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2년 3월 27일자 김규항의 좌판13 청소노동자 김순자
20대 때 혁명에 빠지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고 40대에도 혁명을 생각하면 뇌가 없는 사람이라 했던가. 지난 30여 년 우리 사회에서 386세대처럼 그 말에 잘 들어맞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80년대를 불태우던 20대의 혁명가들은 이제 수구기득권 세력과 경쟁하는 신흥기득권 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민주세력이자 진보세력이라 말한다. 올해 예순인 한 울산아지매가 그들에게 딴죽을 걸고 나섰다.
김규항 = 한나라당 당원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김순자 = 한나라당 당원만 한 게 아니라 한나라당 지역 여성회장도 하고 관변단체인 바르게살기위원회, 경찰서에서 하는 반공멸공회 총무도 했습니다.
김규항 = 우리 사회에서 정치에 눈을 떴다는 말은 대개 한나라당, 새누리당 지지하다가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 정치를 지지하게 되는 변화를 일컫는데, 훌쩍 건너뛰셨습니다.
김순자 = 나이 50이 되어 노동조합을 하면서 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노동조합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정몽준을 존경하는 한나라당 당원이었을 겁니다.
김규항 = 울산과학대 이사장이 정몽준씨입니다. 울산엔 현대가 울산을 발전시키고 잘 살게 해준 고마운 회사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주변에서 김 선생님의 변화를 불편하게 보는 분들도 있었겠습니다.
김순자 = 부적절하다고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너무 빠지지 마라.” “너무 빠져 있는 것 같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저 역시도 전엔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은 일도 열심히 안하고 비뚤어진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만큼 좋은 사람들도 없더군요. “피를 나눈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남에 대한 배려심이 이렇게 많은가” 말하곤 했습니다.
김규항 =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보통의 회사가 아니라 대학이니 다를 거라 생각하셨지요.
김순자 = 처음 출근해보니 엘리베이터에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것은 약한 자를 돕고 사랑하는 힘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라고 적혀 있었어요. 지성인들이 있는 곳이 역시 다르구나 감탄했죠. 학장이나 교수들은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으니 얼마나 훌륭할까 기대했고 내 자식 같은 학생들을 위해 청소하는 게 뿌듯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너무도 달랐어요. 배운 사람들이 오히려 더 이기주의적이고 악랄했어요.
김규항 = 김 선생님은 직접 체험을 통해서 노동문제나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혼자 세상의 모든 체험을 다 할 수는 없지요. 지식을 갖는다거나 배운다는 건 그런 체험을 일일이 다하지 않고도 사회를 분별하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기도 한데요. 우리 사회에선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습니다.
김순자 = 드물지만 우리 투쟁에 관심을 갖고 드러나지 않게 음료수도 갖다주고 하는 교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을 보면 배운 사람답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엔 교수들과 마주치면 존경스러워서 인사를 받든 안 받든 제가 먼저 인사했는데 이젠 안 합니다.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나보다 더 무식한 사람들, 더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에게 고개 숙일 이유가 없지요.
김규항 = 2007년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무현 정권이 비정규보호법이라는 이름의 비정규악법을 만든 후 가장 대표적인 투쟁사례로 지목될 만큼 치열했습니다. 알몸으로 저항하는 여성노동자들을 남자들이 끌어내는 야만적인 상황도 있었지요. 학생들이 구사대로 나선 건 참 가슴 아픈 대목이었습니다.
김순자 = 학생회에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했더니 못하겠다고 해서 그럼 가만히만 있어달라고 부탁했죠. 그런데 어느 날 500~600명이 체육복을 똑같이 입고 일렬로 죽 서서 구사대 노릇을 하더군요. 서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김규항 = 그간의 투쟁으로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은 전국의 청소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상황이 낫다고 하지만 여전히 최저 임금을 받습니다. 앞으로의 투쟁은 어때야 할까요.
김순자 = 청소노동자들이 다 용역업체 소속이라 투쟁에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 전국의 모든 청소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하는 것입니다. 그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김규항 = 사람은 투쟁할 때 더 훌륭해집니다. 노동운동을 하면서 내적 변화도 있으셨는지요.
