 아. 둥지 속 그림처럼 들어있던 앙징맞은 박새알 여섯. 흙벽마다 벌들이 구멍을 내어 살고 있었고 끈적거리는 거미줄이 얼굴을 휘감았다. 무릎까지 풀이 솟은 마당에는 율메기가 배를 밀며 사라지곤 했다. 시계가 멈춘 것이 아니라, 인간이 멈춘 공간이었다.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 무엇 하나도 올바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새롭고 놀라웠다. 그래서 행복했다.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는 일도 행복이었다. 무엇보다 자연과 더불어 사계절을 살 수 있는 건 더할 나위없는 축복이었다.

아침이면 띠살문 한켠 애들 손바닥만한 유리로 햇살이 들이쳤다. 새소리에 시끄러워 잠이 깼다. 눈 감고 냄새나 느낌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똥을 누면 똥물이 튀어 올랐다. 봄이 오면 들로 산으로 노랗고 붉은 꽃들이 폭죽처럼 터졌다. 죽어가던 몸의 감각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장마철에는 집도 나도 나무들처럼 후줄근하게 젖었다. 비가 오면 비릿한 비 냄새에 낡은 기억들이 되살아나곤 했다. 방바닥도, 그림 그리는 종이와 물감도 눅눅해져 그림 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날은 마루에 앉아 종일 비 구경하며 술을 마셨다.

태어나 뭘 심어본 적 없다. 씨앗 넣으면 싹이 날 거라는 것조차 믿지 않았다. 도시에 길들여진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때맞춰 씨앗을 넣기만 하면 어김없이 싹은 올라왔다. 눈곱만한 씨앗에 대체 무엇이 담겨있기에 배추도 되고 상추도 되고 호박에 가지가 매달리는지. 옥수수가 되고 해바라기가 되고 감자가 되고 서리태가 되는지. 그것들 올라오는 것 구경하느라 눈만 뜨면 밭으로 뛰어나갔다. 오줌 마려워 자다가 일어나도 미친놈처럼 손전등 들고 밭으로 들어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봄부터 가을까지 밭에서 살았다. 밭에서 살았다기 보다 거기는 내 일터였고 놀이터였고 밥상이었다. 가을이 되면 팔 걷어붙이고 텃밭에서 엉덩이만하고 방뎅이만해진 무 배추 뽑아 김장을 했다. 배추 100포기 무 200개 총각무 삼태기로 서넛, 대파 쪽파 갓 따위로 김치를 담았다. 그 일을 일주일씩 했다. 김장은 한해 식량이었다. 쌀만 있으면 살았다.

역시 겨울은 문제였다. 홑벽에 바람벽이라 10월부터 이듬해 4월말까지 불을 때야 견딜 수 있었다. 마을에서 몇 해 묵은 표고목을 얻어 때기도 하고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거나 삭정이를 긁어모아 아궁이 불을 지폈다. 손님이 올 때만 보일러 돌렸다. 겨우내 벽 틈으로 쥐가 들락거리곤 했다. 곡식과 씨앗들을 까먹었고 국수를 뽑아먹었다. 방 구석구석 오줌과 똥을 싸놓고 내 몸을 건너다니곤 했다. 수도가 얼고 보일러가 얼어 터졌다. 눈 녹여 밥 끓여먹고 눈 녹여 세수했다. 입춘어름이면 방에 딸린 부엌에서 분수소리가 났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수도가 터지면서 방안이 물바다 되곤 했다.

공간이 달라지니 살림살이도 바뀌었다. 읍내 나가면 늘 철물점에 들렸다. 구두나 흰 운동화는 무용지물이었다. 삽이나 호미나 괭이, 망치나 톱, 목장갑이나 털신, 장화 따위가 필요할 뿐이었다.

