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5784.html
2014년 5월 7일 수요일
[조한혜정 칼럼]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민
고등학교 교사인 후배가 이메일을 보내왔다. 한 학생이 세월호에 탔던 중학교 친구 시신을 아직 찾지 못했다며 마음 아파하기에 함께 안산 합동분향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분향소 근처 일대가 현수막으로 덮여 침울하기 그지없는데다 막상 거대한 분향소 제단을 대하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학생증 사진들이 즐비하게 놓인 제단 앞에서 생각도 감각도 정지된 것 같았다고 했다. 갑자기 어른들 모두 거기라도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 내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적어도 어른들은 그 제단에서 모두 애도하고 참회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3주가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는 지속되고 있다. 사망 263명, 실종 39명(6일 오후 2시 현재). 사망이 확인된 고등학생만 210여명이다. 배우자를 잃거나 부모를 잃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은 있지만, 자식을 잃은 이를 지칭하는 말은 없다고 한다. 국가와 회사의 관리 소홀로 생긴 끔찍한 일을 이렇게 많은 부모들이 겪어야 하다니! 돈만 되면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과 그들을 비호한 정권이 만들어낸 이 참사의 현장에서, 300번의 예고와 30번의 작은 사고 이후에 큰 사고가 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떠올린다. 이번 경고가 치명적인 경고임이 분명하다.
지금도 나는 질문을 멈추지 못한다. 왜 선실에 가만있으라고 했으며, 그런다고 가만있었단 말인가? 왜 제대로 구조하지 못했단 말인가? 선장이 월급 270만원을 받는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고? 언딘이라는 이름의 구조업체와 해경, 구원파와 해운회사, 법규 개정 등 수많은 비리와 의혹들을 접하면서 그간 믿어온 직업윤리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만난다. 작게는 세월호 선장의 초라함과 지시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공무원들의 몸사림이 만들어낸 참극, 크게는 민영화/시장화와 규제완화를 추진해온 그간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가 이제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상황을 만든 데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던, 간접적으로 승인했던, 방관했던, 또는 더 직접적으로 대항하지 못했던 나. 제도정치만을 정치라고 생각하고 내 안의 새로운 삶의 장을 만들어내지 못한 나와 대면한다.
황당한 참사 앞에서 국가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물으면서 이민을 가겠다던 엄마들이 이제 이 땅에서 아이를 제대로 키우겠다며 나서기 시작했다. 강남의 육아 커뮤니티 회원 엄마들이 지난 30일 “소중한 희생과 이 간절한 행보가 헛되이 되지 않기를!” “사회적 연대로 엄마들이 지키자”며 행진을 벌였고 어린이날에도 크고 작은 엄마들 모임들이 만들어졌다. 바라건대 그 엄마들처럼 학교별로, 또는 이웃끼리 삼삼오오 모여 어린이의 달인 5월이 다 가기 전에 분향소에 다녀오시기 바란다. 거대한 악은 생각하기를 포기할 때 만들어진다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애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그 기운이 어딘가에 남아 더 큰 사고를 낳을 것이고 우리 모두에게 재앙으로 남는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박근혜 대통령도 날마다 분향소에 가서 그곳에 온 엄마들을 만나면 이번 국변을 어떻게 해결해낼지, 앞으로의 재난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지혜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라앉는 배 안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진도 체육관에서, 안산 분향소에서, 또는 사이렌 소리 요란한 거리에서 침착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사람을 구하고, 자원봉사를 하며 실질적 도움과 위로를 주는 사람들, 그들의 작은 노력이 악의 기운을 막아왔다. “반성하고 분노하자, 행동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행동하기 전에 제대로 생각하자. 우리가 원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가족을 떠나보내지 않아도 되는 나라, 타인에게 몹쓸 짓 하지 않고 제대로 먹고살아갈 수 있는 나라이다. ‘내’ 아이를 위해 ‘우리’ 아이들을 함께 돌보며 시대를 학습하자. 다가오는 교육감과 지자체 선거에서 제대로 투표하고, 쓸 만한 인물이 없으면 스스로 출사표를 던지는 그런 엄마들을 보고 싶다. 할머니 지원부대는 늘 그대들 뒤에 강건히 버티고 있을 것이다.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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