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부흥 시대 맞은 대한민국, 그 산실인 대학은 철저히 '비인문학적'
인문학 부흥 시대를 맞고 있다. 인문학적 글쓰기가 유행하고 인문학 강좌가 여기저기서 열린다. 인문학 축제도 여럿 생겼다. 산업화에 대한 반성이든, 또 다른 상업화든 좋은 일임에 틀림없다. 현 정부 들어서는 인문학과 문화의 융성을 핵심정책으로 삼는다고 한다. 바야흐로 인문학 부흥시대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생산현장에선 인문학이 목표하는 바처럼 올바른 순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인문학의 생산기지는 대학이다. 대학의 인문학 생산과정이 건강하다면 인문학 또한 건강할 것이다. 생산과정에 억압과 일탈이 끼어들면 불량품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인문학의 산실은 철저히 비인문학적이다.
인문학 비평서 '절망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산실인 대학을 비판한 비평서다. 저자는 인문학 생산현장인 대학, 대학원, 그리고 대학교수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52명의 대학원생, 강사, 교수, 인문학자들과 만난다. 인문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제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토대다. 한국 인문학이 행해지는 곳의 내밀한 이야기가 가차없이 공개된다.
교수연구실에 방 조교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지도교수의 머슴이나 하인처럼
부림을 당한다
해외 유학생이 지나치게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구조 때문이다
비평 형식 또한 색다르다. 책상 위에서가 아닌 현장 중심이다. 인문학 현장보고, 심층 인터뷰, 비평문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저자는 신춘문예에 문학비평으로 등단하고 현재 중앙대 교수로 재직하는 제도권 인문학자다. 하지만 제도권에 대항하며 스스로를 반(半)제도권이라고 규정한다.
지식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1999년부터 두뇌한국21(BK21)이 시행됐다. 대학원에 대폭 투자하는 정책으로 2단계 BK21(2006~2012년)에만 2조300억 원이 지원됐다. 이 사업 결과 대학원이 대중교육의 장으로 변했다. 소수 사람만이 다니는 베일에 싸인 대학원이 갑작스럽게 열린 것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한국정보통신대학원에 진학한 P 씨. 프로젝트를 다섯 개나 수행하면서 랩실에서 살다시피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담당교수와 의견 충돌을 몇 번 빚었다.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도 연구비 지원이 끊겼다. 그는 아쉽게도 "인생 공부 했다"는 심정으로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인정 투쟁'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인정의 권한을 쥔 사람이 바로 지도교수다. 이것은 패거리주의와 학맥으로 굳어져 학문사회의 저변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한 대학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원 전공시험 채점에 들어간 교수가 채점을 마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는 채점에 오류가 있었다며 최저점을 최고점으로 수정했다. 자신의 전공을 희망한 학생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의 병폐를 보여 주는 웃지 못할 사례다.
교수 연구실에서 조교 업무를 하는 방 조교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지도교수의 머슴이나 하인처럼 부림을 당한다.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친 많은 학생이 박사과정을 망설인다. 한국 사회에서 해외 유학생이 지나치게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구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서울대 노문과 시간강사가 자살한 사건으로 대학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 사건으로 얼마 간의 시간강사료가 인상되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서울대 독문과 강사가, 2008년엔 서울대 불문과 강사와 건국대 비정규직 교수가 자살을 택했다.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는 금품 채용 관행, 논문 대필, 불투명한 강사 채용 등을 유서로 남겼다.
2010년 국내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K 씨는 "사회학계만 봤을 때 서울대 출신 남성 연구자이면서미국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만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K 씨가 파악한 한국의 학계는 학벌주의, 남성적 가부장제, 미국 유학의 견고한 연대 속에서 재생산된다. 여성이 지방 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비극의 수레바퀴 아래에 있는 셈이라고 통탄했다.
"한국은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학문적 글쓰기에 대한 기본 교육이 없어요. 인용이 조금만 많아도 제재하는 미국의 연구 논문에 견줘 한국 대학원생의 글은 거의 모자이크 수준입니다. 창조성과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 브루클린대에서 공부한 한 연구자의 말이다.
이런 대학 내부의 절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저자는 제도에 의한 절망을 비판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지원을 도맡았다. 국가기구의 학문지원 시스템은 특정 분야에 편중되거나, 학문제도에 종속되는 경향을 노출시켰다. 이로 인해 기초학문은 양적 팽창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교수는 연구업적을 쌓으려고 대학원생 등 제자들을 그 수단으로 동원하였다. 그릇된 목적과 방법으로 만들어진 학문은 일반대중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오창은 지음/이매진/400쪽/1만 8천 원.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
그렇다면 인문학의 생산현장에선 인문학이 목표하는 바처럼 올바른 순리가 작동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인문학의 생산기지는 대학이다. 대학의 인문학 생산과정이 건강하다면 인문학 또한 건강할 것이다. 생산과정에 억압과 일탈이 끼어들면 불량품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한국 인문학의 산실은 철저히 비인문학적이다.
