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세브란스병원에 '책읽는병원' 1호관이 개관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도서관법>에 '병원도서관'도 공공도서관의 범주에 속해 있습니다만, 환자를 위한 병원도서관은 사실상 부재의 상태에 있습니다. 대학병원에는 의학도서관(medical library)은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를 위한 병원도서관(patients' library)은 없습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도 지하 창고 구석에 때 지난 잡지와 이곳저곳에서 기증 받은 도서가 일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지난 해부터 환자와 가족에게 올바른 의료 정보를 전달하고 정서적 치유에 도움이 되는 양질의 도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질병 극복의 의지를 북돋는 데 기여하고자 환우와 그 가족을 위한 치유의 도서관인 ‘책읽는병원’ 건립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자 하였습니다.
현대 병원에는 각종 장비와 사람이 계속 늘어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공간도 아주 어렵게 마련하였습니다. '책읽는병원'의 방안을 설득하기 위해 병원장 등 병원 경영진에게 프레젠테이션도 몇 번이나 거듭하는 등 '책읽는병원'을 구축하기 위한 과정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병원도서관과 관련한 공부를 하면서 미국(1970년)이나 영국(1972년)의 각 도서관협회가 병원도서관 기준을 마련한 것도 확인할 수 있었고, 덴마크에서는 병원인가지침으로 병원 설립 인가 시 도서관 설치를 의무화하고, 도서관 설치가 불가능할 경우 공공도서관과 협동하여 도서관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핀란드의 경우에는 1978년까지 병원도서관 운영비의 90%를 정부가 지원했고 1979년부터는 공공도서관이 병원도서관 운영비의 86%를 부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350병상 이상의 병원에는 최소 1인의 사서 고용이 의무화되어 있더군요.
유네스코 공공도서관선언(1994)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음도 되새겨보았습니다. "공공도서관의 서비스는 연령, 인종, 성별, 종교, 국적, 언어 또는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접근의 평등성 원칙에 입각하여 제공되어야 한다. 소수 민족, 장애인, 입원환자나 수형자를 포함하여 어떠한 이유에서건 공공도서관의 정규적 서비스와 자료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서비스와 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일컬어지는 장기려 선생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왜 아픈 사람을 환자(患者)라고 하는지 아나? 환(患)은 꿰맬관(串) 자와 마음심(心) 자로 이루어져 있네. 상처받은 마음을 꿰매야 한다는 뜻이지. 환자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필요해. 눈에 보이는 상처는 치유하기 쉽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거든. 진정한 의사는 환자의 마음을 고치는 사람이라네."
마음 같아서는 충분한 공간에 넉넉한 장서가 있고, 또한 환자와 가족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도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었으나 마음껏 일을 펼치지는 못한 듯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책읽는병원' 사업 진행과정에 마침 스웨덴 스톡홀름을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카롤린스카 병원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어린이병원도서관Astrid Lindgrens barnsjukhusbibliotek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런 병원도서관을 우리나라에도 꼭 만들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먹었는데, 그 마음에 온전히 다 가닿지는 못한 듯싶습니다. 이 병원도서관은 대학병원인 카롤린스카 병원조직의 일부입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디자이너 안 마리 브롬스Anne-Marie Broms가 디자인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책읽기에 마취되는 데 도움을 주는 도서관"입니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습니다. 이번에 만들어진 '책읽는병원'은 조촐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병원 관계자들의 인식이 크게 바뀌어 제대로 된 '책읽는병원'을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래 사진은 이번 '책읽는병원' 사업에 고생을 많이 한 신영호 부장이 찍은 것들입니다. 디자인은 박영효 교수가 했습니다. 재원은 사노피아벤티스에서 제공하였고, 교보문고가 도서를 일부 기증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강남세브란스병원의 김명훈 사회사업팀장이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운영은 병원 내에 의학도서관 사서를 포함한 '책읽는병원' 운영위원회가 꾸려졌고, 자원봉사자들이 도와주기로 하였습니다.
환자와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꿰매주는 '책읽는병원'이 우리나라 병원 곳곳에 설치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강남세브란스병원에 환자/가족 도서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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