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4일 월요일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기본소득, 시민을 살아 있게 할 대안”/한겨레21 황예랑 기자


http://h21.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39412.html?fr_=mb2

칼 폴라니(1886~1964)의 유령이 맴돌고 있었다. 유령의 출몰 장소는 2012년 세계 각국의 총리, 장관,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세계경제를 걱정하며 머리를 맞대는 다보스포럼. 이게 다 2008년 불어닥친 세계 금융위기 탓이었다. 경제학자들은 1944년 쓰인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새삼 주목했다. 몇 년 새 한국어·중국어·아랍어 등 1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딸은 아버지의 유령을 반겼다.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져들면서, 내 아버지의 저작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인 ‘사회 안에서 경제가 차지하는 위치는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서양의 거듭남을 위하여: 에세이 1919~1958> 캐리 폴라니 레빗이 쓴 이탈리아어판 ‘서문에서)
저작 <거대한 전환>으로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칼 폴라니의 딸인 캐리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교수(경제)가 방한했다. 93살의 나이에도 레빗 교수는 4월24일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개소식과 22일 ‘기본소득 한국네트워크’와의 좌담회 등에서 열정적으로 아버지의 사상을 전했다. 정용일 기자

한국에 상륙한 칼 폴라니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5년, 다시 칼 폴라니의 유령이 맴돈다. 이번엔 한국에서다. 지난 4월24일 칼 폴라니의 학문적 성과를 이어받아 한국형 사회적 경제 발전모델을 만들겠다는 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의 아시아지부 격인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소장 정태인)다. 때맞춰 칼 폴라니의 저작도 잇따라 번역돼 출간됐다.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원제 ‘서양의 거듭남을 위하여’)와 <다호메이 왕국과 노예무역>이다. 홍기빈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이 2권 모두 번역했다.

칼 폴라니는 정치경제학자이자, 언론인, 교육자였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체제를 역사적으로 분석해, 자유시장경제 옹호론자들을 논박한다. 수요와 공급이 스스로 균형에 이른다는 이론은 머릿속의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는 ‘시장’에 복속되지 않으며, 자유시장경제에 맞서 사회가 ‘이중 운동’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이중 운동’이란,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처럼 저항이 되기도 하지만 나치즘이나 파시즘처럼 반동이 되기도 한다.

“나의 아버지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지식인들이 사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유령은 그렇게 살아 있는 영혼과 만난다. 칼 폴라니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기억하는 딸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캐리 폴라니 레빗 캐나다 맥길대 교수(경제학)다.
레빗 교수는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개소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아버지만큼이나 열정적인 사람이다. 방한 이후 4월17일 전라남도 구례 ‘구례자연드림파크’ 개장 1주년 기념 포럼, 22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와의 좌담회, 23일 기자간담회, 24일 연구소 개소식 기조연설 등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냈다. 93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강행군이다. 레빗 교수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걷고, 몇 시간의 대화에도 막힘이 없었다. 숫자나 역사에 대한 기억력도 정확했다. 다만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글씨는 물론 사람의 얼굴도 흐릿하게 형체만 보일 뿐이다.

4월22~23일 만난 레빗 교수의 이야기를 묶어서 전한다. 레빗 교수는 기본소득운동의 열렬한 지지자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기적으로 일정액의 수당을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폭주를 막을 대안을 찾는 흐름은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한 갈래라면, 기본소득운동은 또 다른 흐름이다.

조절 가능 상태 벗어난 불평등
레빗 교수는 격년으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정기총회에 거의 매번 참석한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는 4월22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8층 회의실에서 ‘칼 폴라니에서 기본소득까지’라는 주제로 레빗 교수와의 좌담회를 열었다. 강남훈(한신대)·곽노완(서울시립대)·권정임(서울시립대) 교수, 윤자영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안효상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 등이 참석했다. <칼 폴라니 새로운 문명을 말하다>를 출간한 노동자협동조합 출판사 ‘착한책가게’ 전광철 이사장과 기본소득에 관심 있는 시민 등도 함께했다. 4월23일 기자간담회는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주최로 서울 정동 성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왜 새삼스럽게 칼 폴라니가 다시 주목받고 있을까?
70년 전 쓰인 책이 의미 있게 읽히는 이유가 뭘까? 21세기, 지독한 시장 지배의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시장이 우리의 사회적 삶을 지배한다. 사회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만 복무하게 돼버렸다. 19세기 중반까지는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다. 그런데도 21세기 불평등이 19세기 중반보다 훨씬 심각하다. 경제 전체가 상위 소수의 부를 축적하는 메커니즘으로 전락했다. 금융자본이 암세포처럼 불어나서, 실제 생산이 일어나는 산업경제를 좀먹어들어가는 상황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우리는 이를 확인했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과 유럽에서의 불평등 심화는 놀라울 정도였다. 더 이상 시장 조절이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기술혁신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성 향상은 상위 10% 내지는 1%의 극소수에게만 부를 안겨준다. 더불어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실업 상태가 되는데도, 생산성 향상의 결실은 극소수에게만 돌아가는 것이다. 지독한 불평등, 환경파괴, 사회불안 등으로 21세기 문명이 완전히 붕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레빗 교수는 이같은 불평등을 완화할 대안이 ‘기본소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1세기 자본>을 쓴 토마 피케티 교수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밝혔다. “피케티는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자본세를 제시했다. 하지만 자본이나 기업의 힘이 굉장히 강한 상황에서 (자본세의) 현실화에 대해 (나는) 비관적이다. 기본소득이 불평등 완화, 재분배 차원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기본소득이 돈 없는 일부 계층에 대한 ‘적선’이 아니라 ‘시민권’이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해결책이기도 하다. “현재 생계를 위협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심각한 양극화 사회는 정치적으로도 위험하다. 기본소득은 결국 부의 재분배뿐만 아니라, 시민을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살아 있게 만드는 대안이 될 것이다.”

