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논어의 첫 구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스승이 묻자 몇몇 학생이 쭈뼛쭈뼛하며 대답한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입니다."
- 맞습니다. 그 첫 구절이 '학(學)'으로 시작합니다. 공자는 지혜로운 분이셨는데 무엇이 더 배울 게 있다고 첫 마디부터 '학(學)'을 말씀하셨을까요. 학이시습지를 줄이면 '학습'이 되는데 배운 뒤에 익히는 것까지 포함한 말입니다. 공자가 말한 학습은 지식을 습득하는 일이 아니라 삶의 인식 기반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일입니다. 공부하는 일이 즐겁다는 것이 아니라, 공부로 깨닫고 다지는 단계단계가 기쁘다는 것입니다.
- 학(學)이란 한자 글자는, 아이들(子)이 집 안에서(家) 산가지(爻)를 가지고 숫자놀이를 하며 노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산(算)가지는 수를 셈하는 데 사용하는 막대로 옛사람들의 주판이지요. 배움이란 걸 옛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습(習)은 어린 새(羽)가 날개를 퍼득이며 날마다 스스로(日, 自)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익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해주지요. 조선 초의 학자 화담 서경덕은 어린 시절 어린 새가 자주 날아오르며 나는 법을 배우는 것을 보고 학문의 의미를 깨우쳤지요. 이를 조삭비(鳥數飛)라 합니다.
- '배우다'라는 말은 '배다'에 사동(使動, 하게 하다)의 의미를 지닌 '우'가 들어간 것입니다. '배다'라는 말은 우선 '임신하다'라는 의미가 있지요. '배다'라는 말은 '뱃속에 아이가 생겨나서 자라다'란 뜻으로 배(腹)와 상관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람에게만 쓰이는 게 아니라 포유류 동물의 새끼, 조류나 어류의 알, 줄기 속에 든 이삭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로 쓰인 '배우다'는 '배게 하다'로, 임신하게 하거나 생산하게 하거나 속에서 자라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식이 단순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의 태아(胎兒)를 '배우는 사람'이 품어서 그것을 속에서 키우는 것이 '배움'입니다. 아기를 낳는 것은 결국 산모이듯, 뭔가를 배우는 일 또한 스스로 그 지식의 어미가 되어 내부에서 피와 살을 붙이고 생명을 돋우는 일입니다. '배우고 익히다'를 같이 쓰게 되면 더욱 심오하지요. 몸 속에 '생각의 아기'를 잉태하는 것이 배우는 행위인 학(學)이고, 그것을 뱃속의 아기처럼 숙성(熟成)시키는 일이 바로 습(習)입니다.
- 또 하나. '배다'는 '스며들다'의 뜻이 있습니다. '배우다'는 '스며들게 하다'라는 의미도 됩니다. 스며드는 것은 조금씩 파고들어 큰 부분을 적시는 것이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이동이 있으며 점차 확장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또한 '버릇이 되어 익숙해지다'라는 뜻도 있지요. 습관이 된다는 것은 배움이 인간의 행동과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말하는 요체이기도 합니다. 냄새가 배는 것처럼 배움이 스며듭니다. 접촉이 있으며 물들어가게 되는 과정이 바로 배움입니다.
- 배움이란 말은 '임신하게 함'과 '스며들게 함'이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공자가 학이시습지의 기쁨을 말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요? 생각을 잉태하고 그것을 안에서 키워내주는 생명행위가 바로 배움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부에 앞서 이것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배움'입니다(이 대화 내용은 필자가 한 선지식(善知識) 강연에서 들었던 인상깊은 '배울 學' 강의를, 오산학교 분위기를 감안하면서 류영모의 화법으로 재구성해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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