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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7일 화요일

읽고 생각한다-독이고

어제 그러니까 2009년 3월 16일 여러 언론매체에서 경희대 한의과대학이 올 신입생들에게 '독이고'라는 이름이 붙은 독서노트를 나누어주고, 추천된 고전 2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는 것을 보도했다. 최승훈 학장은 "여러분이 독서를 통해 읽고 생각하면서 살았으면 한다"며 "새 독서프로그램이 여러분과 단과대 발전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고, 조인원 총장도 "다양한 분야의 독서는 학문 간 소통에 크게 도움이 된다"며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어 한의학 발전을 이끌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신입생들이 예과 2년 동안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은 독서계의 화제가 될 만하다. 도대체 어떤 책들을 앞으로 한의사가 될 학생들에게 내놓은 것일까. 추천도서는 ‘금강경’ ‘논어’ ‘대학’ 등의 동양고전, ‘군주론’ ‘꿈의 해석’ ‘그리스 로마신화’ 등의 서양고전, ‘과학혁명의 구조’ ‘상대성이론’ 등 자연과학서적, ‘국부론’ ‘유토피아’ ‘자유론’ 등 사회과학서적, ‘간디 자서전’ ‘이방인’ ‘토지’ 등 인문학 관련 서적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경희대 한의과대학 누리집(http://omc.khu.ac.kr/)에 들어가보니 "<한의대 추천도서 100권>은 학업 역량 강화 및 한의학 관련 소양 집중 배양에 목적이 있습니다."라고 밝히면서 100권을 소개해놓고 있다.

 
다음은 <한의대 추천도서 100권>의 목록이다. 이 가운데 눈에 띄는 책들도 있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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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문진보 黃堅(황견) 편찬 동양고전
2 관자 동양고전
3 금강경 동양고전
4 노자 동양고전
5 논어 공자 동양고전
6 대학 공자 동양고전
7 맹자 맹자 동양고전
8 법구경 동양고전
9 사기열전 사마천 동양고전
10 손자 손자 동양고전
11 여씨춘추 여불위 동양고전
12 Upanisad(우파니샤드) 동양고전
13 莊子(장자) 莊周(장주) 동양고전
14 周易(주역) 동양고전
15 中庸(중용) 子思(자사) 동양고전
16 天符經(천부경) 동양고전
17 淮南子(회남자) ..安(유안) 동양고전
18 “國富論(The Wealth of Nations: 국부론), 1776 Adam Smith 사회과학
19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사회과학
20 당신들의 대한민국 박노자 사회과학
21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다치바나 다카시 사회과학
22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사회과학
23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문명의 충돌), 1996” Samuel Huntington 사회과학
24 “Cows, Pigs, Wars and Witches: The Riddles of Culture (문화의 수수께끼), 1982” Marvin Harris 사회과학
25 “Democracy and Education (민주주의와 교육), 1916” John Dewey 사회과학
26 “Revolutionary Wealth (富의 미래), 2006” Alvin Toffler 사회과학
27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사회과학
28 “The Persian Wars (역사), BC 440” Herodotus 사회과학
29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오래된 미래: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1992” Helena Norberg Hodge 사회과학
30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1999” Jean Ziegler 사회과학