아버지인 칼 폴라니가 기본소득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은 없다. 그의 사회철학에 비춰볼 때, 기본소득으로 이어지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2010년 기본소득네트워크 총회에서 만난 브라질 상원의원이 “칼 폴라니가 살아 있다면 기본소득에 대해 뭐라고 했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 뒤 아버지의 책을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봤다. 아버지도 지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3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제적 이유다. 빈곤층에게 일정 소득이 주어지면 이를 소비재에 지출할 것이고, 그건 결국 침체된 지역공동체의 부활로 연결된다. 둘째, 사회적 측면이다. 정의롭지 못한 불평등은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 기본소득은 지속 가능한 사회로 만들 수 있다. 셋째, 정치적 이유다. 기술이 고도로 진보된 사회에선 순응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자유를 보호하려면 일반적 규범에 순응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수결 사회에서도 소수자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순응하지 않고 살아가는 소수자인 시민활동가나 작가들에게 생존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준다면, 정치적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다.
4월24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 문을 연 ‘칼 폴라니(아래 작은 사진) 사회경제연구소’ 현판 제막식을 마친 뒤 박원순 서울시장과 캐리 폴라니 레빗 교수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레빗 교수는 “아직 출판되지 않은 아버지의 저작이 90여 편이나 남아 있다”고 말했다. 뉴시스, 한겨레

기본소득, 보편성이 중요
기본소득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많은데.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이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은 말이 안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술혁신이 이뤄지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노동의 잉여’가 늘어나고 있다. 그나마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저임금을 준다. 1940년대 어느 경제학자가 ‘완전고용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노동이 사회에 대한 통제를 잃을 것’이라고 내다봤는데 실제로 그랬다. 1980년대 들어서면서 신자유주의 체제로 전환됐고, 1980~90년대 미국에선 중위 임금이 전혀 오르지 않았다. 완전고용이 불가능해졌다. 대신 사람들이 이미 여가나 창의적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

레빗 교수는 캐나다에서 진행 중인 기본소득 제도를 소개했다. 65살 이상 노인에게 소득을 보장해주는 방식이다. 연방 정부는 일정액을 지급하고, 퀘벡주는 소득에 따라 금액을 달리 준다. 레빗 교수는 “자산 조사 등을 전제로 한 (선별 지급) 방식이 아니라, 보편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받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의 주제가 ‘사회적·생태적 전환과 기본소득’이다. 칼 폴라니의 사상에서 이와 관련한 어떤 함의를 끌어낼 수 있을까.
생태와 관련한 주제를 잡은 건 반갑다. 신고전파의 효용 이론이나 마르크스주의 노동가치론에서도, 자연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나무’의 가치를 물었더니 ‘시장에서 거래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식의 답들이 나오더라. 나무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더 많이 생산하면 행복하고, 더 싸게 생산하면 좋은 것이란 성장중심주의를 탈피해야 한다. 지역에서 직접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과 도시에서 소비하는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적 경제’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교육을 통해 이같은 공동체 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폴라니는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협동사회주의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대안 체제로 제시된 것인가.
폴라니는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이상주의적인 소비에트식 사회주의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에는 시장과 가격이란 현실이 없었다. 아버지는 항상 이상이 아닌 현실에서 출발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협동사회주의는 기존 자본주의 질서와 제도의 바탕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을 뜻한다. 사회 영역에서의 보완에 가깝다. 한 사람은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이고, 시민으로서 협상하는 주체다.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 공제조합 등에서 자신을 위해 일하는 삶의 방식을 폴라니가 지지했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해서 협동사회주의가 자본주의의 대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칼 폴라니는 하나의 유일한 대안을 제안하거나 주장한 적은 없다.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문 열어
서울형 다원적 발전 모델, 어떤 모습일까?
‘칼 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소장 정태인)가 4월24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서울혁신파크에 문을 열었다. 연구소는 연구자, 사회적 경제 기업가, 공무원, 시민 등이 참여하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된다.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경제’ 이론의 밑돌을 괴어놓은 칼 폴라니와 관련된 각종 연구 활동과 행사, 저작 출간 등의 사업을 할 예정이다.
서울 연구소는 1988년 캐나다 몬트리올 콩코디아대학교에 설립된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의 아시아지부 격이다. 프랑스 파리에도 ‘칼 폴라니 연구소’가 있다. 사회적 경제를 발전시키는 다양한 실험을 진행 중인 서울시가 연구소 유치에 공을 들인 결과다. 연구소 설립 논의는 2013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에 마거릿 멘델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장이 참가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11월엔 서울시, 칼 폴라니 정치경제연구소, 칼 폴라니 연구소 아시아지부 설립준비위원회 3자 간 협약을 맺었다. 박원순 시장은 4월24일 열린 개소식에 참석해 “서울이 사회적 경제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칼 폴라니 연구소가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학자인 정태인 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이 연구소 소장을, 박진도 충남대 교수가 연구소 협동조합 이사장을 맡았다. 연구위원장은 칼 폴라니 관련 저작들을 번역한 홍기빈씨다. 연구소는 앞으로 연구 작업을 거쳐 시장경제와 공공경제, 사회적 경제가 조화를 이루는 ‘서울형 다원적 발전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캐리 폴라니 레빗 교수는 “서울 연구소에 기대감이 크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그만큼 경제 불평등이 심각한 나라다. 칼 폴라니와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이 한국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동남아, 인도 등으로 퍼져나간다면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 흐름을 바꿔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연구소 개소를 축하했다.
유일한 대안은 없다
레빗 교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눈이 반짝거렸다. 아버지인 칼 폴라니가 오늘날 재조명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은 어머니였다. 1917년 당시 스무 살이던 어머니는 헝가리에서 군수공장 파업을 주도한 반전운동가였다. “아버지가 사상가였다면 어머니는 활동가였다.” 칼 폴라니는 타이핑 기계를 다룰 줄 몰랐다. 남편이 손으로 쓴 원고는 모두 아내의 손을 거쳐 타이핑됐다. 아내는 심지어 남편의 편지까지도 사본을 남겨뒀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칼 폴라니의 방대한 아카이브는 존재할 수 없었다. 경제학 공부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사상을 그대로 따라가진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내가 아버지의 저작물을 관리해야 했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100여 편의 에세이를 하나하나 보게 됐다. 그때부터 사상적 영향을 받았다. 지금도 아직 출판되지 않은 아버지의 에세이가 90여 편이나 남아 있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대안교육 20년,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본다/김규항