김순자 = 맞습니다. 노조하고 노동운동 하기 전엔 저도 ‘한 이기주의’ 했습니다. 받는 만큼만 주고 주는 만큼 받으려고 했죠. 항상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고 불평하며 살았지만 저 역시도 그랬죠. 노조 만들고 노동운동하는 동지들과 지내다보니 내가 대한민국이 아니라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달라지더군요. 이기주의도 없어지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원래 좀 당찬 성격이라는 소릴 듣고는 살았지만 돈 많고 배운 사람들에겐 꿀리는 게 있었는데 그런 게 사라졌습니다.
김규항 = 열심히 전도하셔야겠군요.(웃음)
김순자 = 정말로 딴 세상에 사는 것 같고 새롭게 태어난 느낌입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에게 꿀려 사는 분들에게 투쟁하라고, 그러면 삶이 바뀐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김규항 =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셨지만 대공장 정규직 노조들과 노동운동은 걱정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김순자 = 처음에 투쟁할 때는 노조나 노동운동하는 분들은 다 고맙고 눈물 나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울 노동자대회에 처음 참여했을 때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던 정갑득씨가 발언을 하는데 동지들이 그렇게 불신하고 욕을 하더라구요. 우리가 힘을 합쳐도 될까말까한데 왜 저러나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 대해 더 알게 되면서 왜 그랬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김규항 = 만 명에겐 만 개의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 ‘다름’은 존중하되 운동을 망가트리는 경향에 대해선 단호해야 합니다. 그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김순자 = 몇 안 되는 저희 노조원들도 다 개성이 다릅니다. 간부를 맡은 사람은 그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투쟁에는 잘못된 생각이나 주장도 늘 따라다닙니다. 저희 투쟁할 때도 용역업체에서 복직 연락이 왔는데 연대노조 위원장은 바로 받으면 도로 다 잘린다 하고 또 한쪽에선 연대노조 위원장이 너무 깐깐하니 민주노총에 교섭권을 넘겨라 하고 참 혼란스러운 상황이 많았습니다. 처음엔 참 힘들었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성장한 것 같습니다.
김규항 = 국회의원이 되려는 것도 투쟁의 연장선상에 있습니까.
김순자 = 노동자들 집회 같은 데 가면 왜 “정치는 현장으로부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저게 무슨 말일까 늘 의문을 갖곤 했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정치는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만 알았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비례대표가 되겠다고 결심하고도 마음 한편으론 그런 생각을 완전히 씻어내진 못했습니다. 각오는 했지만 이게 맞는 것일까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는데 어제 제 생각이 확 바뀌어버렸습니다.
김규항 = 어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순자 = 어제 부산 지역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을 만났습니다. 고신대는 노조 만든 지 3년 정도 되었다는데 노조원이 18명이더군요. 휴게실이 한눈에 보기에도 너무 초라하고 또 학교 안에서 기가 죽어있달까 눈치를 본달까 그런 게 느껴졌습니다. 제가 “청소노동자도 정치할 수 있습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우리를 대변해주지 않습니다. 제가 국회로 가서 우리 노동자들에게 잘못하는 사람들 다 빗자루로 쓸어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분리할 건 분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깨끗하게 청소하겠습니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분들이 억수로 좋아하고 너무나 신명이 났습니다. 이분들이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구나, ‘정치는 현장으로부터’라는 말이 바로 이거구나 깨달았습니다. 내가 하길 잘했구나 싶었습니다.
김규항 = 정치에 대한, 진보정치에 대한 쉽고 명료한 설명으로 인용할 만한 이야기입니다. 그나저나 사업장 동료들은 걱정도 하겠습니다.
김순자 = 언니가 없으면 우짜노 바로 탄압 당할지도 모르는데 우린 우짜노 말합니다. 그래서 정치를 하게 되면 제가 더 큰 방패막이가 된다며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김규항 = 용역업체 사장이나 학장이나 교직원들도 저 양반이 저러다 진짜 국회의원 되는가, 정몽준하고 국회에서 맞짱뜨는가 싶어 걱정이 많겠습니다.(웃음) 따님은 뭐라고 하던가요.
