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드가 앨런 포우의 ‘붉은 가면의 죽음’
[도시와문화정책⑨] 바이러스, 도시, 문화정책
애드거 앨런 포우가 1840년대에 쓴 단편 소설인 <붉은 죽음의 가면>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가상의 시공간, 대강 중세 중후반의 유럽이라 추정되는 지역의 어느 도시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세상은 몇 개월 째 ‘적사병(Red Death)’이라는 무시무시한 질병으로 가득 차 있다. 명칭만 봐도 흑사병(Black Death)을 연상하게 만드는 이 병은, 사실 죽음 그 자체이다. 이 병균에 감염되면 곧 코피를 쏟고 무조건 죽는다. 환자의 몸과 얼굴에 생기는 진홍색 반점은 적사병의 조짐으로, 그 조짐이 보이고 반 시간 안에 모두 죽는다. 동정도, 치료도 불가능한 질병이다. 도시 인구의 절반 정도가 적사병으로 희생되자 도시의 지배자인 프로스페로 대공은 그런 죽음의 역병을 피해 자신을 추종하는 1000여 명의 상류층들과 함께 피신처에 머문다. 굳은 성벽과 쇠를 녹여 용접한 쇠문으로 둘러쌓인 사원은 주인장의 호사스럽고 기괴한 취향에 맞춰 장엄하고도 매우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곳에서는 죽음의 공포나 슬픔의 심연은 잊혀져 갔다. “대공은 그 안에 모든 오락거리를 다 가져다 놓았다. 광대가 있었고, 즉흥시를 짓는 시인이 있었고, 발레리나가 있었고, 음악가들이 있었고, 미인들이 있었고 술이 있었다. 이 모든 것과 함께 안전함이 사원 안에 있었다. 적사병만이 없었다.” 그러나 대공이 자랑하는 은신처에서의 쾌락의 파티가 절정에 이르는 어느 저녁 적사병은 붉은 희생자의 가면을 쓴 인격체의 모습으로 그곳을 엄습한다. 다분히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은 환상 문학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평생 가난에 시달리며 전염병(결핵)으로 가족을 모두 잃어야 했던 포우가 바라본 19세기 자본주의 산업화 초창기의 잔혹한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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