31 “Utopia, 1516” Thomas More 사회과학
32 “On Liberty (자유론), 1859” John Stuart Mill 사회과학
33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1989” Todd Buchholz 사회과학
34 “L’ARTE DEL COMANDO (The Art of Commanding: 지도자의 조건), 2002” Francesco Alberoni 사회과학
35 “Guns, Germs, and Steel: The Fates of Human Societies (총, 균, 쇠), 1997” Jared Diamond 사회과학
36 한국 현대사 60년 서중석 사회과학
37 행동 경제학 도모노 노리오 사회과학
38 “Il principe (The Prince: 君主論), 1532” Niccolo` Machiavelli 서양고전
39 “The Age of Fable, or Stories of Gods and Heroes (그리스 로마 신화), 1855” Thomas Bulfinch 서양고전
40 “Die Traumdeutung (The Interpretation of Dreams: 꿈의 해석), 1899/1900” Sigmund Freud 서양고전
41 “Du Contrat social ou principes du droit politique
(The Social Contract, Or Principles of Political Right: 사회계약론), 1762” Jean-Jacques Rousseau 서양고전
42 “The Story of Art (서양미술사), 1950” Ernst Hans Josef Gombrich 서양고전
43 “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And Its Connection with Political and Social
Circumstances from the Earliest Times to the Present Day (서양철학사), 1945” Bertrand Russell 서양고전
44 聖經(성경) 서양고전
45 “Histoire de la sexualite (The History of Sexuality: 性의 역사), 1976-1984” Michel Foucault 서양고전
46 (소크라테스의) Apology (변명) Plato 서양고전
47 “Kritik der reinen Vernunft (Critique of Pure Reason: 순수이성비판), 1781” Immanuel Kant 서양고전
48 “The Divine Comedy (神曲), 1308-1321” Dante Alighieri 서양고전
49 자기로부터의 혁명 1982 Jiddu Krishnamurti 서양고전
50 “Capital (자본론), 1867,1885,1894” Karl Heinrich Marx 서양고전
51 “L’evolution creatrice (Creative Evolution: 창조적 진화), 1907” Henri-Louis Bergson 서양고전 52 100가지 민족문화 상징사전 주강현 인문학
53 “(The) Fabric of the Cosmos: Space, Time,
and the Texture of Reality (우주의 구조), 2005” Brian Greene 인문학
54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인문학
55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유홍준 인문학
56 茶山文選(다산문선) 丁若鏞(정약용) 인문학
57 무의식의 분석 Carl Gustav Jung 인문학
58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인문학
59 생각의 지도 최인철 인문학
60 雪國(설국) 가와바다 야스나리 인문학
61 세계종교 둘러보기 오강남 인문학
62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박경철 인문학
63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안정효 인문학
64 철학과 굴뚝 청소부 이진경 인문학
65 土地(토지) 박경리 인문학
66 “Autobiography: The Story of My Experiments with Truth (간디 자서전), 1927” Mahatma Gandhi 인문학
67 Faust Johann Wolfgang von Goethe 인문학
68 Hamlet 1599-1601 William Shakespeare 인문학
69 Noam Chomsky - on nature and language(촘스키-자연과 언어에 관하여) 이두원 역 인문학
70 “Opening Skinner’s Box : Great Psychological Experiments of the
Twentieth Century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2004” Lauren Slater 인문학

71 “The Brothers Karamazov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1” Fyodor Dostoyevsky 인문학
72 “The Catcher in the Rye, 1951” Jerome David Salinger 인문학
73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1999” Thomas L. Friedman 인문학
74 “The Metamorphosis (변신), 1915” Franz Kafka 인문학
75 “The Stranger, The Outsider, (L’Etranger) 1942異邦人(이방인)” Albert Camus 인문학
76 “Genome, 2006” Matt Ridley 자연과학
77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 (과학혁명의 구조), 1962” Thomas Samuel Kuhn 자연과학
78 “Complications: A Surgeon’s Notes on an Imperfect Science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2002” Atul Gawande 자연과학

79 “Our Inner Ape 내 안의 유인원, 2005” Frans de Waal 자연과학
80 “Linked: The New Science of Networks 링크, 2002” Albert-La’szlo’Baraba’si 자연과학
81 “면역혁명, 2003” 아보 도오루 자연과학
82 몸과 우주 유아사 야스오 자연과학

83 “Der Teil und das Ganze 부분과 전체, 1969” Werner Heisenberg 자연과학
84 “Newton Highlight (상대성이론), 2006” Albert Einstein/Newton Press 자연과학
85 “The Turning Point: Science, Society, and the Rising Culture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1982” Fritjof Capra 자연과학
86 “Spark of genius 생각의 탄생, 2001” Robert Root-Bernstein 자연과학
87 “What is Life? and Mind and Matter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음과 물질, 1967” Erwin Schrodinger 자연과학

88 One Renegade Cell : How Cancer Begins (1998) 세포의 반란 Robert S. Weinberg 자연과학
89 “The Nature of Space and Time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1996” Stephen Hawking & Roger Penrose 자연과학
90 “(The)secret life of plants 식물의 정신세계,1973” Peter Tompkins & Christopher Bird 자연과학