    http://goo.gl/o8pjgl

    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 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한국 대안학교의 역사가 20년을 넘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대안교육 쪽의 뜻있는 사람들이 ‘정명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꾸려왔다. 정명(正名)은 알다시피 ‘이름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는 공자의 이야기다.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그 이름에 값하는 본디 뜻을 살피고 바로 세워 제대로 된 대안교육을 해보자는 취지다. 그런 모임이 꾸려진다는 것은 대안교육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뜻일 게다.

    수많은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고 최초의 대안학교라는 간디학교만 해도 여러 개로 분화되어서 여전히 미인가 상태이면서 대학입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인가학교인 경우도 있다. 한 대안학교에서는 진보진영 인사의 아이와 재벌가의 아이가 함께 다니는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큰 흐름으로 본다면 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주민센터 앞 문래텃밭에서 한 대안학교 학생들이 홍익대 학생들로 구성된 사회적기업 동아리 회원들과 작물을 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평균 학비 620만원 ‘귀족학교’ 비판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실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귀족학교라는 말은 대안학교의 비싼 학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교육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전국 170여곳의 미인가 대안학교의 연간 학비(입학금·수업료·숙식비)는 평균 620만7000원으로 조사되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 체감 학비는 그보다 많다는 것이고, 입학 때 내야 하는 목돈까지 생각하면 한 아이에게 한 달 100만원이라는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 중산층 부모들이 보기에는 일반학교에 다녀도 사교육비나 식비까지 생각하면 감당할 만한 돈일 수 있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학입시를 통한 인력 상품화’라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벗어나 대학에 가지 않고도(대학을 가는 게 잘못이거나 못 가게 하는 게 옳다는 게 아니라) 제 삶을 꾸려가는 교육을 해왔다면, 그래서 20년쯤 되고 보니 그런 삶을 꾸려가는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사회 전반에 제법 나타났다면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학교라는 비판에는 서민 부모들의 울분이 담겨 있다. 아이가 동네 학교에 다니는 것도 빡빡한 부모가 대안학교를 생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학비도 학비지만 입학전형에서 대안학교 부모의 그룹에 끼는 것도 쉽진 않다. 미인가 대안학교는 재정이나 운영 면에서 부모의 참여 몫이 매우 크다. 그래서 학교의 운영방식이나 취지에 교감하는 부모들이 다수를 점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게 된다. 자연스레 아이를 뽑을 때 부모의 교육관이나 성향을 살피게 된다.

    결국 대안학교 부모들은 유유상종의 그룹을 짓게 되고, 학력이 낮거나 먹고사는 일에 쫓겨 교육문제나 인문사회적인 식견을 가질 기회가 적은 서민 부모들이 그 그룹에 끼기는 어렵다. 그것도 마음 상하는 일인데, 가만 보니 대안학교라는 데가 결국은 입시로 흘러간다면 서민 부모들로서는 위화감이 들고 마음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데 힘써왔다면, 그런 모델을 많이 만들어내진 못했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다르긴 다르다. 입시로 승부할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저렇게 뜻있는 교육을 해보려 하니 참 훌륭하다’라는 칭송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회적 맥락에서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은 ‘교육의 전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교육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고, 그래서 아이의 미래도 사회의 미래도 어둡기에 대안학교라는 게 출현한 것이다. 전체 교육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일부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나감으로써 전체 교육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게 대안교육의 사회적 위상이다. 그런데 대안학교의 주된 흐름이 일부 부모들이 전체 교육의 현실로부터 제 아이를 빼돌리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귀족학교라는 이야기가 아예 그른 건 아닐 것이다.

    유유상종 그룹을 짓게 되는 학부모들
    그러나 그런 비판이 대안학교 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다. 어느 대안학교도 설립할 때부터 그런 교육을 지향하지는 않는다.(아예 처음부터 골프와 승마까지 교과에 넣고 대놓고 귀족교육을 표방하는 일부 대안학교는 제외한다) 다 저마다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려고 학교를 만든다. 귀족학교라 불리지만 교사의 임금수준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일반 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고 싶어 대안학교로 옮긴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왜 대안학교들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전적으로 부모들 때문이다.

    부모들의 욕망과 불안이 대안학교를 그렇게 몰아간다. 대안학교 부모 대상 강연에서 이따금 부모들에게 묻곤 한다. ‘아이가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주시겠어요?’ 초등 대안학교는 거의 모든 부모들이 손을 든다. 중등에서는 절반 정도가 들고 고등학교에선 일부만 든다. 고등학교도 학년에 따라 다르고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다.