날씨처럼 중요한 건 없었다. 하늘을 쳐다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 땅 녹으면 마을 할머니들이 쭈그려 앉아 무언가를 했다. 호미로 땅을 파고 있으면 다가가 물었고, 나물 찾느라 땅에 고개를 처박고 다녔다. 신기한 풀이 있으면 다가가 보다가 큼큼 냄새를 맡고 입 속에 넣어 씹어 보았다. 식물도감이니 약초도감이니 나무도감이 필요했다. 그걸 주머니에 넣고 비닐봉지에 호미 넣어 들로 산으로 돌아다녔다. 인간하고는 권역이 다른, 하늘을 날다가 나무 꼭대기에서 맑고 높은 소리를 내며 우는 새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다. 별자리와 계절마다 달라지는 별들의 운행도 알고 싶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그렇게 가고 그렇게 또 왔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10년이 지났고 어느덧 나는 오십 줄이 되었다. 김대중에서 노무현으로, 그리고 이명박이라는 임금들로 바깥세상은 저들 맘대로 인수인계되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국가기념일이나 캐롤쏭은 도시의 것이었다. 쏟아져 나오는 새상품도 대형 광고판도 도시의 것이었다. 그것은 온통 국가와 자본의 것이었다. 저들 씨스템대로 돌아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였다. 테레비도 라디오도 신문이나 잡지도 보지 않았다. 9.11때도 사흘 뒤에야 이웃마을 놀러가서 우연히 보았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나는 영화인 줄로만 알았다. 테레비를 보고 있자니, 미디어나 광고 따위에 쏟는 에너지가 하루 세끼에서 한두 끼 분량은 족히 되지 싶었다. 이른바 뉴스라는 게 몇 십 년 전부터 한말 또 하고 한말 또 할 뿐이었다. 들을 것도, 배울 것도 없었다.

한날은 선배가 놀러 왔다. 미안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 괜찮니?”

그때 거울을 처음 봤던 것 같다. 행색이 거지처럼 남루해 보였을지 모른다. 정말 나는 거지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새롭게 움트고 있는 무엇을 선배는 읽어내지 못했다.

밭일과 긴 겨울로 내 옷은 변해갔다. 도시에서 입던 멀쩡한 옷들은 불에 그을리거나 기름때가 묻거나 불똥이 튀어 담배빵이 났다. 대개의 옷들에는 흙물이 들었다. 옷들은 빠르게 작업복으로 바뀌어 갔다. 일 보려고 서울 나가면 종착역인 청량리 역 앞에서 나 어린 전경들에게 검문 당하곤 했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 검붉어져있었고 입성도 허름한데다가 대도시의 날씨와 맞지 않았다. 등산화 비슷한 신발은 흙을 철떡철떡 끌고 다니기 일쑤였다. 바라던 대로, 나는 촌놈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가끔 볼 일 보러 열차 타고 청량리에 떨어지면, 내가 이 도시 한복판에서 어떻게 40년을 살았나 싶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도시는 내 눈과 귀와 입과 정신을 교란하고 압박했다. 희고 깨끗하게 빼입은 촌하고는 종이 다른 사람들. 새로 나온 공산품들과 갈수록 커지고 화려해지는 거대한 광고판들, 스물네 시간 잠이 없는 네온, 거리를 들었다 놓는 비트가 센 빠른 음악과 눌러대는 크락션 소리, 도시 곳곳에 넘쳐나는 젊은이들과 이 도시의 활기만큼이나 아프리카를 먹여 살리고도 남을 쌓이는 음식쓰레기..... 이 모든 걸 맛에 빗대자면, 달고, 맵고, 짜다. 어중띠거나 심심한 맛들은 죄다 사라지고, 통각만을 자극하는 욕망체계다.

쑈윈도에 전시된 예쁘고 실용적인 물건들을 보면 의당 나도 현혹된다. 세련되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그뿐이다. 언제나 하는 생각이지만, 안 사기 잘했다. 그런 것 안 먹고 안 입고 안 사고도 부족한 것 못 느끼고 잘 살았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은 따지고 보면 그리 많지 않다.