인문학 비평서 '절망의 인문학'은 인문학의 산실인 대학을 비판한 비평서다. 저자는 인문학 생산현장인 대학, 대학원, 그리고 대학교수의 부조리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는 52명의 대학원생, 강사, 교수, 인문학자들과 만난다. 인문학자들과 학문후속세대(제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토대다. 한국 인문학이 행해지는 곳의 내밀한 이야기가 가차없이 공개된다.
교수연구실에 방 조교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지도교수의 머슴이나 하인처럼
부림을 당한다
해외 유학생이 지나치게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구조 때문이다
절망의 인문학 /오창은 |
지식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1999년부터 두뇌한국21(BK21)이 시행됐다. 대학원에 대폭 투자하는 정책으로 2단계 BK21(2006~2012년)에만 2조300억 원이 지원됐다. 이 사업 결과 대학원이 대중교육의 장으로 변했다. 소수 사람만이 다니는 베일에 싸인 대학원이 갑작스럽게 열린 것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한국정보통신대학원에 진학한 P 씨. 프로젝트를 다섯 개나 수행하면서 랩실에서 살다시피하며 공부했다. 하지만 그는 담당교수와 의견 충돌을 몇 번 빚었다. 프로젝트를 완성했는데도 연구비 지원이 끊겼다. 그는 아쉽게도 "인생 공부 했다"는 심정으로 학업의 꿈을 접어야 했다. 대학원 교육과정에서 '인정 투쟁'이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인정의 권한을 쥔 사람이 바로 지도교수다. 이것은 패거리주의와 학맥으로 굳어져 학문사회의 저변에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한다.
한 대학에선 이런 일도 있었다. 대학원 전공시험 채점에 들어간 교수가 채점을 마치고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는 채점에 오류가 있었다며 최저점을 최고점으로 수정했다. 자신의 전공을 희망한 학생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도제식 교육의 병폐를 보여 주는 웃지 못할 사례다.
교수 연구실에서 조교 업무를 하는 방 조교라는 것이 있다. 이들은 지도교수의 머슴이나 하인처럼 부림을 당한다.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친 많은 학생이 박사과정을 망설인다. 한국 사회에서 해외 유학생이 지나치게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대학원생을 착취하는 구조 때문이다.
지난 2003년 서울대 노문과 시간강사가 자살한 사건으로 대학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그 사건으로 얼마 간의 시간강사료가 인상되기도 하였다. 2006년에는 서울대 독문과 강사가, 2008년엔 서울대 불문과 강사와 건국대 비정규직 교수가 자살을 택했다.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는 금품 채용 관행, 논문 대필, 불투명한 강사 채용 등을 유서로 남겼다.
2010년 국내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K 씨는 "사회학계만 봤을 때 서울대 출신 남성 연구자이면서미국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만 교수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K 씨가 파악한 한국의 학계는 학벌주의, 남성적 가부장제, 미국 유학의 견고한 연대 속에서 재생산된다. 여성이 지방 국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면 비극의 수레바퀴 아래에 있는 셈이라고 통탄했다.
"한국은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학문적 글쓰기에 대한 기본 교육이 없어요. 인용이 조금만 많아도 제재하는 미국의 연구 논문에 견줘 한국 대학원생의 글은 거의 모자이크 수준입니다. 창조성과 거리가 멀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국 브루클린대에서 공부한 한 연구자의 말이다.
이런 대학 내부의 절망에서 한 걸음 나아가 저자는 제도에 의한 절망을 비판한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연구재단이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지원을 도맡았다. 국가기구의 학문지원 시스템은 특정 분야에 편중되거나, 학문제도에 종속되는 경향을 노출시켰다. 이로 인해 기초학문은 양적 팽창을 목표로 삼게 되었다. 교수는 연구업적을 쌓으려고 대학원생 등 제자들을 그 수단으로 동원하였다. 그릇된 목적과 방법으로 만들어진 학문은 일반대중들과 연구자들로부터 멀어질 뿐이다. 오창은 지음/이매진/400쪽/1만 8천 원. 이상민 선임기자 yeyu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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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를 여는 생각
절망의 인문학
오창은 지음
이매진 펴냄
오창은 지음
이매진 펴냄
‘인문학의 위기’ 담론이 휩쓸고 지나간 우리 사회 한편에선 인문학 강좌와 인문 고전 읽기가 확산되고 있다. 기업들도 인문학의 인기를 돈벌이에 활용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인문학을 각종 사업에 동원한다. 인문학의 위기는 과거지사가 됐나?