91 “Entropy: A New World View 엔트로피, 1980” Jeremy Rifkin & Ted Howard 자연과학
92 “The Selfish Gene 이기적 유전자, 1976” Richard Dawkins 자연과학
93 The Double Helix (1968) 이중나선 James Dewey Watson 자연과학
94 Why we age? 인간은 왜 늙는가? 1999 Steven N. Austad 자연과학
95 “On the Origin of Species 종의 기원, 1859” Charles Darwin 자연과학
96 “The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중국의 과학과 문명, 1954-” Joseph Needham 자연과학
97 “Chaos im Universum 카오스와 코스모스, 2001” Joachim Bublath 자연과학
98 “Cosmos, 1980” Carl Edward Sagan 자연과학
99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통섭, 1998” Edward O. Wilson 자연과학
100 “iCon: Steve Jobs, the great second act
in the history of business (2005) iCon 스티브 잡스” Jeffrey Young & William Simon 자연과학


※비고:동양고전 17, 서양고전 14, 인문학 24 자연과학 25 사회과학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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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뉴스에 대하여 경향신문의 유병선 논설위원의 짤막한 칼럼.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161814225&code=990201

 

(경향신문 2009. 03. 17) [여적]경희 한의대의 독이고(讀而考)  유병선 논설위원

 

 

요통(腰痛)은 허리가 아픈 상태다. 양방에서는 X선이나 MRI 촬영을 해 뼈나 디스크에 이상이 없다면 근육통에 대한 치료를 한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이완제나 환부에 물리치료를 처방하는 식이다. 한방(韓方)은 다르다. 환부를 손으로 짚어보고(촉진) 맥을 살핀(진맥) 뒤, 음양의 조화가 어디에서 어떻게 깨어졌는가에 따라 처방한다. 아픈 허리가 아니라 다리의 경혈(經穴)에 침을 놓아 기의 흐름을 좋아지게 하거나, 오장육부의 흩어진 조화를 되살려주는 보약을 지어주는 방식이다. 이렇게 양의와 한의는 질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기본적으로 다르다.

 

한방에선 ‘양기(陽氣)가 허(虛)하다’고 진단되면, 음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양기를 보하는 치료법이 쓰여진다. 중국 고래의 음양론에 바탕을 둔 전통 한의학은 질병을 음양의 조화가 깨어진 상태로 여겨, 음양의 균형이 회복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의의 한 갈래인 사상의학(四像醫學)은 사람의 체질을 태양·태음·소양·소음으로 나누어 같은 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혁신 한방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음양의 조화와 기의 순환을 기본으로 삼기는 마찬가지다.

음양론의 오묘함만큼이나 한의학을 공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음양론의 ‘ㅇ’도 모른 채 서양 과학을 교육 받다가 느닷없이 한방 세계로 들어서는 한의대 학생들이 받는 문화적·철학적 단절은 클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음양론을 자석의 음극·양극과 같은 원리로 받아들인다면 ‘양기가 허하다’는 진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물리적으로는 음과 양이 같이 움직이지 한쪽만 상대적으로 약해지거나 강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미적분 풀며 물리학만 배운 학생들을 여하히 음양론과 인술(仁術)의 세계로 이끌 것인가가 한의대의 고민이다.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 어제 ‘추천도서 100권 선포식’을 열었다. 올 신입생들에게 ‘독이고’(讀而考, 읽고 생각한다)라는 독서노트를 나눠주고, 예과 2년 동안 추천 고전(古典) 가운데 20권을 의무적으로 읽도록 했다. 좋은 한의가 되려면 우주와 자연과 사람에 대한 깊고 폭 넓은 이해를 해야 하는데, 고전 읽기만한 게 없다고 본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과 인문·과학까지 읽고 궁리(窮理)한 한의사가 진맥을 한다면 한결 믿음이 갈 것 같다.


2009년 3월 14일 토요일

서평의 제목 달기

이런 서평은 그 자체로 공부거리다. 장정일의 내공이 온전하게 묻어나는 듯하다.

 

특히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라고 묻는 대목이나,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 그리고 '진지한 작가생활'을 언급하는 대목 등등은 읽기와 쓰기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과두지배 체제의 본질을 꼬집어 언급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그런데 이 서평이 실은 프레시안의 제목달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100년 전 한 소설가의 경고…'결국 전쟁인가?' "라는 제목은 너무 선정적이다.