옷장을 열어보면 저 옷 내가 죽을 때까지 다 떨어뜨릴 수 있을지 모르겠고, 신발장을 보면 저 신발들 다 떨어질 때까지 살지나 모르겠다. 책꽂이에는 뭔 책이 그리 많은지 저 책들 살아있는 동안 제대로 씹어 먹어 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집도 나 사는 동안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때 되면 산과 들에 절로 올라오는 나물들이 나 하나 못 먹이겠나. 텃밭에 푸성귀와 잡곡들 심으면 마을에서 쌀 한가마니 사고 가끔 읍내 장에 나가 비린 것들 사먹으면 된다. 물론 양육비도 벌어야 하고 각종 세금과 의료보험비에 기름값도 필요하다. 다치거나 아프면 병원에도 가야한다.(이 나라 의료체계가 무서워 침뜸 배우다 시방 이태동안 휴학 중이다.) 살다보면 그것 말고도 돈 들어갈 구멍은 훨씬 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쯤에서 나는 물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무엇인가. 고작 10년간의 시골체험 간증인가.

두 말하면 숨 가쁜 얘기지만,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 두 항은 이제 완전한 대립 항이 되어버렸다. 임금이 전직 건설업주로 바뀌고 나서는 더욱 그렇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나 나는 일평생 내 존재와 세상을 묻고 그것을 드러내는 한명의 화가일 뿐이다. 예견되는 세계적인 불황과 국내정치상황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깜냥도 못된다.

다만 내가 겪어서 알고 있는 것은 있다. 하늘과 땅과 계절과 그날의 날씨와 바람과 별과 낮과 밤 이외의 대개의 것은 제도에 의해 제작되고 날조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제도나 체제야 바꿀 수 있는 것이고, 좋든 싫든 언제라도 바뀌게 되어있다. 나는 내 삶의 축을 체제와 자본과 제도의 바깥, 좀체로 변하지 않는 대자연 가까이에 두어 보려는 것이다. 벌레나 짐승의 눈으로 아이들을 보고 인간을 보고, 도시와 자본을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 땅에서, 코앞에 도로가 뚫린다면 코앞에서는 더 이상 도로가 뚫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번역해 읽어야 한다.

경험과 상상력이 턱없이 모자라지만, 이제 벌레나 짐승의 처지로 말해 보겠다. 나름 사정이야 밤하늘 별 만큼이나 많겠지만,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이 도시를 벗어나 흩어져 살면 좋겠다. 편식되고 있는 이 땅의 골골로 뿔뿔이 흩어져 들어가 빈자리를 채워줬으면 좋겠다.

다른 누구보다도 우선 회사로 출근 안 해도 되는 작가들이 그리 해줬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에도 어린이 책 작가들이 꼭 좀 그렇게 해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학교-학원-집’이라는 끝도 없이 돌고 도는 트라이앵글을 고만 내려놓으면 좋겠다. 그래야 이 땅의 이야기들이 도시적이고 주류적인 편견 없이 속속 드러나지 않겠나.

‘학교-학원-집’이라는 몇 십 년 동안 동어 반복하는 시공간에 신물 낼 때도 되었다. 그러니 자신의 작품세계를 개척하기 위해서라도 그랬으면 좋겠다. 좁은 국토지만, 그것도 두 동강이 난 땅덩어리지만, 골골마다 날씨가 다른 걸 보면 그래도 이 땅은 넓다. 이야기가 널린 땅이다. 비유컨대, 거기 헤아릴 수 없는 벌레와 뭍짐승들의 삶도 등장시켜주면 좋겠다.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미물들의 일대기까지.

이 땅 어디고 다 도시다. 이 땅 어디고 공사판이고 전쟁터다. 산이고 언덕이고 밀어버렸고 철탑을 박아버렸고 강과 바다는 뒤집어지고 있다. 굽은 길들은 죄다 펴놓았고 골짜기마다 살아 숨 쉬던 옛 신화들마저 파헤쳐버린다. 이 땅 어디나 도시란 말은 맞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도시와 촌구석은 명백히 다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 간극은 소중하다. 우리는 자연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작은 텃밭 하나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이 자급자족하는 삶에 씨앗을 뿌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속에서 소박하고 작은 평화의 씨앗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점차로 자신을 둘러싼 식의주에 관련해 도시에서와는 판이한 생각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꿈꾼다. 우리 가운데 한명이라도 더 산간벽지로 들어가기를. 뿔뿔이 흩어지기를. 그리고 그것이 보다 자급자족의 주체적 삶으로 나아가기를. 녹슬고 닫힌 폐교된 교문이 다시 열리기를. 공염불이 될지라도, 그래서 우리의 아이들이 활자와 분칠 가득한 책과 교과서가 아닌 대자연이 품에서 말과 글과 숫자를 터득하기를. 그 속에서 생명에 대한 경외와 문리를 틔우기를. 동식물들과 사계절의 변화와 별자리를 사귀고 익히기를. 바라건데, 우리의 아이들이 자본의 바깥으로 깊이 뿌리 내리기를!

