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년 4월, 중세시대 흑사병마냥 흉흉한 소문이 검찰 내부망을 타고 미친 듯이 퍼졌습니다.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와 귀족검사가 공연히 또는 은밀히 성폭력범죄를 저질렀고, 추태를 목격한 수사관들의 문제 제기로 소란이 일자, 사표를 던졌다고. 서울남부지검과 대검 감찰1과에서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을 조사하기에 이르니, 소문이 담을 넘어 기자들에게까지 흘러들었습니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사표가 황급히 수리되었고, 검찰총장은 대검 간부회의에서 부장검사의 부적절한 언행을 개탄하는 방식으로 귀족검사의 범행을 은폐하고 부장검사의 범행을 축소하였지요. 검찰은 부장검사가 성희롱 ‘발언’을 하였을 뿐이라고 사실을 호도하였고, 귀족검사의 갑작스러운 사표에 대해 서울남부지검 2차장은 “그냥 좀 힘들어서 쉬고 싶다고 하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보고받았다”, 대검 대변인실은 “감찰은 모른다고 한다. 위에 있는 부장검사와 사이가 안 좋아 나간 것이라고 한다”고 해명했습니다.
문제의 부장검사가 자신의 범죄를 덮고 2억원이 넘는 명퇴금까지 쥐여준 특별한 은사에 감읍하기보다, 귀족검사를 지키기 위해 기자들에게 먹잇감 던져주듯 자신의 비위를 일부 인정해버린 검찰을 원망한다는 풍문을 듣고 그 뻔뻔함에 모두들 혀를 찼지요. 그리고, 잘 나가는 부장검사조차 희생양 삼는 귀족검사의 고귀한 혈통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일삼던 간부들은 검찰 내 성폭력범죄를 덮으며 언제나처럼 법과 원칙을 강조하였고, 무슨 일이 우리에게 있었냐는 듯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은 묵묵히 검찰 밖 성폭력사범들을 수사하였습니다. 한편, 2015년 그해, 검찰은 학내 성폭력을 덮은 교장을 직무유기로 법정에 세웠지요. 우리는 덮어도 되지만, 교장 따위가 그러면 안 되니까.
2018년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한 방송사에서 은폐됐던 성폭력사건들을 거론하자, 검찰은 마치 처음 듣는다는 듯 놀라며 대검 캐비닛에 숨겨둔 기록을 마지못해 꺼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결국 부장검사에게는 500만원의 벌금형이 확정됐고, 귀족검사는 지난 1월 징역 10월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 중입니다.
작년 상반기, 저는 성폭력사건을 은폐한 간부들에 대한 수사와 감찰을 대검에 정식으로 요청했습니다. 문무일 총장이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에게 심각한 얼굴로 “진상조사를 철저히 하겠다”고 다짐하는 걸 보았지만, 내버려두면 성폭력사범들만 꼬리 자르기 할 것이 빤히 보였거든요.
2018년 5월4일. 대검은 감찰 관련자들의 비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통보하며 제 요청건을 종결하였고, 조직적 은폐에 관여한 간부들을 대거 검사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수뇌부 명령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성실함은 조직에의 헌신과 충성으로 칭송받고, 인사로 보답받는 걸 늘 보아왔지요.
한편, 2018년 그해, 검찰은 민정수석으로서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을 눈감은 우병우에 대해 1심 유죄 판결을 받아냈고, 법원행정처 차장으로서 비위판사에 대한 징계조치를 하지 않은 임종헌도 구속했습니다. 우리는 덮어도 되지만, 이미 끈 떨어진 민정수석이나 판사 따위가 그러면 안 되니까. 수사권과 기소권은 검찰의 여의봉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진태 총장 등이 저지른 조직범죄를 문재인 정부의 문무일 총장이 여전히 감싸주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착잡하기 그지없습니다. 정권은 유한하나, 검찰은 영원하고, 끈끈한 선후배로 이어진 검찰은 밖으로 칼을 겨눌 뿐 내부의 곪은 부위를 도려낼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검찰 내 성폭력조차 침묵한 검사들이 위법한 상사의 지시에 이의 제기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뻔한 사건조차 그 책임을 묻지 않고서야, 검사들의 학습된 무기력을 고칠 수 있겠으며, 은폐된 검찰 내 복잡한 진실들을 밝힐 수 있을까요?
부득이, 저는 지면을 빌려 검찰권을 감당할 자격이 없는 검사들을 고발합니다. 저는 장영수 검사장을 고발합니다. 그는 2015년 대검 감찰1과장으로 서울남부지검에서 벌어진 성폭력사건을 조사하고도 관련자를 형사입건하지 아니한 채 범죄를 덮었습니다.
저는 문찬석 검사장과 여환섭 검사장을 고발합니다. 그들은 당시 서울남부지검 2차장검사와 대검 대변인으로서 거짓 해명으로 국민들을 속이고, 검찰의 조직적 은폐에 적극 가담하였습니다.
저는 문무일 검찰총장을 고발합니다. 제가 장영수 등의 직무유기에 대한 수사와 감찰을 정식으로 요청하였음에도, 형사처벌은커녕 징계조차 하지 아니하고 검사장 등 요직으로 발탁했습니다.
검찰권을 검찰에 위임한 주권자 국민 여러분들이 고발인의 고발 내용을 판단하여주십시오!
임은정 |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출처 https://goo.gl/2q2W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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