“한때 대학은 부당한 정치권력에 저항하는 진지였고, 견고한 지배체제에 거리를 둬 미래 사회의 희망을 잉태하는 둥지였다. 그러나 대자본에 대학 사회가 잠식되면서 자본의 바깥을 사유할 수 있는 곳이 사라지고 있다. 학생 편의시설은 스타벅스, 파파이스, 던킨도너츠 같은 대자본 브랜드로 채워지고, 대학 신축 건물은 SK경영관, 호암관, LG경영관, CJ어학관같이 대기업 로고로 빛나고 있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 거리를 두는 인문학이 위기에 놓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책은 인문학을 바꾸려는 지은이가 발로 뛰어 확인한 인문학 현장보고서다.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을 뒤집어놓은 <절망의 인문학>은 그러나 절망(絶望)만 곱씹는 건 아니다. 그 절망은 진짜 인문학을 향한 간절한 소망(切望)이기도 하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노숙자 등 소외계층 대상의 인문학 강의 ‘클레멘트 코스’를 만든 미국의 얼 쇼리스는 ‘희망의 인문학’을 설파했지만, 이 땅의 인문학자 오창은은 ‘절망의 인문학’을 얘기한다. 그 절망은 진짜 인문학을 향한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사진은 얼 쇼리스가 2006년 1월 방한했을 때 대한성공회 성당에서 ‘가난한 이들의 희망수업’을 하는 모습. 윤운식 <한겨레21>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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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인문학에서 사람의 인문학으로
자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절망의 인문학을 희망의 인문학으로 바꾸는 것은 약소자의 정체성과 감수성, 그리고 연대다. 중요한 것은 체계 바깥에 대한 지적, 예술적 상상력으로 현재 상황에 균열을 내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특히 1980년대 이후 금융자본이 세계를 평정한 신자유주의 체제하에서 인문학의 산실인 대학이 자본의 식민지로 변했다. 교육의 수월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높인다는 미명하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인문학은 기성 체제를 떠받치는 이데올로기와 산업 예비군 재생산 도구로 전락했다. 4가지 ‘절망’의 장으로 구성된 <절망의 인문학> 제1장 ‘호황의 절망’에서 지적하는 절망의 근원이 바로 자본의 식민화다.
제2장 ‘내부의 절망’은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도제적 학문시스템에 관한 현장보고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정보통신부의 한국정보통신대학원(KAIST-ICC)에 들어간 ㅍ씨는 지도교수와 의견차이로 몇 번 충돌한 뒤 페널티를 받았다. “프로젝트를 완료한 상태인데 연구비 지원을 바로 끊어버린 거 있죠. 발끈했죠. 너무 불합리하지 않습니까?” 지도교수를 바꾸고 연구실도 옮겼는데 문제의 그 교수를 논문심사 과정에서 또 만났고 그 전의 충돌이 걸림돌이 돼 그는 결국 석사과정을 포기했다.
자본의 학문식민화에 절망한다
도제적 학문시스템에 절망한다
정량적 평가시스템에 절망한다
도제적 학문시스템에 절망한다
정량적 평가시스템에 절망한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정체성은
일상의 정치 속에서 만들어진다
새로운 삶의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체계 밖을 상상할 수 있을 때
삶의 전망도 발견된다
일상의 정치 속에서 만들어진다
새로운 삶의 감수성을 만들어내고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체계 밖을 상상할 수 있을 때
삶의 전망도 발견된다
2014년 시행 예정인 고등교육법 개정안은 시간강사들에게 교원 지위를 부여하고 4대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등 한 해 1만명을 오르내리는 박사 졸업자들 강사노동 조건을 다소 개선했다. 하지만 대학들이 연봉을 시간강사 급여 수준으로 책정할 공산이 큰데다 채용문이 좁아져 3만여명의 시간강사들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대량실업 사태가 빚어질 거라는 예측도 있다. 번역이 홀대받는 관행도 바뀔 조짐이 없다. 돌파구가 없는 학문 후속세대들이 줄줄이 외국, 특히 영미권 유학으로 쏠리고 그것은 유학파 편중을 더욱 고착시켜 학문의 식민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도 마찬가지.
제4장 ‘약소자의 절망’에서 오 교수는 약소자의 감수성과 연대의 중요성에 주목한다. 약소자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통합 개념이다. “약소자는 유력자의 권력을 욕망하지 않는 방식으로 욕망의 배치방식을 바꿔야 한다.” 농민과 노동자일지라도 도시 소비자와 부르주아의 과잉소비를 욕망한다면 그 사람은 약소자가 아니라 유력자란다. 약소자론은 다음 4가지 문제 설정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전일화는 체계 바깥을 상상하는 것마저 억압한다. 둘째, 현실사회주의 붕괴 뒤 구심력을 잃고 흩어진 저항 주체가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며 갑자기 부상하고 있다. 셋째, 전지구적 자본의 세계화가 빨라지면서 계급 문제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넷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제 변화 속에서 북한이 동북아 평화의 ‘폭풍의 눈’이 됐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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