    그렇다 보니 신입생을 채우기 쉽지 않은 신생 대안학교는 아예 두 가지 경향을 함께 포용하려는 모습도 있다. 몇 해 전에 생긴 인문학 공부 위주의 중·고등 과정 대안학교는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를 하면 대학입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학교는 두 경향의 부모들이 늘상 갈등했고 결국 두 목표 다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사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가 대학입시를 해결한다는 건 기만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이야기다. 대학입시가 정말로 그런 상태라면 현재 교육에 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고 그걸로 입시 결과가 나오니 현재 교육이 문제인 것 아닌가.

    흔들리는 대안학교 부모들은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항변한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럴 거면 굳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이유가 있는가. 굳이 대안학교를 고집한다면 결국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의 정체성을 일반 학교와 다름없이 만들어놓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밖엔 안 된다. 내 아이부터 생각하는 건 부모의 인지상정이고, 한 부모가 교육문제에서 사회적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 아이만 생각하고 대안교육의 사회적 의미에 눈감는다면 성숙한 태도라고 하긴 어렵다. 사실 그런 모습은 교육에서 주체적 태도보다는 교육상품을 골라 아이를 내맡기려는 한국 부모 전반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다음 회에 계속)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내 새끼'가 '우리 새끼'로! - 유창복 서울시 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장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088


    다시 마을을 생각하다 

    최근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 학대 사건으로 매스컴이 떠들썩하다. 생면부지인 남이 들어도 기막힌 일인데, 피해 아동의 부모는 어떨까. 억장이 무너져도 수백 번은 무너질 것이다. 다른 부모들도 언제 자기 아이가 그런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마치 폭행을 당한 것만큼이나 불안하지만, 두렵다고 애를 끼고 살 수도 없다. 맞벌이라 당장 직장을 그만둘 수 없고, 전업주부라 하더라도 고립된 도시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은 만만치 않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보장하면서 돌봄의 전문성을 갖춘다는 관점에서, '육아'를 우리 사회의 절실한 과제로 삼고 대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시장 원리에 내맡겨지거나 공공의 행정 관리만으로는 충분히 달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봄이란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전제로 하며, 생명에 대한 정성으로 이뤄지는 특별한 노동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친밀한 관계란, 단지 서로 친한 사이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가를 조건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지불한 대가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소비자 입장을 넘어서는 관계를 말한다. 손주를 맡아주는 할머니, 조카와 놀아주는 삼촌, 친구네 막내 동생을 돌보는 언니처럼 친밀함 속에서 비롯되는 '책임감'이 있는 관계이다. 돈을 매개로 성립한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우러나오는 윤리적인 책임감이라서 돌봄의 만족도도 높다. 친밀한 관계가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신뢰감을 준다. 

    이미 가족의 해체가 일반적인 추세이고, 가족이 있어도 그 생활은 이미 제각각인 오늘날의 세태 속에서 친밀한 관계는 다시 '마을'일 수밖에 없다. 일상의 사소한 이야기를 공유하고, 길거리에서 심심찮게 마주치면 차 한 잔, 술 한 잔 할 수 있는 관계…. 불같이 화를 내도 뒤끝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 노엽지 않고, 다 된다고 큰소리치지만 말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저 웃어넘길 수 있는 관계, 잘 아는 윗집 아이가 내는 층간 소음은 작게 들린다는 그 관계가 바로 마을에서 이뤄진다.  

    내 아이 내가 책임지고 알아서 길러야 하는 세상이다 보니, 부모는 애가 탄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집이나 그렇지 않는 집이나 애가 타긴 매한가지다. 우리 아이만 뒤처지면 어쩌나 하지만 형편이 안 되는 집은 그만큼 뒷바라지 여력이 달리니, 그나마 애한테 쏟아 붓고 나면 살림살이가 간당간당해 사는 게 늘 불안하다. 남의 집 애들은 잘 크는데 내 새끼만 부실한 것만 같은 게 모든 부모의 똑같은 심정일 거다. '엄친아', '엄친딸'의 위세에 아이나 부모나 주눅이 들긴 마찬가지다.  

    "그 집 애 명식이, 이제 다 컸더구먼?" 
    "어? 그래." 

    우리 아이 뭘 보고 저러나 싶지만, 그래도 툭 던지는 동네 엄마의 한마디는 커다란 위안이고 안심이다. 애 키우는 일이 이웃집 엄마 때문에 더 불안해지는 세상에 이웃집 엄마와 합심해서 애들을 같이 길러보자는 것이다. 마을에서 함께. 

    ▲ 지난 3월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에 '반딧불센터'가 문을 열었다. 다가구주택이 밀집한 국민주택단지에 들어선 센터는 노후된 경로당 건물을 보수해 지었다. 커뮤니티공간, 무인택배서비스, 공구은행, 공동육아공간, 야간순찰, 안심귀가서비스 등을 서비스한다. ⓒ연합뉴스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 살이' 
     

    도시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골목 곳곳에서 소소하게 꼬물꼬물 마을이 움터왔다. 어린아이들 공동 육아와 초등학생 방과 후 교실로 엄마가 만나 '이웃'이 만들어지고, 그 이웃이 '동네'로 야금야금 넓어졌다. 시민 단체 사무실 한쪽이 큰 아이들에겐 제집 마냥 들락거리는 작은 도서관이 되고, 아파트 관리실 일부가 마을 사랑방으로 변신했다. 아이들 돌봄으로 시작된 마을 살이가 협동조합으로, 마을 축제로, 다양한 마을 사업으로 번졌다. 이렇게 넓어진 마을의 관계망은 다시 아이들이 안심하고 누비는 안전지대가 된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한두 살 커감에 따라, 함께 이룬 협동의 경험도 차곡차곡 쌓여가고 친밀한 이웃들도 늘어간다. 마을은 이렇게 절실하고 시급한 생활의 필요에 따라 하소연하고 궁리해 협동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이웃과의 관계망이다. 그래서 마을은 거창한 마스터플랜으로 건물 짓듯 만들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아이들 돌봄이든, 깨끗한 먹을거리든, 동네 위험한 시설 문제든, 마을버스 노선 문제든, 그저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친밀한 이웃들과 함께 해결하다 보면 마을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 만들기'가 아니라 '마을 살이'다.  