 

어떤 제목을 달아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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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2040&section=04

 

▲ 잭 런던(Jack London·1876~1916). <강철군화>를 비롯한 그의 소설이 약 20년 만에 새번역으로 재간되었다. ⓒ궁리
궁리에서 기획한 '잭 런던 걸작선' 가운데 1차분 세 권을 읽었다. 연번대로 나열하면 <비포 아담>(1907)·<버닝 데이라이트>(1910)·<강철군화>(1908)인데, 괄호 속은 작가가 작품을 발표했던 연도다.

책을 좀 읽은 내 또래의 독자들은 1989년도에 한울에서 출간된 <강철군화>의 강렬함을 아직도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때 같은 출판사는 의욕적으로 <마틴 에덴>·<잭 런던 모험소설>을 연이어 펴냈고, 마지막엔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까지 내놨다. 여담이지만, 잭 런던에 혹해 그 책을 번역한 역자는 "순식간에 읽고 난 후 남은 것은 허전함이었다. 아니 배반감이란 표현이 더 솔직한 감정일 것이다"라는 실망감을 역자 서문에 솔직히 적어 놓았다.

실제로 그 여행기는 잭 런던의 우생학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고약하게 드러나 있으며, 제국주의 일본·러시아·중국에 끼어 신음하는 조선의 운명에 대한 고려가 전무하다. 행여 이 책을 찾아 읽으실 독자는, 조현범의 <문명과 야만-타자의 시선으로 본 19세기 조선』(책세상 펴냄)을 함께 읽으시라. 알고 보면 잭 런던의 기분 나쁜 '조선 관찰기'는 그만의 것이 아니라, 19세기 서양 지식인이 아시아를 바라보는 보편적인 한계였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반짝 소개된 잭 런던은 오랫동안 새로운 번역이 나오지 않다가, 몇 년 전에 잭 런던의 미완성 유고인 <암살주식회사>(문학동네 펴냄)가 출간되었다. 여담을 더 하자면, 이 소설이 쓰인 계기가 재미있다. 당대의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그는 엄청나게 씀씀이가 늘어났던 반면, 스물네 살 때 첫 단편집을 낸 이래로 쉬지 않고 작품을 쓰다 보니 상상력과 소재가 고갈됐다. 그래서 돈을 주고 이야깃거리를 샀는데, 34세의 베스트셀러 작가에게 소재를 판 사람은 25세의 무명작가 싱클레어 루이스였다.

<암살주식회사>는 1910년 3월에 잭 런던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70달러를 주고 샀던 열네 편의 짧은 소설 개요 가운데 하나다. 그는 개요를 받자마자 반 넘어 썼던 이 소설을 중도에 포기했는데, 사후 40여 년이 훨씬 지난 1963년에 추리소설 작가 로버트 L 피시가 결말을 완성하여 출간했다. 이 소설은 잭 런던의 화제작 <강철군화> 이후, 작가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다. 참고로 싱클레어 루이스는 훗날 미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된다.

▲ <강철군화>(잭 런던 지음, 곽영미 옮김, 궁리 펴냄). ⓒ프레시안
다시 '잭 런던 걸작선'이다. 나는 세 권의 책을 받고나서, 국내 초역된 두 권의 책이 궁금하기보다, 재간된 <강철군화>가 더 반가웠다. 그래서 <비포 아담>과 <버닝 데이라이트>를 젖혀두고 그것부터 손에 잡았다. 말하자면, 사람들은 새로운 산책로보다 한번 걸어 봤던 길을 더 선호하는 법이다. 그러면서 어제는 미처 보지 못했던 구석구석과 먼 산을 다시 보는 것이다. 과연 20여 년 만에 다시 읽은 <강철군화>는 어땠을까?

<강철군화>가 처음 번역되었던 1989년 7월, 이 소설은 일개 문학 작품이 얻기 어려운 '소설 자본론'이란 명망을 얻었다. 그 만큼 이 소설은 소설의 줄거리보다, 소설 속의 정치·경제적 분석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소설 자본론'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번역서가 나오고 난지 불과 몇 달 뒤인 11월,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고, 몇 년 뒤인 1991년 8월 소련이 해체됐다. 그러면서 <강철군화>는 시나브로 절판의 수순을 밟게 되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망각됐다.

