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상품과 달리 도서 시장에서는 ‘90% 대폭 할인!’과 같은 파격적인 행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출판사가 책정한 정가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할인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도서정가제가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을 기준으로 3년마다 도서정가제의 폐지, 완화, 유지, 강화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에도 타당성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검토 결과는 오는 20일(월) 안으로 발표될 예정이다. 재검토 결과 발표를 앞둔 지금, 그간 이뤄진 논의를 토대로 도서정가제의 향방에 대해 가늠해 보자.
◇도서정가제의 효과를 둘러싼 갑론을박=2003년 법제화된 이후 2014년에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도서 판매의 최대 할인율을 정가의 10%로 제한하고, 증정품·마일리지와 같은 추가적인 경제상의 이익 또한 정가의 5% 내에서만 제공하고 있다. 이는 도서가 교육, 학술, 문화 발전에 필수적이며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공공재라는 전제에 기반한다. 출혈적 가격 경쟁을 방지해 도서를 생산하는 출판문화산업을 보호하고, 창작 및 출판환경의 다양성을 보장해 궁극적으로 문화 발전을 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도서정가제가 실제로 이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줄곧 의견이 갈려왔다. 우선 도서정가제의 효과를 긍정하는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출판 산업의 다양성을 증진시켜 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약 4만 7천 개였던 출판사 수는 2020년 약 6만 7천 개로 늘어났으며, 신간 발행 종수 또한 2014년 4만 8천여 종에서 2022년 6만 1천여 종으로 증가했다.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는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 작은 서점과 출판사의 존립이 가능해졌다”라며 “이로 인해 신인 저자의 발굴 및 등용이 용이해지고, 지역서점이 지역 문화 활동의 거점으로 자리 잡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도서정가제로 인해 할인 경쟁이 제한됨에 따라 책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출판시장이 되려 축소된다는 회의적 시각도 존재한다. 윤충한 교수(한양대 에리카 경제학부)는 “도서와 같이 수요가 가격 변화에 예민한 상품의 경우에는 가격 경쟁을 제한하면 생태계 자체가 위축되는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라며 “도서는 유튜브, OTT와 같은 다른 형태의 매체 및 여가 활동과도 경쟁 관계에 있는데 도서정가제는 이런 시장의 변화를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도서정가제 존치론의 손을 들어준 헌재=이렇듯 도서정가제의 정책 효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지만 지난 7월 헌법재판소(헌재)는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법률 조항에 합헌 결정을 내리며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한 청구인 측에서는 도서정가제가 가격 할인 등의 방법으로 마케팅 수요에 즉시 대처할 기회를 차단해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헌재는 도서정가제가 도서 시장에서의 자본력과 협상력의 차이를 완화하고, 지역서점과 중소형출판사 등의 위축과 도태를 막아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다양성 보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봤다. 또한 종이책 매출의 감소는 인터넷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가 초래한 결과로 볼 여지가 있으며, 도서정가제가 없었다면 이런 현상이 가속화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같은 판단은 도서정가제 존치론에 무게를 실어주며 재검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백원근 대표는 “이번 헌재 결정이 향후 도서정가제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또한 “제도의 근간을 뒤흔들기보다는 안정성을 기해야 할 시기라는 점이 다수 의견으로 제시됨에 따라 큰 틀은 유지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여전히 남아있는 세부 쟁점은=그러나 도서정가제의 조정 방향을 둘러싼 세부 쟁점의 결론은 여전히 미지수다. 특히 몇 가지 쟁점은 그 논의 결과에 따라 학생과 일반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목이 집중된다.
우선 대학 및 초·중등학교 도서관을 대상으로 5%의 경제상 이익도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이 쟁점이 되고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의 경우 공공기관 및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는 10%의 가격 할인만 제공할 수 있을 뿐 마일리지와 같은 5%의 경제상 이익 제공은 금지하고 있다. 이런 제한을 받는 대상에 대학 및 학교 도서관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역서점 일각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대학도서관을 중심으로 강한 반발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대학도서관연합회 정동진 사무총장은 “대학도서관에서 필요로 하는 서적은 지역서점에서 구하기 어려워 대형서점과의 계약을 통해 구입하고 있다”라며 “이는 대학도서관의 운영만 위축시킬 뿐 지역서점 활성화라는 목적과도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격 할인 허용 비율이 어떻게 변화될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저자, 출판사, 중소서점계에서는 모든 서점에서 할인 제공 없이 정가대로만 판매하도록 하는 완전 도서정가제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할인율의 유지 또는 확대를 요구하는 소비자와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충돌한다.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설문에 응한 독자의 약 91.8%가 할인율이 유지 또는 확대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할인율 축소에 반대하는 소비자 여론 역시 거센 만큼, 완전 도서정가제 도입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논의는 결국 사회 구성원이 출판 산업의 공공성을 어느 정도로 인정하며 보호할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도서정가제가 출판 시장의 다양성을 보장해 문화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반면,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소비자의 입장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두 입장 모두 타당한 만큼 이해당사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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