이 되도 않은 글을 쓰고 있는 내내, 지난 가을 털어낸 집터에서 일흔 일곱 할머니가 흙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돌을 주워내고 있다. 거기 쇳조각들과 콘크리트와 비닐들과 플라스틱과 석면을 골라내고 있다. 오물로 더럽혀진 집터는 한 주일만 지나면 들누워도 좋을 만큼 깨끗한 안방이 될 것이다. 거기에 퇴비를 얹고 고랑을 내고 씨앗을 넣을 것이다. 그 터는 오래된 시간 속으로 되돌아갈 테고 머지않아 시퍼런 푸성귀와 울울창창한 곡식들이 알곡을 터트릴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어린이책 작가들의 모임'까페 <더 작가의 목소리>방에서 퍼옴

2009년 3월 2일 월요일

청우도서관

청우도서관을 아십니까? 청우도서관은 청우 이인순 여사를 기리는 학교도서관입니다.

 

경기도 가평군 상면에 자리잡고 있는 상면초등학교, 이 학교의 위치는 경춘가도를 달리다가 현리로 꺾어진 뒤, 한 4-5킬로미터를 달리다 보면 오른쪽 언덕배기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학교 정문의 건너편이 바로 그 이름도 유명한 아침고요수목원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오늘 아침 바로 이 상면초등학교의 청우도서관에 다녀왔습니다. 삼성사회봉사단의 국좌호 과장과 책사회의 손소영 간사와 함께 아침 일찍 부지런히 다녀왔습니다. 입학식의 한 순서로 입학생 14명에게(1명이 입학식에 오지 않아서 실제로는 13명에게) '책날개를 달아요'라고 씌어진 그림책 꾸러미를 전달하고 왔습니다. 작년까지 이 학교 학생이 모두 104명인데, 졸업생 19명, 입학생 14명. 그래서 학생수가 99명이 된 학교입니다. 최명환 교장 선생님 말씀으로는 1명이 더 입학하게 되어 모두 100명이 될 거라고 합니다. "두 자리 수 학생과 세 자리 수 학생이 있는 학교는 천양지차죠. 교육청에서 지원을 하거나 폐교 대상을 정할 때에도 학생 수가 두 자리 수이냐 세 자리 수이냐에 따라 다르니까요."

 

이 학교의 청우도서관은 아주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청우 이인순 선생이 일제말에 이 초등학교에 부임하셨다가 이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하시고 나중에 중동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계시다가 1982년에 돌아가시게 되었는데, 선생께서 자신이 처음 교단에 섰던 상면초등학교에 자신의 퇴직금을 도서관 설립기금으로 써 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듬해인 1983년 따님이신 최나리 선생이 도서관 설립기금으로 기증하시어 청우도서관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2006년 '희망의 학교도서관'을 만들 때 이 청우도서관을 1호관으로 삼았던 것도 바로 이런 내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6월에 답사를 갔었는데(그 내용은 '책사회 블로그'에 올려놓았습니다. 아래에 붙여놓겠습니다.) 올초부터 후속 지원을 시작하게 되어 오늘 이 학교를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원하시던 서가를 조금 더 보태어 드릴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그리고 신입생들이 '책날개' 가방을 들고 이 학교도서관을 이용하면서 좋은 책들을 즐겁게 읽어주기를 기원했습니다.

 

최명환 교장 선생님께서 상추를 뜯어주시던 그 텃밭에서는 급식실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어린이들의 함박웃음을 가슴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사진 몇 장을 붙여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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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서관을 아십니까?

--희망의작은도서관 첫번째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오늘 희망의작은도서관 전수탐방의 첫번째 방문지인 가평 상면초등학교를 다녀 왔습니다.