이 소설은 공상적 사회주의가 완성된 2632년, 우연히 발견된 미국 혁명 투사들의 기록을 발굴하게 된 형식을 취한다. 부연하면 이 소설의 시간적 무대는 사회주의 혁명 투사들이 미국의 과두지배 계급에 대항해서 일으켰던 1차 봉기가 실패하고, 새로 준비된 2차 봉기를 목전에 둔 1912년과 1932년 사이다. 소설 속의 과두계급은 의회·법원·군대는 물론이고 언론·학교·교회까지 물샐 틈 없이 장악하고 있는 독점 자본가들이다. 향후 300년간 지속될 작중의 과두계급 체제 아래서 노동자들은 절대적 빈곤·실업·산업 재해에 무방비인 채 노예로 살아가며, 언론인·지식인·종교인들은 끽 소리 없이 과두계급에 기생한다.

대부분의 미국 역사서를 펼치면 <강철군화>가 재현하고 있는 묵시록적인 풍경이 작가의 공상이 아니라, 잭 런던이 생존했던 시대(1876~1916)의 가감 없는 반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대는 미국 사회가 계급사회로 분화하면서 최초의 양극화를 맞이하는 시기였으며, 독점이 가속화되던 때였다. 중산층은 나날이 몰락하고 노동자들은 빈곤에 허덕였다. 당연히 노동운동이 불타올랐으나, 독점재벌의 사주를 받은 파업 파괴자들의 총격에 쓰러져 갔고, 경찰과 언론이 그런 불법을 비호했다.

<강철군화>는 앨런 브링클리가 쓴 방대한 저서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 펴냄)에 쓰인 것처럼 "미국 역사에서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시기보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많은 지지를 받은 때는 없었다"(2권, 501쪽)던 그 시절에 나왔다. 하므로 이 소설은 열아홉 살 때 사회당과 처음 접촉하고 스물다섯 살 때 사회당 후보로 오클랜드 시장에 출마하기도 했던 사회주의자로서의 작가의 이력, 1860년대 초부터 번성한 폭로작가들(muckrakers)의 전통, 그리고 1900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고작 10만 명도 되지 않던 사회당 지지자들이 1912년에는 100만으로 늘어났던 그 시대의 혁신주의 정신이 낳은 혼합물이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으며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은, 잭 런던의 사회주의적 지식과 사태 분석이 이루어낸 예언의 정확성이다. 그는 국내의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한 나라의 파시즘을 추동하게 되며, 출구를 찾지 못한 파시즘 세력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고 분석하면서, 미구에 있을 제1차 세계 대전을 미리 예언했다. 길지만 인용한다.

"(미국의) 과두지배체제는 독일과의 전쟁을 원했다. 그들이 전쟁을 원하는 이유는 열두 가지쯤 되었다. 그러한 전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조작하는 과정에서, 국제적인 카드를 다시 섞어 새로운 조약과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과두지배체제는 얻을 게 많았다. 더 나아가, 전쟁은 국가의 많은 잉여를 없애주고, 모든 나라를 위협하는 실직자 군단을 줄이고, 과두지배체제에게는 그들의 계획을 완성하여 수행할 수 있는 숨 쉴 여유를 줄 것이다. 그런 전쟁은 사실상 과두지배체제가 세계시장을 장악하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전쟁은 해산할 필요가 없는 대규모 상비군을 창출한 것이며, 대중의 머릿속에 '사회주의 대 과두지배체제' 대신 '미국 대 독일'이라는 쟁점을 심어줄 것이다."

잭 런던은 1907년에 쓰고 1908년에 발표한 <강철군화>에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1912년 12월 4일에 미국 공사(公使)가 독일 수도를 철수했다. 그날 밤 독일 함대는 호놀룰루를 급습해 미국 순양함 세 척과 밀수 감시선 한 척을 침몰시키고 도시를 폭격했다. 다음 날, 독일과 미합중국 둘 다 전쟁을 선포"했다고 건조하게 써놓았다. 2년 뒤에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을 거의 적중시킨 것이다.