    특히 모든 부모의 공통 과제인 아이를 돌보는 일은 마을살이에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한다. 아이를 돌보면서 마을도 만드는 일거양득의 결실을 거두는 일인 셈이다. 부모들의 형편과 조건에 따라 시도해볼 수 있는, 마을에서 아이 함께 기르는 여러 방법들이 있다.  

    우선 20여 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이미 성공적인 육아 시스템으로 검증된 공동육아협동조합이 단연 일순위로 꼽힌다. 부모들이 출자하고 운영하는 공동 육아는 친밀한 관계와 협동으로 운영하는 마을 육아의 대표적인 대안 모델이다. 1994년 성미산마을에서 처음 시도된 이래 지금은 전국에 걸쳐 약 80여 개의 어린이집과 방과 후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설립 되었다.  

    최근 서울시는 시가 공급하는 임대 아파트(강서구 가양동)에 공동육아협동조합 프로그램을 적용해서, 아파트의 설계에서부터 입주 예정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공한 바 있다. 대부분의 입주자는 젊은 맞벌이 부부들로, 자기들이 사는 아파트 안에 공동 육아 시설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어 육아 문제와 주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부모 참여형'으로 운영 시스템을 혁신하는 모델도 적극적으로 시도해볼 만하다. 어린이집을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공동육아협동조합에 비해 부모들의 부담이 적으면서도, 교육 과정이나 어린이집 운영에 부모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서 투명성과 신뢰도를 대폭 높이고 결과적으로 부모들의 만족도를 크게 개선할 수 있는 대안적인 모델이다. 현재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이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곳은 모두 세 군데인데, 마포구 '성미 어린이집'과 은평구 뉴타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푸른숲 어린이집', 마포구 아현동 재개발 지구에 있는 '산마루 어린이집'이다.  

    이보다 좀 더 간편하고 쉽게 시도해볼 수 있는 모델은 품앗이 공동 육아다. 말 그대로 부모들이 품앗이로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모델이다. 각자의 집을 돌거나 마땅한 공간을 정해서 편한 요일을 하루씩 나누어 맡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아이들을 부모가 직접 돌보기 때문에 운영상의 복잡한 절차나 조직이 필요치 않으니, 마음 맞는 부모들이 모이면 바로 쉽게 시도해볼 수 있다. 제 아이를 여러 부모가 번갈아 살피게 되니 아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되고, 이를 서로 공유하며 토론하다 보면 부모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학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은평구의 사례를 보면, 꿈나무 도서관에서 열린 '북스타트' 모임을 통해 알게 된 14명의 엄마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품앗이 동화책 읽어주기' 모임에서 시작됐다. 이후 각종 체험 놀이와 학습 프로그램, 그리고 다양한 소모임으로 이어졌고 소식지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응암동에 위치한 신사종합사회복지관과 연이 닿아 품앗이 육아를 위한 전용 공간까지 얻었다. 14명 엄마들의 모임은 이태 만에 100여 명이 넘는 모임으로 훌쩍 자랐다. 그만큼 공동 육아에 대한 엄마들의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여성가족실에서 지원하는 부모 커뮤니티 사업이나 공동 육아 지원 사업을 통해 품앗이 공동 육아의 다양한 사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렇게 시작한 품앗이 공동 육아가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공동 육아협동조합으로 발전해가는 경우도 있다.  

    왜 '마을 돌봄'인가?  

    가끔 어르신들이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신다. 사람을 거둔들 그 공은 없다는 얘기인데, 그만큼 어려우니 아예 하지 말라는 건지, 거두더라도 애초에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인지, 아무튼 쉽지 않다는 뜻일 것이다. 제 아이 건사하는 일도 버거운데, 남의 아이를 돌보는 일이 쉬울 리 없다. 하지만 인간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종(種)을 이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육아는 결코 그 부모 개인만의 일일 수 없다. 원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인류학적 고찰까지 하지 않더라도 가까운 과거의 우리 사회만 봐도 그렇다. 마냥 어렵고 미운 시어머니이지만 육아에서만큼은 존재만으로도 안심이 됐고, 집안의 동서들과 친척들, 이웃들이 함께 아이들을 돌보며 키우는 '공동 육아'가 기본이었다.  

    하지만 급속한 도시화로 그 대가족의 혈연이 잘게 쪼개져 핵가족으로 분화되고, 부모들은 맞벌이에 정신없이 휘둘리면서 육아에 새로운 사회적 대안이 필요해진 것이다.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난 사회적 대안이란 게 결국 사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것인데, 이는 기본적으로 친밀한 관계가 바탕이 되지 않고 육아서비스의 공급과 수요라는 시장적 관계로 이뤄지다 보니, 아동 학대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경제 형편에 따라 육아 서비스의 질적 수준이 결정돼 차별 현상이 점점 극심해지는 사회 문제를 낳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육아를 부모 당사자의 책임으로 떠맡기지 않고 사회가 책임지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보육이 가능한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바로 '마을 돌봄'이다. 마을이라는 친밀한 관계가 있고, 이를 바탕으로 형성된 이웃들 간의 신뢰 속에서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것이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들이 모여 계획을 짜고, 이웃 중에서 돌봄이 능숙한 주민이 나서서 아이들을 맡는 것이다. 

