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199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Gunter Grass)가 5월 27일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게 된다. 중앙대 한독문화연구소와 주한독일문화원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학술 심포지엄(5월 29~5월 30일, 중앙대 아트센터 대강당)에서 '독일통일의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를 할 예정이다.
지난 5월 8일자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귄터 그라스가 황석영 씨와 함께 방북하리라는 보도를 했었고 국내 언론에서도 이 기사를 인용 보도한 바 있지만, 이 방북계획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번 심포지엄 기간 중에 황석영 씨 등과의 대담은 이루어질 예정이다.
귄터 그라스라고 하면 독일의 현대문학사에서 전후 청년문학의 대표적인 집단인 '47그룹'의 멤버이며 , 무엇보다도 세 살에 성장이 멈춰버린 오스카의 눈을 통해 현실을 그리고 있는 <양철북 Die Blechtrommel>(1959)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1979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에 나온, 자폐증에 걸린 한 어린이의 형상은 지금도 내 뇌리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괴성을 지름으로써 유리창을 깨뜨린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그러져 있는 성인들의 윤리, 그리고 '나치가 등장하고 패배하는 정치 현실'에 개입하는 어린이였다.
귄터 그라스는 위르겐 하버마스 등과 함께 독일 통일을 적극적으로 비판해온 작가로도 유명하다.
피해자의 민족주의, 가해자의 민족주의…그 경험의 차이는?
통일에 대한 비판! 우리처럼 '민족주의'의 틀이 강하고 거의 무조건적인 통일 지상주의가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무슨 일인가 싶지만, 권터 그라스를 비롯한 지식인들의 통일 비판에는 귀를 기울여야 할 점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귄터 그라스의 통일 비판의 논리는 독일이 과거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제국, 배타적인 민족국가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마틴 발저와 논쟁 과정에서, 귄터 그라스는 독일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했던 발저와는 반대로 아우슈비츠와 불가불의 관계에 있는 민족 감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민족 감정에 바탕을 둔 통일은 비이성적인 불행을 재생산할 거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과연 독일이 통일하는 과정에서 민족 감정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면밀하게 더 검토해야 하겠지만(민족 감정 없이 민족 통일이 가능한가라는 문제), 분명 현실은 귄터 그라스가 의도하고 주장했던 바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동독에서는 '우리가 인민이다'라는 자유에 대한 의지가 '우리는 한 민족이다'라는 자본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 통일한 지 벌써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독일 내부에서도 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바뀐 듯하다. 왜냐하면 급속한 통일 과정을 겪으면서 원치 않았던 통일 후유증을 아주 심하게 앓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세계화 정보화로 말미암아 민족주의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기에 살고 있다.
또한 한국 경제의 발전에 따라 저항적 민족주의의 긍정성보다는 민족주의의 배타성을 우려하는 상황에 이름으로써 민족주의 자체를 새롭게 받아들여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래서 지난 시기 한국인을 결속시켰던 민족공동체적인 의식이 갖는 편협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여기 저기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폐해를 '피해자'로서 경험했던 한국인과, 민족주의의 폐해를 '가해자'로서 경험했던 독일인의 현실은 다르다.
그러나 '피해자'의 민족주의가 '가해자'의 민족주의와 얼마나 다른 것일까 하는 점도 생각해보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귄터 그라스가 우리에게 들려줄 '독일통일의 교훈'이 어떤 것일지 더욱 궁금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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