전수탐방의 계획을 만들고 실행에 오기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는, 그 동안 운영자들께서 학교도서관과 마을도서관(작은도서관)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으신지, 또 운영상 겪게 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그 실태를 확인하고 가능하면 후속 지원의 방안을 강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그 사이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변화' 특히 교육현실의 변화와 공공성의 위기 상황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더운 날씨에 탐방자-간사님들과 도움을 주시는 분들의 건강이 걱정되지만, 최선을 다하여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 첫번째 방문지는 가평의 상면초등학교였습니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가는 내내 찜통같은 차속에서 땀흘렸지만
 너무나도 잘 운영하고 계신 상면초등학교 최명환 교장선생님과 사서 선생님 덕분에
 즐거운 마음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인사성 밝은 아이들때문에 학교에 있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아래에 탐방기를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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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면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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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서관’을 아십니까?
-가평 상면초등학교 청우도서관 탐방기, 2008년 6월 12일,
기록 안찬수

1.

6월 12일 오전. 예전 같으면 여름이라 하기도 어려웠을 터인데, 날씨가 한여름 날씨입니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며, 가평 상면초등학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평은 경기도 가평입니다.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길인 46번국도를 따라 동북 방향으로 한참을 달리다가, 북한강 물줄기가 오른편으로 잠시 사라지는 듯이 느껴지는 청평을 지난 뒤, 현리 방향으로 37번국도 쪽으로 좌회전하여 5분쯤, 이번에는 서북 방향으로 올라가면, 아침고요수목원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상면초등학교는 바로 그 아침고요수목원으로 들어가는 길의 입구 건너편 쪽에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전부터 이 길을 사랑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현리에서부터 상판리로 이어지는 길, 그리고 그 길 끝자락부터 시작되는 명지산과 그 명지산으로부터 시작되는 조종천을 사랑했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명지산(1267m)도 좋지만 그 산이 높다고 느껴지면, 운악산, 연인산, 축령산으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경기알프스의 이 산군들을 언제나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어서 오라고, 어서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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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면초등학교 교문!

상면초등학교 정문 앞에 차를 세워두고 학교로 오릅니다. 학교 정문은 솟을대문으로 반듯하고 우뚝합니다. 이 학교 어린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뒤에도 이 솟을대문을 마음속 깊이 담아둘 듯싶습니다.


2.

상면초등학교를 찾아간 이유는 청우도서관 때문이었습니다.

2년 전인 2006년 여름,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학교도서관 지원 사업’ 때문에 말 그대로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신청서를 접수하고, 서류를 검토한 뒤, 현장 실사를 떠나기 위해 실사단 워크숍을 열었던 것이 그해 7월 28일 오후 1시였습니다. 그리고  8월 16일까지 2주 동안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 지원대상 학교 현장 실사를 하며 128개의 초등학교를 탐방했었습니다. 물론 저 혼자 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힘을 얻어 여러 팀을 만들어 권역별로 탐방했었습니다. 그렇게 실사 결과를 기초로 58개교를 지원 대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해 8월 말부터 설계회의를 밤을 새며 거듭해서 1호관인 상면초등학교의 청우도서관이 개관한 것이 9월 25일의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초등학교의 도서관과는 다른 공간구성과 디자인을 적용해서 아주 새로운 도서관을 만들려고 하는 ‘책읽는사회’의 요구와 학교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그때 공사를 맡았던 업체들은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전혀 새로운, 혁신적인 도서관을 만들어주자!
--쾌적하면서도 아름답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도서관을 만들자!
--다목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자!
--주민이나 교사들도 학교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자!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계속 찾고 싶고 머물고 싶은 도서관을 만들자!