    한 아이가 크는 데에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보통은 부모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웃이 궁금해지고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아이를 잠시도 품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때는 지친 육신과 우울한 심정을 하소연할 이웃이, 함께 의논하고 품을 나눌 이웃이 절실하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면서는 집 앞 골목길이 다시 보이고, 친구들과 어울려 뛰어놀 운동장이 걱정되고, 아이가 매일 지나칠 문방구 앞 게임기가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제야 비로소 마을이 내 아이가 살아갈 터전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육아라는 절실하고 시급한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 이웃과 만나고 마을을 알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렇게 형성된 이웃 관계망이 다시 내 아이가 살아갈 삶의 공간이 된다. '내 새끼'에서 출발했지만, '우리 새끼'로 나아가고, '동네 아이들'로 확장된다. 물론 그 속에서 내 아이도 잘 자랄 것이다. 이렇듯 마을에서 함께 돌보는 공동육아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이웃과 마을을 재구성함으로써, 종국에는 "누구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한다. 

    "세월호 싸움, 져도 지는 게 아니다"ㅡ 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 인터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6121

    그때김익한 명지대학교 교수는 운전 중이었다보수 성향 원로 한분과 함께 차를 탔다다들 그랬던 것처럼사고 소식을 접하고 얼마 뒤 '전원 구조뉴스를 들었다잠시 마음을 놓았는데그게 아니었다. '엄청나게 죽었겠구나.'

    "박근혜한테 전화해서 진도에 내려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에요?"
    동승한 원로에게 말했다"에이박근혜가 내 말을 들어야 말이지."

    2014년 4월 16차 안에서 나눈 이 대화를 기억하는 게그는 괴롭다중앙권력만 바라보는 습관엘리트주의그가 평소 비판하던 것들이 이 대화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깊이 반성했다생각하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그날 이후그의 행보는 알려진 대로다기록학 전문가인 그는 동료들을 모아 진도로 내려갔다. '세월호 시민아카이브 네트워크'를 꾸리고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정리했다이는 '416기억저장소개소로 이어졌다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이 주로 살았던경기도 안산시 고잔동에 있다그는 매주 화요일마다 이곳으로 출근한다 

    "아이들이 정말 꿈꿨던 게 뭔지 몰랐으면서, 그저 '학원 가라'고만"
       
    지난 화요일(4월 28일)기자는 고잔동을 찾았다그는 <프레시안>이 최근 진행한 '고잔동에서 온 편지기획에 대한 이야기로말문을 열었다 
       
    "엄마아빠가 기억하는 아이들 이야기가 주로 기사에 담겼다이걸 보고, '아이들의 삶이 참으로 아름다웠는데,우리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수장됐다'라고 생각하는데 그친다면 잘못이다기사를 쓴 취지와도 다르리라고 본다아이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잘 곱씹어보면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고어떻게 살고자 했는지가 드러난다그리고 어른들은 그걸 몰랐다안다고 믿었다하지만 아니었다아이들이 정말 꿈꾸는 게 무엇인지 모르면서, '학원 시간 늦지 않았니'라고 할 뿐이었다." 
       
    이어 그는 "희생된 아이들이 우리를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이날 나눈 대화의 요점이다지식인엘리트의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방식은 안 된다아이들과 유가족의 자리에 서야 한다.
       
    아이들의 가르침을 가장 깊이 받아들인 이들은당연히 유가족들이다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엄마아빠들 이야기 들어보면완벽하게 일치한다다들 '돈이 별 것 아니다'라고 한다먹고살 만큼 돈 있으니까돈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한다짐승 같은 자들이 유가족들에게 보상금 8억 원을 준다는 둥 떠들어도꿋꿋한 이유는 돈 욕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공통점은 또 있다 

    "'경쟁사회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남은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유가족을 본 적이 없다이건 회한 때문이다떠난 아이들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한 채공부하라고 등 떠밀기만 했다는 회한이다."  
       
    유가족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그는 기억의 힘을 곱씹게 된다아이들의 기억이 유가족들을 바꿨다이른바 진보 진영조차 자유롭지 않은공부와 성공의 권위그걸 깼다하지만 기억의 힘은 한계가 있다그 힘으로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기억은 결국 지워진다잊지 않기 위한 싸움에서 밀리는 순간세상은 변하지 않는다참사 이전과 다를 게 없어진다 

    "'기억 투쟁'작고 긴 이야기가 진실로 남는다" 
       
    그가 '기억 투쟁'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다그의 전공이기도 하다기억과 기록 사이를 오가는 게 그가 하는 일이다기록에 기억을 담고기록으로 기억을 불러낸다 
       
    "'기억 투쟁'이라는 말을 쓴다는 건반대 측이 있다는 이야기다투쟁이란 상대방이 있기 마련이니까기억을 왜곡시키거나 지워버리려는 힘이 있다지배 권력만 그러려고 하는 게 아니다사회 시스템 전체를 통해 이런 힘이 작동한다여기에 맞서 싸우는 게 '기억 투쟁'이다그 핵심에는 기록을 통해 기억을 불러내는 행위가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벌써 잊었다지난 4월 29일 재보선이 여당의 압승으로 끝나자정부는 더 이상 눈치를 보지 않는다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차관회의를 통과했다세월호 참사 진상 조사를 위한 필수 요건들이 빠진 시행령이다시행령 철회를 위한 싸움이 진행 중이지만대다수 언론의 관심은 이미 식었다이렇게 잊히는 걸까 
       
    "언론을 통해 많이 소개된 사실이 꼭 기억을 지배하는 건 아니다작고 긴 이야기가 진실로 남는다그게 씨앗이 돼 기억을 장악한다. 얼마 전에 416기억저장소 2호관이 문을 열었다아이들의 사진과 기록이 담겼다대단한 홍보를 한 것도 아닌데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이들이 긴 싸움을 이끌어가는 주역이다기억 투쟁은 긴 싸움이다." 

