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책 <소유냐 삶이냐>(김진홍 옮김, 1978년 1월 25일 초판, 홍성사)를 넘겨보고 있다. 그 가운데 한 대목
이 경제체제의 발전은 이제 "무엇이 인간을 위해 좋으냐?" 하는 질문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무엇이 체제의 성장을 위해 좋으냐" 하는 질문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이 모순의 날카로움을 감추려고 체제의 성장(혹은 어느 하나의 대기업의 성장이라도)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라고 가정하였다. 이 해석은 하나의 보조적 해석에 의해 보장되었다. 보조적 해석이란 체제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제 특질--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탐욕 등--이 인간본성에 내재되어 있다는 것, 따라서 체제뿐만이 아니라 인간본성 그 자체가 그 제 특질을 조장한다는 것이었다. 이기주의, 자기 중심주의, 탐욕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는 '원시적 사회'로, 그 주민은 '어린애 같다'고 생각되었다. 사람들은 이런 특질들이 산업사회를 존재하도록 하는 자연스런 충동이 아니고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려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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