김순자 = 청소노동자로 일하면서 내가 사람이 아니라 노예구나 싶어서 불만과 분노가 쌓여갔지만 비정규직은 노조 못하는 줄 알았어요. 노조는 현대중공업 같은 큰 회사의 노동자들이나 하는 걸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연대노조가 있다는 걸 알고 노조를 하게 되고 투쟁하게 되었죠. 10여년 동안 그런 모든 이야기들을 매일 저녁에 딸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해왔습니다. 그래서 딸은 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압니다. 이번에도 ‘울엄마 참 멋있다’ 하대요.
김규항 = 10년 동안 매일이면 세뇌의 결과인가요?(웃음) 굳이 진보신당을 선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김순자 = 민주당은 우리 비정규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고려할 이유가 없고 그동안 투쟁하면서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다 연대했지만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민노당이 유시민 쪽과 합치면서 노동자를 대변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었고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당하면서 부담이 줄었습니다.
김규항 = 민주당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들이 집권했을 때 어떠셨나요.
김순자 = 김대중 대통령이 되었을 때 사상을 떠나서 저렇게 경륜이 있는 분이 정치를 하면 얼마나 잘할까 기대가 참 컸습니다. 그런데 우리 노동자들 힘들게 하는 법 만들고 또 노무현 대통령은 전에 현대중공업과 싸울 때 와서 응원하고 했던 분인데 또 비정규 악법을 만들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가더라구요. 무슨 사정이 있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디다. 그러나 무슨 사정이 있다고 해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제 또래들이 이른바 386세대의 핵심입니다. 80년대에 20대였고 다들 노동자 민중의 편에 서겠다고 노동현장에도 들어가고 감옥살이도 하고 죽기도 많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거치면서 다들 교수도 되고 작가도 되고 언론인도 되고 사장도 되고 하면서 이젠 또 하나의 기득권 세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명박 정권 교체를 위해 일단 합치는 게 노동자 민중을 위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김순자 = 제가 지금 우리 나이로 예순입니다. 저만 생각하면 그런 분들의 주장에 적당히 동의하면서 무난하게 살다 가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젊은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민주화를 100년쯤 해왔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민주화로 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자꾸 이명박 핑계대고 되돌리면 어떻게 합니까. 어렵더라도 민주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규항 = 그분들은 이명박 정권 교체가 민주화라고 합니다. 심지어 ‘진보집권’이라고도 합니다.
김순자 = 민주화는 노동자 서민들이 사람 대접받고 행복하게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 거고 그런 사회로 가는 투쟁이 진보 아닙니까. 그런데 노동자 서민들을 힘들게 만든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돌아가는 게 어떻게 민주화고 진보인가요. 그 두 정권이 민주화를 안 하고 진보를 안 해서 국민들이 너무 살기 힘들어지니까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세웠던 거 아닙니까.
김규항 = 김 선생님과 그분들은 민주화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화는 새누리당이나 조·중·동이 아니라 자신들이 집권하는 것입니다. 물론 민주화의 본디 의미로 보면 김 선생님 생각이 맞습니다. 초등학교만 다닌 분이 많이 배운 사람들보다 훨씬 유식하시니 세상이 바뀌긴 바뀔 건가 봅니다.(웃음)
김순자 = 브라질 룰라 전 대통령이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존경받습니까. 저보다 학벌이 못하다고 초등학교 중퇴했다고 하대요.(웃음) 세상이 다양한 만큼 정치도 다양한 사람들이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은 돈 많고 배운 사람들을 대변하고 저 같은 사람들은 서민과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를 하면 됩니다.
김규항 = 우리 정치의 문제는 보수 정치인들이 부자와 권력자를 확실하게 대변하는데 진보를 말하는 정치인들은 서민들과 노동자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돈 많고 배운 사람들끼리 보수 진보로 편 갈라서 권력 싸움만 하죠. 얼마 전 한국에 온 스웨덴의 한 정치인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은 총리나 총리실 청소노동자나 똑같이 대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정치인이 스웨덴에서 보수쪽 정치인이었습니다. 물론 그 사회도 옛날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김순자 = 노동자들이 돈 많고 배운 사람에게 정치를 내맡기지 않고 정치의 주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변한 걸로 압니다. 우리 아이들은 꼭 그런 세상에서 살면 좋겠습니다.
김규항 = 정치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의회정치만 정치가 아니라 운동도 중요한 정치입니다. 선거 결과가 무엇이든 좋은 정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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