    '기억을 지배하는 작고 긴 이야기'. 그가 예로 든 건 '밥상 이야기'였다언론에 많이 소개된 건 아니지만사람들의 기억을 지배한다기자도 고잔동 취재를 하며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대략 이런 내용이다.
       
    "아이가 나이키 신발 사달라고 밥상에서 투정을 부렸다결국 '돈 이야기'라고 생각한부모는 밥상에서 다투기 시작했다돈 이야기가 꼬리를 물면서다툼도 커졌다아이가 짜증내며 일어섰다아빠는 아이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돈 벌러 나갔다나이키 신발 살 돈을 벌려고."
       
    이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는 유가족이 많다이런 기억은 거대한 후회와 반성으로 돌아온다돈과 공부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다이런 유가족들에게 정부는 돈 이야기를 한다어찌나 한심한 짓인지 

    "세월호 참사의 기억, '사회적 삶'으로 이어져야" 
       
    김 교수는 이어 '자기화'라는 말을 꺼냈다 
       
    "기억하는 게 끝이 아니다핵심은 '자기화'자기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4월 16아이들이 바다에 잠기고 있었다그걸 텔레비전으로 뻔히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손 놓고 있던 나 역시 아이들을 수장시킨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식으로 '자기화'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서자기를 매개로 세상을 받아들인다소설가 황석영이 그랬다. '길 가던 걸인의 죽음에도 죄의식을 느낀다'라고. '나도 가해자'라는 식의 '자기화'가 자기 부정으로까지 가지는 않을 게다사회적 삶을 살지 않았던 데 대한 회한이 든다그래서 사회적 삶에 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세월호 참사를 자기화 하는 일반적인 방식일 게다기억이란 결국 실천과 짝을 이루는 것이다실천할 것이므로 기억한다세월호 참사를 자기화하면사회적 삶에 대한 실천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역사를 공부했다역사학계에서 주목받는 논문도 여러 편 썼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기존 역사학의 관성에 불만이 많다진보적 관점에서 역사 서술을 해서 주류 역사학에 맞선다이런 식의 담론 투쟁이 역사학계의 큰 흐름이었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계몽과 훈육이라는 틀에선 진보와 보수가 마찬가지라는 게다지식인이 자기 문제의식으로 기록을 정리해서 가르치는 방식은 여전하다는 것그는 프랑스 역사가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프로젝트를 자주 이야기했다과학적인 실증을 무기로 삼는 역사가가 보기에주관적인 기억이란 그저 의심스러운 존재일 뿐이다결국 역사가의 작업이 쌓이는 데 비례해서 자생적인 기억은 파괴당한다그런데 역사가의 이런 태도가 과연 옳은가이게 피에르 노라의 문제의식이다.

    "괴물은 괴물을 이길 수 없다"

    김 교수가 참가한 '416기억저장소'도 이런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역사가혹은 다른 전문가가 '세월호 참사'를 자기 방식으로 기록하게끔 하지 않는다기록이 스스로 말하게끔 한다이곳에서도 많은 글이 생산되지만그건 함께 실천하는 이들의 글이다현장으로부터 떨어진객관적 자리에서 쓴 글이 아니다 

    엘리트주의계몽주의에 대한 반대이런 측면에선 피에르 노라의 작업보다 한 발 더 나간다그는 "진보 지식인이 갖고 있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주간 프레시안 뷰'에 격주 간으로 글을 쓰는 그는이 지면을 통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전했었다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다만 그들은 '도우미역할에 충실해야 한다지식인엘리트가 사람들을 이끌려 하는 순간괴물이 된다약자를 짓밟는 나쁜 괴물에 맞서 싸우다어느 새 스스로 괴물이 된 지식인이 많다그런데 괴물은 괴물을 이길 수 없다.괴물을 이기는 건 난장이다. 이게 그의 생각이다 
       
    "'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라고 했다이 오랜 화두를 이제 알 것 같다지난 역사를 돌아보면우리는 늘 지는 싸움만 했다중앙권력에 맞선 싸움은 모두 패했다내 궁금증은 이 대목이다이렇게 늘 지기만 했는데역사는 왜 큰 틀에서 진보해 왔는가중앙권력을 바라보는 엘리트의 시선으론 답을 찾을 수 없다표면적으론 지는 듯 했다그러나 개인적인 감동과 결실들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이런 게 모여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세월호 참사 이후 벌어진 싸움 역시 우리가 지기만 했다엘리트의 시선으로 보면그렇다하지만 삶의 현장에 뿌리 내린 시각으로 보면 다를 것이다. 
       
    416기억저장소에 모인 이들 역시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한다하지만 그게 우리 활동의 본질적인 영역은 아니다우리는 박근혜 정부혹은 안산시와 직접 투쟁하지 않는다현장에 뿌리박고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그게 우리의 목적이다."

    "유가족을 돕는 게 아니다'스스로 실천하는 장'을 연다" 
       
    밥상 공동체교육 공동체. 416기억저장소를 중심으로 싹 트는 모임들이다세월호 유가족들은 떠난 아이들로부터 깊은 가르침을 받았다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런 가르침을 잊지 않는다면답은 결국 공동체다우리 삶은 서로 연결돼 있다내 삶이 바뀌면다른 이들의 삶도 변한다남은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고밥 먹이면서 꾸려진 공동체는 "우리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터전이 될 것이다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김 교수는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는 '밀양 할머니들'을 예로 들었다삶의 터전에서 부딪힌 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공동체이들의 싸움은 지역적이면서 동시에 전국적이다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방식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까닭이다.
       