이 무슨 역사의 장난이란 말인가? 20년 만에 새 번역으로 재독한 <강철군화>는 과두지배와 파시즘에 대한 20세기 초의 공포를 비웃게 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세계 대전을 점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석유와 군산업체의 이익에 휘둘린 미국 정부의 대 이라크 전쟁을 보건대, 독점과 시장을 찾지 못한 잉여생산이 국지적인 저강도 전쟁을 잦게 하리란 우려는 할 수 있다.

<강철군화>에 자세히 설명되었듯이 과두계급이란 한 나라의 부를 몽땅 차지한 한줌의 독점재벌과 그들의 정권을 가리킨다. 이들은 국가의 행정기관을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무료 '서비스 기관'으로 축소시키고, 국가의 사법기관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법을 무마해주는 '로펌'으로 전락시키며, 국가의 공권력은 '용역(깡패)회사'로 만든다.

제2롯데 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공권력을 일개 '용역 회사'로 만드는 문제는 이렇다. 용산 참사의 경우, 지금은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기껏 그게 문제 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 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오치 미치오의 <와스프(WASP)-미국의 엘리트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살림 펴냄)를 보면, 헤밍웨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잭 런던의 소설이 교과서에 실린 것을 알게 된 그의 어머니가 학교 이사회에 나가 "이런 책을 읽히는 것은 올바른 기독교도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항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전후 맥락이 모자라긴 하지만, <비포 아담>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강철군화>가 '소설 자본론'이라면 이 소설은 '소설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잭 런던은 자서전적인 소설 <마틴 에덴>이 출간된 1909년 이후, 진지한 작가 생활을 포기했다고 본다. 무명의 작가에게 작품의 소재를 양도받은 행각이 그런 심증을 갖게 하는데다가, 쓰다가 말았던 <암살주식회사>가 암살단을 만들어 비윤리적인 사업가를 한 명씩 제거한다는 '윤리적 광인'들의 순진 소박한 문제 해결에 안주하고 있지 않은가? 한때 레닌과 트로츠키를 애독자로 거느리기도 했던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문학적 후퇴다.

▲ <버닝 데이라이트>(잭 런던 지음, 정주연 옮김, 궁리 펴냄)
<마틴 에덴> 이후로도 잭 런던은 많은 작품을 썼지만, 타작에 불과하다는 게 중평이다. 하지만 전작에 이어지는 또 한 편의 자서전적 소설 <버닝 데이라이트>는 누구나 흉내 내고 싶은 태양 같은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남자라면 자신의 힘으로 도시를 건설해 봐야 한다! 그런데 버닝 데이라이트는 무려 두 개의 도시를 세우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만을 위한 아르카디아를 만들어, 거기에 은거한다.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나 스토우 부인과 마크 트웨인을 잇는 미국 최대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잭 런던은 '미국의 꿈'을 실현한 행운아이면서, 자신의 꿈을 스스로 거스르는 '빨갱이'가 됐다. 성공한 부르주아이면서 프롤레타리아의 이상을 추구했던 그는 입방아를 찧기 좋은 먹이였다. 내가 본 미국 문학사는 잭 런던을 거의 난외로 처리하거나, 소략하게 다룬다. 그러면서 예의 '자기모순에 빠진 작가'라느니 '알코올 중독자'면서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였다는 인물평을 앞세운다.

이런 꼬투리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마르크시즘의 영향력과 프롤레타리아 작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원천 소거하기 위한, 강단 연구가들의 정직하지 못한 술책이다. 대체 자기모순이라곤 없으며, 술독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데다가, 무절제한 쾌락주의자이자 나르시스트가 아니었던 작가가 어느 세상에 존재하는가? 주류 미국 문학사가 떠받들고 있는 헨리 제임스·헤밍웨이·피츠제럴드·포크너도 알고 보면 더했다.

작가에 대한 풍문을 제거하고 나면, 훨씬 윤택해지는 텍스트가 잭 런던이다. 특히 그가 살았던 시기가 자국의 양극화와 20세기 최초의 세계화로 몸살을 전운(戰雲)을 앓던 시대였던 만큼, 그것과 똑같은 국내 문제와 21세기의 세계화를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우리들에겐 더욱 각별한 텍스트가 되어 줄 것이다.

/장정일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