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축구일 뿐이다"…과연 그런가? 한국-폴란드 경기를 몇 시간 앞두고 던져 보는 질문
1.
2002년 6월 4일, 세상 사람들의 눈이 온통 월드컵에 쏠려 있는 듯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한국의 첫 경기가 열리는 날이다. 과연 한국의 축구 대표팀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기대와 열망에 찬 눈들이 부산의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몰리고 있다.
주요 언론들도 '첫 승의 아침이 밝았다'는 제목으로 기대감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48년간 6번 본선에 출전해 4무 10패,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지만, 이번만은 다르리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 '홈'에서 열리니 '붉은 악마'를 비롯해서 온 국민의 열화와 같은 응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난 1년여 동안 한국 대표팀을 이끌어 온 히딩크 감독에 대한 신뢰감도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선수들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한국팀의 1승, 그리고 16강, 더 나아가 8강, 4강에도 진출하기를 바란다.
2.
그렇지만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이 말은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프 플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한 말이다.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이 말은 나에게 묘한 느낌을 던져 준다.
월드컵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축구는 단지 축구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열린 1930년 우루과이 대회 결승전에서 맞붙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이 결승전을 계기로 국교를 단절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예선에서 맞붙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전쟁을 벌였던 일은 '축구 전쟁'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가 단위로 맞붙어 싸우는 축구는 그 어느 경기보다도 '민족성(nationality)'을 자극한다. 한국과 일본, 잉글랜드와 독일이 경기를 벌이면, 축구는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 된다. 이번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개막전에서 세네갈이 프랑스를 제압하자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은 '한(恨)'을 푼 듯 승리의 날을 국경일로 삼겠다고 하였다.
월드컵이 거대한 산업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 자체로 거대한 스포츠 산업이기도 하지만, 월드컵을 계기로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려고 하거나 새로운 사업 개발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대기업들의 발빠른 움직임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그러나 거대한 스포츠 산업의 이면에는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될 일들도 있다. <다른 월드컵, 축구공 만드는 아이들--그라운드의 함성 뒤엔 '작은 손'의 혹독한 노동>(지오리포트 5월 4일자)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스포츠 용품 생산업체에서는 어린이 노동 착취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축구는 축구만은 아닌 것이다.
3.
그런데 개막전뿐만 아니라 연이어 열리는 경기마다 관중석 공석 때문에 입장권 수입에 차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회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지난 4월 30일, 한국의 관광호텔 예약 숙박권 전체를 독점 판매해주기로 하는 협약을 한국 월드컵조직위와 체결했던 영국의 바이롬사가 계약을 해지하는 통고를 했지만, "2002년 4월 30일까지 해약하면 위약금을 물지 않는다"라고 계약했기 때문에 월드컵 특수만을 노리던 숙박업계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버린 바 있다.
그런데, 바이롬이라는 회사는 월드컵 티켓 해외판매분 판매대행까지 맡고 있는 회사다. 정식 직원이 3명에 불과하다는 이 회사에서는 해외판매량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고 이것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 경기가 열리기까지 과연 어느 정도 관중석이 찰지도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월드컵축구대회 대구 첫 경기(6일)를 앞두고 해외입장권판매 대행사인 영국 바이롬사의 해외판매량이 공개되지 않아 대구시가 경기장 관람석의 무더기 공석을 우려하고 있다.(연합뉴스, 윤대복 기자)"는 보도가 있었다. '관중석 공석 사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치명적인 '불명예'로 남을 듯싶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바이롬사가 한국의 관광호텔 예약 숙박권을 독점 판매하고, 월드컵 티켓 해외판매분을 판매대행할 수 있었던 것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단지 제프 플래터 국제축구연맹 회장과 친척이라는 끈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플래터 회장이 말한,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그라운드 안에서 뛰는 선수들, 관중석에서 열띤 응원을 펼치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이들의 환희와 탄식에는 상관없이 '축구는 축구, 돈벌이는 돈벌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4.
'축구는 축구일 뿐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이나, 응원에 열을 올리는 '국민'이나, 그 열의를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기회로 삼으려는 기업이나, 무언가 월드컵을 계기로 한몫 잡으려는 이들 모두에게 '축구는 축구만은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은 개인적으로 더 큰 스포츠 시장으로 도약하려고 하고, '국민'들은 월드컵을 무언가 '한'을 푸는 계기로 삼으려 하며, 대기업들은 자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려고 애를 쓰고, 또 어떤 이들은 큰 사업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축구는 축구여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앞서 말한 아동착취를 금지하라는 목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파업을 하던 노동자의 권리도 축구 열기에 묻혔으며, 6·13 지방선거도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축구를 구경하는 것은 재미 있고, 우리 팀을 응원하면 신이 난다.
하지만 축구가 점점 더 우리의 일상을 '점령'해나갈 때,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우리 삶의 밑바탕은 조금 더 끔찍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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