    김 교수는 "416기억저장소는 유가족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인터뷰에선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그가 416기억저장소그리고 이곳에서 싹 트는 공동체 모임에선 발언을 자제한다. "유가족과 시민이 모여 스스로 실천하는 장"이 돼야 하므로그렇다 

    "'현장의 울림'에 순종하려 한다" 
       
    이렇게 말하는 그 역시 지난해 4월 16일 이후 삶의 방식이 크게 바뀐 이들 가운데 한 명이다힘든 점은 없을까. 
       
    "삼십만 건이나 되는 기록을 놓고 현장에 앉아 있다기록 전문가 입장에서 이걸 분류하고 목록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내가 지닌 지식이 별 볼일 없구나 싶을 때도 많다작년에는 작업이 빨리 진행되지 않아서 무척 답답했다그리고 이제 5월이다떠난 아이들 대부분의 기일이 끝난다유가족들은 사회적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기억 투쟁'을 제대로 실천하는 때다우리의 활동 사이클이 자연스럽게 그 시점과 겹치게 됐다.
       
    그간 '현장의 울림'이 주는 압박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다하지만 '현장의 울림'이 여기까지 이끌었다앞으로도 '현장의 울림'에 순종하려 한다." 

    [기고]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한성봉 동아시아 대표

    http://www.hankookilbo.com/v/c57579bf37eb4ec0a007db3aaf9ccff9

    한 달 전쯤 일본 도쿄 히토쓰바시(一橋)대학 강당에서 '동아시아 출판인회의'가 열렸다. 한중일과 대만, 홍콩의 몇몇 출판사들이 모여 십 년 넘게 계속된 지역과 문화를 넘는 '독서공동체'를 꿈꾸는 모임이다.

    동아시아 지역은 '독서공동체'였다. 예를 들어 천자문은 중국의 고전에서 핵심을 추려 시적 언어로 쓴 책이지만, 동아시아 지역에서 같이 읽혔다. 양나라 때 주흥사가 만들었다 하나 많은 사람들이 편집했을 것이고, 왕인 박사가 일본에 전했다는 것을 봐서 우리나 일본에 오래 전부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공통된 문화 텍스트이자 지식과 문화의 연대를 만든 자산이다.

    이번 주제는 '전자독서의 가능성-동아시아 독서공동체 창출은 가능한가'였다. 전자책과 독서공동체가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다. 바야흐로 전자책 시대가 왔다 하여, 전세계가 부산스럽고 발 빠르다. 그렇지만 일본은 다른 IT환경처럼 한국보다는 발이 늦어서, 전자서적 역시 우리보다 늦게 태동했다 한다. 일본 출판계에서는 2013년을 전자출판의 원년이라 하며, 시장규모는 1,000억엔(8,900억원)대로 서적 총매출 7,500억엔(6조7,400억원)의 약 13%를 차지하고 아마존이나 라쿠텐(樂天)에 제공하는 타이틀 수는 30만여 점에 이른다 한다.

    일본의 몇몇 출판 관계자와 대학교수 등이 한 그룹이 되어 전자책으로 '열려 있고 획기적인 독서의 방법'을 시험했다는 발표가 주목 받았다. 이들은 전자서적으로 '독서공동체'를 시험하기 위해 우선 저작권자의 허락을 얻고 책을 PDF로 만들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전자책 역시 다양한 포맷 속에서 조금씩 EPUB로 수렴되고 있고, 이 전자책은 필요한 부분에 강조선을 긋거나 모르는 어구를 사전으로 찾아보는 정도의 작업이 가능할 뿐, 더 열린 '복사&붙이기' 등의 개인적 에디팅을 제한하고 있다. 이는 저작권 관리 목적이 크므로, 기술로 저작권 관리를 해결할 수 있다면 온갖 짜깁기와 편집을 통한 '독서행위'에는 어떤 변화가 가능한 것인가를 시험해본 것이다.

    물론 종이책에도 밑줄을 긋고 따로 메모를 하지만 이는 개인적으로 한정된다. 하지만 전자책의 특성을 살려 여러 명이 텍스트를 같이 읽고 각자의 '밑줄'과 '인용' '감상' '주석' 등을 공유한다면 개인의 독서행위가 공동의 독서로 층위가 바뀌는 동시에 새로운 텍스트로 창출된다는 말이다. 즉, 전자책으로 종이책이 실현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유의미한 독서의 가능성을 열어 보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며 독서의 층위를 넓히는 한 방법일 뿐이다. 서울대 서경호 교수는 발표에서 '디지털 시대에도 인간의 지적 활동의 모델은 변하지 않았다'며 정보를 통해 지식을 창출하고 지식을 활용해 사유를 형성한다는 모델을 제시했다. 그리고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순으로 변한 SNS는 긴 텍스트에서 점차 짧아지거나 혹은 문자가 최소화되며 이미지와 동영상이 주를 이루게 된다는 우려를 표시했다. 정보를 얻거나 지식을 소통하는 데는 매우 빠르고 효율적인 반면 그것들이 성취해야 할 '사유'에 대해 간과하고 있다는 뜻이다.

    맞다. 우리가 오랫동안 문자와 책을 사랑했던 이유는 정보와 지식을 소통하는 수단이기도 했지만, 인간의 사유를 돕는 도구였기 때문이다. 문자와 책에는 인간의 방대한 경험과 사색이 정밀하게 녹아 있어 표피적인 지식과 감흥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울러 모든 감각과 경험과 지식을 근거로 상상하고 사유하며 체계화 혹은 통합함으로써 모든 정보 세계의 뼈대의 지위를 갖는다. 진화에는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진보는 명확한 태도를 요구한다. 사리를 판단하고 취사를 결정하는 잣대를 갖지 못한다면 그 변화는 퇴보일 수도 있다.

    한성봉 도서출판 동아시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