이런 의욕과 비전이 기존의 관행과 관성과 거듭해서 맞부딪치기도 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우리 간사진들이 1호관이라 하지 않고 ‘시범관’이라고 불렀습니다. 무엇의 시범이냐 하면, 앞으로 재단장해서 개관할 ‘희망의 학교도서관’의 시범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공간구성의 기본적인 컨셉과 가구와 서가, 장서구성 등등의 시범이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오목공간이나 다락방 만들기나, 벽부형 서가이자 편안한 열람공간, 교사와 학부모용 소파, 어린이용 소파 등등의 시범이기 때문에 그 제작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소파만 해도 그때까지 초등학교 도서관에 사용된 소파는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계속 수정하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도서관의 모습이 갖추어가자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업체의 사장님도 디자인팀장도 목수도 도공도, 그리고 교장 선생님이나 교사 분들도 큰 보람을 느겼던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도서관에 대한 희망나무를 만들기도 하고 ‘내가 바라는 도서관의 모습’을 나무판(이번 이 나무판들을 다시 만나게 되어 아주 반가웠습니다)에 그리기도 하면서 도서관이 하루 빨리 개관하기를 고대하던 우리 어린이들이 기뻐하였습니다.

상면초등학교의 학교도서관이 ‘희망의 작은도서관 만들기--학교도서관 지원 사업’의 1호관으로 문을 열게 된 데에는 아주 의미 깊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청우 이인순 선생의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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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도서관의 한쪽에 마련된 청우 이인순 선생님 기념 코너

한 때 이 학교에서 근무했던 이인순 선생이 돌아가실 무렵,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에 쓰라고 돈을 남겨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고맙고, 아름답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재단장 하기 이전에도 도서관 한켠에는 청우 선생이 보던 일본어 책들도, 그리고 해방 직후의 책들도 꽂혀 있었습니다.

개관식 때, 하늘 높이 고무풍선들이 날아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3.

그리고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다시 상면초등학교를 찾아가면서 많은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잘 운영되고 있을까? 마치 삼촌과 같은 인상으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시던 최명환 교장 선생님은 그대로 계실까? 교사와 학부모님들도 도서관을 쉼터로 생각하시며 이용하고 있을까? 아이들은 얼마나 책을 즐기며 읽고 있을까? 궁금한 점이 꼬리에 꼬리를 이으며 계속되었습니다.

이제 내년이면 정년이라는, 짙게 그을린 얼굴의 최명환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탐방단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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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면초등학교 최명환 교장선생님

--운영? 정말 잘 운영하고 있지. 그럼 당연하지. 작년에 독서활동 시범학교였어. 사서를 지원받았는데 무리해서 1년 더 근무하도록 해서 올해도 근무하고 있지. (반말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만 반말투로 정리했습니다.)

가평군 관내의 초등학교(공립)는, 가평교육청의 누리집을 확인하니, 13개교인데 그 가운데 사서교사가 배치된 곳은 가평초(학생수 1,195명)뿐이고, 비정규직 사서가 배치된 곳이 청평초(학생수 659명), 대성초(124명), 상면초(105명) 등 4곳, 총 5곳뿐이라 말씀하십니다. 올해 새로 부임하신 교감 선생님도 도서관 운영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십니다. 독서활동 시범학교를 하면서 학부모의 이용은 3-4배, 학생의 이용은 2배 이상 증가하면서 대출량도 크게 늘었다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2007년 3월부터 ‘달빛도서관’ 운영을 10회나 진행했어. 강사를 초빙하기도 하고, 작가와의 만남, 마술, 인형극, 글짓기나 일기 쓰기에 대한 강의 등을 진행하기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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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도서관' 활동 결과물들. 상면초 청우도서관에서는 이미 10번째 달빛도서관을 운영하였고, 탐방단이 찾은 2008년 6월 12일 11번째 달빛도서관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달빛도서관’의 운영에 대해서는 각종 사진자료들이 상면초등학교 누리집 한구석에 잘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달빛도서관 운영 사진자료
 
http://www.sangmyun.es.kr/bbs/zboard.php?id=book_37

사진자료를 둘러보니, 신문지 가지고 재미있는 놀이하기, 별에 대해 알아보기, 인형극단의 공연, 마술 공연, 놀이에 대해 알아보기, 도서관에서 살아남기, 북아트의 세계, 할머니극단의 동극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를 실시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가 방문했던 6월 12일은 11번째 달빛도서관을 운영하는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최 교장 선생님이 준비해놓은 쪽동백 재료와 버튼 만들기 재료를 보여주시며 자랑하십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다함께 합심해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야. 선생님이 움직여주니까 가능한 거지.

