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2011년 9월 27일자 김민정 기자의 보도. '현직 도서관 사서가 5년 끝에 역주 출간-조선시대 왕실도서관 업무편람 규장각지'
1866년 병인양요때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됐던 도서가 프랑스 해군에게 약탈당한지 145년만인 올해 4월 14일~5월 27일까지 세 차례에 나눠 모두 우리나라에 귀환됐다. 그리고 올해 7월 19일~ 9월 1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귀환된 외규장각 도서를 특별 전시했다.규장각은 본각(창덕궁)과 외각(강화도) 2곳에 왕실도서가 분산돼 소장됐다. 이 규장각에 도서를 소장하고 이를 관리하는 업무 규정이 바로 ‘규장각지’다.
조선 후기 정조때 간행된 왕실도서관 업무편람인 ‘규장각지(奎章閣志)’상·중·하권이 번역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와 초정약수 연구 분야에서 권위자로 알려진 이세열 직지디제라티연구소장(50·현재 주성대학 근무)이 5년여의 기간에 걸쳐 역주한 ‘규장각지’를 한국학술정보에서 펴낸 것이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 시기의 정조는 규장각을 왕실도서관이자 국가적 싱크탱크로 인재를 선발 육성해 정치기구로 양성시켰다. 역대 왕실 관련 자료를 수집 보관하는 도서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한편 국가 출판물을 발행하기도 했다. 규장각은 문치주의를 이상적으로 실천한 정조의 아이디어로 처음에는 표면상 역대 임금의 어제·어필·어진 등을 봉안하는 도서관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정조 5년(1781)에 규장각 현판을 주합루로 옮겨 달면서 학술연구기관과 정책연구기관으로 변모했다. 이후 규장각은 각신들이 승정원·홍문관·예문관의 기능을 수행하는 왕의 친위세력인 통치의 싱크탱크인 근시직(近侍職·임금을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으로 일원화되면서 학문진흥 뿐만 아니라 정조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와 개혁정책을 펼치는 정치적인 목적의 강력한 기구로 육성됐다.
‘규장각지’ 완성본은 “정조 3년(1779년) 에 간행된 규장각지 초본은 잘 됐으나 고적(古蹟)에만 치중하고 사실에는 소홀한 감이 있어, 오직 후세에 남기자는 목적뿐이라면 그런대로 쓰겠으나 현시대에 이용하는 책이 되기에는 완벽하다고 할 수가 없다. 또한 정조는 완성본에서 새로 설치한 관직에서 막중한 책임을 맡자면 항상 보고 참고할 수 있는 편람이 반드시 있어야만 일에 닥쳐서 잘못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에 각신에게 의례(義例·책의 범례)를 주어서 완전한 지(志)를 편찬하게 하였다. 그리고 매번 한 편의 초고가 만들어질 때마다 내가 직접 살펴서 결정했다”라고 정조가 직접 편찬 과정을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규장각의 연혁과 직제, 관규, 제도, 의식 등을 정리한 2권 1책이다. 정조의 명으로 서명응·채제공·황경원·이복원 등이 편찬, 고활자본 정유자(丁酉字)로 1784년에 간행됐다. 이 책은 규장각에 관해 설치동기·기능·조직·의식 및 각신에 관한 지위·임무·권리 등 제반사항에 대한 기록이므로 당시의 제도와 의식에 관한 연구에 유용한 자료다. 주요 내용은 규장각 내각과 강화도에 둔 외규장각, 부설 인쇄소인 교서관 등의 설치 연혁과 건물 및 관원 구성 등을 말하고 있다. 내각에는 봉모당·열고관·개유와·이안각·서고 등 서고에 대한 설명도 붙어 있다. 이어 소속 관원의 임명과 직위, 국왕의 영정과 글 및 친필을 보관하는 의식과 일자, 국왕의 글 편집, 각 서고에 보관한 책의 구성 및 일반 서적의 편찬과 관리, 관원의 교육 및 평가, 규장각 여러 업무의 내용과 원칙, 규장각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규장각지’ 번역 중 2천800여개의 자세한 주석과 함께 부족한 부분을 보충 설명 함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 책을 펴낸 이씨는 현직 대학 도서관 사서로 재직하면서 그동안 문헌정보학의 전범인 ‘한서예문지’,‘직지’, ‘초정약수 사료집’등 번역서 및 논문을 비롯해 드라마, 다큐멘터리, 오페라, 영화, 작사, 의상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한 바 있다. 현재 이씨는 ‘초정지’와 ‘Jikji Zenomics’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043-210-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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