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2010년 12월 1일자 고영재(언론인)의 칼럼 '껍데기는 가라'에서 한 대목 옮겨 놓는다.
오늘도 대한민국은 껍데기가 판치는 세상이다. 언론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사회적 목탁’으로서의 언론의 지위는 옛 교과서에만 실려 있다. 정치는 비틀거린다. 국민들은 정치를 믿지 않는다. 거리낌 없이 거짓말을 내뱉기 때문이다. 껍데기 세상의 두 주역은 정치와 언론이다. 무엇보다 언론의 죄가 무겁다. 언론이 ‘껍데기 정치’를 채찍질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터다. 정권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무한권력을 휘두르며 날뛴다.
참말이 사라진 시대다. 적어도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 징표로서의 언론은 없다. 국민이 언론에서 진실을 찾는 시대는 분명 아니다.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 현상은 언론의 죽음을 의미한다. 언론의 침묵과 과장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한 신문은 한 때 ‘할 말을 하는 신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독자들을 유혹했다. ‘진실’과 ‘정의’, ‘정론’은 이른바 조·중·동의 한결같은 다짐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 정권의 독선과 무지, 위선과 거짓에 한없이 너그럽다. 한때 높아진 신뢰도를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국민의 방송’도 국민의 뜻을 저버린 채 ‘MB찬가’를 부르기에 바쁘다.
강은 왜 흘러야 하는가. 고위 관료는 어째서 도덕적으로 떳떳해야 하는가. CEO식 대통령의 독선은 왜 문제인가. 국가 권력의 탈선은 또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불법적인 민간 사찰은 누가 무엇을 위해 저지른 짓인가. 이 헌법 체계를 우롱한 행위에 청와대는 어디까지 관여한 것인가. MB의 유별난 과시욕이 빚어낼 위험성은 어디에 도사리고 있는가. 최고 권력자는 왜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는가. 부자감세가 가져올 국가재정상의 위험과 국민 사이의 위화감은 없는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지만 ‘강부자’, ‘고소영’ 인사는 정당한가. 4대강 사업 하청공사가 왜 동지상고 출신에 집중된 것인가. MB 정권이 추구하는 일관된 미래전략이 존재하는가. 그 전략은 정교하고 합당한 것인가. 무소불위의 검찰권은 무엇 때문에 최고 권력자 앞에 작아지는가. 주류를 자처하는 언론들은 하나처럼 ‘정권의 문제’를 외면한다. 이는 MB 정권에게도 불행이다. 궤도 수정과 자기 성찰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한 터다.
빈 수레 요란하듯, 엉뚱한 호들갑은 언론의 또 다른 병이다. G20 정상회의를 전후해 쏟아진 갖가지 보도와 특집 프로그램은 오히려 그 효과와 정당성을 깎아내렸다. 최근 연평도 사태 보도를 보아도,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집혀 있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변함없는 전제조건은 평화다. 북한의 도발행위를 분노하고 비판할 수 있는 근거가 거기에 있다. 현 사태를 ‘군사적 게임’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흥분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반도 게임은 광저우 아시안게임과는 비교되지 않는 무서운 게임이다. 금메달 과녁을 명중시킨 열여덟 살 소년의 냉정·침착성을 따라가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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