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은 월드컵 개최에도 '굴하지 않고' 파업을 강행할 태세다.
5월 23일, 수도권에서는 종묘공원에서 명동성당까지, 충남에서는 천안역, 전북에서는 전북 코아 백화점 등에서 '총력투쟁승리 지역별 결의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또 25일에는 부산시청 앞에서 지역별 파업집회를 연다고 한다.
이미 지난 20일 오전 11시, 민주노총은 집중파업과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는 기자회견을 한 바 있다.
노동탄압 중단,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 5일 근무제 도입, 국가기간산업 사유화 중단, 산별 교섭 수용 등을 요구하고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민주노총의 기자회견이 있던 다음날인 5월 21일,김대중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 월드컵은 어느 정권이나 정당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민족적 차원에서 봐야 한다”"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는 기회인 월드컵 기간 중에는 단합하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김 대통령은 또 "노동단체는 지금 해결되지 않는 것은 월드컵 대회가 끝난 후 해결하면 된다”며 국민은 정쟁, 노사분규를 중단하고 월드컵 성공에 힘을 모아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들이 파업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국 아닌가
이미 '월드컵 파업'은 사회적 이슈로 각종 언론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대한매일>은 5월 9일자 사설에서 '월드컵 앞두고 파업 안된다'는 제목 아래, "노조가 목적달성을 위해 파업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월드컵을 전후한 기간에는 자제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중앙일보>는 5월 13일자 "노동계, 월드컵 볼모 삼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올림픽이 해외에 한국을 알리는 계기였다면 월드컵이야말로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고 대외신인도를 제고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다. 그런데도 노동계가 이처럼 엇나간다면 이는 집단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동아일보>는 5월 15일자 칼럼난에 예종석 한양대 교수(경영학)의 "월드컵을 볼모 삼지 마라"는 시론을 실었다. 예 교수는 이 시론에서 "요즈음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은 최경주 박세리 박찬호 김미현 같은 젊은 스포츠 스타들이 도맡아하고 있다. 이 젊은 아들,딸들은 낯선 이국 땅의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나라를 빛내고 있는데 우리는 안방에서 하는 큰 잔치를 가족의 이기심 때문에 망칠 지경에 와 있다.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일갈했다.
<조선일보>는 5월 18일 사설에서 "월드컵 파업 최선의 자제력을"이라는 제목 아래, " 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노동계 일부가 ‘총파업 불사(不辭)’를 선언하며 강경투쟁 노선으로 치닫고 있어 걱정스럽다. 전 세계인이 주시하는 월드컵 대회운영이 노·사의 물리적 충돌로 차질을 빚고,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손님을 맞는 주인의 도리가 아닐 뿐 아니라 그렇게 해서 형편없이 구겨진 나라의 체면은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논리를 폈다.
월드컵을 통해 '성숙한 한국'의 얼굴을 보여주기 원한다면…
<한겨레신문>에서는 월드컵 파업과 관련한 눈에 띄는 사설을 싣지 않고 있다.
다만 2002년 5월 9일자의 '취재파일'에서 박민희 기자는 '어이없는 월드컵 노사평화선언'이라는 제목 아래, 월드컵을 앞두고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월드컵 노사평화선언이라는 행사를 소개하면서 노동부의 전시행정을 이렇게 꼬집었다.
"정말 사이가 좋다면 정말 서로를 존중하는 노사관계라면 정부까지 나서서 '선언'을 하도록 할 필요가 있을까. 발전파업에 참여했던 노조원들이 매달 월급의 절반 이상을 가압류 당하고 있고, 공무원노조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징계, 수배당하는 공무원들이 있다. 감옥에는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50명의 노동자가 갇혀 있고 같은 일자리에서 10년 넘게 근무하고도 '계약 해지, 재계약 안함'이라는 회사의 통보 한마디로 아무런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한숨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동원식 행사는 월드컵을 앞두고 서둘러 멀쩡한 보도블록을 바꾸고, 노점상들을 몰아내느라 부산을 떠는 것과 똑같은 전시행정의 표본이다. 노동부는 노사갈등이 이런 전시성 행사로 극복될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 것일까?"
그런데, 기억을 되살리자면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이 열릴 즈음 프랑스에서도 파업은 있었다.
그 해 6월 초의 각 일간지에는 연봉 삭감을 반대하여 월드컵 보이콧을 공약해온 프랑스 국영 항공사 에어프랑스 조종사들의 파업 강행 소식이 실려 있다.
당시 우리 나라의 언론들은 이들 조종사들의 파업 때문에 월드컵에 큰 차질이라도 생길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다 아시다시피 월드컵을 개최한 프랑스는 그들이 원하는 여러 가지 효과를 모두 거두었으며, 프랑스 축구 대표팀은 '아트 사커'라는 명칭까지 얻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프랑스 월드컵, 에어프랑스 조종사의 파업, 그리고 프랑스 축구팀의 우승….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월드컵 경기가 열리니까 파업은 안 된다"는 주장에는 뭔가 억지스러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진정 프랑스의 힘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 그리고 우승에 있는 게 아니라, 월드컵과 노동자의 권리를 분리해서 받아들일 줄 아는 성숙한 시민의식에 있을 터이다.
노동을 하는 이들, 즉 노동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자신의 힘을 드러내는 방법은 역설적이지만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노동자는 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파업 즉 일에서 손을 놓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지막 생존 수단을 걸고 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이 파업을 강행할 때에는 뭔가 절실한 요구와 주장이 있는 것이다.
나도 어지간히 축구를 좋아한다. 우리 나라 경기가 있으면, '코리아 팀 화이팅'을 외친다. 그러나 그 '코리아 팀'에는 파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심정의 노동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축구장 안의 응원 소리로, 축구장 밖에서 울려퍼지는 노동자의 목소리를 억누르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노동자는 월드컵이 열리든 열리지 않든, 자신의 생존과 인간 존엄성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다.
월드컵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대회가 열리더라도 노동자들이 파업을 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선진국이 아닌가.
월드컵을 통해 성숙한 '한국의 얼굴'을 보여주기를 원한다고 말하면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니까 파업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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