달빛도서관 운영 외에도 책방 가서 책 빼오기도 연중행사로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평읍의 유일한 서점에 가서 아이들이 읽고 싶어 하는 책을 한 권씩 빼와서 먼저 읽고 그것은 도서관 장서로 만드는 것입니다. 도서구입비는 본래 학교도서관 도서구입비로.

--아무래도 아이들이 책을 많이 접하니까 무슨 글짓기 대회 같은 데 가서도 성적들이 좋아.

최 교장 선생님의 뜻과 교사 분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소중한 성과들인 듯싶었습니다.

사서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는 김은미 선생이 교장실로 오셨습니다. 마치 얼굴이 ‘나는 마음이 밝은 사람이에요’라고 씌어 있는 듯한 표정의 김은미 선생께 힘들거나 어려운 점, 혹은 뭔가 요구가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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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도서관의 사서선생님이신 김은미 선생님

김은미 선생은 비정규직. 최 교장 선생님이나 김 선생은 입을 모두어 도서관에 사서는 꼭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학교도서관진흥법시행령'이 입법 예고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을 생각하고는 마음 깊이 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왜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는, 학교도서관이 학교교육의 중심이고 학교도서관에는 책과 함께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어줄, 책의 세계로 아이들을 안내할 사서 선생님이 꼭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몰라 주실까요?

벌써 장서가 1만 권을 넘어서고 있어서 서가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도서관에서 여러 활동을 할 때 서가를 움직이면 좋겠는데, 고정되어 있어서 아쉬울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 여러 가지 도서관 활동을 위한 수납공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 부분은 청우도서관을 재단장할 때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김은미 선생도 그런 생각이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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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우도서관 입구 모습

최 교장 선생님과 사서 김은미 선생 등과 함께 도서관을 둘러보았습니다. 도서관 입구에는 달빛도서관 활동의 사진자료와 신간도서 소개, 독서활동 스티커 붙이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쪽 벽에는 개관식 준비 활동으로 만들었던 ‘내가 바라는 도서관의 모습’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그린 이 도서관 그림들은 참 소중한 자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거기에는 아이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드러나 있습니다. 도서관에서 자고, 수영도 하고, 놀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다락방에 올라가고, 숨고……. 우리 어른들이 감히 생각지도 못하는 갖가지 아이디어들이 소중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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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학교도서관을 어떻게 꿈꾸고 있나. 2년 전 개관 준비 작업의 일환으로 상면초 어린이들이 그린 내가 꿈꾸는 도서관의 모습 그리기의 결과물들. 거기에는 잠자는 곳도 있고 나무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무엇보다도 사랑이 있다!

도서관 안을 둘러보니, 교사 분들과 학부모를 위한 도서도 꽤나 늘어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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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도서관 내부 모습, 장서가 1만여 권으로 늘어나 있었다. 서가가 보충될 필요가 있다고 탐방단은 생각했다.

학교를 떠나는 우리 일행을 위해 최명환 교장 선생은 학교 텃밭에서 상추를 한 소쿠리 가득할 만큼 따주셨습니다. 아주 싱싱한 상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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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면초등학교의 학교 텃밭. 최명환 교장 선생님께서는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에 옥수수 잔치 한번 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봄에 매주 텃밭에 옥수수를 심으셨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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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면초등학교 아이들의 함박웃음. 그 푸릇하고 싱싱한 웃음에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복도에서 마주친 아이들마다 전혀 거리낌 없이 인사를 합니다. 마치 텃밭의 그 상추처럼 아주 싱싱한 인사입니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이 아이의 해맑은 웃음과 싱싱한 인사를 더욱 해맑고 싱싱하게 해줄 의무가 우리 어른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학교를 물러나왔습니다.

탐방자: 안찬수, 이경근, 김유리, 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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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정미 2009-04-25 오전 11:25 댓글 달기 수정 삭제
어!!! 나는 상면초등학교에 다님
그리고 마지막 사진에 여자 3명중 가운데가 바로 나임 ㅋㅋㅋ
내가 나오다니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