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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4일 화요일

`고소한 영혼의 밥 냄새`

신은미. 당찬 여성이다. 심지가 깊고, 성격은 괄괄하다. '머스마' 같은 구석도 있다.

 

한때 '기적의도서관' 실무를 맡아 밤낮 없이 일하던 도서관학도다. 대학 졸업식을 하기도 전에 새로운 도서관문화를 만들어내고자 시민단체에 몸담아 일하다 대안학교로 훌쩍 떠났다. 2년 정도 기숙사 사감 선생님으로 일하다 올해부터는 학교도서관 담당 선생과 행정실 일을 함께 보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오늘 이 당찬 여성이 학교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쓴 글을 만났다. 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가 만들어내는 소식지 <학도넷> 2009년 봄호에 '학교도서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는 꼭지에 제천간디학교도서관 담당교사로서 글을 실었다.

 

제목도 재미있다. '나무밥 짓는 영혼의 부엌을 꿈꾸며'. 학교도서관의 이름이 '나무밥'이라서 그런 것일까? '영혼의 부엌'이라는 단어에서는 역시 숨겨져 있는 여성스러움(이 단어에 무슨 성차별적인 생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이 묻어난다. '머스마' 같은 구석이 있었을 뿐이지, 그이의 마음속에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아이들의 영혼을 보살피고자 하는 여성 특유의 모성적 면모가 숨겨져 있었던 것일 터이다.

 

오늘의 한 대목은 신은미 '샘'의 글에서 뽑았다.

 

도서위원들과 분주함과 설렘으로 새 학기를 준비하면서, 또 대안학교라는 이름 때문에 얻게 되는 외부의 궁금증을 대하면서 왜, 뭘,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등 책 읽기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 동시에 도서관 이름이 '나무밥'인 이유도 다시금 곱씹었다. 밥 먹듯이--일상적으로, 꾸준하게, 편안하게, 맛있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왜, 무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이 될 것도 같다.

 

낡고 춥고 어설픈 도서관이지만, 어디선가 고소한 영혼의 밥 냄새가 난다. 화목한 식구들의 웃음소리도 들린다. 밥 먹으러 가야겟다. 도서관으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http://gandhischool.org/

그런대 신 '샘'. 진짜로 왜 도서관 이름이 '나무밥'인거유?

 

어느 학교도서관 개관식이었던가? 제천간디학교의 양희창 선생이 작사한 "꿈꾸지 않으면"을 함께 불렀던 기억이 소록소록 난다. 그런데 그 학교가 어디였는지 가물가물하다. 참 기억이란 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2009년 1월 9일 금요일

하방연대

 

*하방연대: "물은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시내를 받아 들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바다’입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수송동 희망제작소 세미나실에서 '성찰과 희망'을 주제로 신년특별강연을  했다고 오마이뉴스는 전한다. 기사 가운데 강연 내용으로 인용된 것만 다시 모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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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바꾸고 나아가 우리 사회를 바꾸어 가는 것은 대단히 긴 여정입니다. 예전에 정치권력을 획득하면 단기간에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후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면 모두 실패하지 않았나요. 세계적으로도 가장 강력했던 정치권력이 나치와 소련의 프롤레타리아 독재였는데 모두 사회를 바꾸는 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단 한 번의 개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사회변화를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조정하면서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1960년대 학생 운동을 할 때 친구들과 함께 '좋은 실천가'의 덕목을 정해 봤습니다. 진보적 사상을 가질 것, 사명감을 가질 것, 조직력과 설득력이 있을 것 등이 꼽혔는데 이런 능력을 갖춘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이 친구들이 뭘 하고 있을까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출소 후 수소문해 봤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친구들이 없었습니다. 다들 다른 분야에 가서 돈도 벌고 출세를 했더군요. 그 자리에 남아있는 친구들은 예전에는 별 볼일 없어 보였던 친구들, 이념적 결단이 아니라 고생하는 친구들 보기 미안해서, 돕지 않으면 양심에 거슬려서 함께 했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감옥에서 보낸 20년의 세월 동안 탈근대의 과정을 다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동료 수감자들을 대상화, 타자화해서 관찰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좀 듣고 나서는 '아, 나도 그런 부모를 만났으면 저렇게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공존과 이해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목공장에서 나이 많은 목수가 집을 그리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그 목수는 나와는 반대로 주춧돌부터, 그러니까 집을 짓는 순서대로 그리더군요. 집을 책에서만 본 나 같은 사람은 지붕부터 그리는데 직접 노동을 통해 집을 지어본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본 후 나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통렬한 자기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차이를 경험하고 나를 변화시키는 단계까지 나아간 것이죠."

 

"똘레랑스에는 강자의 자기동일성 논리가 숨어 있습니다. 소수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강자의 논리에 흡수될 것이라는 오만이 스며 있는 것입니다. 차이를 만나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단히 변화시키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들뢰즈는 '소수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자기 것을 영토화하고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과감히 자기 것을 버릴 수 있는 유목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반성과 변화가 없으면 세상을 바꾸어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단체들도 차이와 다양성을 승인하지 않고 흡수와 지배를 통해 자기 동일성을 관철하려고만 합니다. 촛불 집회 때도 그랬죠. 촛불을 든 많은 사람들은 하나하나가 자신의 다양한 목소리를 발하고 있는데 운동단체들은 촛불의 성과를 단체의 조직을 키우는 데 퍼담을 수 없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저는 운동단체들을 만나면 하방연대(下方連帶)하라고 강조합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남성은 여성과, 노동자는 농민과, 즉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연대하는 것이 힘을 키우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강자와는 연대가 아니라 추종이고 복속일 뿐이죠."

"누구는 기획하고 이끌고 누구는 뒤에 따라가는 방식은 옛날 방식입니다. 함께 가면 길은 나중에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게 웹 2.0시대에 맞는 사고입니다. 누가 지시해서가 아니라 같이 고민하면서 가는 것이죠. 그리고 먼 길 가는 사람은 목표의 정당성이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동력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빛나는 성과를 기대하며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느껴야 하는 것이죠. '길'은 무작정 속도를 내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도로'가 아닙니다.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고 자기의 흔적도 남겨야 하고 코스모스도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