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古今- 5.31> 1962년 5월 31일 '어느 평범한 가장(家長)'이 처형당한다. 이름은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아이히만은 1906년생. 그가 오스트리아 나치당에 입당한 것은 1932년. 오스트리아
에서 나치당이 불법화하자 독일로 가서 계속 활동하였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의 언어인 이디시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유대인이주국 책임자가 되었다가 계속 출세 가도를 달려 나중에는 국가안보경찰본부의 유대임 담당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 점령 하의 유럽에서 유대인 탄압과 학살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 아이히만이 1942년 나치에서 복무할 당시의 모습(왼쪽)과 이스라엘에서 재판을 받을 무렵인 1961년 모습. 사진 출처: http://www.dhm.de ⓒ | ||
그러다가 1960년 5월, 유대인 학살의 책임자를 끈질기게 추적하던 이스라엘의 비밀정보부 모사드의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이스라엘로 강제 연행되었다.
1961년 4월부터 시작된 재판 과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Eichman in Jerusalem: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년)로 널리 알려진 바 있다.(몇 해 전, 출판 일을 하고 있을 때 이 책을 번역 출간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출간하지 못했다. 하루 빨리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을 통해 이스라엘 측 검사 기데온 하우스너와 아이히만의 독일인 변호사 로베르트 세르바티우스의 논전은 국제법(이스라엘 정보부의 아이히만 납치는 국제법 위반이다)과 재판 관할권(예루살렘 법정의 편파적 구성 문제), 집단 살해와 관련한 이들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시효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논란이 있었지만, 1961년 12월 15일, 예루살렘의 법정은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인도에 대한 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언도하였고, 1962년 5월 31일 마침내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대량학살의 토양을 들춰 낸, 한나 아렌트의 문제 제기
아이히만이 대량 학살(genocide)의 책임자라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겠지만, 아이히만이 문제적 인물이 되었던 까닭은 한나 아렌트의 문제 제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은 듯싶다.
일종의 방청기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통해 아렌트가 제기한 문제는 부제에서 보듯이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단지 당과 조국에 대해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평범한 관료였을 뿐이라는 게 아렌트의 관찰이었다.
악의 평범성!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악한(惡漢)들이 괴물처럼 생겼거나 악마의 형상을 한 인간이 아니며, 실은 아주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이 이 세계에 어떤 공적인 의미가 있는 것인가 하는 반성적 사고를 전혀 하지 않은 채 단지 맡은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활하는 이들의 면모를 보았던 것이다.
집단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악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충실했던 아주 평범한 가장이었다는 것은 우리도 곱씹어 보아야 할 듯싶다.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개인들이 전체주의를 만들어낸다는 것, 맹목적인 충성과 아무런 반성적 사고 없이 일에 몰두하는 것이 사회와 역사에 크나 큰 죄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정치철학적인 문제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맹목적인 관료, 지시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기계적인 인간인 아이히만은 바로 우리의 이웃일 수도 있고, 바로 나 자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이히만에 대해 이야기하면, 흔히들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같은 존재를 떠올려 왔다. 그러나 과연 이근안과 같은 존재만이 아이히만과 닮아 있을까.
오늘 우리는 이 '게이트'가 바로 저 '게이트' 같은, 게이트들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다. 이른바 권력 비리라는 것이다. 권력 비리가 계속되는 것은 분명 비리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비리가 가능하도록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바로 비리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의 청탁과 압력에 굴복하는 '평범한 가장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 중에 무슨 교통사고라도 나면, 누구 '힘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우리들 평범한 시민들 때문이 아닐까. '힘있는 사람'들의 전화 한 통화에 혹시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마음졸이며 알게 모르게 힘을 써주고 다른 곳으로 전화를 돌리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위에서 내려온 지시이니까 그것이 부당하다 하더라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은 채 그냥 사무적으로 빈틈없이 처리하기만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 '아이히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 내부의 '아이히만', 그 악의 평범성에 종지부를 찍지 않는 한, 권력 비리는 계속될 것이고, 부정 부패는 근절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